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흐른 흔적: 월간 소비 리포트 – 최민석 편

영수증(領收證): 판매자가 구매자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종이 또는 전자 기록.

이 시대 유일한 공정 기록물인 영수증. ‘돈이 흐른 흔적’은 한 인물을 선정, 선정된 인물의 영수증을 통해 생활 패턴 및 소비 실태를 면밀히 살핀다. 4개월 만에 기어나온 2회의 주인공은 패션 브랜드 ‘산산기어(San San Gear)’의 디자이너이자 게임 동아리 ‘다이스키!(DiceKey!)’를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최민석의 4월 소비에 관하여다.

필자는 최민석과 ‘다이스키!’를 함께하며 그를 나름 근접하게 지켜봤다. 우리의 아지트가 되어준 그의 자취방에는 멋진 소품과 그래픽 티셔츠 등이 즐비했고, 때문에 4월 또한 독특한 소품과 티셔츠 소비를 예상하며 섭외했지만, 아쉽게도 바쁜 일상에 치여 즐거운 소비의 기회가 없었다고.

외려 이번 편의 주는 배달 음식과 지독한 카페인 섭취가 되었다. 한 달 동안 천천히 소비된 내역이 한 자리에 모이니 과다하게 느껴지기도. 한편으로 이는 20, 30대 자취인 및 직장인들의 일반적인 식습관으로도 예상하기에, 그의 영수증 내역은 우리네 건강과 식습관을 돌아보게 한다. 이하에 최민석의 4월 영수증과 이에 따른 간단한 질답을 실었다.

영수증 4월 1일~4월 9일

한 달 설정한 용돈이 얼마인가? 대략적으로라도 알고 싶다.

이제껏 돈을 덮어두고 사용해 모른다. 신용카드를 쓰기도 하고 혼자 살면서 이것저것 나가는 돈이 많다 보니 카드값을 내는 날 깜짝 놀라면서도 그때뿐이었다. 그렇지만 이 콘텐츠 덕에 나의 무자비한 소비 습관을 파악하게되었고 지금은 신용카드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체크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이 인터뷰를 제안해 준 VISLA덕에 나의 남은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지난 4월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지난 4월은 참회의 한 달이었다. 너무 무리해서 일감을 받았고 어찌저찌 진땀 빼며 몇 주 동안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일해 맡은 일을 모두 완수해 냈다. 보통 그렇게 무리한 작업 스케줄을 짜지 않는데, 늘 그렇듯 돈이 문제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한 달의 시간이었다.

영수증을 훑어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커피를 사 마시는 게 유독 눈에 띄었다. 지독한 커피 사랑의 계기는?

내 또래에 비해 커피를 조금 일찍 시작한 편이다. 표현이 좀 웃기긴 하지만. 또래 친구들에 비해 커피 맛을 일찍 알았다. 입시 미술학원에 다니며 자연스레 여자인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됐고, 같이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페 문화를 접하게 됐다. 난 고작 레쓰비나 맥심 따위를 커피라고 알고 있었는데, 4-5천 원짜리 커피는 확실히 뭔가 다르더라. 처음에는 만만한 카페 모카, 바닐라 라떼로 시작해서 점차 씁쓸한 아메리카노의 맛을 알아가게 됐다. 그렇게 커피는 내 삶에 있어 한 부분이 됐다.

잠은 잘 자나?

이 부분은 타고난 안티 카페인 유전자에 감사한다. 카페인 면역은 타고 났다. 할아버지께선 냉면 그릇에 믹스커피를 4-5 봉씩 타 드셨다고 들었고, 아버지와 형제들은 커피를 마시던 중에 잠드는 일도 꽤 잦았다고 들었다. 커피를 마시고도 잠에 영향을 덜 받는 성질인 것 같다. 여자 친구는 나를 머리만 대면 잔다고 ‘머대자’라고 부르곤 한다.

4월 한 달, 매머드 카페 이용 총 16회 중 9장.

유독 매머드 카페를 애용하는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커피 숍을 고르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첫 번째는 가격. 두 번째는 맛. 세 번째는 접근성이다. 우선 하루에 기본 두 잔에서, 많게는 네 잔까지도 마시기 때문에 매번 고급 원두를 정성스레 추출한 값비싼 커피를 마실 수는 없다. 그렇기에 주로 3000원 언저리의 저가 커피를 마신다. 맛에 관해서 상당히 까다로운 편인데 그래봤자 지갑 사정 앞에 장사 없더라. 적당한 가격에서 타협할 정도의 맛이면 괜찮다는 주의다. 저가 커피 업장 중에서 그나마 합리적인 맛을 보이는 건 매머드, 메가 커피 정도인 것 같다. 그리고 접근성을 따지는 이유는 내가 무척 계획적인 성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고자 하는 경로에 있고, 픽업만 하면 되게끔 모바일 주문이 가능하다면 더욱 좋고, 그렇게 붐비지 않는 업장이면 더욱 좋다. 그 세 가지의 타협점을 갖춘 곳이 매머드 커피 상수점이다.

영수증 4월 10일~4월 18일

4월 한 달 동안 옷에 관한 지출이 없어 의외다. 평소 ‘다이스키!’ 멤버들과 그래픽 티셔츠에 관한 정보를 자주 주고받던데, 4월 한 달 동안 옷에 관한 지출이 없는 이유는?

간단명료하게 말하자면 시간이 없었다. 정말로 물리적인 시간이 없어 내 에너지의 원천인 쇼핑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끔찍한 한 달이었고 지금은 고생한 대가로 여러 가지 물건의 배송을 기다리고 있다. 이 콘텐츠를 위해 세상에 자랑할 만한 멋들어진 걸 사겠노라고 다짐했으나 지키지 못해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다! 미안합니다!

좋아하는 것, 원하는 물건을 구하기 위해 돈을 아껴본 적이 있나? 혹시 이번 달 지출을 줄였다면 어느 부분에서인가?

돈은 늘 아끼려고 한다. 나는 좋아하는 것, 원하는 물건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뭘 사고 싶어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인간이기에… 나의 모자람을 인지하고 매일을 아껴살고 있다.

주로 끼니는 배달 음식으로 해결하는 것 같다. 배달 앱에는 너무 많은 먹을거리가 나와 메뉴 선정에 꽤 신중하게 되더라. 여기에 시간을 꽤 소모하게 되던데 당신은 어떠한가?

배달 음식을 즐겨 먹는 편은 아니다. 이번 달 영수증을 보면 신뢰도가 너무 떨어지지만. 하하. 보통 새벽 배송을 통해 샐러드나 간편 조리 식품, 닭가슴살 등을 시켜 먹는다. 사실 경제적으로도 이편이 훨씬 저렴하고 건강에 도움도 된다. 그렇지만 모자란 시간과 스트레스는 배달 음식을 시킬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나 역시 배달 메뉴 선정에 굉장한 공을 들인다. 무엇보다 혼자 살기 때문에 최소 주문 금액을 중심으로, 어떻게 시켜야 가장 효율적으로 시킬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한다.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최악의 손님이라고 볼 수 있겠다. 최근 배달 팁 무료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그로 인한 자영업자의 고충을 토로하는 영상을 봤는데 참 죄송스럽더라. 아무튼 이달은 너무 바빴고 신중하게 배달을 시킬 새도 없었다. 그간 검증되어 온 집을 시키는 수밖에 없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영수증 4월 19일~4월 30일

이달에 가장 만족했던 먹거리는?

영수증이 제출됐는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많은 작업이 한창 마무리 되어 갈 4월 20일 즈음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은 ‘오띠젤리’가 떠오른다. 나는 달콤함에 짠맛이 더해진 음식을 무척 좋아하는데, 이 집의 판체타가 딱 내 이상을 담은 맛이다. 이탈리아의 전통 빵, 흡사 호떡 비스름한 모습의 띠젤리에 돼지뱃살인 판체타, 그리고 부드러운 여러 치즈와 그 맛을 하나로 잡아주는 꿀. 정말 근사한 한 입 거리가 아닐 수 없다. 마음 같아선 판체타를 다섯 개는 욱여넣고 싶었지만 주문 금액을 보니 금세 이성을 찾게 되었다. 언젠간 생활비 걱정을 안 할 정도의 성공한 어른이 되어 판체타를 양껏 먹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단 것과 배달 음식의 흔적을 보니 자연스럽게 평소 운동량이 궁금해졌다. 마침 고양시의 배팅센터를 찾아간 흔적도 찾아볼 수 있었고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약하고 있다고도 들었다.

우스갯소리로 본업이 야구선수고 부업이 디자이너라는 얘기를 할 정도로 야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사회인이 된 이후부터 아마추어 리그에 가입하여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주에 한 번 정도는 시합을 뛰고 있으며 야구를 더 잘하기 위해 헬스장을 등록하여 일주일에 적게는 세 번, 많게는 다섯 번은 가는 것 같다. 시합이 없는 날은 시합의 퍼포먼스를 위해 운동하는 셈이지. 야구 아카데미도 가끔 다니며 타격감을 올리기 위해 배팅센터에 가서 100~200구 정도 배팅연습을 하기도 하고. 현재 투수로서는 리그에서 탈삼진 1위, 타자로서는 팀 내 타율, 출루율, 장타율 1위를 기록 중이다. 함께하고 싶은 실력자는 언제든 환영한다.

지난 4월의 영수증 정보로는 배달 음식과 커피 주문이 대부분이다. 이외에 인상 깊은 소비가 있었다면?

비록 배달 음식과 커피로 황폐해진 4월의 지출 일지였지만, 갖고 싶었던 것 한 가지는 구할 수 있었다. 많은 게임을 접고 종종 플레이하는 TCG 게임인 “하스스톤”의 아트북이다. 당근마켓에서 우연히 발견했으나, 오버워치 아트북과 함께 인질로 묶여 판매되고 있었다. 그런 물건을 판매자분과 치열한 협상 끝에 단일 제품으로 구매할 수 있었던 것. 희소성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즐거움을 무료로 제공하는 게임 아트북을 구매한 게 뜻깊었다. 다만, 서버 문제는 조속히 해결책을 마련해 줬으면 한다. 아차차 정정하겠다. 하스스톤을 아직 서비스하고 업데이트해 준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하다.

그외에 당신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아마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적금, 대출 상환, 보장형 보험, 주택연금 등 돈이 술술 빠져나가 쌓이고 있을 테니 말이다. 물질적인 걸 떠나 돌이켜보면 직업적 성취감. 후회 따위의 교훈이 남지 않았을까. 그리고 체지방이 조금 늘었을 것 같다.

4월 영수증 내역에는 없는, 영문 모를 헬스장 입구 사진. 최민석에게 4월 소비에 관한 이미지를 부탁했을 때 함께 첨부된 이미지 중 하나다. 이걸 왜 보냈느냐고 이유를 묻지 않았다. 배달 음식, 디저트 소비에 비례하여 열심히 운동도 겸한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어필하려는 의도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최민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황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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