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BAR #SNAIL RECORD AND BAR

언제부턴가 우후죽순 증식한 서울의 레코드바. 한껏 짙은 취향으로 무장한 바에서 웅장한 스피커로 전해지는 음악을 감상하는 것도 퍽 근사한 일이지만, 가끔은 큰 마음을 먹고 옷도 좀 멀끔히 입고 발걸음해야 하는 공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해방촌의 높은 언덕 위에도 작은 레코드바가 하나 자리하는데, 간판의 귀여운 초록색 달팽이를 발견하는 순간부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름하여 스네일레코드앤바(snail record and bar). 작은 굴 같기도 한 공간에 들어서면 기다린 원테이블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아차, 만약 이곳의 방문이 처음이라면 혹은 다른 손님이 없다면 주인장과 어색한 공기를 공유해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레코드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공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앙증맞고 편안한 요소들을 관찰하다 보면 이내 미지근해지는 술잔처럼 자연스레 이곳에 녹아들 것. 스네일레코드앤바의 주인장 김동건과 만나 두서없이 여러 가지를 물었다. 하단에서 함께해 보자.


스네일레코드앤바를 직접 소개하자면?

다양한 위스키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동네 술집.

스네일레코드앤바를 운영하게 된 계기와 배경 그리고 지금까지 2년 넘게 운영해 온 감회를 이야기해 달라.

사실 처음부터 이런 바의 형태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냥 그때 당시 뭐라도 하고 싶었다. 마침 피터팬에서 엄청 저렴한 매물이 올라왔길래 친구랑 술을 마시다 술김에 덜컥 계약해 버렸다. 쉬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던 때여서 ‘그냥 놀면서 1년만 해보자’라는 마음이었지. 1년도 안 돼서 망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재밌기도 하고 주변에서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아서 어찌하다 보니 2년을 넘기게 됐다.

해방촌이 옛날만큼 유동인구가 많지도 않고, 바 역시도 상당한 언덕 위에 위치해 있어 아는 사람들만 찾아올 것 같은데. 이곳에 공간을 차린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사실 이 공간이 전에 ‘카르마’라는 바의 공간이었는데 진짜 저렴하게 나왔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저렴하기만 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다른 매물을 찾아보지도 않았다. 이 정도 가격이면 1년 정도는 버틸 수 있겠다, 1년 하고 모아 둔 돈을 다 쓰면 다시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정도의 마음가짐이었지.

이전에는 다른 종류의 외식업에 종사했다고 들었는데, 콕 집어 ‘레코드바’로 개업한 이유가 있을까?

간사한 생각이지만 처음에는 사실 소품샵을 하고 싶었다. 쉬워 보였으니까. 그런데 딱 인테리어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그게 진짜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너무 당연한 건데 말이다. 그래서 그나마 내가 할 줄 아는 게 요리니까 와인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가 주방 설비가 없지 않나, 그걸 할 돈도 없었고. 또 와인은 아무리 좋은 와인이어도 누가 어떻게 설명하고 어떤 안주랑 먹느냐에 따라 정말 다른데, 어려운 와인바보다는 따라서 나가기만 하면 되는 위스키가 좋겠다 싶었지. 그런 쉬운 마음이었기 때문에 금방 망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딱히 레코드바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계약하고 그 뒤에 인테리어도 시작하다 보니 공간을 채울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뿐이다. 그래서 집에 있는 레코드도 가져오고, 턴테이블도 가져오고. 턴테이블도 처음에는 하나밖에 없었다.

예전부터 평소에 레코드를 사모았던 건가?

20대 초반부터 모으긴 했는데 엄청 가벼운 취미였다. 모았다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오히려 가게를 차리면서 레코드가 필요하다는 핑계로 더 많이 사게 되는 것 같다.

진열장을 채운 레코드에는 어떤 음악이 담겨 있나. 주인장 개인의 취향이 십분 반영된 것인지 혹은 어느 정도의 트렌드도 고려하고 있는지.

취향이 그다지 뚜렷한 사람이 아니기에 딱히 뭐라고 규정할 만한 단어는 없는 것 같다. 그냥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 내 취향인 것도 있고, 많은 사람들의 취향인 것도 있고, 어느 정도의 트렌도 고려한다. 처음에 바를 열었을 때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틀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들은 그에 맞지 않더라. 그래서 조금 더 대중적인 장르의 음반을 많이 구입했다. 아마 처음 가게를 오픈해서 틀었던 판이 프랭크 오션의 [ENDLESS]였을 거다. 지금은 구입에 조금 지쳐서 적극적으로 사입하는 편은 아니다. 다른 친구들이랑 바이닐로 음악을 들려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거기서 틀만한 것들을 조금씩 모으고 있기는 하다.

최근 가장 많이 플레이하고 있는 혹은 마음이 가는 레코드 3개만 꼽는다면?

먼저 이 요지 야마모토(Yamamoto Yohji)의 앨범 [THE SHOW]. 멋있는 척하기 좋다. 두 번째로는 아서 러셀(Arthur Russell)의 [IOWA DREAM]인데, 친구가 굉장히 좋아하는 앨범이라 구입했다. 그 친구가 오면 항상 틀어주는데, 그때마다 친구가 너무 행복한 표정이더라. 마지막으로 제일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여기서 오아시스 떼창하고 싶어”라면서 오아시스(Oasis)의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를 사줬다. 친구들이 모여있을 때 “Champagne Supernova”를 틀고 다 같이 부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공간이 다소 협소한 편인데 인테리어 혹은 공간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구성함에 있어 어떤 요소에 공을 들였나. 

진짜 엄청 엄청 편안한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지나가다 들를 수 있는 동네 술집 정도로. 그래서 3년 전쯤에는 벽, 나무 톤이나 그런 모든 것들을 뻔하디 뻔한 ‘인스타 감성 카페’ 스타일로 열어볼까도 생각했었다. 그런 것들이 오히려 제일 편하지 않나.

어쨌든 스네일레코드앤바를 처음 열려고 했을 때는 공간에 들어왔을 때 바로 보이는 벽이 나무였으면 좋겠다라는 정도의 생각만 있었다. 그런데 관수라는 친구가 여기 인테리어를 해줬는데, 내가 원하던 것들을 알아서 잘해줬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너무 감사한 친구다.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이것도 친구가 만들어준 테이블인데, 이 달팽이 모양 패턴에 불빛을 비추고 불을 끄면 야광처럼 빛난다. 무슨 약 같은 걸 발라서 만들었다고 했는데 볼 때마다 너무 귀엽다고 생각한다.

테이블도 긴 원테이블 하나이고, 그렇다 보니 디제이, 바텐더와의 거리도 상당히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친근한 대화들이 많이 오갈 것 같은데 실제 분위기는 어떤 편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처음부터 고민이 많았다. 바를 그렇게 많이 가본 타입도 아니고 바에 갔을 때 조차 바텐더랑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건 내게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혼자 바에 가면 혼자 술만 마시고, 친구랑 가면 친구랑만 이야기하는 수준이었지. 그런데 직접 바를 운영해 보니 ‘바’라는 공간이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곳이란 걸 처음 알게 됐다. 지금은 좀 자연스러워진 편이지만 전에는 내가 바텐더로서 본분을 다하려면 스몰토크를 해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래서 오픈 당시에는 일부러 내가 억지로 술을 마시고 손님들과 얘기해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스스로에게 부담이 되기도 했고, 지금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있으려 한다.

지인을 제외하고 손님과의 친분도 잘 쌓는 편인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사실 나는 이 바 안에 서서 가만히 듣고 있는 입장이다. 나를 제외하고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 같다. 누군가는 이미 아는 사람이고 누군가는 처음 보는 얼굴일 때도 있는데 결국 모든 일들이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실제 바밍타이거 멤버를 비롯해 다양한 작업자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알고 있는데, 본인의 친구들의 아지트 공간이 된 걸까?

원래 알던 친구들이 놀러 오기도 하고 바를 운영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 또 그들의 친구들이 모여서 서로 친해지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는 잘 못 가는 성격이라 아지트 같은 공간을 원했던 건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낯선 사람들끼리 만나 재밌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렇다고 친한 사람들만의 공간처럼 만들려는 건 절대 아니다. 아까 이야기했다시피 누구나 올 수 있는 편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스네일레코드앤바가 ‘나눠갖는 동산’처럼 다양한 이벤트 역시 열리는 공간으로 자리하는 것 같은데, 이런 이벤트들도 의도하지 않은 것들인지.

모든 행사들이 다 너무 재밌었고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런 행사들로 인해 홍보도 어느 정도 되고 나 스스로도 재미를 느끼고, 이곳을 찾는 동네 분들께도 재밌는 경험일 수는 있겠다. 반면에 이런 걸 조금 불편해하시고 “다음에 올게요”하는 손님분들 역시 내게는 정말 소중한 손님이자 친구들이니까. 그런 마음에서 작년에는 이벤트를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재밌는 기획이 있다면 해보고 싶다.

스네일레코드앤바 외에도 한남동 대로변에 위치한 카페 겸 바 ‘KISS’도 운영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공교롭게도 해당 공간 역시 ‘바’의 형태인데, 두 공간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각각 중점을 두는 요소가 있을지.

계속 이야기했다시피 여기는 나 그리고 손님 모두에게 최대한 편안한 공간이고 싶다. 그래서 위스키 따라주는 정도의 노동만 하고 있는데, 내가 음악이나 술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때로는 이게 좀 부끄러울 때가 있다. 바, 심지어 ‘레코드바’라는 이름으로 운영한다는 게 술도 애매하고,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애매하니까. 스네일레코드앤바를 누추한 곳이라 표현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반면에 KISS의 경우 채정이라는 너무 좋은 파트너이자 친구와 조금 덜 부끄러운 공간을 운영해 보고 싶어 시작하게 됐다. 채정이의 미감을 온전히 신뢰하기도 하고, 스네일레코드앤바를 운영하면서 공부했던 위스키, 칵테일에 관한 것들을 좀 더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민 거지. 그러면서 돈도 벌 수 있게.

인스타그램 팔로우 목록을 보면 해방촌의 흠마켓과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사실 별 이유는 없다. 이 공간을 열었을 때 코로나로 너무 힘들 무렵이라 그곳에서 1년 간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흠마켓 사람들과 너무 친해지기도 했고, 내가 흠마켓의 셰프였던 신동규라는 사람의 엄청난 팬이기도 하다. 그래서 같이 일해보고 싶은 이유도 있었지. 흠마켓 화이팅!

스네일레코드앤바의 ‘출장바’ 또한 꽤나 잦은 것 같다. 스네일레코드앤바를 찾는 공간, 브랜드는 보통 어떤 분위기를 가졌나.

스네일레코드앤바를 불렀다기보다 저렴하게 쓸 수 있는 김동건이라는 사람을 부른 것 같다. 출장을 나가도 대단한 걸 하는 게 아니니. 어디 던져놔도 적당히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뿐이다. 이런 일들이 아직까지 너무 재밌고 다른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기쁘다.

최근 몇 년 새 서울의 레코드바가 정말 많아졌지만, 스네일레코드앤바가 그중에도 계속해서 사랑받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지.

기본은 하는 것 같은데 어느 하나 특출 나게 뛰어난 곳 없고, 어딘가 조금씩은 불편한 점이 노포 같은 편안함을 주지 않나 싶다. 그래서 다들 편하게 찾는 듯하다. 그리고 내가 레코드바 혹은 음악을 들으러 어떤 공간에 간다고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장님의 취향이 너무 묻어나지 않거나 다 거기서 거기처럼 보이는 곳들은 지양하게 되는 것 같다. 술도 그렇고. 스네일레코드앤바는 협소한 공간이 주는 분위기도 그렇고 술도 저렴하게 다양한 종류를 즐길 수 있으니 아직까지 찾아주시는 게 아닐까 싶다.

이외에도 DJ라던가 다양한 활동을 겸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본인의 삶에서 ‘레코드바 사장’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나.

큰 무언가는 아니다. 오히려 ‘레코드바 사장’보다 ‘사장’이라는 것에 무게를 느낀다. 작년 5월쯤 KISS를 운영하기 전에는 사실 모든 것에 지쳐 취직을 해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스네일레코드앤바는 주말에만 열고 평일에는 출근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KISS와 스네일레코드앤바를 모두 운영하는 32살의 나이가 됐다.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진짜 뭔가를 정해서 열심히 해야 될 때라고 느끼고 있다.

바 사장이 아니었다면 뭐가 됐었을 것 같나.

뭐라도 했었을 것 같다. 시켜주는 건 뭐든지. 스네일레코드앤바를 29살에 차리고 30, 31살이 됐을 때쯤 불안함을 많이 느낀 것 같다. 나름 재미는 있었지만 이 조그마한 데서 매일 술이나 먹고 노가리나 까고 있으니 삶이 뭔가 정체된 기분이었달까. 이렇게 한 3년 살면 29살 때와 똑같은 35살이 돼 있을 것만 같은 불안함에 뭐라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취직을 생각했던 거다. KISS까지 하게 돼서 참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가득 채운 달팽이에 관해 묻고 싶다. 실제 키우기도 하나?

실제 키우진 않는다. 오히려 달팽이가 징그럽다고 생각해서 별로 좋아하진 않았는데, 이름을 정할 때 그래도 귀여운 이름과 로고를 만들고 싶더라. 그냥 달팽이가 어울리겠다 싶었지.

그리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 여기 인테리어를 해준 신관수, 아무 생각 없이 간판 그려달라고 했을 때 너무 멋있는 간판 만들어준 김지환, 1주년, 2주년 행사마다 노래 불러달라고 했을 때 너무 흔쾌히 와서 행사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정지영. 이 친구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Snail Record and Bar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장재혁
Photographer | 전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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