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CLUB #MORENE SUKHA

서울 서대문구 가좌역 인근의 낡은 재래시장인 모래내시장에 자리한 공연 공간 ‘모래내극락’. 오래된 골목과 퇴색된 간판들 사이, 수상쩍게 붉은빛을 뿜는 이 공간은 밴드 CHS의 리더 최현석의 개인 작업실로 사용되던 공간이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음악과 문화가 교차하는 독특한 베뉴로 탈바꿈했다. 지난 11월에 정식으로 개업하여 CHS의 전초기지로, 혹은 음악가와 예술가, 그리고 그 공간을 찾는 사람들 모두에게 안식처로 기능하는 중인 극락. 이마에 땀이 송골 맺히는 지난 8월, 북적이는 시장 골목 사이를 틈입하여 극락의 배짱 좋은 두 운영자 최현석과 최송아를 만나 몇 가지 질문을 건넸다.

모래내극락에 관해 간단히 소개를 부탁한다.

서대문구 가좌동 지하 낡은 재래시장 안에 있는 작은 공간이다.

재래시장인 모래내시장 한복판에 베뉴를 세웠다. 시작할 때 무슨 생각을 했나?

사실 이 장소는 원래 내 작업실이었다. 작업실로 사용할 당시 내가 운영하던 밴드 아폴로18을 정리하고 CHS를 새롭게 시작하게 하면서 개인 작업실로 이용하고자 구한 자리였지. 처음 작업실로 사용할 때부터 바 같은 게 갖춰져 있었다. 주조하는 걸 좋아하니까 친구들을 불러 바에서 칵테일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는데, 그러다가 코로나가 터진 거다. 밴드들이 공연할 공간이 사라지면서 라이브스트리밍으로 눈을 돌릴 때 내 작업실이 건너 건너 알려지면서 연락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때 라이브스트리밍부터 팬 미팅까지 안 해본 게 없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끝나고 어느 순간 극락이라는 베뉴가 본격적으로 탄생했다.

지난 CHS 인터뷰도 이 공간에서 진행했다. 그때 역시 작업실 겸 베뉴로 활용하고 있다고 들었다.

지금처럼 영업하는 공간은 아니었고 이벤트성으로 공연을 개최하던 공간이었지. 베뉴로 시작한 건 작년 11월부터다. 12월에 메이커스마크 행사가 좋은 계기였다.

모래내시장의 낙후된 분위기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 분위기를 정말 좋아했다. 낡은 건물들, 그리고 70년대를 연상시키는 쉽게 못 보는 풍경이 있었지. 한마디로 게토였다. 물론 재개발로 다 밀리고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영화 촬영도 여기서 많이 하고, 폭력배들이 활동했던 공간이기도 했다. 아무튼 인근 거주민들은 깨끗한 분위기를 원하니까 지금의 모습이 된 건데, 사실 깨끗한 분위기가 아주 좋은 점만 지니고 있진 않다.

과거로 돌아가 작업실을 구할 당시를 회상해 보자. 망원, 합정, 연희 등의 동네를 등지고 왜 인적 드문 가좌역에 자리를 잡으려 했는가.

보통은 지하에 작업실을 구하려 하지 않는가. 나 또한 아폴로18을 운영하면서 망원동 지하에 여러 밴드들과 함께 작업실을 공유했는데, 너무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주변 밴드들의 합주 소리, 환풍도 안 되는 반지하에 담배도 어마어마하게 피웠으니까, 쿰쿰한 냄새에 빛이 없는 지하가 지겨워서 떠나고 싶었다. 그때 새 작업실의 조건이 ‘해가 잘 드는 작업실’이었지. 그러다가 이곳을 알게 됐는데, 우선 360도 전면에 창이 있기도 하고, 해도 잘 들어서 여기로 택하게 됐다. 그때가 봄이었는데, 여러 식물도 키웠었고, 안식처같이 너무 좋았다. 근데 여름이 오니까 미친 듯이 덥기 시작하고 또 겨울은 미친 듯이 춥기는 하더라.

해가 드는 작업실 환경이 CHS의 음악에도 영향을 주었나?

영향을 많이 줬다. 나의 상태가 음악이 되어야 한다. 온전히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만든 밴드가 CHS였지. 때문에 이 작업 공간이 CHS의 음악에도 아주 큰 영향을 주었다.

밴드 작업실로는 적합할 수 있지만, 관객을 모으는 베뉴로 가좌역을 선택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을 것 같다. 한편으로 당신들의 두둑한 배짱이 엿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다른 사업자였으면 덜컥 겁이 날 거라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환경적 요소가 많이 도와줬지. 이미 밴드와 함께 사업도 전개하고 있었기에 내 작업실에 바를 여는 게 큰 일은 아니었다. 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즐기려는 마음만 있었다. 그래서 베뉴로 바뀌는 과정 또한 자연스러웠다. 술을 좋아해서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땄고, 주변에 다양한 밴드도 많았고, 그들의 놀이터를 만들고자 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상권에서 개업을 고려한 적도 없나?

전혀. 애초에 ‘장사’라는 개념을 적용한 적이 없었다.

그런 작업실을 지금은 극락(極樂, SUKHA)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름과 로고에서 불교적인 요소를 적용한 이유는.

극락은 한국에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의미보다는 우리의 뿌리가 그것이라고 생각했지. 물론 서구 문화에 큰 영향을 받기도 했으나, 우리의 정체성, 아시안을 나타내는 뿌리를 드러내기 위한 이름이다.

지난 CHS 인터뷰 때보다 내관이 더욱 다듬어진 것 같다. 내부를 꾸밀 때 연상한 이미지가 있다면?

극동아시아에서 365일 여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하며 하와이의 이미지를 적용했다. 그래서 실제 하와이 여행에서 구매한 소품을 장식으로 사용하고 또 친구들이 하와이 여행을 다녀오면서 건네준 선물도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전문적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직접 만들었다. 지난 3년 동안 애정과 시간을 들여 만지고, 심심하면 바꿔보기도 하면서 지금은 일반 가게에서 느껴지지 않는 무드가 생긴 것 같다. 물론 인테리어 업자 입장에서는 엉망일 수도 있지만 하하.

디제이 부스 앞의 번쩍이는 불상에 호기심이 갔다. 어디서 가져온 것인가?

그건 중국 심천에서 산 거다. 길을 지나다가 도박하는 아저씨들이 가지고 있어서 어디서 산 것인지 물어봤다. 주변 전자상가를 알려주더라고. 거기서 사 왔는데 반응이 좋았다.

시장에 자리한 것 때문일까? 극락 역시 시장의 친근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시장은 손님한테 친근할 수 있지만, 사실 텃세가 장난 아니다. 우리는 지인을 통해서 좀 편하게 들어오긴 했는데, 조금만 어긋나면 욕부터 나오는 게 시장이더라. 지금은 우리를 정말 좋아해 준다. 인근 상인들은 여기 공연장을 세우는 것을 의아해했는데, 막상 손님이 100명이 넘게 찾아오고, 또 여기저기 매체에서도 소개되니 신기해하면서도, 좋아해 준다. 젊은 사람들이 올 곳이 아니었는데 젊은 층의 유입이 늘었고. 그래서 떡볶이나 용돈도 주시더라 하하. 그 시장의 따뜻함과 친근함은 그들의 식구로 인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극락을 필두로 모래내시장에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젊은 사업자가 들어오기 힘든 게 이 시장의 최대 단점 같기도. 여기 시장 상인들 모두 40~50년 넘게 장사한 사람들이다. 상인들이 돈이 궁해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빼달라고 움직일 것 같진 않다. 그래서 누가 들어올 수도 없고 나가지도 않는 그런 구조다.

매주 멋진 밴드를 섭외해 양질의 콘텐츠를 채우고 있다. 밴드를 오래 운영했다 하더라도 매주 섭외와 콘텐츠를 만들어가기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힘들다. 공간이라는 걸 운영을 해본 적도 없고. 우리나라 밴드 층이 미국이나 일본같이 두껍지도 않기 때문에. 또 유명한 밴드라고 해봐야 우리끼리만 아는 거니까. 음악을 오래 하다 보니 아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또 그 사람들의 소개를 받는 경우도 있고, 그리고 포크라노스(POCLANOS)와 같은 기획사와 연재를 하기도 한다. 밴드들에게서 메일을 받기도 하는데, 아무 밴드나 세우는 건 아니고 ‘허들’을 두려고 했다.

사실 아쉬운 건 밴드 문화와 디제이 문화가 상반된 점이다. 밴드 공연을 보러 오는 애들은 뒤에 디제이에게 관심이 없다. 반대로 레이브를 즐기는 사람들은 밴드 공연도 그냥 음악으로 받아들이면서 잘 즐긴다. 아마 밴드 음악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디제이의 음악이 라이브는 아니니까, 흥미를 돋우기가 쉽지 않더라. 나는 그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숙제라고도 할 수 있는데, 밴드를 보는 사람들도 후에 레이브를 즐길 수 있고, 디제이 문화와 밴드 문화가 양립할 수 있도록 계속 시도할 것이다.

밴드들에게 적용하는 ‘허들’이 흥미롭다. ‘허들’에 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그냥 직감이다. 요청오는 밴드들의 음악이 괜찮다고 생각되는, 내 개인적인 견해가 극락의 허들이지. 그런데 요즘 극락은 나의 확고한 취향이 있는 공간은 아니고, 다만 조금 개방된 공간으로 인식한다. 앞서 언급했던 포크라노스의 공연, 혹은 또 다른 브랜드의 공연을 진행하기도 하니까.

극락에서 공연하는 아티스트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다시 하고 싶은데, 기억이 나는 섭외, 공연 에피소드가 있는가?

킹스턴 루디스카의 20주년 무대가 기억난다. 극락이랑 정말 잘 어울리기도 했고. 사실 대충 공연한 밴드는 하나도 없었다. 여기에 초대된 밴드들도 우리의 허들이 높다는 걸 인지하니까 공연 전에 강한 멘탈을 가지고 온다. 그만큼 우리도 관객을 비롯하여 무대에 서는 밴드들에게 또한 좋은 경험을 선사하고자 노력하면서 음향 시스템을 계속 업그레이드 중이다.

업장 운영자가 뮤지션이기에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뮤지션이 극락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100%로 제공한다. 그럼 단독 공연 혹은 웬만한 페스티벌 개런티만큼 얻어갈 수 있으니까. 사실 밴드가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으면 코가 높아지고 명분은 적으니 클럽 공연은 안 하려고 한다. 극락은 반대로 코가 높다. 코가 높아진 밴드들이 극락에서 공연을 진행하려고 할 때 너네의 티켓이 몇 장이나 팔릴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라고 하는 거지. 만약에 티켓이 매진되면, 그만큼의 돈을 딱 벌어가는 거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영상을 제작해 주니 밴드의 브랜딩에도 도움을 준다.

극락은 더 그래이티풀 캠프(The Grateful Camp),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등등 다양한 페스티벌과 함께했다. 이에 따라 극락이 얻을 수 있었던 효과는?

더 그래이트풀 캠프는 일단 우리가 직접 만든 페스티벌이고, DMZ도 우리 회사인 베리하이 컴퍼니가 운영한다. 두 페스티벌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수익을 떠나서 재밌는 걸 만들자고 할 때의 그 시너지와 기획자들의 열정이 큰 도움이 된다.

앞서 주조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밴드를 위해 시그니처 칵테일을 주조하기도 한다고.

그렇다. 매주 공연하는 뮤지션들에 대한 새로운 칵테일을 만드는데, 이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지점에서부터 다른 라이브 클럽과 베뉴와는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 음악을 듣고 어떤 색깔이 잘 맞는지 판단한다. 칵테일의 색깔을 정할 때도 밴드의 유명한 곡이나 색을 발견하여 만들고 혹은 인터뷰를 확인하여 밴드의 술 취향을 찾아내기도 한다.

고심하여 새 칵테일을 만들지만, 매주 공연하는 밴드가 바뀌니 메뉴도 바뀔 것 같다. 자부할 정도로 맛있다거나, 사람들이 많이 사 먹은 칵테일을 없애기에 아쉬움은 없는가?

그래서 판매했던 것 중에 괜찮은 반응을 이끌었던 메뉴는 시그니처 칵테일 베스트 10으로 남겨놓는다. 이게 밴드 입장에서 일종의 프라이드로 작용하기도 하더라고. 자신들의 이름이 들어간 술이 베스트 매출에 들어가니까. 아직 전면적이진 않지만, 조만간 그걸 랭킹제를 도입할까도 고민하고 있다. 또 연말에 그 랭킹을 가지고 순위에 등극한 밴드들을 다시 초대하여 라이브도 진행해 보면 흥미로울 것 같다. 우리도 마케팅에 도움 될 수 있는 부분이며 우리만의 재미있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지. 아까 말했듯이 여기서 공연을 하는 사람들의 경험도 중요하다 보니, 우리가 밴드의 시그니처 칵테일을 주조하는 성의를 볼 때 정말 고마워하더라.

극락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있나?

없다. 코로나 때 극락을 기획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규모와 공간도 커졌다. 그래서 목표는 없지만, 재밌는 걸 더 많이 하고 싶어서 고민이다. 결국 이 공간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콘텐츠다. 따라서 목표가 있다면 아티스트, 그리고 사업가들까지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영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이자 매체를 만들고 싶다는 것.

향후 새롭게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가?

당장은 더 그래이트풀 캠프를 기획 중이고, 연말 프로그램과 극락 쇼 시즌 2를 다시 오픈하며 심도 있게 밴드들을 다루고 싶다.

모래내극락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황선웅
Interviewer│김진평
Photographer | 전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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