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S #8 축지법과 비행술

밈을 즐기는 최대 재미요소 중 하나는 댓글 읽기다. 여느 때처럼 SNS 삼매경에 빠져 밈과 그에 달린 댓글을 탐닉하던 중 흥미로운 정보를 입수했다. 도무지 합성이라고 밖에 믿어지지 않는 ‘축지법과 비행술’을 가르치는 학원이 실제 합정역 1번 출구 부근에 존재했다는 사실. ‘축지법과 비행술’이란 정직한 이름을 내건 간판 하단 창문에는 ‘축지법’ 이외에도 ‘아트워킹’, ‘공간비행술’, ‘부부클리닉’ 등의 부조화스러운 기술이 나열되어 있어 더욱 신비하고 음침한 기운을 내뿜는다.

사실 ‘축지법과 비행술’에 대한 추적은 필자 이외에도 께름칙한 타이틀에 끌린 이들이 이미 여러 차례 선행해 왔다. 오래간만에 돌아온 VVS에서는 그들이 남겨 놓은 흔적을 한 데 모아 제공해 보고자 하니, 혹여 합정역 인근을 지나다 한 번쯤 눈길을 던졌던 기억이 있다면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함께해 봐도 좋겠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합정역 1번 출구에서 ‘축지법과 비행술’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2016년 이후 고층 빌딩이 신축되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축지법과 비행술’은 기타리스트 손영성이 1990년대부터 합정역 인근에서 운영하던 ‘율려원’을 근간으로 하는데, 이곳은 앞서 언급한 공간비행술, 부부클리닉을 비롯한 일반 상담이나 각종 잡다한 ‘치료’와 ‘학습’을 제공하려 했던 곳으로 보인다. 주인장에 대해서 좀 더 찾아본 바에 따르면 한국기타교육협회 회장과 한국기타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다수의 기타 관련 저서(그는 이를 ‘초능력 기타’라 칭했다)를 출간했으며, 이후 기타 액세서리 ‘삼족오 멜빵’을 개발했다고 한다. 그의 기타 사랑만 보더라도 어딘가 심상치 않은 인물임은 분명하다. ‘기타 전공을 통한 전인완성의 구도발심’을 했다고 하니 말이다. 또한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유사과학 혹은 흡사 사이비와 견주어지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의견도 있으니 판단은 각자가 내려보는 걸 권한다.

비록 지금에야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2007년 전후로는 ‘축지법과 비행술’이 꽤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모양이다. 이런 허술한 타이틀에 누가 넘어갔겠냐 싶겠지만, 그렇게 억지스러운 이야기도 아닌 것이 TV 방송 “리얼시리즈 묘”에 출연함과 더불어, 저서 ‘축지비행술’까지 출간하며 화제를 낳았다. 당시 배포된 전단지를 같이 살펴보자. “리얼스토리묘”의 방영시간표와 함께 눈길을 끄는 점이 축지법과 비행술에 관한 10 계명이다. 그들이 줄창 주장하는 ‘축지법과 비행술’은 삶에서의 고통과 방황을 종식시키고 정신적 행복을 얻는 방법의 일환이란다. 특히 5번, 단순히 빨리 달리기 위함이 아닌 ‘멋지고’ 쉽게 달리기 위함이란 항목이 눈에 띈다. 최근 다시 밈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축지법 아저씨가 떠오르지 않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하단 내용을 도려냈지만 3만 원의 입장료를 지불하면 직접 축지법과 비행술을 배워 볼 수 있는 오프라인 체험 이벤트 홍보도 해당 전단지에 포함됐다.

‘축지법과 비행술’의 여파는 단순 행인들의 눈요기에 그치지 않고 문화, 예술계까지 그 영향력을 미쳤다. 2013년, 해당 학원(?)을 주제로 한 단편 영화 “축지법과 비행술”이 등장한 것. 배우 오달수가 학원의 사범 역할을 맡은 영화는 일용직을 전전하던 청년이 우연히 학원에 등록하며 격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표면적으로는 축지법과 비행술이라는 황당무계한 수련을 행하는 두 사람을 비추지만, 실상은 무언가를 꾸준히 해나가며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나름 건전한 내용을 담았다. 영화의 연출 의도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라고 하니, 앞서 전단지에서 살펴보았던 내용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면서도 나름 인간적인 면모까지 살린 모습이다.

한편, 비슷한 시기 예술계 역시 ‘축지법과 비행술’을 주목했다. 2015년 작가 문경원과 전준호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출품작으로 “축지법과 비행술”이란 영상을 선보인 것인데, 영상은 육지 대부분이 물에 잠긴 종말적 재앙 이후 한국관이 부표처럼 떠도는 상황에서 그 안에 거주하는 인간이 아름다움을 깨닫는 과정을 담았다.

이처럼 ‘축지법과 비행술’이 자의로든 타의로든 다방면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비록 당시 학원을 운영했던 주인장은 여태 이로 골머리를 앓는 것 같지만 말이다(필자와 같이 ‘축지법과 비행술’을 추적했던 경향 신문 기자와의 비교적 최근 통화에서 손영성 주인장은 그를 종종 찾는 이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좌우지간 ‘축지법과 비행술’이 모두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단지 허무맹랑하고 어이없는 타이틀만이 아닌 듯하다. 그 기저에는 어디론가 훌쩍 자유로이 떠나고 싶은 서울 시민들의 마음이 십분 반영되지 않았을까.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게 된 한때의 가십거리 ‘축지법과 비행술’, 오늘은 분명 어디론가 훌쩍 사라지고픈 날씨다.


이미지 출처 | MSFF,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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