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 표시 – #1 Jersey Club

몇 달 전 ‘OnTheRadar’에 AJ 트레이시(AJ Tracey)가 출연해 불티나게 팔린 프리스타일이 “Seoul”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발매됐다. 하지만 로드맨들이 ‘두유노우서울?’을 물어보는 상상에 차오르는 국뽕을 품고 댓글을 훑어보면 실망할 것. 당황스럽겠지만, 정작 가사에도 서울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는 서울 없는 서울 노래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느슨해진 그라임 신(Scene)에 긴장감을 가져온 곡인 만큼, 단순하게 한국시장에 파고들기 위한 쌈마이 품질은 아니다. 방황하는 국뽕을 가다듬고 다시 댓글창을 쭉 살펴보면 로드맨들의 댓글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안정적이게 펼쳐지는 빈틈없는 벌스에 대한 찬사, 그리고 이게 도대체 무슨 비트인지 판별하는 토론을 가장한 개싸움.

AJ Tracey – “Seoul”

싸울 필요 없이, 근 몇 년간 클럽 음악에 관심을 가졌거나 작년부터 틱톡을 잘 챙겨봤으면 이 비트는 이미 익숙할 거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런 ‘풍’의 비트는 어디선가 들어봤을 것이다. 쿵쿵 쿵쿵쿵. 이 킥 패턴 위를 장식하는 맥시멀한 멜로디와 샘플은 다양하지만, 저 북소리 하나만큼은 일맥상통한다. ​​엄숙하면서도 통통 튕기며 재롱을 부리는 이 드럼 패턴은 저지 클럽(Jersey Club)의 유산이다.

이름에서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겠지만, 저지 클럽은 미국 뉴저지(New Jersey) 주의 클럽 음악을 지칭한다. 장르가 지역명을 당당하게 걸고 장사를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장르의 역사는 틱톡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저지 클럽이 저지 클럽이 된 과정을 되돌아보기 위해서 시카고 하우스가 성행하던 80년대 뉴워크(Newark)로 돌아가야 하고, 뉴워크 클럽 신의 변두리부터 로컬 사운드를 서서히 잠식한 볼티모어 클럽(Baltimore Club)을 알아봐야 한다.

디트로이트 이후에 전자음악은 시카고가 주름잡던 시절, 뉴저지에서 가장 큰 도시인 뉴워크도 시카고 하우스에 취해있었다. 옆동네인 뉴욕에서 기어오르던 개러지 하우스도 뉴워크에서 조명받고 있었지만, 1982년에 뉴워크 시내에 위치한 클럽 잔지바르(Zanzibar)에서 전설적인 디제이 토니 험프리스(Tony Humphries)라는 사기캐를 레지던트로 섭외하는 바람에 밸런스가 시카고 하우스 쪽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가스펠(Gospel) 잔뼈가 굵은 뉴저지 특유의 소울 느낌이 가미되며 파생한 뉴저지 사운드(New Jersey Sound)라는 장르가 뉴워크에 자리 잡았다.

80년대는 아니지만, 뉴저지 사운드를 되살리는 Michael Watford의 감미로운 소울 창법은 오늘날 장독대에서 꺼내도 맛있다

몇 년 후, 뉴워크에는 시카고 하우스 믹스테잎 시리즈로 주목받는 로컬 디제이 DJ 타밀(DJ Tameil)이 신에 등장했다. 비록 꽤 잘 나가는 디제이였지만, 시카고 하우스에 빠진 뉴워크에서 하우스 디제이로 더 성장할 공간은 한정적이었다. 동부에서 파라다이스 개러지(Paradise Garage)와 다이다이 뜰 정도의 체급이 된 클럽 잔지바르로 들어가는 문턱이 높아졌다. 토니 험프리스와 래리 르반(Larry Levan)이 주기적으로 공연하며,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크리스탈 워터스(Crystal Waters)가 마이크를 잡는 것을 볼 수 있는 도시가 된 뉴워크 신은 장르의 우상들이 장악했다. 신참이 여기에다 어떻게 명함을 내밀까? 이런 클럽 신에서 성공하기 위해 DJ 타밀은 음악적 깊이가 아닌 넓이를 선택했다. 그렇게 열정과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무장한 어린 타밀은 새로운 사운드를 찾고자 원정 디깅을 떠났다.

미국 동부를 떠돌다가 그는 볼티모어시에 있는 레코드 가게 ‘Music Liberated’를 방문해 당시에 유행하던 볼티모어 클럽(Baltimore Club)을 접하게 됐다. 볼티모어 클럽, 혹은 비모어 클럽(B-more Club)은 80년대 중후반 레코드 숍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볼티모어만의 로컬 음악이다. 아멘 브레이크(Amen Break)의 사촌 격인 싱크 브레이크(Think Break)와 묵직한 808 베이스의 조화가 기반이 되고, 이 위는 당시에 미국 동부를 강타한 E-MU 샘플러로 뽑은 조악한 샘플이 장식한다. 묵직한 드럼과 브레이크는 감미로운 뉴저지 사운드처럼 비싼 소리는 아니었지만, 신나는 소리라는 점은 확실했다.

볼티모어 클럽 문익점이 되겠다고 결심한 DJ 타밀은 볼티모어 클럽 엘피를 바리바리 싸들고 뉴워크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수중에 비모어를 유출하기 시작했다. 물론 DJ 타밀이 뉴워크로 볼티모어 클럽을 도입한 첫 디제이가 아닐 수 있다. 뉴워크와 볼티모어는 차 타고 반나절이면 왔다가는 거리라 이미 뉴저지에서 볼티모어 클럽이 들리긴 했다. 하지만 DJ 타밀은 볼티모어 클럽이 뉴저지의 언더그라운드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달빛조각사 빌드를 선택한 타밀은 그 누구보다 자주 볼티모어를 방문해 더 많은 엘피들을 가져와 거의 유일하게 비모어 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뤘다. 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타밀은 뉴저지에서 유일하게 클럽 음악 믹스테잎을 구웠다.

목화씨 대신에 DJ 타밀이 가져온 것은 Tapp의 “Dikkontrol”. 오늘날 우리가 듣는 저지 클럽의 밑거름이 된다

2000년도에 접어들면서 뉴저지에서 볼티모어 클럽의 수요를 충족할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아졌다. 물론 타밀은 다른 디제이들보다 몇 년은 먼저 외길을 걸어온 덕분에 볼티모어 클럽의 대가들과 친분을 다져놓았다. 볼티모어에서 곡 프로듀싱도 배워온 DJ 타밀은 뉴저지에서 처음으로 클럽 트랙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는 사운드클라우드와 밴드캠프 이전 시절이라, 독립 아티스트가 음원을 유통하는 방법은 사실상 믹스테잎 판매(혹은 강매)가 최고였다. 타밀은 EP 발매보다 믹스테잎 제작에 힘을 쓰며 볼티모어 클럽 중간중간에 그가 만든 곡들을 섞었다. 브레이크 비트 중심적인 볼티모어 하우스가 뉴워크에 상륙하자 조금씩 변했다. 브레이크 소리가 사그라들며 드럼과 멜로디가 뻗을 자리가 마련됐다. 비로소 뉴워크에도 이렇게 목화꽃이 활짝 피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DJ 타밀 믹스테잎. DJ 타밀은 이런 믹스테잎을 대량으로 구워 사거리에서 팔았다

믹스테잎의 유통으로 뉴워크에서는 장르가 탄탄하 성장하며, DJ 타밀은 뉴워크의 애칭인 ‘브릭 시티(Brick City)’에서 따와 그가 개척한 장르에 브릭 시티 클럽(Brick City Club)이란 이름을 붙여 장르적 정체성을 굳혔다. 하지만 브릭 시티 클럽은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긴 마이스페이스를 통해 음악이 공유되면서 브릭 시티는 뉴워크의 손을 벗어났다. 도시 밖으로 퍼진 움직임의 규모를 수용할 수 있게 장르는 이렇게 ‘저지 클럽’으로 개명됐다. 뉴워크에서 인터넷으로 이주한 저지 클럽은 새로운 손에 의해 발전되면서 볼티모어 클럽을 본뜬 형상을 넘어 새로운 정체성을 내포하게 됐다.

인터넷의 도움으로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접하게 되면서 오늘날 들리는 저지 클럽의 큰 세 가지 특징이 정립됐다. 우선, 어떤 장르든 쓰이는 보편적인 차별화 전략이지만, 일단 볼티모어 클럽보다 빨라지면서 135에서 145 BPM 사이가 국룰이 됐다. 두 번째로 동시대에 유행하던 힙합에서 많이 쓰이던 현악기와 신스들이 사용되며 저지 클럽의 멜로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컴퓨터의 보급화와 모뎀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터넷으로 샘플링이 민주화되고 쉬워지자 샘플의 한계는 오로지 프로듀서의 상상력이 됐다. 브레이크 비트로 긴장을 유지했던 볼티모어와 다르게 샘플을 더욱 기발한 방법으로 쪼개고 다시 붙여 저지 클럽은 이제 멜로디로 청취자를 매혹한다.

젊은 청년들이 장르를 주도한 만큼, 유행하거나 듣기 좋은 소리는 일단 잘라보고 붙여보는 전위(?)적인 장난을 허락했다. 흑인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하던 알앤비와 힙합곡에 샘플을 국한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웃기거나 신선한 소리면 샘플하고 곡에 일단 넣었다. 그렇게 클럽에서 나와 침대에서 하는 ‘그것’에서 따와 매트리스가 찌걱찌걱거리는 소리가 곧 장르의 밈(Meme)이자 없으면 서운한 존재가 되었다. 이런 고정적인 밈과 더불어 한 곡에 들어가는 수많은 샘플들은 대서양 반대편에서 만들어진 댄스음악과 어지러울 정도로 대조된다. 이는 우리 주변의 사람이 최신 밈과 유행어를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세대를 구별하고 서로 공유하는 은어를 통해 공유된 사회적 정체성을 확인하듯이, 저지 클럽의 소닉-은어를 해독할 수 있냐에 따라 내부인인지 외부인인지 측정하는 척도가 된다.

위에 언급한 저지 클럽의 굵직한 요소들을 잘 보여주는 Dj Sliink의 “Vibrate”

자의식이 강한 유럽의 전위 댄스음악과는 다르게, 저지 클럽에게 춤은 수단이 아닌 최종적인 목표다. 정신을 해방하고 확장하는 심오한 목표도 없다. 진짜 춤추는 게 끝인 만큼 순수한 의도를 가진다. 이런 저지 클럽의 단순한 의도는 저지 클럽에 벌스를 얹히게 된 계기가 대변한다. 파티에서 마이크를 잡은 DJ는 “왼쪽으로 왼쪽으로”, “엉덩이 튕겨~”처럼 차차슬라이드스러운 멘트로 춤을 유도했다. 이런 진행자-청취자의 상호작용은 저지 클럽이 클럽과 파티를 나오면서 같이 따라왔다.

춤은 인터넷이라는 개방된 공간에 놓이며 본연의 역할과 프로모션 수단을 겸한다. 즉, 춤은 파티에서 선보이는 순간의 최종 소모품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다시 상품화된다. 뉴저지에서 활동하던 댄스크루들이 저지 클럽을 수용하고 프로토-틱톡 챌린지를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테크라이프(Teklife)에 몸과 관절을 바친 시카고 형들이 보여주던 살벌함 없이 저지 클럽의 접근성 좋은 이 춤은 학생들도 따라 하기 쉬웠다. ​

틱톡이 없던 시절에 저지 클럽에 맞춰 학생들이 틱톡을 찍는 모습

​인터넷에서도 비슷한 형식을 유지한 춤과 다르게, 저지 클럽과 MC는 다른 관계를 형성한다. 2010년대에 들어가며 저지 클럽이 이제 인터넷은 물론이고 뉴욕과 뉴저지의 라디오 방송도 장악하면서 레이블들은 저지 클럽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저지 클럽과 볼티모어 클럽의 영향을 받고 프로듀싱된 곡들이 등장했는데,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곡은 수많은 추태의 OST가 된 LMFAO의 “Shots”와 시에라(Ciara)의 “Level Up” 정도. 이런 곡들의 반응이 좋자, 순도 100% 저지 클럽곡 위에 벌스를 얹은 작업물들이 차트에 오르기 시작했다. 유니크(UNIIQU3)는 2010년도 중후반부터 신을 이끄는 여성 인물의 공석이 아쉬운 나머지 본격적으로 저지 클럽 프로듀싱에 입문했다. 본인이 직접 부른 가사가 들어간 곡들이 대중적으로 성행하자 신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아티스트를 넘어, 오늘날 신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로 거듭났다. 이를 통해 여성의 신 진출을 물론이고, 저지 클럽의 가능성을 대중이 목도했다.

이를 따라 2019년에 킬라커크코베인(Killa Kherk Cobain)으로 더 유명한 유니콘(Unicorn)은 “It’s Time”을 공개하며 힙합과 저지 클럽의 동거가 시작된다. 물론 그는 클럽 곡에 랩을 얹은 첫 아티스트는 아니다. K-스위프트(K-Swift)의 “Rider Girl”와 로드 리(Rod Lee)의 “Dance My Pain Away”처럼 선배들이 클럽 곡 위에 노래하고 랩할 수 있는 풍토를 마련했다. 명확한 건 틱톡을 통해 로컬 신의 경계 밖으로 퍼져나가며 유명해진 첫 곡임이 중요하다.

유니콘 aka 킬라커크코베인의 “It’s Time

틱톡 이전에 춤과 노래가 공유되던 바이(Vine)과 뮤지컬리(Musical.ly)보다 틱톡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저지 클럽이 뉴워크의 손을 떠나 마이스페이스로 왔을 때처럼, 지금 저지 클럽은 틱톡이란 더 큰 물에 뛰어들어 보다 강한 해류에 휩쓸리고 있다. 중독성 있는 춤과 음악이 콘텐츠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플랫폼에게 저지 클럽은 안성맞춤이고, 현시대에 가장 사랑받는 음악을 만드는 래퍼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위해 저지 클럽을 이용하는 건 곧 예리한 결정이다.

볼티모어, 뉴저지, 필라델피아의 지역적 특색을 일컫던 소리는 이제 동부를 넘어 범틱톡적인 현상으로 거듭난다. 물론 클럽 음악과 연이 깊은 저 세 지역이 트렌드를 이끈다. 뉴저지의 경우에는 팝 스모크(Pop Smoke)를 필두로 옆 동네에서 세계로 수출되던 브루클린 드릴(Brooklyn Drill)과 저지 클럽의 접선은 시간문제였지, 두 장르의 합석도 바로 성사됐다. 드릴의 하이햇과 저지의 드럼 융합을 가능하게 한 건 맥버트(McVertt)와 에이스물라(AceMula)와 같은 프로듀서들이 드릴 래퍼들을 열심히 꼬셔서 2019년부터 이런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최근에 뉴워크에서 떠오르는 드릴 아티스트 밴드맨릴(Bandmanrill)만큼 틱톡에서 주가가 올라가는 래퍼는 없을 것. 2019년에 나온 싱글 “Heartbroken”은 동명을 지닌 T2의 곡을 품고 각종 챌린지와 댄스 영상으로 틱톡에서 퍼진다. 이 곡은 틱톡에서 첫 저지 드릴(Jersey Drill) 곡으로 분류됐다.

저지 드릴 프로듀서 일타강사 Ace Mula와 떠오르는 신인 MBM FRANKO의 합작 “Stoley”

이 글을 쓰는 동안 토론토 GDP의 5%를 담당하는 드레이크(Drake)가 7집 앨범 [Honestly, Nevermind]를 기습 발매했다. 4번째 곡인 “Currents”와 7번째 트랙 “Sticky”에서 찌걱찌걱 소리와 함께 또다시 저지 클럽의 드럼 패턴이 울린다. ​솔직히 앨범을 듣고 글을 여는 주제를 바꿀까 고민을 했는데, 결국 참았다. 타이가(Tyga)부터 릴체리(Lil Cherry)까지, 저지 클럽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은밀하게 편재하는 것 같다. 어차피 바꿔도 내일모레면 다른 누군가는 저지 클럽을 공개할 테니. 마감은 정하고 살아야지.

드릴과 댄스홀을 넘나드는 드레이크는 안전한 시도를 하는 아티스트다. 근 5년간 드레이크가 내놓은 작업물 중에서 밈이나 춤이 되지 않은 프로젝트가 생각나는가? 드레이크의 선택을 받은 장르면 일단 대중적으로 중간 이상은 먹은 거다.

장하다, 브릭 시티.


이미지 출처│ Steve Hock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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