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uli Recht의 헤비메탈 레코드 스탠드와 추천 LP 5

순수 예술, 패션, 산업 디자인의 경계를 허물며 존재할 듯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디자인의 아이템을 선보여온 디자이너 스룰리 레흐트(Sruli Recht)가 ‘헤비메탈 레코드 스탠드(HEAVY METAL RECORD STAND)’를 출시했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출신의 스룰리 레흐트는 도시의 차가운 공기와 우중충한 날씨를 그의 디자인에 직접적으로 이식한다. 2013년까지 선보여 온 패션 컬렉션과 더불어 현재하고 있는 음향기기, 액세서리, 공간 디자인만 봐도 그의 어두운 디자인적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그중에서도 차가운 금속성을 대놓고 호소하는 헤비메탈 레코드 스탠드는 보는 것만으로 레이캬비크의 얼어붙은 공기를 환기시킨다.

스룰리 레흐트의 이번 작품은 그가 이전 출시했던 레코드 트랩(Record Trap)과 비슷한 외형을 띄고 있는데, 레코드를 떠받치는 금속 기둥을 하나 추가하고, 더욱 다크한 컬러를 택하는 식의 변주를 가했다. S725 스틸을 플라즈마를 통해 절단한 헤비메탈 레코드 스탠드는 불완전한 마감과 코팅으로 마모, 산화 등 사용자의 사용감이 온전히 묻어날 수 있게 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스룰리 레흐트가 이번 레코드 스탠드 발매와 함께 그에게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LP 5개를 직접 선정했다는 사실. 단, 제품명 ‘heavy metal’은 록 장르가 아닌 단순 무거운 금속을 뜻하니, 혼동에 주의할 것. 스룰리 레흐트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에 영향을 줬던 다채로운 음반을 소개하니, 그의 디자인 세계에 호기심을 느낀 이라면 주목해 봐도 좋을 것. 헤비메탈 레코드 스탠드는 현재 스룰리 레흐트 공식 웹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


1. N.W.A – [STRAIGHT OUTTA COMPTON]

어린 시절부터 바이닐의 매끈한 촉감과 나선형 텍스처에 매력을 느낀 스룰리 레흐트는 불과 6, 7세의 나이에 바이닐 컬렉터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바이닐 자체의 물리적 매력을 넘어 바이닐이 만들어진 순간과 그때 느껴지는 긴장된 공기 그리고 아티스트의 열렬한 메시지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찾아오는데, 그가 12살이 되었을 때 학교 미술 전시회에서 다른 학생이 연필로 그린 한 앨범 커버를 마주하게 된 것. 그리고 그 친구의 손에 들려 있던 미국 서부 힙합을 대표하는 전설적 래퍼 N.W.A의 [STRAIGHT OUTTA COMPTON]의 카피본을 듣게 되었을 때 그는 또 한 번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 앨범은 불법 수입된 카피본이었고, 앨범 내용 역시 불법이 난무하는 자극적인 소재로 가득했다. 끔찍한 동시에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느껴졌다”라는 감상을 남긴 스룰리 레흐트는 앨범을 들었을 당시 그가 마치 LA 중남부 빈민촌의 아이가 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앨범의 리드 싱글 “STRAIGHT OUTTA COMPTON”의 배경이 된 컴튼의 날 것 그대로의 거친 거리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뮤직비디오를 함께 감상해 보자.

2. Stanley Kubrick’s “CLOCKWORK ORANGE” SOUNDTRACK

스룰리 레흐트는 디자인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디스토피아, 아웃사이더, 발레 복장으로 잔혹한 폭력쇼로 대표되는 한 소설로 꼽았다. 그렇다, 앤서니 버지스(Anthony Burgess)의 1962년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 이야기다.

스탠리 큐브릭이 각색한 동명의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영화의 미적 요소뿐만 아니라 파괴적 내용 역시 뇌리에 깊게 새겨져 한동안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을 터인데, 스룰리 레흐트 역시도 현재까지 그가 처음 손에 쥐었던 책의 종이 향기가 생생하다고 전한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모든 형태로 나를 집어삼켰다. 현실을 왜곡하는 이야기로 나를 사물, 물질, 의도의 황량한 사막에 던져둔 것이다. 내가 15살이 되던 해 이 책을 통해 비로소 ‘디자인’이라는 비선형적 소재와 ‘내러티브’에 눈뜨게 됐다”

I was Groomed.
I had been ReNeducated.
I had been a clockwork oranged.

3. JIM JARMUSCH’s “DEAD MAN” SOUNDTRACK by NEIL YOUNG

스룰리 레흐트의 젊은 시절 영감이 된 또 하나의 영화가 있다면 바로 짐 자무쉬(Jim Jarmusch)가 1995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부극의 새로운 모습을 개척했던 “Dead Man”다. 죽음으로 가는 긴 여정의 배경음악은 캐나다의 전설적 싱어송라이터 닐 영(Neil Young)이 맡았다.

‘죽은 자’를 뜻하는 영화 타이틀에 걸맞게 닐 영이 선사하는 사운드는 절망, 상실, 두려움, 긴장의 연속이다. 스룰리 레흐트의 말을 빌리자면, 짐 자무쉬의 영화는 그를 과거로 끌어당길 때 닐 영의 차분하고 침울한 사운드가 그를 다시 현재 그리고 미래로 되돌려 주었다고. 영화가 개봉한지 3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음악을 반복해서 듣고 있다는 팬들이 줄을 잇는 닐 영의 명반을 함께 즐겨보자.

4. Bob Dylan – [TIME OUT OF MIND]

레이캬비크의 기온은 모두가 에어컨을 찾아 헤매는 서울의 7월과는 다르게, 현재에도 채 10도 안팎을 나돌 정도로 서늘하다. 1년 내내 지속되는 우중충한 날씨는 도시에 고독을 내리기 마련이고 이는 특히 모든 것이 얼어붙는 겨울에 더욱 지독하다.

스룰리 레흐트는 눈 덮인 거리를 제대로 된 신발도 신지 못한 채 걸었다. 발가락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그를 괴롭혔지만 그의 실존적 문제가 야기하는 고독 역시 그에 상응했다. 다행스럽게도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그의 마음에 따뜻한 위로를 전하던 존재가 있었는데, 바로 밥 딜런(Bob Dylan)의 [TIME OUT OF MIND].

[TIME OUT OF MIND]은 경쾌한 리듬에도 왠지 모를 슬픔이 서려 있는 앨범이다. 그러나 그 경쾌한 슬픔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슬픔의 동반자가 아닌, 계속 전진하기 위한 발화제다.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면 어디든 도달할 것이라는 꽤 괜찮은 낙관주의를 설파하는 앨범이 [TIME OUT OF MIND]인 것. 눈 내리는 목장을 바라보며 음반을 완성했다는 당시의 밥 딜런을 상상해 보면 앨범이 한층 따스하게 다가올 테다. 앨범 내 스룰리 레흐트가 택한 곡은 “Love Sick”. 직접 감상하자.

5. Leonard Cohen – [Songs of Leonard Cohen]

스룰리 레흐트가 택한 마지막 앨범은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19667년 데뷔 앨범 [Songs of Leonard Cohen]. 밥 딜런이 일전 이야기했듯 레너드 코헨은 노래를 쓰는 뮤지션이 아닌, 기도를 작곡하는 사람이었다. 스룰리 레흐트 역시 이 부분에 주목한다.

앨범 전반에 깔린 신비로운 분위기와 시적인 가사는 밥 딜런에 버금갔으며 코헨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레이캬비크의 차가운 공기를 부드럽게 감쌌다. 고독에 허덕이던 스룰리 레흐트에게는 분명 큰 위로가 아닐 수 없었을 터. 그 역시 레너드 코헨에 지독하게 빠졌었다는 말로 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 창밖을 내다보며 감상하면 좋을 앨범 [Songs of Leonard Cohen]의 감미로운 사운드를 함께 즐겨보자.

Sruli Recht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Sruli Recht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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