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클럽, 주점이 밀집한 서울의 놀이터 이태원, 그 골목 어딘가에 걸린 커다란 단체 사진을 본 적이 있다면 화합이라는 주점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친구들과의 왁자지껄한 술자리, 이성과의 분위기 있는 한 잔 또한 어색하지 않은 주점 화합은 4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모습으로 이태원을 지키고 있다. ‘DJ가 직접 운영하는 주점’이라는 것만으로 방문할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화합하는 자리가 좋아 화합을 만들었다는 익히 알려진 DJ Conan, 임동욱을 만나보았다.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임동욱(이하 임) : 화합의 사장 임동욱이라고 한다. DJ Conan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데드엔드(DEADEND)라는 크루를 운영하면서 베이스 뮤직과 아직은 우리나라에 생소한 여러 가지 트랩, 힙합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또 하나의 크루 디스코 익스피리언스(Disco Experience)도 겸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디스코, 훵크, 소울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장르를 소개하는 데 힘쓰는 중이다. 그리고 현재 화합이라는 주점을 4년 전 오픈해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화합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상호 그대로 사람들이 화합하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처음 이곳을 만들 당시 내 나이가 29살에서 30살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누구나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게 되면 생각이 많아지지 않나. 20대를 어떻게 마감해야 보람차고 뿌듯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니온(Union)과 화합이라는 장소를 계획했다. 유니온은 라운지 형태로 내가 좋아하는 주변 아티스트가 편하게 음악을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을 목적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술자리를 가질 수 있는 화합이라는 주점을 아래층에 오픈했다. 이렇게 두 공간을 동시 운영했지만, 소음으로 인한 민원으로 유니온은 문을 닫았다. 이후 2층의 화합을 3층과 옥상까지 확장해서 운영하고 있다.
유니온 첫 오픈 파티 때 방문했었다. 좋은 공간이었는데 갑자기 술집으로 바뀌었더라.
유니온에 관련한 여담으로 동네에 유명한 할머니들이 몇 분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다 꺼리는 할머니들이었는데, 불행하게도 이 건물의 앞집과 뒷집이 바로 그 할머니들의 집이었다. 지금은 그분들이 모두 자리를 옮겨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그즈음부터 팝업 이벤트로 유니온을 한 번씩 부활시키고 있다.
다행이다. 유니온의 부활을 기대해 봐도 좋은가.
유니온에 욕심을 갖고 공격적으로 운영할 생각은 없다. 그때랑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DJ 크루 두 개를 맡고 있기에 음악적으로 조금 더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열고 싶은 이벤트가 있을 때 잠깐씩 즐기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주점 운영에 얼마나 관여하고 있나.
내가 10년 전부터 의형제라고 믿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 처음 화합을 오픈했을 당시 그 친구들에게 대부분의 일을 맡기고 나는 가끔 들리기만 했다. 하지만 두 달 전부터 자주 가게에 나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운영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명실공한 이태원의 힙 플레이스가 되었다.
글쎄, 그런 이미지를 노리고 만든 장소는 아니다. ‘편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라는 모토 아래서 제약 없이 하다 보니 그런 분위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더라. 화합이라는 장소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분명 재밌는 곳이다. 동시에 조금 색다른 분위기 덕에 적응이 어렵다는 이야기 또한 들었다.
내가 처음 방문한 손님이라도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본다면 그런 분들이 와서 또 다른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공간도 바로 화합인 것 같다. 여기선 함께 한 잔씩 하다 보면 자연스레 친근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에 오히려 이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주점과 차별화하는 화합만의 전략이 있다면?
우선 일하는 친구들이 즐겁고 자유로워야 한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먹는 것을 정말 좋아해서 일단 맛이 없으면 안 된다. 특히나 재료를 절대 아끼지 않는다. 스팸 구이 하나라도 우리는 좋은 스팸을 쓴다. 하하. 몇 푼 더 남기기 위해 재료의 질을 낮추지는 않는다.
직원도 술을 즐기나?
다들 술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최근엔 나도 서빙을 좀 돕고 있는데, 그러면 나도 모르게 취해 있더라. 처음엔 분위기에 취하고 그다음엔 술에 취하고.
경영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라면?
물론 많다. 그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 모든 자영업자의 문제가 아닐까. 세금 문제, 상권 불경기, 메뉴 개발 등 할 일이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보통 주점은 평일과 주말의 매출 차이에 신경을 많이 쓰던데.
그 문제도 중요한 부분이긴 한데 반대로 평일 매출을 살리는 재미가 있다. 소소하게 시도할 이벤트가 많아서 이런 문제를 과제로 인식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메뉴 개편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직원이 아이디어를 내면 즉석에서 요리해 본다, 그러면서 술도 한 잔 마셔보고. 하하. 대부분 이렇게 만들어진다.
제주도 대표 소주 ‘한라산’도 빠르게 도입했다.
직원이 술을 좋아하다 보니 이런 정보가 빠른 편이다. 주당이 가득 모여 있어서 술에 대한 정보 하나는 정말 빠르다.
본인이 꼽는 화합의 베스트 안주는.
내 가게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다 맛있다. 맛없는 건 바로 메뉴에서 없애버리니까. 개인적으로는 문어 튀김에 푹 빠져있다.
우리는 황태구이를 자주 먹었다.
황태구이를 좋아하는 손님이 많다. 화합의 오픈 초창기 셰프가 전주 출신이었다. 여기서 파는 황태구이가 전주풍이다. 서울에서는 생소할 수 있지만, 화합에서는 완전히 자리를 잡은 인기 메뉴다.
개인적으로 새로 추가하고 싶은 안주가 있는지.
그동안 많은 관여를 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내가 제안한 몇 가지 메뉴가 있다. 통마늘 돼지 두루치기, 통오징어, 콩나물 탕 등 새로운 메뉴를 곧 추가할 예정이니 기대해 달라.
DJ Conan은 평소 식도락을 즐기기로 유명한데, 뺏어오고 싶은 타 음식점의 메뉴는 없었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가져오면 그들 입장에서는 재수 없을 것 같다. 하하. 내가 먹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새롭게 개발해야지.
본인도 술을 좋아하는지.
굉장히 좋아하는데 많이 마시지는 못한다. 다만 술을 엄청 즐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그냥 소주 마시러 왔다가 노래 틀어놓고 춤추고 논 친구들도 있고, 비 오는 날 친구들끼리 모여 놀다가 노래방이 된 적도 있었다. 그 중심인물로 옥근남, 류도연, 김태헌이 있지. 하하. 이런 식으로 벽을 허물고 노는 일이 잦다. 화합에서의 모든 자리가 기억에 남고, 그런 유쾌한 모습을 좋아한다.
차례로 지심세연, 김태헌, 조대의 작품들
매장 내부의 다양한 아트워크가 눈에 띈다.
지심세연이라는 친구가 라이브 핸드 페인팅을 한 그림이 있다. 우탱 음악을 쭉 틀면서 그렸는데, 이 그림을 보면 고릴라 위에 우탱 로고를 겹쳐 놓았다. 같은 날 김태헌이라는 친구가 옥상에서 저 그림을 그렸다. 내 위에 걸린 포스터는 한강에서 타투 컨벤션을 열었을 때 안티도트(Antidote)라는 숍에서 한정으로 판매했던 것이다. 마음에 들어 그 자리에서 바로 구입했다. 아래층에는 반스의 신발을 커스텀한 제품도 있다. 입구에는 조대(Jodae)라는 그라피티 아티스트가 그린 그림도 있고. 놀러 오는 친구들이 음악, 스케이트보드, 미술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재미있게 사는 편이다. 이런 점들이 화합에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 같다.
화합에서 술을 마시다가 탄생한 프로젝트가 있는지.
이번 주에 열릴 레게 파티같은 경우가 그렇다. 킹스턴 루디스카 멤버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DJ 데뷔 전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들인데 최근 같이 술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화합에서 레게 LP를 틀어놓고 즐기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올 여름에 열 계획이었는데 어찌어찌 시간이 지나서 지금에서야 이벤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지금은 사라진 아프로킹 같은 경우도 아프로킹 리유니온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모아서 조그만 이벤트를 열었다. 유니온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지금도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가 꽤 많다.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태원 관광특구협회가 있는데, 거기서 가장 큰 행사가 이태원 지구촌 축제다. 나는 이태원에 9년째 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많이 돌아다니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이태원 주변의 어르신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우연히 3년 전에 지구촌 축제에서 DJ 부스를 맡을 기회를 얻었다. 그전에는 작은 규모로 진행되었는데 난 그게 싫더라. 명색이 이태원인데 색깔 없는 음악이 주구장창 나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래서 3년 전 주변의 친구들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음악, 다른 곳에서 들을 수 없는 음악을 기반으로 이태원 지구촌 축제를 기획했다. 2년 전부터는 축제를 더욱 확장시켜서 더 많은 프로덕션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화합 입구의 단체 사진이 인상 깊다. 촬영 당시의 상황에 대해 말해 달라.
저 사진을 카이파파라치(Kaipaparazzi)라는 친구가 찍어줬다. 촬영 당일 날 저 친구가 조금 늦었다. 저 많은 사람이 모이려면 얼마나 힘들겠나. 다들 주말에 술 먹고 노는 사람들인데. 하하. 인원 모두가 모이는데도 시간이 좀 걸렸다. 마침 사진 속에 있는 희락이 형이 회를 떠 와서 다같이 술 마시고 회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는 도중에 모두가 취해버렸지. 당시 내 작업실 앞 계단에서 촬영한 후 인근 술집에서 또 술을 마셨다.
미녀들이 화합을 자주 찾는다던데 사실인가.
사실이다. 하하. 어떤 공간이든 좋고 나쁠 때가 있지 않나? 하지만 화합은 항상 평균 이상의 ‘물’을 보여준다. 성비가 나쁘지 않다. 나도 깜짝 놀랐다.
향후 몇 년간의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살다 보니 많은 일을 벌이게 되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화합도 운영하고 DJ 크루도 두 개나 이끌고 있다. 레슨도 하고 있고. 이제는 좀 더 밀도 있게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어보고 싶다. 화합도 화합 나름대로 사람들이 더욱 즐겁게 놀 수 있도록 집중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앨범 작업과 더불어 데드엔드, 디스코 익스피리언스를 범 문화적인 단체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목표다.
화합을 주제로 프로덕트를 제작할 계획은 없나.
옷을 좋아하는지라 한 번쯤 해보고 싶긴 한데 아직 욕심을 부리고 싶지는 않다. 하는 일이나 잘하자는 생각이다. 하하.
앞으로 화합이 어떤 공간이 되길 원하나.
지금처럼 쭉 언제나 자유롭고 화합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사진 l 백윤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