브루클린 드릴, 지금 주목해야 할 단 하나의 신

2020년 2월 19일, 팝 스모크(Pop Smoke)가 총격으로 사망했다. LA 경찰 당국은 범인이 당초부터 팝 스모크를 살해할 목적으로 자택에 침입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팝 스모크의 집에 있던 CCTV를 확인한 결과, 그들은 빈손으로 팝 스모크의 자택을 떠났다. 여러 정황상 팝 스모크는 갱단 다툼에 말려든 것으로 보인다.

팝 스모크가 사망한 장소.

팝 스모크는 드릴(Drill) 래퍼였다. 드릴 뮤직은 시카고에 기반을 둔 트랩의 하위 장르다. 시카고의 청소년층은 드릴 뮤직을 매개로 살인, 강도 등의 범죄 행위를 자랑했다. 드릴은 시카고에서 영국, 브릭스턴으로 건너가며 약간의 변화를 거쳤다. 브릭스턴의 갱은 총기 대신 나이프를 사용했다. 이는 곧 디퍼(Dipper), 칼과 관련된 메시지가 UK 드릴에 녹아들어 가는 계기가 된다.

시카고 드릴의 프로덕션이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손길이 닿기 전까지 꽤나 빈약했던 것에 비해 UK 드릴은 이미 많은 음악적 뿌리를 갖고 있었다. UK 드릴은 영국에서 트랩은 물론, 그라임, 정글의 사운드를 흡수했고, 다시 미국, 브루클린으로 돌아온다. 최근 주가를 빠르게 올리고 있는 피비오 포린(Fivio Foreign), 22Gz, 스무브 엘(Smoove L)은 모두 브루클린 출신 드릴 래퍼다. 이후 팝 스모크의 성공으로 브루클린의 드릴 신은 지금 힙합 팬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곳으로 떠올랐다. 팝 스모크의 사망 이후에도 브루클린 드릴 신의 주가는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FIVIO FOREIGN – BIG DRIP

왜 지금 브루클린에서 드릴이 유행하는 걸까. 이를 말하려면 미국의 현실과 갱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미국 힙합 문화에서 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예시로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을 기반으로 구성된 유명 갱단 MS-13은 새로운 단원을 모집하기 위해 힙합을 활용하는데, 그들은 집단이 공유하는 언어를 기반으로 음악을 만든다. 그리고 나서 새로운 단원에게 그 음악을 들려주며 유대감을 형성한다. 드릴 뮤직도 이와 다르지 않다. 미국의 후드, 게토에 사는 청소년들은 어릴 적부터 총격과 강도, 약물 등 갖가지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된다. 이들은 드릴 뮤직과 뮤직비디오를 통해 자신들의 삶을 표현한다. 갱 사인을 드러내고 파벌을 형성한다. 거리를 막고 난동을 피운다. 드릴 뮤직은 삶을 표현하는 방식인 동시에 현실이다.

여기에 맹점이 숨어있다. 시카고 드릴이 특정 장르로 인정받은 데는 치프 키프(Chief Keef)와 영 찹(Young Chop)이라는 파이오니어의 등장이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의 음악으로 시카고 청소년의 폭력적인 현실이 드러났다. 시카고 드릴이 등장한 건 이미 몇 년 전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브루클린에서는 미디어가 가장 폭력적인 음악이라 말하는 드릴이 유행한다. 결국 브루클린 게토의 청소년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폭력에 노출된 셈이다. 단지, 그들에게는 그 실상을 널리 알려줄 치프 키프가 없었을 뿐이다. 그 역할을 해낸 이가 팝 스모크였다.

POP SMOKE – FLEXING

드릴은 청소년의 음악이다. 스트리밍과 유튜브가 중심이 된 지금의 음악 시장에서 소비력이 가장 강한 층은 청소년이다. 드릴 신을 소비하는 10대는 또 다른 청소년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자극적인 드릴 뮤직에 매료됐다. 실제로 갱스터, 게토의 삶을 살고 이를 드러내던 래퍼 외에 폭력이 필요 없음에도 폭력적인 가사를 적는 이들 또한 나타났다. 실제로 싸움이나 총격이 벌어지지 않음에도 이를 언급하는 음악가가 늘어났다. 갱단의 삶이 일종의 엔터테인먼트가 된 셈이다. 음악 산업의 한쪽에 틱톡을 통한 바이럴이 있다면, 그 반대에는 드릴 뮤직이 존재한다.

음반 판매가 아닌 유튜브에서의 성공이 차트를 좌지우지하는 지금, 드릴 음악의 상승세는 더욱더 치솟을 것이다. 뛰어난 신예의 등장, 사운드의 변화, 10대의 열광 등, 드릴 음악은 성공을 거두는 장르가 될 모든 요소를 갖췄다. 여기에 팝 스모크라는 가장 주목받던 신인의 죽음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브루클린 드릴 신을 더욱 조명하게 했다.

필라델피아의 드릴 래퍼, 심X산타나(SimXSantana). 드릴은 미국 전역의 음악이 되어가고 있다.

여기서 다시 과거의 논쟁이 물 위로 올라온다. 폭력을 문화 현상의 일부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그러나 그것은 외부의 시선일 뿐, 실제 드릴 신의 청소년은 그저 본인들의 놀이로 여기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성공을 거두는 이가 생기고 다른 누군가는 성공을 좇는다. 브루클린 드릴 신은 지금 가장 뜨겁다.


이미지 출처│LA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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