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네덜란드 로테르담(Rotterdam) 서브컬처 신(Scene)에는 하드코어 테크노 음악 열풍이 일었다. 당시 개버(Gabber, 하드코어 테크노의 하위 장르) 음악을 향유하는 젊은이들은 캔디컬러 트랙수트, 엑스터시, BPM 180, 삭발한 머리로 상징되는 집단으로 불리며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1994년, 이들의 움직임을 심상찮게 여긴 한 네덜란드 통신 회사는 로테르담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이 문화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네덜란드 아티스트 듀오 아리 베르슬루스(Ari Versluis)와 엘리 위텐부르크(Eliie Uyttenbroek)에게 개버 컬처(Gabber Culture) 리서치를 의뢰한다. 이들은 개버들(Gabbers)의 진짜배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인물사진(Portrait)를 떠올린다. 파티에서 함께 뛰놀며 섭외한 이들을 스튜디오로 불러 같은 자세와 구도로 찍은 수백 명의 사진에서 무언가 멈출 수 없는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메마른 표정에서 풍기는 건조함이 일률적인 그리드 안에 묶여 배치되는 순간, 누가 누군지 식별하기 힘들 정도로 동질성을 띤다. 거리에 산재한 이들을 하나의 프레임에 담아놓았을 때, 집단이 실체로 드러나는 느낌이다.
A4에 12컷을 담아내는 형식을 갖춘 이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Exactitude(exact plus attitude)’라는 이름을 달고 20년이 넘게 전 세계에 숨겨진 스테레오 타입(Stereotype)을 찾아 항해한다. 어느덧 154개의 시리즈에 도달한 작업을 들여다보면, 시공간을 넘나드는 장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서브컬처 집단에 쏟은 애정과 관심, 우스꽝스러운 사회의 이면을 포착하는 위트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한편, 각국 서브컬처의 면면뿐 아니라 성 정체성, 인종, 종교, 나이를 넘나들며 거리의 삶을 포착하는 이들의 작업에 큰 관심을 보인 인물이 있었다. 뎀나 즈바살리아(Demna Gvasalia), 베트멍을 이끄는 수장인 그는 학창 시절부터 자신에게 깊은 인상을 준 이 프로젝트를 지난 1월 열린 2017 Fall/Winter 컬렉션에서 새롭게 풀어냈다.
“그가 본인이 준비한 컬렉션 아이디어를 설명했을 때, 우리가 거리에서 매료되었던 지점, 즉 사회에 흩어진 진짜의 삶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Ari Versluis
소비에트 연방, 조지아 출신의 뎀나 즈바살리아는 변방에서의 유년을 기억하듯,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캐릭터를 런웨이에 구현해냈다. 노인과 소년, 부자와 빈자, 동양과 서양, 펑크와 포크 등 우리를 구별 짓는 여러 가지 축을 무색하게 만들며, 현대 사회에 파편화된 집단을 스타일이라는 직관적인 요소로 나열했다는 사실, 그들이 거리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순간, 그가 단순하게 쿨한 이미지로 스타일을 선보이는 패션쇼, 그 이상을 의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유럽 변두리에서 갈고 닦은 취향을 토대로 주류 패션계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이 된 그가 마음 한쪽에 담아두었던 진짜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놓는 듯한 인상이다. 소수의 부호를 겨냥해 선보이는 오트쿠튀르(Haute couture) 기간에 치뤄지는 베트멍의 컬렉션은 뎀나 즈바살리아의 견고한 부유층 고객을 향해 그가 인식하는 현대 사회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역설적인 모습을 남겨둔 채 베트멍에 열광하는 강력한 팬덤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