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홍대 등지, 소수 음악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근 몇 년 사이 부쩍 언급되는 이름이 있다. 독특한 드레드 헤어,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Underground Resistance, UR) 티셔츠, 무디맨(Moodymann), 마호가니 뮤직을 위시한 디트로이트 하우스에 바늘을 올리며 자신의 취향을 가감 없이 라이프스타일로 드러내는 시나힐(Sina Hill)은 현재 서울 내 레코드 바와 클럽, 라디오, 디지털 플랫폼 등 가리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하며 팬데믹 이후 누구보다도 빠른 속도로 자신의 얼굴을 언더그라운드 신(Scene)에 알렸다.
소울, 훵크, 레게는 물론 하우스, 테크노까지 폭넓은 취향과 안목으로 자신의 라이브러리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시나힐이 최근 디제이 퍼니(DJ Funny)가 이끄는 전자음악 레이블, 삼보 레코즈(Sambo Records)를 통해 프로듀서 커리어의 신호탄, 첫 EP [Digital Soul]을 발표했다.
[Digital Soul]의 레코드 구석구석에는 시나힐이 근 몇 년간 완전히 몰두 중인 디트로이트 하우스, 테크노, 소울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있다. 자타공인 디트로이트 마니아 시나힐은 앨범을 릴리즈하기 직전에 지난 5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자신의 영감, 그 원천의 도시 디트로이트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녀가 마치 홀린 듯 영혼을 내맡긴 디트로이트라는 도시에는 어떤 음악과 영감이 숨어있는지, 서울 이태원에서 살아가는 시나힐이라는 디제이의 손과 귀를 타고 흐르는 음악과 정서는 무엇인지 본문에서 좀 더 자세히 알아 보자.
VISLA FM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호스트이자, VISLA와 함께한 파티를 통해 다양한 VISLA 채널에서 모습을 비췄지만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 독자와 만나는 건 처음이 아닐까 한다. 스스로 어떤 DJ로 소개하고 싶은지 부탁해도 될까?
사랑과 함께하는 DJ 시나힐로 소개하고 싶다. 사랑에는 모든 감정이 있다. 멋지고 재밌는 밤을 선사하기 위해 음악을 들려주는 것 이상으로 누군가에게는 휴지 한 장 건네줄 수 있는 위로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고, 몸과 마음이 지칠 때 마음 한편에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음악을 오래도록 들려주고 싶다. 때때로 음악을 들으면 특정 순간의 감정과 장면을 추억하곤 한다. 감정과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DJ라는 직업을 너무 사랑한다. 슬프거나 기쁠 때 항상 음악이 함께하는 삶을 많은 이들이 살아봤으면 좋겠다.
근 몇 년 사이 무수한 로컬 파티와 베뉴 플라이어에 이름이 오르며 그야말로 서울 언더그라운드 신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러한 뜨거운 반응의 이유를 본인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여기저기서 나를 왜 불러주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생각해 보자면 아무래도 다양한 음악을 틀어서 그런지 말 그대로 다양한 콘셉트의 파티에서 나를 섭외하는 듯하다. 요즘엔 트립합을 자주 틀었다. 덕분에 나의 레코드 선반은 온갖 장르의 레코드가 골고루 채워져 있고, 통장 잔고는 바닥을 치고 있다. 많은 DJ가 강조하는 빌드업, 스토리텔링도 없이 그저 틀고 싶은 음악만 트는 편이다. 하지만 디제잉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운드로 관객과 베뉴를 만족시키는 일이야말로 매주 주말 판가방을 끌고 베뉴로 향하는 내 목표다. 일단은 그저 고마울 뿐, 그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
본인이 직접 주최하는 파티, 모터 유닛(MOTOR UNIT)은 그 이름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 디트로이트 도시를 향한 애정과 존중이 느껴진다. 이 파티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누군가 나를 소개할 때 “하우스 디제이 시나힐이야”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는 시점이었다. 비록 하우스 댄스를 배울 정도로 하우스 음악과 문화를 사랑하지만, 나는 디스코, 힙합, 훵크 등 틀고 싶은 음악이 너무나도 많다. 힙합과 소울을 좋아하던 내가 무디맨을 통해 하우스, 테크노에 빠지게 된 것처럼, 다양한 장르를 한 공간에서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 가지의 장르만 틀기에는 세상에 좋은 음악, 춤춰야 하는 음악이 많기 때문이다.
비보이(B-Boy) 출신이자 지금은 비트메이커, DJ로서 힙합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데츠 라잇(Det s’right)에게 함께 파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첫 번째 파티에서는 디트로이트 음악을 좋아하는 장르 불문의 로컬 DJ들과 함께 밴드 얀시 클럽(Yancey Club) 그리고 댄서들을 초대해 멋진 밤을 보냈다. 모터 유닛의 탄생에 영감이 되었던 곡은 테크노 발상지로서의 디트로이트 역사에 대한 언급으로, 제이딜라(J Dilla)의 “BBE(Big Booty Express)”가 있다. 이처럼 제이딜라는 크래프트베르크(Kraftwerk)의 “Trans-Europe Express”를 퇴폐적인 스트립 클럽 찬가로 변형했다. 파티 모터 유닛에서는 지금 서울 로컬 클럽의 트렌디한 장르를 제외한 모든 음악을 하루 만에 다 들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발표한 본인의 첫 EP [Digital Soul]은 프로듀서로서 첫 발을 내디딘 시나힐의 데뷔 앨범이다. 여기에서도 본인이 애정해 마지않는 디트로이트를 향한 애정과 해석을 엿볼 수 있다. 디트로이트가 준 영향 또는 음악적 영감에 관해 알려 달라.
디트로이트는 누구나 알법한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잭슨 파이브(The Jackson 5), 마빈 게이(Marvin Gaye) 등 거대한 소울 뮤지션들이 다녀간 레이블, 모타운부터 시작해 힙합(J Dilla, Slum Village, Eminem 등), 테크노(Jeff Mills, Derrick May, Robert hood, Cybotorn)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결국 이중에 한 아티스트라도 좋아하면 디트로이트라는 지역이 귀에 들려올 수밖에 없다.
어언 6년 전, 레코드 바에서 소울을 디깅하다 알게 된 무디맨을 시작으로 하우스에 빠지게 되었다. 나의 첫 하우스는 시카고가 아니라 디트로이트다. 그 이후로 동네방네 디트로이트를 외치며 전파하고 다니다 작년에는 서울 모데시에서 무디맨의 첫 내한 공연에 웜업 디제이를 하게 되었다. DJ를 시작한 이후로 그와 함께 플레이한다는 건 그저 오랜 꿈같은 장면이었는데 막상 만나보니 원래 친했던 형님을 오랜만에 본 느낌이었다.
그 기세를 이어 나의 진정한 소울을 찾으러 지난 5월 혼자 디트로이트에 다녀왔다. 내가 정말 즐겨 듣던 디트로이트 아티스트이자 DJ meftah가 가이드를 해주었고 1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바이닐 레코드 파티 슬로우 잼(Slow Jam)에서 플레이도 하고 왔다. 디트로이트 친구들은 “여기는 음악과 문화가 있어. 언제든 디트로이트에 놀러 와”라며 드레드 머리를 한 동양인을 반갑게 맞이해 줬다. 다운타운의 어느 바에서는 DJ가 플레이 도중 음악에 심취해 “I love Music!”이라며 소리를 지르는데 어이없게도 한순간에 디트로이트의 모든 소울이 내 심장에 박혔다. 더도 말고 매일 이런 친구들과 음악 듣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음악으로 소통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Digital Soul]에 영감을 준 5장의 음반들
Portishead – [Dummy] (1994)
내 학창 시절과 함께한 소중한 앨범이다. 학창 시절 하루종일 트립합(Trip-Hop)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곤 했다. 당시 좋아하던 그로테스크한 만화나 컬트 영화를 보며 들었던 포티스헤드. 수많은 뮤지션이 그들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만큼 [Digital Soul]의 A1 트랙, “Let Freedom Ring From HIll”에도 영감을 줬다. 클럽에서 120 bpm을 플레이하다 중간에 느린 비트도 틀고 싶을 때 믹싱하기 좋게 만든 트랙이다. 초반에는 댄서 팀 ‘Opportunitee’와의 영상 작업으로 시작한 음원이 결국 스케이터, 비 걸(B-Girl) 친구들도 함께하며 멋진 뮤직비디오와 앨범 정식 수록곡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Graham Central Station – [Ain’t No ‘Bout-A-Doubt It] (1975)
베이스 기타리스트이자 싱어 래리 그라함(Larry Graham)의 [Graham Central Station] 음반은 작년 겨울 막 [Digital Soul] 앨범 작업을 시작할 당시 지금은 공식 영업을 종료한 서울의 rm.360에서 구매했다. 이곳을 운영하는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 오라버니에게 샘플링할 만한 드럼 브레이크가 삽입된 멋진 앨범을 추천받았고 실제로 그중 일부를 이번 앨범에 활용했다. 실제로 해당 아티스트나 앨범에 관해 잘 몰랐기에 당시 박물관 도슨트처럼 앨범과 드럼 브레이크를 설명해 주시던 소울스케이프의 모습이 떠오른다.
Underground Resistance – [Interstellar Fugitives] (1998)
디트로이트 테크노의 살아있는 역사, UR(Underground Resistance)를 빼놓을 수 없다. 이름과 로고에서부터 흘러넘치는 멋. 그중 3LP로 나온 UR의 명반. 작년 여름, 도쿄에서 매우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다. 음산하며 날카롭고, 무한 반복되는 날것의 루프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드럼 브레이크와 낮게 깔리는 딥한 사운드에 영감을 많이 받았다. 예상치 못한 구간에 등장하는 효과나 필인(Fill In). 디트로이트 테크노의 OG 마이크 뱅크스(Mike Banks)와 제프 밀스(Jeff Mills)가 설립한 UR. 제프 밀스도 시작은 힙합 DJ였다는 사실. 그런지 몰라도 2~3분대의 러프한 트랙이 가득 수록되어 있다.
Theo Parrish – [First Floor (Part 1)] (1998)
디트로이트 하우스의 과거를 대표하고, 또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티오 패리쉬(Theo Parrish)의 데뷔 앨범. 작년 서울, 티오 패리쉬가 서울에 첫 내한했을 당시 사인도 받았다. 사인할 곳을 계산하고 앨범 재킷을 디자인한 건지는 모르지만 사인으로 비로소 앨범의 아트워크가 완성된 느낌이다.
귀가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섞인 엇박자, 소울, 재즈 샘플링, 먼지 쌓인 듯한 비트, 물 흐르듯 이끌어내는 긴 곡의 완결성. 디트로이트 하우스의 진가를 알고 싶다면 이 앨범(Part 1+Part 2)을 들어보길 추천한다. 클래식은 영원하다.
Ian Finkelstein – [Secrets, Vol.1] (2023)
이안 핑켈슈타인(Ian Finkelstein)은 테크노, 하우스를 넘나드는 장르 위에 프리재즈 피아노 선율을 얹는다. 앞서 소개한 티오 패리쉬의 DJ KICKS 앨범에서 “Moonlite” 라이브 버전으로 참여한 곡을 듣고 천재 아티스트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번에 디트로이트에서 직접 구매한 이 앨범은 개인적으로 내게 의미가 크다. 구매하고 나서 앨범 정보를 찾아보니 디트로이트 로컬에서만 한정으로 150장 판매하는 리미티드 에디션이었다. 디스콕스(Discogs)에서 정보조차 찾을 수 없는 Ian Finkelstein의 비밀스러운 150장 중의 134번째 마스터피스 EP. “Black Iz” 트랙을 정말 좋아한다. 날카로운 하이 햇과 스네어의 그루브가 곡의 캐릭터를 완성시켜준다.
디제이로서 디트로이트 하우스의 매력을 알려 달라.
디트로이트 하우스는 예상치 못한 곳에 스네어를 넣는다던가, 박자를 쪼갠다던가,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재지하고 소울 샘플링이 섞여 있어 소울풀한 맛도 있다. 디트로이트 음악은 손맛이 있다. 힙합과 소울을 듣고 자란 사람들이 만든 음악이라 그런지 그 정서가 전자음악에도 들어있는 게 듣는 재미가 있다. 나를 포함한 많은 DJ들이 디트로이트 하우스를 정말 좋아하지만, 서울의 클럽에서는 플레이하거나 들을 수 있는 곳이 손에 꼽을 정도다. 딥하우스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쉽게 터지지 않는 딥한 장르를 받아들이고 춤추기까지의 시간은 퍽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더 디트로이트 하우스만 트는 행위에 집중하고 있다. 요즘은 클럽 플레이를 하면 80% 이상이 디트로이트 원산지인 레코드라서 혹시 누군가 디트로이트 하우스의 멋과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내가 플레이할 때 와서 춤추고 느끼면 된다. 하우스는 그냥 느끼면 된다.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하우스는 문화다. 하우스에는 클럽이 있고, DJ가 있고, 춤추는 사람이 있다. 클럽에서 DJ는 춤추는 사람이 필요하다. DJ는 그냥 음악을 플레이하는 사람일 뿐, 어떤 음악을 틀든 춤추고 노는 것은 춤추는 사람의 몫이다.
반면에 서울의 사운드라고 한다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는지?
첫 번째로는 내가 사는 보광동, 이태원의 사운드가 떠오른다. 밤이 되면 시끄러운 수많은 클럽가가 즐비한 이태원의 옆동네 보광동은 수많은 디제이의 터전이다. 그러나 지금은 재개발이 진행되며 많은 디제이가 떠났고, 나도 내년이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 사라지고 있는 보광동을 남기기 위해 이번 EP의 A3 트랙에 “Bogwan’s Theme”라는 제목을 지어봤다. 온전히 내 보광동 작업실에서 탄생한 앨범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는 레이블 삼보 레코즈도 떠오른다. 특히 최근 컴필레이션 앨범 [BIBIM;비빔]에서는 한국의 맛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그 사운드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Bogwan House’, ‘Hongdae Hiphop’ 같은 용어들이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서울은 현재 다양한 장르의 사운드, 파티 문화가 점점 커지고 있다.
DJ, 프로듀서, 파티 프로모터, 바텐더 등 나이트라이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에 모두 시나힐의 커리어가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경험을 통해 느끼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
밤은 내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내게 아침은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회사 출근길, 학교 등교시간이 살면서 제일 괴로운 순간이었다. 짧았던 회사 생활을 23살에 빠르게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이태원 소울(Soul) 음악의 성지였던 ‘더 소울(The Soul)’이라는 바에서 일하지 않았을 테고, 그곳에서 매니저 바텐더의 내리 갈굼을 버티지 못했더라면 그 이후 평일 8시간 디제잉의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매일 8시간의 플레잉을 2년간 즐기지 못했다면 지금은 사라진 하우스의 성지 디스코 서프(Disco Surf)에서 일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디스코 서프의 마지막에 함께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퀘스트 매니저로 일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퀘스트에 오지 않았다면 수많은 아티스트, DJ들을 만나며 파티를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몰랐을 테고, MPC1000을 다짜고짜 사라고 한 디제이 퍼니의 말을 흘러넘겼다면 내 데뷔 EP도 발매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흐르는대로 사는 인생이지만, 그 흐름을 지금에 와 돌이켜보니 좋은 음악, 친구들과 함께 꽤 큰 바다로 향하고 있는 듯하다.
근래에는 ‘디깅(Digging)’이라는 말이 레코드 컬렉터 사이에서 은어처럼 사용되던 시기를 지나 대중적으로도 많이 확산되어 사용되고 있다. 디깅이라는 행위의 맛과 멋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디깅은 말 그대로 땅을 파는 행위다. 땅을 파는 특별한 목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막상 파기 시작하면 뭐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바로 그 맛이다. 몇 년간 잊고 있던, 정말 좋아하는 음반이 나올 수도 있고, 영감을 받을 만한 엄청난 아트워크를 발견할 수도 있고, 평소 사고 싶던 희귀한 앨범을 저렴한 가격에 만날 수도 있고, 샘플링하고 싶은 찰나의 구간이 담긴 음악이 담겨있을 수도 있다. 디깅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예술의 시작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깊이까지 도달했을 때 단순 ‘검색(Search)’을 넘어 디깅이라 부를 수 있는지, 본인의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해 달라.
디깅은 좀 더 본능적인 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검색은 내가 원하는 정보를 위한 목적이라면, 디깅은 감각을 곤두세워서 내가 알지 못하는 무한의 세계에서 무언가 얻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난 오늘 이걸 찾을 거야” 하고 레코드숍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 레코드숍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흐름을 만끽하며 디깅하는 재미가 있다. 최근에 간 토론토의 레코드숍 ‘Play De Record’의 구석 깊숙하게 자리한 하우스, 칠 아웃 판들이 먼지 쌓인 채 5,000원 코너에 방치된 걸 발견하고는 손이 까매질 때까지 웃으면서 디깅했던 추억이 있다. 참고로, 레코드숍에서는 30분 안짝으로 빠르게 디깅을 마치길 권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체력적으로 지치기도 하고, 그 음반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죽기 전 단 한 장의 음반을 들을 수 있다면.
José Padilla – [Adios Ayer] (2001).
칠아웃 장르의 정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비자 카페 델마르(Café del Mar)의 아버지, 호세 파딜라(José Padilla). 편히 쉬고 싶을 때 정말 자주 듣는 음악이다. 요즘은 퀘스트에서 지는 노을을 보며 매일 듣는다. 저무는 해를 눈에 담으며 지나온 과거에 작별 인사를 하는 가사가 담겨있다. 점점 감정이 치솟는 구간이 있어서 꼭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 보길 추천한다. 이왕이면 석양을 눈에 담으며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지나온 나의 길, 인연, 가족을 영원히 기억하며 작별 인사를 하고 싶다.
Thinking of tomorrow With the sunset in your eyes
I feel everything and sorrow
So I have to say goodbye.
<가사중>
[Digital Soul]을 통해 프로듀서로 커리어의 전환을 맞이했다. 데뷔 이후 음악 활동에 관한 계획이나 그리는 지향점이 있다면 알려 달라.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처럼 새로운 차원에 들어온 기분이다. 이건 직접 D.I.Y 인생을 살아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앨범 포장부터 배송까지 직접 하고, 직접 팔기도 하면서 그간 나도 몰랐던 팬도 만나며 또 다른 즐거움을 경험했다. 아직은 프로듀싱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수준인 데다가, 그저 비트 찍는 게 좋아서 낸 앨범이지만 분명 이 앨범 또한 내 기록 중 하나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NASA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훗날 다른 외계인이 지구인의 기록물을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매개체가 바이닐 레코드라고 한다. 1977년 NASA는 55개의 언어로 이루어진 지구인의 인사말과, 자연의 소리가 담긴 바이닐을 만들었고 턴테이블과 함께 우주선을 쏘았다. 우주 문명이 있는 외계인 행성에 도착해 턴테이블을 작동시키기까지는 약 4만 년이 걸릴 거라고 한다. 지구인과의 소통을 넘어선 우주를 건너 바이닐로 소통할 수 있다니… 너무 낭만 있지 않나?! 레코드가 누군가의 턴테이블에 올려지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멋있고 재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앞으로 피지컬 레코드를 100장은 만들고 떠나고 싶다. 사실 올해 목표였던 디트로이트 가기, 앨범 내기를 완료했다. 그동안 달리기를 했다면 남은 2024년은 천천히 걸어가 보려고 한다. 이번 북미 여행에서 영감 받은 비트를 자양분 삼아 올해가 넘어가기 전 앨범을 한 장 더 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