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9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NEMO에서 인류사회의 편견과 혐오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는 아포브(APoV) 전시 ‘너와 내가 만든 세상’이 개최되었다. 어지럽던 한 해를 얼추 마무리할 즈음 막을 올린 전시는 정신없이 바쁘게 걸어왔던 올해의 시간을 뒤돌아보는 동시에 인류가 지나온 차별과 혐오, 그리고 편견의 역사를 더듬어보는 예술적 공간으로 꾸며졌다. 특히 이번 전시는 오감 시뮬레이션 경험을 통해 우리가 만들 세상에 대한 희망과 극복의 메시지를 나누는 자리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먼저 관객을 맞이하는 전시장 입구에 다다르면 인간의 광기를 그려낸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Darkside of the Moon] 앨범 속 ‘Us and them’이 흘러나온다. 노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와 그들로 나눈’ 노래의 분위기를 차용했다. 이는 본격적인 관람에 앞서 그늘진 전시 주제에 몰입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좀 더 내부로 들어서게 되면 총 3층으로 구성된 전시 공간이 펼쳐진다. 각 층은 ‘균열의 시작’, ‘왜곡의 심연’, ‘혐오의 파편’이라는 세 주제를 바탕으로 각각 혐오의 증폭과 비극적 결말, 희망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테마 룸과 작가의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각 테마에서 여섯 명의 작가 강애란, 권용주, 성립, 이용백, 최수진, 그리고 쿠와쿠보 료타(Kuwakubo Ryota)는 설치미술과 드로잉, 애니메이션 등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일상에 스며들어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혐오와 차별의 순간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저마다의 작품의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익명의 누군가’를 화두로 메시지를 던지는데, 이는 차별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관람자 본인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이로서 관람객은 방관자 또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호한 윤리적 경계선에 놓이게 된다.
관람을 마친 후 ‘너와 내가 만든 세상’이라는 전시의 제목이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외부인이 아닌 한 명의 주체적인 참여자로서 전시를 관람하길 권하는 하나의 메시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정함으로써 한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마무리되는데, 올해를 돌아볼 계기가 필요하다면 오는 12월 16일까지 블루스퀘어 NEMO에 방문하여 색다른 전시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이번 전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며, 12월 초부터는 배리어프리 온라인 전시도 오픈된다. 관람료는 무료다.
전시를 뜻깊게 감상한 VISLA는 참여작가인 최수진, 권용주, 강애란, 이용백 그리고 성립 작가와 전시에 대한 짧은 담소를 나눴다.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영감과 그것을 작품으로 풀어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MINI INTERVIEW
최수진
‘너와 내가 만든 세상’에서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교감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번 작품은 관객들이 여러 방향을 유추해볼 수 있도록 드로잉 작업을 했고, 그 속에 다양한 형상들을 숨겨두었다. 멀리서 봤을 땐 식물인 줄 알았으나 가까이 다가가 보면 사람을 대변하기도 하고, 다양한 인종을 나타낼 수도 있다. 이처럼 멀리서 볼 때와 관심있게 들여다 볼 때, 서로 다른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는 작업물을 만들고 싶었다. 관객들도 만들어진 풍경 속 다양한 메시지를 발견해보셨으면 한다.
이번 전시를 꼭 봐야 하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이야기 해본다면?
‘이게 과연 뭘까?’하는 궁금증, 즉 ‘관심’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굉장히 예민한 주제이지만 여러 사람들이 오랜 기간 준비했으니 꼭 보러 와주셨으면 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특별히 영감을 받은 게 있다면?
지난 1년 간 전시를 준비하면서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 무섭다는 감정은 이해가 잘 되지 않고 서로 다르기 때문인데, 무언가를 알게 될수록 두려움도 줄어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는 ‘공감’과 ‘혐오’와도 연결된 주제라 생각한다.
권용주
공감이 가진 두 얼굴, 공감과 혐오 문제에 대해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웹 상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나 역시 잘못된 판단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친구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대!”라고 얘기했는데,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니었던 것. 이런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시간적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특별히 영감을 받은 게 있다면?
혐오와 공감은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라 평소처럼 보고 듣는 것으로부터 영감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전시에 대해 동료들과 상의하던 중, 100년 전 ‘포토 몽타주’라는 기술을 활용한 예술가들에 대해 공부하게 됐다. 그 시기적 배경이 참 재미있게 느껴지더라. 섣부른 공감이 차별과 혐오를 만드는 것처럼, 세상은 큰 전쟁에 휘말려있었고, 전쟁의 시작점에는 대량 학살과 심각한 차별, 정치적 선동 등이 존재했다.
포토 몽타주란 사진을 오려 붙여 만든 이미지 기법으로, 당시 정치인들에게 ‘정치적 선전 도구물’로 활용된 동시에 작가들에게는 ‘차별로부터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바로 양면성을 지녔던 것. 이 ‘양면성’은 전시 주제인 ‘공감’ 속 양면성과도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관련 작가 중에서는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와 ‘엘 리시츠키(El Lissitzky)’의 작업에서 영감을 얻었다.
강애란
전시회 ‘너와 내가 만든 세상’에서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교감하고 싶은 메시지는?
우리 세계에 팽배해있는 혐오, 불편함 같은 감정을 스스로 느끼고,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이번 작업의 궁극적 취지다.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책 속 주인공이 세계와 인류를 위해 기여한 바를 느꼈으면 좋겠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특별히 영감을 받은 게 있다면?
책 속 인물을 공부하면서 새로 알게 된 부분이 많다. 그 과정에서 작업에 더 빠져들게 되더라. 앞으로는 주제를 더욱 확장하여 다양한 책들을 만들어보고 싶다.
이용백
전시회 ‘너와 내가 만든 세상’에서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교감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혐오라는 게 뭐지?” 라는 생각을 처음 해봤던 것 같다. 거울은 상황과 시간을 비춘다. 유럽과 이스라엘, 테러가 일어난 다음 날 등 상황은 계속 변하기 마련이다.
작품들은 상징과 이미지로 작가의 의도를 표현한다. 이번 작품은 ‘비어있는 간극’이 특징이다. 멀쩡한 거울이 ‘꽝’하고 깨진 후 이미지가 없어지고, 몇십 초 동안 그냥 거울인 상태로 유지되는 이 시점이 동양화에서의 ‘여백’이자, 영상 속 ‘인터벌(interval)’과 같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가해자였던 사람이 때로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관객이 스스로 얼굴을 비추는 시간이다. 거울에 비춰지는 시간, 그리고 거울이 깨진다는 점에 주목해보길 바란다.
성립
전시회 ‘너와 내가 만든 세상’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기존에 해오던 작업들과 맥락적으로 잘 맞는다고 판단해 참여했다. 평소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던 인간에 대한 혐오, 그 무의식에 깔려있는 편견에 문제의식을 갖고 작업에 임했다.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교감하고 싶은 메시지는?
보통 사람을 판단할 때 피부색, 행동 등의 요소를 보게 된다. 때문에 내 작품에는 사람에 대한 디테일(피부색, 배경)과 연령, 성별 등을 최대한 배제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이번 작업에서도 사람을 평가하는 수많은 요소들을 제외했다.
작품은 작가가 만들어둔 빈틈을 관객들이 직접 채우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작업은 불특정 다수를 그린 결과이지만,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작품 속 사람을 평가하고 있더라. 이때 나 자신에 대한 경계를 느꼈고 관객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거라 생각한다.
공감이 가진 두 얼굴, 공감과 혐오 문제에 대해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사람들은 정보에 아주 민감하다. 나 역시 알게 된 정보의 진실 여부에 관계없이 정보를 더 깊게 파헤치려 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심지어 그 정보가 가짜로 밝혀졌을 때도, “사실은 진짜가 아닐까?”라는 의심을 마음에 품고 있기도 한다. 결국 공감과 혐오의 문제는 단순히 누군가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