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슈게이즈(Shoegaze) 밴드 도쿄 슈게이저(Tokyo Shoegazer, 東京酒吐座)가 오는 3월에 첫 내한 공연을 개최할 예정이다. 도쿄 슈게이저는 드러머 사사부치 히로시(Sasabuchi Hiroshi)가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급조로 조직하며 시작되었다. 이벤트성으로 끝날 것만 같았던 밴드는 이후에도 활동을 지속했고 자연스럽게 2011년에 첫 정규 앨범 [crystallize]까지 발매하게 되었다. 각자의 밴드에서 자신만의 포스트 록과 노이즈 팝 사운드를 구축하며 활동하던 인원들이 프로젝트성으로 모였던 밴드가 어느새 일본의 대표적인 슈게이즈 밴드가 된 것.
포스트 록과 슈게이즈 장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의 기념비적인 [Loveless]의 헌정 음반 [Only Loveless]에도 두 곡을 기여한 후 갑자기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6년의 잠정적 휴식을 거친 도쿄 슈게이저는 2019년에 1집을 미국에서 재발매하며 컴백을 알렸고, 2022년에는 세 번째 앨범 [Moonworld Playground]까지 발표했다. 그들의 한국 방문에 앞서 VISLA는 도쿄 슈게이저와 이번 공연과 지난 여정,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처음 만나게 된 한국의 청중과 독자를 위해 도쿄 슈게이저에 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Sasabuchi(이하 B): 도쿄 슈게이저에서 드럼을 담당하는 사사부치입니다. 슈게이즈(shoegaze)라는 장르로 분류되는 음악을 만들고 있는데, 들어본 적이 없는 분들이 많을 것 같지만 한번 들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엄청나게 큰 소리와 음압으로 당신의 고민을 단숨에 날려버려 줄 테니까요.
Watanabe(이하 W): 기타 및 보컬 담당 와타나베(Watanabe Kiyomi)입니다. 각 멤버가 좋아하거나 즐겨 들어온 음악이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반대로 그게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서 도쿄 슈게이저의 세계관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라이브 공연을 통해서 도쿄 슈게이저만의 소리의 벽을 체험해 보셨으면 해요.
Sugahara(이하 S): 기타 담당 스가하라(Sugahara Yoshitaka)입니다. 멤버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슈게이즈와 포스트 록(Post Rock) 음악을 해왔습니다. 소리가 크면 클수록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슈게이즈는 틀림없이 세상에서 가장 소리가 큰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말부터 활발하게 동아시아 전역에서 공연을 선보인 것으로 알고 있다. 연이은 해외 공연을 준비한 과정은 어땠는지, 일본 내 공연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B: 재결성한 것이 2019년인데, 그때부터 동아시아 투어를 시작했어요. 중간에 코로나의 영향으로 투어를 잠시 중지했었지만 2022년부터는 조금씩 재개할 수 있었어요. 투어에 필요한 장비가 매우 많기 때문에 해외에서 쓸 수 있도록 각자 장비를 잘 준비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진행하는 국내 공연과 크게 다른 점은 우선 기본적으로 공연에 필요한 앰프 개수가 다르다는 것인데, 압도적인 차이점으로는 해외 공연의 관객분들이 더 열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W: 아무래도 해외 공연은 국내 공연보다 짐 무게를 신경 써야 하다 보니 공연하는 국가에 따라 공연에서 사용할 이펙터를 바꾸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실 일본 라이브 공연이 우리가 진짜로 표현하고 싶은 사운드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렇지만 해외 공연에서의 연주는 그 나라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라이브 사운드라고도 생각합니다. 또 다른 점으로는 일본 관중은 슈게이즈는 얌전히 감상해야 한다는 약속이라도 했듯이 조용한데, 해외는 이보다 솔직한 반응이 느껴져서 저희도 덩달아 텐션이 높아지곤 해요.
S: 앞서 말한 것에 보태자면, 저희 음악은 음향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기타와 앰프보다도 이펙터가 결정적입니다. 이펙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소리가 나오기 때문에 일본에서 진행하는 공연에서 최고의 사운드를 표현할 수 있겠지만, 해외 투어에서도 음향의 밸런스를 정교하게 계산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외국 공연 경험이 쌓인 덕분에 지금은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 음향에 꽤나 가까워졌어요.
도쿄 슈게이저의 음악은 빠른 템포와 노이지(noisy)한 느낌이 먼저 연상된다. 도쿄 슈게이저의 음악을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강점 혹은 특징이 있다면 설명을 부탁한다.
B: 빠른가? 느리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감각이 마비되었나(웃음)?
W: “Just Alright”의 이미지인가? 우리들은 오히려 장대한 미들템포의 이미지였는데 그런 이미지의 차이도 재미있네요. 도쿄 슈게이저의 특징은 역시나 폭음(爆音)이랄까요.
S: 가능한 큰 음량으로 들어주세요. 이어폰으로 들어도 좋게끔 만들었지만, 라이브로 듣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기 위해서 스피커로 들어주셨으면 해요. 다만 소음으로 인해 이웃과 트러블이 생기지 않게 주의해 주시길(웃음).
[crystallize]와 [turnaround]의 10주년 기념 리마스터링 에디션이 인상적이었는데, 어떤 계기와 뜻이 담겨있었는지 듣고 싶다. 알렉스 워튼(Alex Wharton)이나 데이브 쿨리(Dave Cooley와) 같은 해외 유명 엔지니어들과의 프로덕션 과정은 어땠는가?
B: 10년 전에는 아직 무리한 짓도 할 수 있는 나이였어서 [crystallize]는 엄청난 속도로 만들었어요. 기본 녹음부터 마지막 노래 녹음까지 합쳐서 하루밖에 안 걸렸습니다. 당시에는 무언가를 목표로 밴드로 크게 되자는 목표 같은 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용돈벌이나 되면 좋겠네’하고 만들었던 앨범인데, 그 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turnaround]의 경우 녹음 당시에 다 작업하지 못한 부분이 꽤 많았기 때문에 ‘한 번 더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스터링에 알렉스나 데이브를 기용한 것은, 복잡하지만 단순히 말하자면 그들이 작업한 사운드가 굉장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와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도 알았지만 ‘이건 이 사람이다!’하고 생각하면서 맡겼습니다.
W: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되돌아보면, 상황이나 마음이 해당 시기와는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겠죠. 우리는 당시의 작품을 마주 보고 지금의 상태에서 매듭을 짓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알렉스와 데이브를 기용하자고 제안한 것은 사사부치였어요. 우리의 재탄생한 음악에서 그들의 세계적인 명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작업 된 결과물을 들었던 순간은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S: 당시에는 무아지경으로 달리고 있었고, 그때 발표한 작품에 대해 세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건 해산한 뒤였어요. 그 후 10년간 이 멤버 구성으로 CQ라는 다른 밴드에서 작업하고 각자 다른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재결성하고 보니 모두 연주와 표현력이 정말 성장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일본 엔지니어와 작업해도 확실히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자신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알렉스나 데이브와의 작업을 통해 우리의 자신감이 위축될 정도로 훌륭한 소리가 탄생했어요. 우리들도 아직 부족하구나, 하고 반성할 만한 부분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슈게이즈 장르의 세계 최전선의 소리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 이후 우리가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습니다.
무수히 많은 페달 사이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고양이 커버가 도쿄 슈게이저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된 것 같기도 한데, 해당 이미지가 커버가 된 이유가 있는지? 있다면 간단히 설명 부탁한다.
B: 역시 그것인가요(웃음). 고양이를 사용한 건 아마 첫 번째 앨범 [crystallize]의 영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당시부터 여러 사람들이 고양이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깊은 의미가 있어서 고양이를 쓴 것은 아니고, 술을 마시다가 ‘이런 앨범 커버라면 귀엽지 않나?’하고 아이디어를 낸 기억이 있습니다. 그게 실제로 앨범 커버가 되었을 때, 역시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알기 쉬웠나 봅니다. 고양이는 귀여우니까.
그 반동으로 ‘고양이는 이제 됐어! 질렸어!’하고 낸 것이 두 번째 앨범 [turnaround]의 앨범 커버입니다. 하지만 재결성 후에도 여전히 다들 고양이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이렇게까지 얘기한다면 아예 아이콘처럼 상징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리자!’라고 생각해서 계속 고양이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제 쓸만한 고양이 사진도 별로 안 남아서 팬분들이 키우는 고양이 사진을 모집해서 이걸로 뭘 좀 작업해 볼까,라는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할지 어쩔지는 모르겠네요(웃음).
[Moonworld Playground(月世界遊泳)]에 수록된 ‘The Dreamer’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바 있다. 노스탈지아의 느낌을 강하게 자아내는 실험 영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궁금하다. 재리코딩 인터뷰 영상도 그렇고, 다큐멘터리나 영화의 영역에도 관심이 있는지?
B: 저는 다큐멘터리에서 출발해서 역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거리도 있고 모르는 세상에 대해 알아가고 싶어서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꽤 좋아해요. 뮤직비디오를 만든 히로노 야마다(Hirono Yamada)씨는 제 지인이기도 한데, 지금 일본에서 영화감독 겸 무성영화의 변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실험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은 제 아이디어였는데요, 비디오를 통해서 우리가 모든 내용을 완전히 보여주는 것보다는 이 비디오를 본 사람들이 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 주기를 원했어요. 정해진 하나의 정답보다 여러 개의 답변이 나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게, 그만큼 시야와 폭이 넓어지는 것이니까. 영상도 8mm 필름을 고집했습니다. 저는 아날로그 세상의 감성을 아주 좋아해요. 물론 다루기는 귀찮지만, 피가 통하는 느낌이 든달까.
W: “The Dreamer”는 제가 만든 곡인데요, 처음부터 표현하고 싶은 고정된 이미지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정 이미지를 정하고 그대로 작업하는 것도 좋지만, 저한테는 이번처럼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해서 각자의 감각으로 한 개의 작품을 만들었을 때 상상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TV나 영화로 다큐멘터리를 자주 봅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지나온 시간을 엿보는 것이 괴로운 순간도 분명히 있지만, 그런 불편함까지 포함해서 아주 좋아합니다.
S: 음향이 울려 퍼지는 것을 특히 표현하고 싶었던 곡인데, 뮤직비디오가 그러한 세계관을 더 강하게 해줘서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저에게 음악적인 표현은 곧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같아서, 음악을 들으면서 그에 맞는 영상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다큐멘터리나 영화 또한 사람의 감정 표현과 잘 어울리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모든 멤버들이 다른 밴드에서도 활동했던 만큼 도쿄 슈게이저의 협업적인 사운드에 영향을 준 다른 밴드나 사운드가 있는지 궁금하다. 멤버들이 개별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이나 밴드 추천해 줄 수 있는가?
B: 저는 세션 뮤지션으로서도 활동하고 있지만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나 스워브드라이버(Swervedriver)를 통해서 슈게이즈를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공격성이 높은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연주를 통해 무엇을 표현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는데, 드럼을 연주하는 데 있어서 영향을 준 밴드로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더 폴리스(The Police),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 킹 크림슨(King Crimson)을 꼽을 수 있겠네요.
W: 도쿄 슈게이저를 하기 전에 들었던 것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정도였어요. 이 밴드를 시작하고 나서 슈게이즈를 의식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옛날부터 80년대 뉴 웨이브와 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이나 뉴 메탈(Nu Metal)을 들어왔기 때문에 그런 사운드를 내는 밴드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이 밴드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데프톤즈(Deftones)를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러한 점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날지도 모르겠네요.
S: 슈게이즈 장르에서는 슬로우다이브(Slowdive)의 영향을 압도적으로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Godspeed You! Black Emperor)를 좋아해서, 그 사운드 메이킹 기술을 연구하여 도쿄 슈게이저의 사운드로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라이브 음원을 자주 듣는데, 킹 크림슨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1970년대 전반 라이브 공연은 텐션도 음악도 모두 최고라서 라이브 연주를 할 때 참고하고 있습니다.
이전 질문과 관련된 궁금증인데, 작업물마다 보컬리스트가 변경되는 것 같다. 이러한 결정은 의도된 것인지?
B: 밴드로서 고정 보컬리스트를 두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사실 있는 편이 좋겠지만 우리 셋과 입장이나 생각이 달라지면 아주 귀찮아지기 때문에, 그때그때 보컬리스트를 기용하며 생각하려고 합니다.
W: 개성이 강한 세 명과 맞는 사람이 좀처럼 없다고 할까요(웃음). 함께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상황이 바뀔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은 때와 상황에 따라 특정 보컬리스트만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S: 두 사람의 답변 그대로입니다(웃음). 개인적으로는 노래도 악기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서, 보컬이 바뀌면 그만큼 표현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한국 공연이 처음인데 기대하는 부분이 있을까? 도쿄 슈게이저를 찾아올 관중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B: 한국에 여행은 가봤지만 라이브 공연을 하는 것 자체는 처음이어서, 여러분이 우리의 음악을 직접 듣고 어떻게 반응할지 무척 궁금합니다.
W: 살면서 처음으로 한국에 가게 되어서 굉장히 설레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식문화와 엔터테인먼트 모두 존경하고 있어서, 이러한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이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상상이 되지 않아서 정말 기대됩니다.
S: 한국 드라마나 케이팝(K-pop)에 빠져있지만 한국에 직접 가본 적은 없었어요. 케이팝 콘서트 영상에서 관객분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정말 압도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저희 라이브 공연에서도 그러한 열정적인 모습으로 참여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향후 도쿄 슈게이저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B: 앞으로 투어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고 싶네요.
W: 전 세계의 사람들이 우리의 음악을 들어줬으면 해서, 앞으로 계획된 활동을 하면서 이 목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S: 지금은 온라인에서 손쉽게 해외 분들에게 음악을 들려줄 수 있지만, 우리는 라이브 밴드이기 때문에 투어가 꼭 필요합니다. 음악 작업과 라이브 활동을 둘 다 잘 챙길 수 있도록 조율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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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정보
일시 | 2024년 3월 30일(토) 19:30
장소 | 리엠 아트 센터 (서울 강남구 학동로2길 56 지하2층)
예매처 | Everytime We Fall 공식 링크
이미지 출처 | Tokyo Shoegaz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