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의 스케이트보드 신(Scene)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재능있는 어린 스케이터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그들로부터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레벨의 트릭과 다양한 클립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와중 인스타그램 피드를 통해 범상치 않은 스케일의 킥플립과 함께 불현듯 나타난 이기윤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른 스케일의 스케이터임이 분명했다.
세 살부터 스무 살까지, 긴 시간 지구 반대편 에콰도르에서 자란 흥미로운 이력을 가진 그는 컬트와 사직 등 한국의 대표적인 스케이트 스팟을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이기윤이 지닌 탁월한 스타일과 비전은 한국 스케이트보딩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스케이터 이기윤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3살 때 에콰도르로 떠났고, 올해 4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출처│ Daily Grind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국내 스케이트보드 웹매거진 데일리 그라인드(Daily Grind)의 인스타그램 피드의 클립을 통해 처음 당신을 접했다. 어떻게 그런 강력한 팝과 유연성을 갖게 되었나?
에콰도르에서 한국에 도착한 뒤 어머니가 있는 대구에서 지냈다.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컬트를 방문했는데, 그날 처음 만난 문선우라는 스케이터가 컬트에서 짧은 클립을 촬영해줬다. 그냥 자연스럽게 보드를 타고 놀다가 찍은 결과물이라 그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사실, 내 킥플립이 그렇게 굉장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굳이 말하자면, 팝을 치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과 너무 빡빡한 트럭을 사용하지 않는 것 정도다.
엄청난 팝과 스케일은 국내를 떠나 세계적으로 봐도 흔치 않은 스타일이다. 이러한 스케이팅을 추구하는 데 영향을 준 인물이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많아 나열하기 어렵다. 스케이트보드를 접한 순간부터 다양한 스타일의 스케이터를 봐왔기에 누구 한 명을 꼽기 쉽지 않다. 최근 흥미롭게 보는 스케이터는 구스타프 톤슨(Gustav Tonnesen)이다. 노르웨이 기반의 스케이터인데, 정말 창의적으로 스케이트보드를 탄다.
좋아하는 스케이트 비디오 혹은 파트가 있다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사워 솔루션(Sour Solution)의 “The Sour Solution”, 다른 여타 스케이트보드와 차별화하는 구성이 좋다.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뻔하지 않은, 독창적인 스케이트보딩을 선호하는데 스팟이나 트릭이 정말 창의적이어서 볼 때마다 색다르다.
가장 좋아하는 트릭은 무엇인가?
재미없는 대답일 수도 있는데, 알리(Ollie)를 가장 좋아한다. 단순한 트릭이지만, 매번 재미있다.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남미 에콰도르에서 지냈다고 전해 들었다. 어떻게 그곳에서 살게 되었는지?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에콰도르에서 살게 되었다. 너무 어렸을 때 에콰도르에 갔기에 특별히 인상적인 기억은 없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스케이트보드는 12살 때 처음 접했다. 어느 날 TV 채널을 돌리던 중 X-게임에 관한 영상이 나왔는데, 토니 호크(Tony Hawk)가 거대한 메가 램프를 타는 모습을 봤다. 그땐 스트리트 스케이트보드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지. 멋도 모르고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페니 보드를 구입해 아파트 뒤 주차장에서 타며 놀곤 했다. 하하. 지금 생각해보면 스케이트보드를 탔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러다 우연히 베이커 스케이트보드(Baker Skateboards)에서 나온 “Baker 3”라는 비디오를 보게 됐고, 길거리에서도 멋지게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보자마자 흠뻑 빠져들어서 본격적으로 보드를 탔다. 마침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학교 선배 한 명이 자기가 타던 보드를 40달러에 판다고 해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스케이트보드를 가지게 됐지. 그 이후부터는 쭉 스케이트보드와 함께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예전부터 오고 싶었지만,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았다. 대신, 한국에 관련한 영상을 많이 봐왔고, 그때마다 가슴이 설렜다.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기억이 생생하다. 영상에서만 보던 걸 실제로 보니 정말 신났다.
한국과 에콰도르의 스케이트 신의 차이라면 어떤 것이 있는지?
일단 한국은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접근성이 너무 좋다. 에콰도르에도 스케이트 숍이 있지만, 우선 그 나라 사람들이 구매하기에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 스케이트보드 스팟도 에콰도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스케이터의 마인드도 다른 것 같다. 무엇보다 스케이트보더를 전문적인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한국은 에콰도르보다 스케이터로서 기회를 얻는 게 더 쉬우니까.
세이버 스케이트 숍의 소속 스케이터로 활동 중이다. 어떻게 연결되었나?
컬트를 방문하기 전에 앞서 이야기한 선우와 잠깐 세이버 스케이트 숍에 들렀다. 이틀 뒤에 다시 세이버에 방문했고, 이원준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후 세이버 소속 스케이터로 활동하게 됐다.
준비 중인 비디오가 있다고 들었다.
세이버 스케이트보드 필름을 촬영 중이다. 이한민 스케이터가 비디오카메라를 잡았고, 이제 곧 릴리즈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한다.
국내에서 눈여겨보는 스케이터가 있다면?
은주원, 최유진, 제이슨 최가 멋지다. 더불어 한국 스케이트 신의 흥미로운 장면은 어린 친구들이 스케이트보드를 너무 잘 탄다는 거다. 특히, 김동혁, 유지웅이라는 친구의 실력은 그야말로 놀랍다. 이외에도 너무 많아 일일이 나열하기가 어렵다.
서울 내 좋아하는 스케이트 스팟은 어디인가?
여의도 한강공원을 좋아한다. 탁 트인 스팟에 사람도 적어 자유롭게 타기 좋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부산의 사직구장도. 쫓겨날 걱정 없이 타는 게 큰 장점이다.
본인의 스케이트보드 셋업을 설명해달라.
8.5인치 이상의 UMA 데크에 에이스(Ace)의 AF-1 55 트럭, 54mm의 휠, 베어링과 볼트는 모듀스(Modus)의 것을 선호한다.
서울의 컬트나 부산 사직구장과 같은 오래된 스팟에서 보여준 트릭은 한국 스케이트보드 역사에 방점을 찍을 만한 장면들이었다.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은 국내 스팟이 있을까?
최근 포항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탔다. 어디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기물이 많아 여러 트릭을 시도해볼 수 있겠더라.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이번 푸마와 캠페인을 진행하며, 서울 곳곳에서 필르밍을 진행했다. 인상 깊은 에피소드는 없었나.
글쎄, 촬영 내내 너무 더웠던 날씨가 기억난다. 에콰도르는 남미에 위치하지만, 지대가 높아 덥지 않은데, 한국의 여름은 진짜 장난 아니게 덥고 습했다. 그래도 즐거운 기억이 더 많다. 하나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모였고, 즐겁게 스케이트보드를 탔다. 늦은 밤 서울의 도심을 누빈 것도 지금껏 느끼지 못한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번 푸마 x 버터 굿즈(Butter Goods) 협업 스니커의 착화감은 어땠는지.
협업 스니커를 신고 영상을 촬영했는데,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내내 불편한 느낌이 들지 않아 좋았다. 디자인도 세련됐고, 무엇보다 독특한 컬러웨이가 마음에 들었다.
스니커의 매력적인 디자인 포인트도 궁금하다. 혹시, 어떤 스타일에 이 신발을 매치해보고 싶은가.
스포티하게 입을 때 잘 어울리는 신발인 것 같다. 나 또한 그렇게 입는 걸 좋아하고.
컵솔과 벌커나이즈드 중 선호하는 형태의 신발이 있다면?
벌커나이즈 형태의 스니커를 자주 신어 벌커나이즈가 편하다. 너무 두껍거나 뭉툭한 스케이트보드 슈즈는 무겁고 불편해 잘 신지 않는다.
스케이팅을 위해 따로 하는 운동이 있나?
특별한 운동은 하지 않는다. 축구에 열광하는 남미에서 학교를 다녀서 에콰도르게 있을 때는 축구하는 걸 좋아했다. 이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하.
스케이팅 외에 즐기는 여가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
글쎄, 그냥 친구들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재미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전히 많은 것이 새롭다. 혼자 있을 땐 주로 기타를 친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면 상당한 기타 실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즐겨듣거나 연주하는 곡이 궁금하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과 기타 연주를 좋아했다. 특별히 즐겨 듣는 음악보다는 기분에 따라 음악을 듣고, 생각나는 대로 연주하는 걸 즐긴다. 클래식 록과 블루스, 잼을 주로 듣는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겪었던 가장 큰 부상이나 상처가 있는가.
재작년에 오른쪽 발목을 크게 접질렸다. 아직도 스케이트보드를 오래 타거나, 큰 스케일의 트릭을 하면 그 뒤 2, 3일간은 스케이트보를 타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다.
스케이트보드 관련 앞으로 한국에서 어떤 활동을 이어갈 예정인지 궁금하다.
아직 명확한 계획은 없다. 이제 한국에 온 지 5개월밖에 안 되어 아직은 낯선 생활에 적응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스케이트보드를 열심히 타고, 영상 촬영에 집중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COVID-19)로 활동의 제약이 있는 게 아쉽다. 언젠가 거리 두기가 완화된다면, 커다란 밴을 타고 한국 투어를 해보고 싶다.
Editor │ 오욱석
Interviewer │ 오문택
Photographer │ 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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