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 하우스가 에디트된 음악이 런던 클럽에서 재생된 그 이후의 순간들. 짧은 문장이지만, 이를 UK 개러지(UK Garage)가 태어난 순간이라고 칭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1990년대 중반, 뉴욕발 하우스 음악이 영국으로 넘어온 뒤 생겨난 독자적인 흐름, UK 개러지는 현재 영국 베이스 음악의 기초가 되었다. UK 개러지라는 뿌리 위로 스피드 개러지(Speed Garage)라는 가지가 뻗었고, 투스텝 개러지(2-Step Garage)가 피어났으며, 그 위에 랩을 얹은 그라임(Grime) 역시 같은 뿌리에서 양분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상업적 성공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수많은 영국 뮤지션들은 현재 세계적인 각종 페스티벌 헤드라이너에 이름을 올리는 중이다. 당장 한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영국 베이스 뮤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디스클로저(Disclosure)가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2016’의 마지막을 장식한 바 있다.
UK 하우스의 대략적인 타임라인 중 2010년대 초반 영국의 흐름을 주목해보자. 다양한 장르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장르는 역시 퓨처 개러지(Future Garage)다. ‘퓨처 개러지’라는 명칭은 휘슬라(Whistla)가 명명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개러지’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퓨처 개러지는 UK 개러지의 한 갈래다. 당연하게도 퓨처 개러지의 음악적 특징에는 UK 개러지에서 스피드 개러지, 투스텝 개러지 등으로 나누어지며 정착된 특징들이 다양한 형태로 담겨있다. 그중 가장 큰 특징은 역시 타 장르에 비해 앰비언트적인 요소가 강하고 차분하다는 점. 이는 당시 스크릴렉스(Skrillex)를 위시한 강렬한 사운드의 브로스텝(Brostep) 물결에 반발한 시도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흐름을 공유한 포스트 덥스텝(Post-Dubstep) 역시 같은 시기에 등장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그리고 ‘백문불여일청’이다. 퓨처 개러지 뮤지션들의 음악을 직접 들어보는 게 영국 하우스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훨씬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아래 나열한 음악을 한 번 감상한 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iqjxFs9h8F4)
XXYYXX – Pay Attention
Jamie xx – Loud Places (Feat. Romy)
Sepalcure – Eternally Yrs
위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름인 XXYYXX, 제이미 엑스엑스(Jamie xx), 세팔큐어(Sepalcure)는 근 몇 년 사이 뚜렷한 족적을 남긴 뮤지션들이며, 본인의 음악을 통해 장르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나름의 성과를 거둔 이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퓨처 개러지의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는 아티스트가 바로 SBTRKT – ‘서브트랙트’라고 발음한다 -다. 시기적으로도 적절하게 퓨처 개러지의 흐름에 탑승한 그는 2009년 [Musik Lace] EP로 첫 결과물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보다도 그를 가장 널리 알린 건 역시 라디오헤드(Radiohead), M.I.A와 같은 뮤지션의 리믹스와 2010년 브레인매스 레코즈(Brainmath Records)를 통해 발매한 EP [2020]일 것이다.
이제는 그의 시그니처가 된, 토테미미즘이 떠오르는 마스크와 영국적 색채를 표현하면서도 기묘한 사운드와 대중적인 요소 두 가지를 적절히 섞은 그의 음악은 음악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셀프 타이틀 앨범, [SBTRKT]에서 자신의 이름과 퓨처 개러지라는 장르 자체를 널리 알린다. 이 앨범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그의 레이블 영 턱스(Young Turks)가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SBTRKT와 이 앨범의 힘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SBTRKT – HIGHTER (Feat. Raury)
SBTRKT – GOOD MORNING (Feat. THE-DREAM)
[SBTRKT] 발매 이후, [Transitions] EP 시리즈와 몇 개의 프로젝트를 발표한 그는 다음 정규 앨범 [Wonder Where We Land]를 발표한다. 암으로 삶을 마감한 형제에게 헌정한 이 앨범 역시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며, 동시에 SBTRKT의 철학적인 고민 역시 짙게 느껴지는 앨범이었다. 이는 올해 발표한 또 다른 프로젝트, [Save Yourself]에서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더 드림(The-Dream)이나 샘파(Sampha), D.R.A.M(Does Real Ass Music)과 같은 아티스트의 참여도 눈에 띄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SBTRKT 본인이 [Save Yourself]에 관해 남긴 코멘터리일 것이다. 그는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환경 문제 등 거대한 사회적 문제부터 본인의 감정에 관한 작은 이야기를 남겼다.
Though as SBTRKT I am one person, I've always tried to champion the idea of bringing together artists who are from different places both musically and geographically. The title SAVE YOURSELF and the visuals reflect my personal mood on what's happening in the world and society on a macro and micro level. Whether that be racism, xenophobia, the environment or irresponsible greedy politicians. - SBTRKT (via Pitchpork Magazine)
과거 인터뷰에서 “얼굴을 가리고, 인터뷰를 통해 나를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오직 음악으로만 평가받기 위함이다”라고 밝혔을 만큼, 서브트랙트의 음악을 접하는 게 그를 이해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일 것이다. 그는 [SBTRKT], [Wonder Where We Land]와 같은 정규 앨범이나 [TRANSITIONS] 시리즈, 그리고 최근의 [Save Yourself]와 같은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커리어를 통틀어 행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왔다.
BBC 라디오, 3년 전 보일러 룸(Boiller Room) 라이브, 심지어 밴드 세션으로 진행했던 그의 공연에서도 본인의 색깔을 여과 없이 드러내 왔다. 그런 만큼, 6개월간의 잠에서 깬 뒤 기지개를 켜는 장소로 서울을 선택한 이유 역시 명확히 존재할 것이다. SBTRKT를 좋아하는 서울의 전자음악 팬들은 그가 준비해놓은 새로운 콘텐츠와 경험치를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긴 공백 뒤에 선보이는 공연은 어느 순간보다도 특별할지 모르니.
글 ㅣ 심은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