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흐른 흔적: 월간 소비 리포트 – 장재혁 편

영수증(領收證): 판매자가 구매자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종이 또는 전자 기록.

“기록은 과거와 오늘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이다. 또한 기록은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알고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자원이자 지혜의 샘”. 이는 국가기록원이 ‘기록’의 중요성과 가치에 관해 설명한 글 중 일부이다. 새삼스럽지만 먼 과거와 달리 일기부터 SNS에 이르기까지, 요즘의 기록은 매우 개인적이며 또 일상적이다. 또한 선택적, 주관적인 형태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조선왕조실록의 서기처럼 사실만을 기록하는 경우는 잘 없지 않나. SNS에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거나 숨기고 싶은 것을 업로드하는 경우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선택적, 주관적 기록 또한 저마다 가치가 유효한 점을 인정하지만, 한편으로 ‘이 시대에 객관적이며 공정한 기록물은 없는걸까’라고 생각하던 필자. 곰곰이 생각하니 ‘영수증’이 떠올랐다. 영수증은 정확히 사실만을 입력하며, 기록을 원치 않더라도 꿋꿋이 기록한다는 점이 요즘의 여느 기록들과 다른 성격을 띈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가지는 큰 가치와 이에 따른 소비는 꽤 신중할 것이다. 따라서 영수증에 남은 흔적을 따라가면 라이프스타일 및 취미, 그리고 성격까지 한 사람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요즘 말 많은 물가도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할 수도.

그리하여 기획된 ‘돈이 흐른 흔적’은 말 그대로 한 인물의 돈이 흘러간 흔적을 영수증으로 살핀다. 한 달간의 소비 패턴을 낱낱이 파헤치며 영수증이라는 기록을 거울삼아 각자의 지갑을 돌아보길 바라는 것이 필자 본인의 마음이다. 그 첫 주자는 VISLA 에디터 장재혁의 2월 소비에 관하여다. 사무실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그의 행동 패턴으로는 점심값을 아껴 착실히 돈을 모을 것 같았으나, 바이닐에 한정된 용돈을 탕진하여 허덕이는 필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소비의 행태인 것 같았다.


영수증 2월 1일~2월 10일

한 달 설정된 용돈은 대략 얼마인가?

한 가지 룰이 있다. 하루에 3만 원만 쓸 것. 물론 평균적인 얘기다. 오늘 2만 원을 썼다면 내일 장 볼 때 만 원 어치의 여유가 있다는 뜻. 그래서 어떤 날에는 필요 없는 것들 사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따지면 대충 90만 원 정도 나오는 것 같은데, 여기에 전세 이자나 핸드폰 요금, 공과금 등까지 하면 더 나가는 것 같다. 뭘 사거나 여행을 가면 것보다 좀 더?

2월 7일 롯데슈퍼에서 지출 중 야채와 치즈를 구매했다. 어떤 요리를 했나? 밤 10시에 장을 봤는데 언제 먹으려고 준비한 음식인지도 궁금하다.

장스터께서 표고버섯 나눔을 진행하셨다. 표고버섯 나눔은 생전 처음 봤다. 유튜브에 대충 검색해 보니 버섯 파스타 같은 게 있더라. 그래서 냉큼 마늘과 느타리버섯, 쪽파 등을 구매해 요리해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날 저녁에 다음 날 점심 도시락까지 함께 만들었다. 장스터 화이팅!

당신의 영수증에 따르면 집 주변 웰빙마트와 롯데슈퍼가 있는 것 같다. 이에 따른 질문, 롯데슈퍼 vs 웰빙슈퍼.

사실 롯데슈퍼는 내가 다니는 복싱장 앞의 슈퍼마켓이다. 그리고 웰빙 슈퍼는 동네의 조금 오래된 슈퍼마켓이고. 웰빙 슈퍼 아주머니께서 연중무휴 24시라고 하셔 놓고 일요일에 항상 문을 닫으신다. 그래서 롯데슈퍼의 승리다.

평소 끼니는 어떻게 해결하는 편인가. 야채와 과일을 구매하기도 하지만 즉석식품 구매도 있고, 집에서 반찬을 준비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거나 한 접시로 모든 게 완성되는 요리를 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파스타 같은 거. 한식은 밥도 있어야 하고 반찬도 몇 개나 있어야 하니까 여간 귀찮고 살 게 많은 게 아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요리도 꽤 많이 했었는데 재료들이 계속 어정쩡하게 남는 게 싫기도 하고, 맛있게 해 먹으려면 사 먹는 거나 가격이 또이또이다. 알다시피 반찬가게도 만만치 않다.

평소 저녁 식사 시간이 매우 늦는데 이유는?

저녁에 별 약속이 없다면 퇴근 후 레거시 복싱짐으로 향한다. 운동을 마치면 대략 9-10시 사이가 되는데, 힘이 없어서 주변에서 대충 때우거나 장을 봐서 간단한 요리를 하는 정도다.


영수증 2월 11일~2월 18일

만천문화사라는 곳을 방문했다. 책방인 줄 알았는데 곤충 표본을 판매하는 곳이더라. 여기서 무얼 샀나.

영수증에는 ‘만천문화사’라고 찍혔지만 이곳의 이름은 ‘만천 곤충박물관’이다. 진짜 박물관은 아니고 곤충 표본을 판매하는 곳인데, 컬렉션이 박물관과 맞먹을 정도긴 하다. 처음 갔을 때 너무 진귀하고 아름다운 곤충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전에 메탈리퍼 사슴벌레 표본 세트를 구입해서 만들어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레스플렌덴스금광풍뎅이’, ‘구타타기린뿔꽃무지’ 그리고 다른 초록빛 풍뎅이 두 마리를 추가로 구입했다. 이런 색감이 어떻게 자연에서 만들어지는지 신기할 따름. 표본을 만들려면 풍뎅이의 등딱지에 바늘을 하나 꽂아야 한다. 만들면서 인간이 너무 잔인하고 오만하고 나 또한 거기에 참여했다는 생각에 상당한 죄책감이 들었다. 이미 구입해 버린 걸 어쩌겠나. 착한 일 많이 하면서 살아야겠다.

2월 3일 방문한 이태원북스는 진짜 책방일 것 같은데, 무슨 책을 구매했는지?

녹사평 역을 지날 때마다 항상 궁금한 곳이었는데, 마침 그곳 근처를 지나가게 되어 들렀다. 막상 들어가 보니 밖에서 볼 때와 다르게 책이 정말 꽉꽉 차 있더라. 조금 찾아보니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외국 중고책 서점이라던데 그래서 그런지 신기한 책이 정말 많다. 들어가면 아주머니께 어떤 종류의 책을 찾는지 알려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간지라 조금 당황했다. ‘한국 길거리의 풀’ 뭐 이런 종류의 책을 사고 싶기는 했는데 ‘SF 소품 제작의 신세계’라는 책을 구입하게 됐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무기 제작 오타쿠가 본인이 직접 여러 종류의 무기를 만들고 그 과정을 소개하는 책이다. 근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내가 이런 걸 만들 것 같지는 않다.

2월 7일, 16일 점심시간에 앤트러사이트로 걸어 나가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생각해 보면 사무실에 커피 머신이 있는데, 사무실 커피는 맛이 없는가?

사무실 커피라는 게 항상 그렇지 않나… 역시 사람이 타주는 게 최고다. 앤트러사이트 한남점은 테이크아웃 아메리카노가 3500원이라는 메리트가 있어 자주 간다. 그리고 주변 카페의 맛도 일반 아메리카노 중에선 상당한 편이다. 사실 요즘에는 커피를 안 사 먹어도 산책 겸 지나치는 곳이기도 하다.

설 연휴 기간 동안 고향인 제주도로 갔다가 온 걸로 안다. 영수증만 보면 커피만 마시고 온 것 같은데?

커피를 여러 번 마셨다. 영수증 몇 개가 빠진 것 같다. 보통 집에 내려갈 때마다 가족들이랑 한 두 번씩 나가서 밥을 먹는데, 커피 정도는 내가 사는 편이다.

2월 8일에 염색약을 구매하기도 했다. 염색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옷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어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치장에 대한 욕구는 남아있는지 다른 것으로 변화를 주고 싶더라. 전부터 짧은 반삭에 핑크색이나 파란색, 초록색 등으로 염색한 외국 모델들의 이미지를 좋아했다. 그래서 저번 도쿄 여행을 가면서 ‘매닉패닉’이란 헤어 매니큐어로 초록색을 시도해 봤는데 옷이랑 수건이 난리가 났더라. 아무튼 이번에는 3번의 탈색과 1번의 핑크 염색을 한 결과물인데 핑크는 실패다.

항상 짧은 머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머리에 관한 지출이 염색약 구매 외에는 없다.

머리가 조금 크다. 그래서 머리가 길면 엄청 커진다. 짧은 머리가 그나마 나은 것 같다. 바리깡을 사고부터 혼자 머리를 미는 거에 익숙해져서 웬만해선 미용실에 안 가는 것 같다. 요즘 바버샵 한 번 가려면 마음먹고 가야 하지 않나. 동네 아주머니들이 하는 미용실에도 한 번 가봤는데 개망했다.

영수증 2월 19일 ~ 2월 29일

옷에 관한 지출이 적어서 의외다.

‘#패션 #힙스터 의 6단계 진화’에서 나는 어쩌면 5 혹은 6단계에 도달했을지도..? 농담이고 아예 안 사는 건 아니다. 다만, 예전에는 큰 한 방을 노렸다면 지금은 소소한 아이템에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 남들이 안 입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을 찾아보는 일이 요즘같이 모든 게 빠른 시대에 그런 게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언제부턴가 흥미가 떨어졌다. 그래서 정말 좋아하는 것과 관련된 무언가를 산다. 가장 최근에는 이소베양 티셔츠를 샀다. 속된 말로 ‘찐따핏’ 난닝구 같지만 입으면 하루 온종일 기분이 좋다.

이달에 가장 큰 소비가 158,700원인데, 뭘 샀나?

고구마 아저씨라고 일본에서 구매대행을 해주시는 분이 계신다. 바다 건너오다 보니 배송비가 들지 않겠나. 그래서 한번 시킬 때 최대한 뽕을 뽑으려는 심산인 거다. 사실 이게 문제다. 그러면 안 되는데… 어찌 됐건 이번 달에도 꽤 여러 가지를 한 번에 구매했다. 최근에 레이지 후키츠(Reiji fukitsu)라는 일본 일러스트레이터를 알게 됐는데, 그림체 너무 본인 스타일이라 벽시계와 만화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저번 퀘스트 북스왑 행사에서 용식 씨가 가져온 “소라닌”이라는 만화책을 읽고 아사노 이니오(Asano Inio)님에게 빠져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을 독파했다. 거기에 나오는 ‘이소베양’이라는 멍청하게 생긴 버섯 캐릭터가 있다. 그 인형과 티셔츠도 일본 야후 옥션에서 구해 함께 주문했다. 그리고 항상 하나씩 껴넣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관련 물품 하나. 참, 고구마 아저씨가 뽁뽁이 대신 감자칩을 주셨다. 고구마 아저씨 사랑합니다.

좋아하는 것, 원하던 물건을 구하기 위해 돈을 아껴본 적이 있는가? 혹시 이번달에 지출을 줄였다면 어떤 부분에서인가?

대학생 때는 옷을 사고 비빔면만 먹었던 적이 있고, 잠깐 외국에 있을 때도 여행을 가기 위해 하루에 몇천 원만 가지고 산 적도 있다. 데이트를 해야 하는데 여자 친구한테 “오늘은 1유로밖에 못써”라고 말했던 게 생각나서 웃기다. 이번 달에는 엄청나게 큰돈은 아니지만 꽤 많이 나갔다. 고구마 아저씨, 만천 그리고 결혼식 축의금까지 내다보니 예상외의 출혈이 크다. 사실 이 콘텐츠를 한다기에 핑계 삼아 조금 더 써보기도 했다. 그나저나 물가가 무섭게 오르는 요즘이다. 딸기를 정말 좋아하는데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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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황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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