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순찰 경비, 성냥 공장 직원, 핫도그 판매원, 시골 무명 밴드 등 직업뿐 아니라 배배꼬인 성격을 비롯해 누군가는 ‘루저’라 칭하는 이들에게 애정을 쏟는 아키 카우리스마키(Aki Kaurismaki)의 영화는 심히 초라하다(물론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만). 1986년 작, “천국의 그림자(Varjoja Paratiisissa)” 중 환경미화원 니칸더(Nikander)가 첫눈에 반한 마트 캐셔 일로나(Ilona)와의 첫 데이트에서 퇴짜를 맞는 모습에서 역시 그 행태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그가 고른 데이트 장소가 무려 빙고 도박장, 일명 빙고장(Bingo Hall)이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 빙고장의 빙고는 학창 시절 침 튀기며 열심히 숫자에 동그라미를 치던, 그 순수했던 시절의 게임이 더 이상 아니다. 장내에서 울려 퍼지는 진행자의 무미건조한 숫자 호명과 그에 따라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과 욕설은 순수함으로 기억된 친구들과의 기억을 뿌옇게 흐리기에 충분하다. 물론 일부 서구 사회에서는 빙고장이 쾌활한 사교의 장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으나, 철저하게 돈 놀음으로 전락한 빙고 퇴폐 업소 역시 그 수가 만만치 않다. 현재에 와서는 컴퓨터와 배팅 머신에 대부분 자리를 빼앗기긴 했지만, 대한민국 역시 빙고 도박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90년대 후반 청량리, 여의도 일대에서 행해졌던 사행성 빙고의 규칙은 일반 빙고 게임과 조금 다른데, 빙고 용지의 숫자 한 줄을 모두 맞추는 것과 더불어 탁구공을 추첨해 나오는 숫자 또한 예상해야 했다고. 당첨만 된다면야 10배가 넘는 돈을 딸 수 있지만, 1%가 채 되지 않는 확률에 굳이 모험을 걸었던 이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감히 추측해 보건대, 빙고 도박의 진짜 위험성은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습득한 익숙한 규칙과 불과 4, 5분 안에 목돈을 쥘 수 있다는 헛된 희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듯하다. 친숙하기에 잘 할 거라는 자신감, 그것이 가장 무서운 적인 줄 누가 알았을까. MBC 취재 기자가 만난 빙고장 고객이 그랬듯, 빙고장을 찾는 거의 모두가 공허한 원을 그릴 뿐이었던 것 아닐까.
불법 도박 신고는 국번없이 1301, 치료 상담은 1336
이미지 출처 | Daum, MBC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