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홀과 레게톤을 기반으로 한 강렬한 사운드. 머카 배이(Merca Bae)의 음악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이다. 하지만 장르의 전형으로만 묶어 설명하기엔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단편적으로는 그저 ‘라틴’ 리듬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의 음악 커리어를 따라가다 보면 정글이나 덥스텝, 테크노와 같은 스타일의 정취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듯 일관적인 듯, 일반적이지만은 않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꾸준히 활동해 온 그가 6년 만의 솔로 EP [Amuleto]로 돌아왔다. 댄스홀과 캐리비안 리듬의 간극을 메우며 묵직한 베이스라인, 인더스트리얼 비트가 어우러지는 그간의 커리어가 집약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다재다능한 방식으로 클럽 사운드를 탐구해 온 그의 새로운 앨범에는 무스캇(Muskatt), 자스(JASSS), 주빌리(Jubilee) 등의 아티스트가 리믹스에 참여하여 힘을 보태기도 했다.
우리는 지난 10월, 이태원 일대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신작의 발매와 함께 아시아 투어를 진행하고 있는 그와 케이크샵(Cakeshop)에서의 공연 직전에 얘기를 나눴다. 오랜 시간이 걸린 새 앨범에 대한 소회부터 투어에 대한 특별한 에피소드까지, 하단의 인터뷰에서 만나볼 수 있다. Visla FM에서 이번 투어를 함께한 비클립(Bclip)과의 특별한 B2B 셋 또한 놓치지 말도록 하자.
만나서 정말 반갑다. 간단한 소개 먼저 부탁한다.
나는 스페인의 작은 도시인 살라망카(Salamanca)에서 온 사람이다. 음악을 만든 지는 벌써 15년이나 되었다. 활동하는 동안 여러 예명이 있었지만 2016년 무렵부터는 머카 배이(Merca Bae)가 가장 중요한 게 되었고, 그때부터 이 이름으로만 작업해 왔다.
한국 방문은 처음인가.
한국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8년에 케이크샵(Cakeshop)에서 디제잉을 했었다. 그땐 이틀밖에 못 있어서, 지금이 사실상 처음처럼 느껴진다.
또 다른 예명인 만리케 마체테(Manrique Machete)가 있다. 이 이름을 쓰게 된 계기나, 사용하게 되는 때는 언제일지 궁금하다.
만리케 마체테(Manrique Machete)는 내가 장르마다 다른 예명을 내세웠을 때 썼던 이름이다. 2012년쯤부터 썼던 아주 오래된 예명이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 일렉트로나 게토 하우스 같은 장르의 음악을 시도할 때 이 이름으로 더 활동해 보려고 했었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머카 배이’로써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언젠가 필요가 생기면 만리케 마체테로 다시 활동할 수도 있지 않을까.
[Merca Zip] 시리즈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당신의 음악을 처음 접한 계기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가 다른 릴리즈와의 차별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
일단 머카 배이라는 이름 자체를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했다. 어찌 보면 장난처럼 시작한 거다. [Merca Zip 2016]을 보면 알겠지만 다 에딧이고, 이걸 만들면서 나의 목표는 한 곡을 30분 안에 완성하는 거였다. 그리고서는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려버리는 거지. 그리고 그 당시에는 다른 예명들이 있었기 때문에 거창한 기대를 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작업물들이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래서 그때 내가 한 건, 매달 계속해서 트랙을 발매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찾을 수 없게 했다. 오로지 한시적으로, 사운드클라우드로만 접근할 수 있게 한 거다. 그래서 [Merca Zip]은 내 음악을 서포트해 주는 모든 이들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게 되었다. 적어도 일 년간은 무료 다운로드였으니까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또 한 가지가 있다면, 지난 몇 년간 명성을 얻게 되다 보니 에디토리얼을 비롯해 여러 가지 계약을 진행하게 되었고, ‘오리지널’한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에딧을 만드는 걸 계속할 순 없었다. 모든 아티스트들이 그렇지만 애플뮤직이나 스포티파이 같은 음원 플랫폼에 작업물이 올라가야 하지 않은가. 이렇듯 조금 더 음악 커리어에 있어서 진지해지다 보면 비교적 가벼운 시도를 하기 어렵다. 그런 이유에서 [Merca Zip]을 계속 진행하게 되는데, 모종의 이유가 있다 보니 그냥 내 사운드클라우드 부계정에 올려버리곤 한다. 그러면 나의 주 프로필에 영향을 끼치지도 않으니까.
이번 앨범 [Amuleto]는 클럽 로맨티코(Club Romantico)에서 발매되었다. 라틴 클럽 사운드를 주로 만들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곳이다. 이번에 이곳에서 발매하게 된 가장 큰 이유라면 역시 장르적인 면일까.
가장 큰 이유라면, 이 EP가 6년 만에 내는 솔로 앨범이라는 점이다. 그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작업하거나, 앞서 언급했던 [Merca Zip] 시리즈를 내거나, 계속 싱글의 형태로 음악을 내긴 했다. 클럽 로맨티코(Club Romantico)를 통해 발매하기로 한 건 플로렌티노(Florentino)가 설립한 레이블이고, 우리는 좋은 친구 사이인 점이 크다. 그는 내가 음악을 통해 클럽과 소통하는 방식을 잘 이해하고 있다. 내가 주로 하는 음악이 라틴 사운드에 영향을 받은 그루비한 전자음악인데, 그의 레이블은 이런 경향의 아티스트들이 스스로 탐구하기 좋은 곳이다. 이 EP 역시 자유롭게 작업하면서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서는 그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런 점에서 클럽 로맨티코와 작업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장르적인 면은 환경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나? 음악을 시작했을 때의 주변 환경이 궁금해진다.
여러 곳에서 영향을 받았겠지만 일단 나의 유년 시절, 스페인에서 랩을 비롯한 장르를 제외하고서는 레게톤이 가장 큰 음악이었다. 수년 동안 스페인에서 정말 인기가 컸다. 자연스럽게 나도 자라면서 많이 듣게 되었고 내 사운드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렇지만 역시나 가장 큰 영향이라면 사운드클라우드다.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맥락과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키포인트라면 영국 런던에서 2년 동안 거주했었다는 점이다. 그전에도 UK 사운드를 좋아했지만, 덥스텝이나 정글 파티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게 컸다. 그래서인지 라틴 사운드와 그라임을 비롯한 UK 스타일을 섞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 솔로 EP로써는 6년 만의 컴백이기도 하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뭐였을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이전에 나의 작업물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요소를 드러내는 거였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앨범의 첫 트랙은 정글과 브레이크의 요소가 강하고, 그다음 트랙은 라틴과 베이스, 과라차(Guaracha) 등의 요소를 섞었다. 또 그다음 트랙은 좀 더 테크 하우스에 가깝고. 이렇듯 좀 더 많은 서브 장르의 요소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마도 사람들은 주로 나를 100 bpm에 가까운 댄스홀 음악 때문에 알고 있겠지. 그래서 가장 큰 도전 과제이기도 했고 이번 EP를 만드는 데 있어 몇 년이나 걸리기도 했다. 정말 많은 작업물이 있었지만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맥락에 맞는 곡들을 골라야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리믹스에 참여한 아티스트를 선정하게 된 기준이 있었나. 각각 장르와 스타일의 면에서 확연하게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이번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은 플로렌티노와 내가 같이 결정했다. 우리는 리믹스에 관해서는 전략적이고 싶었다. 플로렌티노와 멀로(Murlo)[1]가 잘 아는 사이기도 했고, 멀로의 음악은 2012년부터 좋아했던 것도 있다. 주빌리(Jubilee)의 경우는 마이애미 베이스의 색채가 짙다. 그리고 자스(JASSS)는 나와 같은 스페인 사람인데, 내가 생각하기엔 현 상황에서 정말 최고의 테크노 디제이다. 결론적으로는 내가 원래 하는 음악 스타일과 장르적으로 지나치게 가깝지 않은 쪽으로 리믹스를 진행하고 싶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를 ‘라틴’ 음악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반대의 스타일로 하고 싶었다. 멀로는 UK 스타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운드, 주빌리는 마이애비 베이스의 바이브로, 그리고 자스는 완전히 테크노로 가는 식으로 말이다. 리믹스 자체가 그 장르의 정수는 아니지만, 어쨌든 간에 아이디어는 다른 영역으로 나아가자는 거였다.
리믹스 외에도, 평소에 미스 제이(Miss Jay), 래틀스네이크(Rattlesnakke), 비케이 비츠(bk Beats)를 비롯한 많은 아티스트들과 자주 협업해 왔다. 혼자 작업할 때와의 다른 점이 있다면.
협업을 좋아하는 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협업에 있어 나는 상대방을 굉장히 존중하는 편이다. 협업의 과정은 한 사람이 뭔가를 하면 다른 사람이 다시 받아서 하는 식으로, 왔다 갔다 한다. 항상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하는 게 혼자 하는 것보다 낫다고 여긴다. 나와는 다른 환경에 놓인 타인과 작업하면 전에는 나온 적 없던 게 나온다. 예를 들어, 내가 비케이 비츠(bk Beats)와 작업할 때 그가 만드는 멜로디가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런 부분을 내 음악의 다소 어두운 면과 섞으면 완전히 새로운 게 탄생하는 거지. 이런 방식으로 음악을 탐구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이번 아시아 투어를 하면서 특별했던 경험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
아시아권에 세 번 방문했는데, 일본에는 처음 가봤다. 항상 가고 싶었지만 실패했는데 이번에 마침내 음악을 플레이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내가 6년 전에 방문했던 클럽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점. 상하이의 올(ALL), 청두의 액시스(Axis) 그리고 서울의 케이크샵(Cakeshop)까지, 다시 와서 공연을 하게 되니 내가 아직 이 신 내에서 어느 정도 건재하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조만간 우리가 기대할 만한 소식이 있다면 알려달라.
일단 지금은 내 음악에서 디제이의 면모와 클럽적인 요소를 더 부각하려고 하는 중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표는 더 많은 보컬리스트와 작업하는 것이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 오늘 밤 함께 공연할 비클립(Bclip)과 작업하고 있는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건 살사(Salsa) 앨범이 될 것이다. 클럽 신에서 우리가 해왔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라고 할 수 있지. 이 앨범이 당분간 주된 일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