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가치를 전하는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HOTICE’

삶 속에서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동일 선상에 있는 듯하지만, 어딘가 방향이 달라 결국 서로 멀어지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하티스(HOTICE)의 안대근고아림은 이와 조금 달라 보인다. 평생 타도 좋을 데크를 만들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다는 그들의 대답은 해야 하는 것 위에 좋아하는 것을 연착륙시킨 것 같았다.

하티스가 만들어지고 1년, 오랜 시간 스케이트보드 신(Scene) 안에서 무수한 활동으로 많은 이와 소통한 둘답게, 다양한 재능을 지닌 이들과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은 협업과 상생을 중요시하는 하티스의 뚜렷한 방향성을 나타낸다. 언젠가는 스케이터를 위한 공간을 열고 싶다는 둘을 만나 몇 가지 주제에 관해 대화를 나눠봤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안대근: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안대근이라고 한다.

고아림: 안대근과 함께 하티스 스케이트보드를 운영하는 고아림이다.

하티스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안대근: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운 좋게도 여러 브랜드와 스폰서쉽을 맺게 되었다. 적지 않은 시간 이런 관계 속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다 보니 나만의 것을 시작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막연히 생각으로만 머물다, 한국 스케이트보드 신에 실력 있는 어린 친구들이 하나둘씩 두각을 드러내는 모습을 봤다. 이때 그들보다 스케이트보드를 오래 탄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깨닫게 됐다. 가까운 친구 김준영에게 데크 디자인에 쓰일 그림을 부탁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데크를 제작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배웠다. 외국 데크 제작 업체에 직접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고아림: 하티스를 시작하기 전부터 주변에서 우리 둘이 함께 뭔가를 하면 정말 재밌게,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느 날 대근이가 브랜드 런칭에 관한 얘기를 했을 때, 그 브랜드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역시 스케이트보드로 귀결됐다. 로컬 스케이터를 위한 데크 브랜드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눴고, 이것저것 알아보니 해보면 할 수 있겠더라. 시작 전에는 우리가 브랜드를 전개한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는데, 준비 과정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큰 규모의 브랜드가 아닌 소소한 독립 브랜드를 원했고, 단기간에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부담이 적었다.

어느덧 브랜드 런칭 1주년을 맞이했는데,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본다면.

고아림: 지난 1년 사이 각기 다른 그래픽으로 총 일곱 종류의 데크를 만들었다. 어느새 그만큼의 아카이브가 생겼다는 게 새삼 놀랍다. 생산을 외국에서 하다 보니 현지 업체와 소통하는 과정 중 배송이 늦어지거나 누락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그런 스트레스 빼고는 즐겁게 꾸려왔던 것 같다. 모든 과정이 배움의 연속이다.

안대근: 무슨 일이든 간에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 이상 어떤 고민을 하고 우여곡절을 거쳤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이지 않나. 나도 그랬다. 생각보다 신경 쓸 게 정말 많다. 그래도 완성된 하티스 데크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게 정말 재밌다.

한국에서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를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주변의 응원과 만류가 있었을 텐데, 시작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라면. 

고아림: 우리가 직접 만든 데크를 쓰고 싶었다. 평생을 타도 좋을 그런 데크가 있었으면 했거든. 둘 다 오랜 시간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다양한 브랜드의 데크를 직접 체험해 봤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데크가 잘 맞는지, 컨케이브와 휠 베이스는 어때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우리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라면, 분명 하티스의 데크를 좋아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물론, 주변의 우려도 있었지. 오히려 그런 반응이 도움 됐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을 수만은 없잖아. 쓴소리를 들었을 때 되려 아이디어나 방향성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더라고.

안대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실력 있는 친구들의 그래픽이나 아트워크를 보면서 데크 위에 그들의 작업물이 올려지면 정말 멋질 것 같았다. 다만, 그 작품을 올릴 한국 데크 브랜드가 없다는 게 문제였지. 그걸 내가 해보기로 결심한 거다. 그 데크가 안 팔리면 내가 타면 되니까. 사실,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을 보면 이익이 남기 어려운 구조다. 사람들이 왜 데크 제작을 잘 안 하려고 하는지, 해보니까 알겠더라. 근데, 돈 버는 걸 최우선의 목적으로 이 일을 시작한 게 아니니까 계속해보고 싶다. 멋진 친구들과 협업하며, 서로 돕다 보면 뭔가 보이지 않을까?

최근 출시한 새로운 데크 역시 협업을 통해 진행했나?

고아림: 그렇다. 댄 그리드(Dan Greed)와 퍽댓너드샵(FUCKTHATNERDSHOP)의 지미 삭스(Jimmy Sox), 하드코어 펑크 밴드 슬랜트(Slant)의 멤버이자 타투이스트 임예지, 그리고 우리의 첫 번째 데크 아트워크를 도와준 김준영까지, 총 네 명의 아티스트와 함께했다. 이번에도 하티스의 첫 팝업을 함께했던 프리티 하드코어(Pretty Hardcore) 스토어에서 런칭 이벤트를 열었다.

데크 외에도 보울 형태의 인세스 홀더와 왁스 라이터 또한 선보였다. 새롭게 제작해 보고 싶은 아이템이 있다면?

고아림: 예술 작품이자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는 기물을 만들어 보고 싶다. 큰 빌딩 앞을 지나다 보면 그 앞에 커다란 조형물이 있지 않나. 마치 보드 타라고 만들어둔 것처럼 기물로 활용할 수 있어 보이는 게 꽤 있더라. 그런 조형물에서 보드 타는 건 불법이니까 합법적으로 탈 수 있는 조형물을 만들고, 그 위에서 보드를 타며, 일종의 전위 예술을 해보고 싶다. 작지 않은 규모이니 이걸 어디에 설치할지가 문제인데, 찾기가 쉽지 않다. 장소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이들의 연락을 기다릴 테니 이 인터뷰를 보면 DM 달라.

하티스의 필름 타이틀인 “윅 보이 스트롱(Weak Boy Strong)”이란 문장은 어디서 따온 것인지 궁금하다.

안대근: 선교사이자 수내 스팟에서 함께 스케이트보드를 탔던 민철이 형의 인스타그램 아이디인데, 볼 때마다 멋진 네이밍이라고 생각했다. 하티스의 첫 필름이 나오고 그 이름을 타이틀로 사용하고 싶어 연락하려 했지만, 당시 민철이 형이 해외 성지 순례를 떠나 연락이 어려웠다. 만나면 꼭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정말 우연히 컬트 스케이트 파크에서 마주쳤다. 만나자마자 내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설명한 뒤 그 네이밍을 비디오 타이틀로 사용할 수 있을지 부탁했고, 민철이 형은 오히려 본인이 고맙다며 흔쾌히 허락해 줬다.

동업으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데,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 편인가.

안대근: 모든 일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좋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만들어보니 반응이 안 좋은 경우도 있고,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경우도 있지.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지금은 누구의 의견이든 ‘틀리다’라고 단정하지 않으려 한다.

고아림: 내 말이 곧 정답이다.

다년간 스케이트보드 신에서 기획자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그런 경험이 브랜드를 전개하는 데에도 좋은 자양분이 되었을 것 같은데.

고아림: 반스(Vans) 코리아에서 2년가량 일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여러 스케이트보드 이벤트를 진행하며 겪었던 시행착오와 변수가 이제 어느 정도 예측되더라. 아, 지난 하티스 팝업할 때 감사하게도 럭키드로우 상품을 지원해 주기도 했다.

안대근: 물론이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어깨너머로”라는 필름을 제작하기도 했고. 그런 여러 경험이 자연스레 하티스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오랜 시간 스케이트보드 신에 있으면서 여러 변화를 느꼈을 텐데,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안대근: 스케이트보드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게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동시에 스케이트보드를 시작하는 친구들의 성향이나 목표, 방향성이 확실해진 것 같다. 그에 관해 말도 많지만, 그것과 별개로 스케이트보드 신 내의 변화를 인지하려 노력한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건 결국 똑같은 행위니까.

고아림: 아무래도 같이 스케이트보드를 탔던 주변 사람들이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그 변화가 크게 느껴진다. 신에 있으며 수많은 스케이터와 인연을 맺었다. 함께 어울리며, 스케이트보드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 신념을 배우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소중한 가치를 항상 곁에 두고 듣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소중함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더 이상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않을 때 마음이 아프지. 동시에, 초등학생 때부터 스팟에서 본 어린 친구들이 이제 성인이 되어 스케이트보드 외 다른 재능을 보여줄 때 정말 대견하다.

스팟을 서칭하며, 새로운 곳에서 찍는 클립이 너무 재미있다. 셀피 클립을 담은 영상을 공개하기도 하고.

안대근: 익히 알려진 스팟에서 지금껏 시도되지 않았던 트릭에 도전하며 촬영하는 데 한계를 많이 느꼈다. 그래서 새로운 스케이트보드 스팟을 찾는 일이 습관이 됐는데,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나가 주변을 돌아보거나, 드라마나 뉴스를 보다가 스케이트보드 타기 괜찮아 보이는 곳이 있으면 로드뷰로 찾아보곤 한다. 스케이트보드뿐 아니라 BMX나 어그레시브 인라인스케이트, 스쿠터나 롱보드 타는 사람들이 모이는 스팟도 찾아가 훑어본다. 그렇게 적당한 스팟을 찾아 사진도 찍고, 트릭도 해보고, 그 스팟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스케이터에게 함께 가보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각자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고아림: 로컬 걸 스케이터를 조명하는 비디오 프로젝트 “듀올 라우드(DUOL LOUD)”의 세 번째 시리즈를 준비 중이다. 2020년 첫 비디오를 공개하고 2년 주기로 새 시리즈를 공개하는 느낌인데, 이런 흐름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모든 스케이터가 그렇지만, 각자의 삶이 있기에 촬영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 또한, 무거운 장비를 들고 대중교통으로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촬영하는 게 수월하지만은 않지만, 좋은 기억뿐이다.

안대근: 앞서 이야기한 “윅 보이 스트롱”이나 “어깨너머로”에 이어 지금도 영상을 찍고 있다. 다음 프로젝트는 하티스 이름으로 시사회를 열어 많은 이와 함께 즐기고 싶다. 지금까지 많은 스케이트보드 시사회를 해왔지만, 그 공간 자체가 주는 특별한 경험이 너무 소중해 이를 더욱 많은 친구들과 공유하려 한다. 스케이트보드를 잘 타고, 못 타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재미있게 즐기는 게 우선이지. 

하티스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고아림: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는 것. 무엇을 경험하든, 결국 지나온 시간이 쌓여 각자가 지닌 고유한 정체성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걸 받아들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한다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삶이 행복해지고 좋아질 거라고 믿는다. 하티스 역시 그렇다. 결국, 서로 존중하고 도우며 사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안대근: 하티스의 데크 그래픽은 주변 여러 사람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진다. 서로 돕고, 배우며, 교감하자.

5년 뒤, 하티스는 어떤 모습일 것 같나.

고아림: 매장을 차리고 싶다. 단순히 물건 파는 가게가 아니라 스케이터가 아지트처럼 놀러 와서 쉬다 가고, 스케이트 필름도 보고, 먹고, 마시며 밤새 쉬어가도 좋은 그런 공간. 밤늦게까지 보드 타다 막차를 놓쳤을 때 소파 한편에서 자고 갈 수 있는 편안한 곳. 지금 겸업으로 제빵을 하고 있는데, 언젠가 빵과 커피를 팔아도 재밌을 것 같다.

안대근: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스케이터가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한다. 

HOTICE Skateboards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오욱석, 윤태현
Photographer │이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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