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LES

2012년 이후로 서울 언더그라운드 신(Scene)은 음악 매체 피카소(Pickasso)에 적잖이 빚을 졌다.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뜨겁게 분출하던 무수한 하위문화의 분화구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동시대 타임라인으로 끌고 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데는 피카소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녹사평역 인근에 문을 연 클럽 케이크샵(Cakeshop)의 공이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미부터 유럽 그리고 아시아에 걸쳐 작은 지역 단위로 통용되던, 그러나 큰 가능성을 품은 신선한 맥락과 지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아시아 변방의 작은 국가 대한민국까지 선을 잇고 공유하는 시간 동안 서울의 문화 지형도는 차츰 변화하고 있었다.

아티스트 네임 홀스(Wholes)로 활동 중인 손영원은 피카소의 파운더로, 웹 미디어 형태의 피카소 채널에 정력적으로 매진하던 약 5년의 시간 뒤로 일종의 ‘한국적인 레이브’를 표방한 파티 브랜드, 메가패스(Megapass)를 비롯한 각종 파티와 음악 이벤트에 기획자, DJ로서 참여했다. 이처럼 새로운 음악의 단서들을 좇아 끊임없이 경계와 활동 범위를 늘리던 홀스는 릴체리(Lil Cherry), 골드부다(Goldbudda)를 중심으로 설립된 레이블 아트라(ARTRA)의 총괄 디렉터로서 참여, 아트라의 설립과 릴체리 및 골드부다의 활동 반경을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2022년 여름, 느닷없이 세컨 핸즈 숍 주름(JURM)을 용산구 청파동에 열었다.

이쯤에서 서울이라는 지역적 단위를 중심으로 형성된 하위문화의 맥락과 배경을 두고 독특한 기획자 포지션에 위치한 홀스라는 인물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미 그의 손을 거쳐간 매력적인 결과물은 물론, 계속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새로운 발견을 꿈꾸는 홀스만의 실존 방식에서 우리는 분명 재미있는 또 다른 변수와 기쁨과 통찰을 찾을 수 있을 터.


디제이, 프로모터, 레이블 디렉터, 빈티지 숍 오너 등 홀스를 수식하는 말이 너무나도 많다. 서로 다른 지위와 역할에 놓일 때마다 다양한 신을 바라보는 관점과 견해가 새로울 거 같은데, 각각의 자리에서 얻는 재미를 들려줄 수 있을까?

내 짧은 경험과 사소한 단서들로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해 나가 보려고 이리저리 굴려보다 보면 대충 생기는 코어가 있다. 그렇게 생긴 코어를 중심으로 꿀렁이는 반고체를 질질 굴려 가며 모나지 않게 지속해서 이동하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목표와 방향성 없이 무섭게 변해 있는 나와 세계의 순간들을 간헐적으로 느끼면서. 뭔가 그 예전 어머니들이 아기 뒤통수가 못생기게 굳을까 봐 잠잘 때 머리 방향을 계속 돌려주는 미신(?)처럼.

서로 다른 위치와 상황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상대편의 선택과 취향들을 미워하고 질투하면서 보낸 20대였다. 모든 다른 분야에는 각자의 방법론을 가진 선택의 논리가 존재하고, 그 속 개개인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현명하게 선택하여 행동해 나간다.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시선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고, 신은 계속 상호작용하며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서울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 어느 도시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고, 놀라울 정도로 많은 기회가 생기는 곳이다. 이곳의 커뮤니티는 계속 새로운 것을 궁금해하고, 변화하려는 에너지를 품고 있다. 그 에너지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든 ‘존재한다’라는 상황 자체에 긍정 점수를 주고 싶다.

최근까지 레이블 아트라의 총괄 디렉터이자 A&R로서 광범위한 역할을 수행했다. 레이블을 이끌고 나가는 일은 단순히 단발성 기획이라기보다는 지난한 살림을 꾸려나가는 일처럼 느껴지는데, 지난 몇 년간 어떤 즐거움과 배움을 얻었는지 궁금하다.

아트라에서는 레이블의 기본적인 시스템과 조직도, 비즈니스적인 구조를 설계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쏟았다. 레이블 관련 업무들이 떨어져서 보기에는 말랑하고 화려해 보이겠지만, 아티스트와 그 콘텐츠들을 운용하기 위해 스튜디오와 공연장 말고도 보이지 않는 장소와 시간 속에서 준비해야 일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릴체리, 골드부다라는 라이징하는 시점의 글로벌한 아티스트를 디렉팅하게 되어 소중한 경험을 많이 했다. 콘텐츠 소비환경이 새로운 차원으로 바뀌었고, 로컬과 글로벌의 기준과 격차가 좁혀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기회 그리고 리스크들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고, 몸으로 그런 기회와 위기를 맞아,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아티스트와 레이블도 함께 성장했던 것 같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일은, 작년 여름에 찾아온 릴체리의 틱톡 하이프(Hype) 시즌이다. 작년 여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북미지역 MZ 틱톡커들로부터 릴체리가 틱톡에서 가장 핫한 밈 피규어가 되어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아티스트들도 당시 숏폼 미디어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 릴체리 틱톡 개인 계정도 없던 시즌이었다. 팬들이 어쩌면 놀리면서 밈으로 이용하던 릴체리가 틱톡 안에서 어느 사이 진지한 팬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우연히 리치 브라이언이 릴체리를 틱톡에서 발견하고 팬이 되면서, LA 88라이징의 페스티벌에도 초청받게 되었다. 동시에 해외 대형 회사들의 컨택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영 떠그(Yung Thug), 거나(Gunna)의 YSL이 소속된 300ent와 적극적으로 릴체리 계약을 논의했다. LA에 방문했을 때 300의 중역들과 미팅하고 스튜디오 세션을 진행했다. 귀국 후 6개월가량 계약서를 몇 차례 오가며 서로 구체화했는데, 릴체리가 최종적으로 글로벌 싸인하지 않은 더 독자적인 노선을 원하여 고사했다.

그들과의 한가지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최근 발매한 영 떠그의 앨범 [Punk]에서 드레이크(Drake)의 피처링 벌스에 관한 것이다. 드레이크가 피처링 벌스를 너무 안 줘서, 회사 차원으로 연락을 한 게 아니라 영 떠그에게 메시지 좀 해보라고 계속 조르고 졸라서 겨우 트랙이 빠지기 전날에야 받을 수 있었다고. 한국이나 미국이나 A&R들의 비슷하고 글로벌한 애환이 있는 것 같다. 글로벌 파트너들과 교류하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비즈니스 문화, 작업 속도 등 많은 게 달랐고 커뮤니케이션 방법도 달랐다.

릴체리, 골드부다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독특하고 개성이 강한 뮤지션으로 분류되는데, 이들과 함께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과정은 어떠했나?

처음에는 이들의 글로벌한 배경에서 그런 독특함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함께 작업하며 가까이 들여다보니 가족 환경에서 온 영향이 가장 크다는 걸 깨달았다. 릴체리, 골드부다의 스타일링을 어머니가 직접 해주시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부모님과의 대화에서, 또 남매의 관계에서 이들은 정말 친구 같고 아티스트로서 서로 존중한다. 둘을 둘러싼 거의 모든 환경이 이들의 순수한 창작 에너지를 보존하고 돕는 데 서포트하고 있다.

또한, 힙합, 랩 카테고리만이 아닌 다양한 장르를 사운드 자체로 소비하고 표현하고자 한다는 점이 나와 잘 맞았다. 그리고 그 사운드가 시각적으로 혹은 어떤 동작, 춤으로 표현되는 등 음악을 둘러싼 유기적인 세계관에 관한 설정을 스스로 그릴 줄 아는 아티스트들이다. 랩, 보컬에서도 단어가 주는 질감과 온도를 먼저 생각하고, 사운드 전체 레이어 안에서 구성요소로 인식하는 점도 나와 비슷했다. 둘 다 힙합 이외에도 다양한 장르에 열려있고, 마이애미 거주 경험으로 댄스 장르에 향한 이해도가 높다. 예를 들면 최근 앨범에서도 저지클럽 트랙에 재키와이를 초청하고, 남부지역의 잊힌 ‘우탱 댄스’를 다시 가져오는 식으로 말이다.

릴체리&골드부다가 발표한 듀오 앨범 [SPACE TALK]의 사운드 디자인, 프로덕션, 아트워크, 비주얼 제작까지 꽤 많은 부분에 아이디어를 보탰을 거라 예상한다. 기획자로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

아이디어가 넘치는 친구들이다. 스튜디오에서는 항상 다양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프로젝트의 단서들이 쏟아진다. 나는 그저 그것들을 정리하고 맥락화하고 마무리될 수 있도록 길라잡이 하는 역할을 한 것 같다. 대부분 아티스트는 스스로 이미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고, 해당 시점에 표현하고 싶은 사운드의 테마를 자연스럽게 품고 있다. 그것들이 잘 발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완성될 수 있도록 계획하여 끌고 가는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이 디렉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프로젝트에서 정해진 단 하나의 정답과 목표 지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치여서 비틀거리며 목표를 향해 물길이 닿을 수 있도록 계속 아티스트 주변의 수온을 맞추어 주어야 한다.

이번 앨범의 전반적인 콘셉트나 장르, 사운드에 대한 선택은 골드부다가 실질적으로 총괄 지휘하여 프로듀싱했다. 골드부다는 아직도 신에서 저평가된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프로듀싱을 시작한 지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지만, 음악을 계속 사운드와 리듬으로 이해해왔고, 문화 전반과 장르 맥락에 관한 이해도가 누구보다 높다. 한 프로젝트에 담고 싶은 아이디어가 다양한 편이고, 사운드 프로덕션에도 레이어가 많은 편이어서 나는 그저 그것들의 중심을 잡고 정리하고, 가지를 쳐내는 일에 주안을 두고 프로젝트들을 진행했다.

앨범의 참여진도 기시감 있는 국내 힙합 리스트보다는, 해외, 케이팝, 얼터너티브 등 다른 카테고리의 파트너들을 섞어보며 실험했고, 나도 그렇고 두 남매도 워낙 그런 이질적인 조합을 사랑한다. 이번 [SPACE TALK] 앨범은 전작들과 달리, 남매 듀오 팀플레이의 조화로운 시너지를 보여주기보단 솔로로서 분리되어 구성된 앨범이다. 릴체리, 골드부다의 추후 솔로 활동의 단서 조각을 상상하면서 앨범을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언더그라운드, 서브컬처를 향한 애정과 관심이 과거 피카소부터 메가패스 그리고 아트라를 거쳐 다소 의외다 싶은 주름까지 이끌고 있다. 세컨 핸즈 숍 주름을 구상하고 열게 된 과정을 듣고 싶다.

20대 직장생활 시즌 유일한 낙이 매년 가고 싶은 해외의 도시로 가보는 것이었다. 모든 도시에 갈 때마다 각 도시의 빈티지 숍, 쓰리프트 숍을 들러서 시간을 보내고 서울에서는 사지 않을 물건들을 사 모으는 습관이 있었다. 문화 경향의 주기가 반복된다는 패턴이 익숙해질 때 즈음, 개인적으로 향수가 가득한 2000년대의 노스탤지어가 주류로 편입되고 있었다. 이 시점이 나에게는 일종의 오랜 시간 준비해온 기회로 느껴졌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생각만 품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망원동에 콘셉트 샵 오너 ‘콘셉트-리’ 형을 만나게 되었고,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구현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그와 같이 1년가량 같이 준비하여 지금 청파동에 주름을 오픈하게 되었다.

구름처럼 둥실둥실 도망 다니는 콘텐츠 관련 일을 계속 간접적으로 지휘하는 일로 반복해오다 보니, 온전히 내 눈앞에 현시점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물성을 향한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손에 잡히는 물건을 소비자와 직접 마주하고, 적나라하게 공표된 가격으로 거래해보고 싶었다. 옷에 관한 몇 가지 결핍이 있다. 한국에 살기에는 덩치가 너무 커서, 어려서부터 입고 싶은 옷의 사이즈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여성복 카테고리에서도 입고 싶은 아이템이 많았는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렇게 소화하지 못한 에너지들을 주름 바잉을 할 때 많이 발산하는 것 같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면 젠더리스한 아이템이 많이 모여있다. 이런 갈증들을 자연스럽게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곳은 다양한 떼기들이 즐비하지만, 단순히 편집숍이라기보다는 홀스가 벌린 다양한 프로젝트의 전초기지처럼 보인다. 본인이 선보인 작업물의 첫 육화된 버전인 주름을 통해 어떤 일들을 진행할 계획인지 들려 달라.

어떤 아카이브 빈티지의 시장성이나 하이프 개념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주름만의 어긋남이나 위트를 섞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옷을 중심으로 사운드, 사람들, 이벤트가 얽혀 시간이 흐르고 쌓여서 각자의 사소한 이야기들이 주름졌으면 좋겠다. 상하이 일러스트레이터 ‘Kim Lauton’의 브랜드 ‘FERTILE STRAINS’을 공식 바잉하는 것처럼, 주름을 통해서 소개하기에 건강한 브랜드들을 조금씩 추가할 예정이다.

주름의 구성을 살피면 성행하는 국내 빈티지 숍, 세컨 핸즈 숍이 추구하는 정제된 빈티지, 아카이브의 미학을 설파하기보다는 앞서 언급한 동묘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좀 더 가공되지 않은, 마치 무분별한 디지털 정보의 폭력적인 냄새마저 풍기는데, 홀스가 바라보는 빈티지와 구제란 어떤 매력과 가능성을 품은 문화인지 궁금하다.

숍의 이름은 들뢰즈의 개념 ‘주름’에서 힌트를 얻고 차용했다. 주름이란 내 앞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나고 난 뒤에 생겨나는 흔적. 지평 안에서 어떤 결론으로 향해 갈지는 아직 미지수인 그 흔적들이 주름처럼 켜켜이 쌓인다. 또한 그 주름 안의 요소들이 어떤 조합으로 발현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 주름이 최종의 합으로 발현되는 보장도 없다. 그렇듯 주름은 하나의 종합으로 향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겹침’의 실존 방식이다.

빈티지 숍 운용은 랜덤한 공간과 시간에 절여져 상상이 풍부하게 밴 스토리를 구입하여 내가 만든 맥락 속에 섞어서 새로운 콘텍스트의 타임라인을 이어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수집하고 판매하면서 어떤 순환계를 만들고 그 대상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계속 비워내고 다시 채우는 행위. 그리고 그 교환의 계들이 굴러온 자국 자체가 주름으로서 일종의 포트폴리오가 될 것이다.

조금 과거로 시점을 돌려 보자. 홀스가 속한 곳을 ‘언더그라운드 신’이라고 칭한다면, 처음 이 신에서 눈에 띈 계기는 아무래도 음악 채널 ‘피카소’를 언급해야 할 거 같다. 피카소를 시작한 계기와 애정의 원천은 무엇이었나?

10년 전 즈음 시작했으니, 그때는 상황이 지금과 아주 달랐다. LA에서 비트 신에 약동하고, 점점 다시 TR-베이스 사운드로 모든 장르가 회귀하는 에너지를 목격하다 서울에 오니 많이 외로웠다. 당시 시모, 무드슐라처럼 가슴 뜨겁게 하는 로컬 플레이어들을 서포트하고 해외와 국내 음악이 소비되는 시차 간극을 줄이고 싶었다. 피치포크처럼 레이팅하는 방식보다는, 저평가된 플레이어와 로컬의 사운드를 서포트해보자는 식으로 미디어를 시작하게 되었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 모였다. 인터뷰에서 이미 언급했듯, 그 시기에는 뭔가 나와 다른 카테고리의 부류들을 몰 취향이라 증오했고, 어쨌든 당시에는 그런 공격적인 반발 작용이 피카소를 만들고 사람들을 모으는 에너지가 되었다.

지금은 미디어, 음악 감상 상황 자체가 많이 좋아졌다. 그래서 피카소로는 간헐적으로 유의미한 피처 인터뷰 시리즈를 꾸준히 이어가려고 한다. 그때 함께 시작하던 피카소 멤버들이 지금은 유럽에서 손꼽는 디제이가 되어있기도 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도 했다. 피카소를 시작할 때는 그 순간의 에너지와 문제의식에 집중했던 것 같다. 요즘은 무엇을 새로 시작하게 되면 같이 보낼 시간의 여백도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시간이 정말 너무 빠르다.

제이딜라(J Dilla), 칸예 웨스트(Kanye West)에게서 받은 영향과 그들을 향한 애정을 공공연히 드러내곤 했다. 그들이 본인에게 끼친 영향은 단순히 사운드에 한정되어있을 것 같진 않다. 이것을 좀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제이딜라는 안으로의 우주를 창조한 사람이다. 룹(Loop)이라는 큰 콘셉트를 사운드가 아니라 사조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나 창작하는 데 ‘Yancey’의 방법론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까 주름에서 빈티지를 대하는 콘셉트도 내 안의 새로운 것이 아니고, 어쩌면 아직 내 삶은 딜라의 바닷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들뢰즈의 ‘주름’ 개념이나, 니체의 ‘영원 회귀’ 같은 텍스트도 모두 ‘룹’적으로 해석하고 소비한다. 특히 그의 앨범 [Donuts]은 니체의 ‘영원 회귀’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칸예 웨스트는 개인을 외부 세계에 드러내고, 스킨십하는 데 능통한 아티스트인 것 같다. 가장 개인적인 단서들을 미디어와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맥락으로 트위스트하여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다. ‘하이프’라는 이미 성숙해진 단어, 현상 탄생과 소멸 자체를 칸예에게 지분 대부분을 줘도 된다.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만큼 소비되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중요한 시대가 된 지도 오래다. 창작의 범주에 마케팅까지 포함해버리며, 시장의 헤게모니를 두 번 정도는 바꾼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텍스트 기반의 피카소와 시청각 기반의 사무실(SAMUSIL)은 매체의 변화에 대응한 홀스만의 전략처럼 보였다. 이처럼 꾸준히 디지털 정보의 생산과 유포에 관심을 보인 홀스가 주목하는 작금의 동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또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생산과 유통, 소비까지 모든 측면에서 매체가 설 자리를 앗아간 느낌마저 드는 지금 이 시점에 독립 미디어가 지닌 의의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릴체리, 골드부다와 작업하면서 버츄얼 아티스트 아뽀키와 작업하기도 했고, 해외의 대표 NFT 팀과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기도 했다. 현시점에 시장 과대평가 반영으로 좀 루즈해지는 분위기가 있지만, 결국 거시적으로 웹 3.0이나 메타버스 관련은 어떤 방식이든 언젠가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 놓을 것이다.

한편 항상 서브컬처는 이런 주류 판타지의 반대급부로 더 세분되어 단단해지는 경향을 보이니, 더 좁은 단위로 분류되어 더욱 구체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군집이 다시 물리적으로 잡히는 것에, 다시 오프라인 스킨십을 갈망하지 않을까 한다. 독립 미디어도 이러한 각 군집의 보이스를 대표하는 방식으로 더 뾰족하게 발전하여 분리될 것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레어버스(Rarebirth)와 함께 파티 브랜드 메가패스를 몇 년 전부터 간헐적으로 지속해오고 있다. 레이브나 하드코어 담론을 서울 로컬로 끌고 온 이유가 궁금하다. 어떤 비전과 가능성을 보고 시작한 것인가?

코로나 직전 2018~19년에 유럽을 중심으로 패스트 테크노, 트랜스 등 좀 하드한 맥락의 90~00년대 레이브가 올라오기 시작했다(지금은 이미 성숙하게 소비되어 잘 지나가는(?) 중인 것 같다. 계속해서 ‘DJ fart in the club’ 베를린 특파원을 통해 소식을 듣고 있고, ‘High Future’라는 친구가 이미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내 기억 속 한국의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의 노스탤지어는 슈퍼 쏘우 신시사이저 사운드처럼 두려움과 뭔지 모를 희망을 동시에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메가패스라는 존재하던 콘셉트를 뚝 잘라 가져오면서, 그 시절의 판타지를 버무리고 싶었다. 가장 근처에 있지만 또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 레어버스에게 제안했고, 그렇게 파티를 함께 전개하게 되었다.

현재 클럽 신에 만연한 베뉴 중심의 소비 패턴에서 메가패스는 그 대안으로서 주목할 만하다. 대안적인 성격과 장르를 콘셉추얼하게 브랜딩한 파티를 찾아보기 힘든 지금인데, 메가패스가 여타 파티 브랜드와 구분되는 차별성이라고 한다면 무엇인가?

지금은 잘 운영 중인 파티나 이벤트가 많아진 것 같다. 메가패스는 레어버스의 도움으로 실제 운영되는 파티의 현실적인 면모보다 비주얼 단위를 통해서 브랜딩이 잘 된 편인 것 같다. ‘어떤 디제이가 어떻게 어떤 트랙을 던진다’라는 파티 안의 물리성에 주목하기보다는 ‘막연한 희망’과 같은 이미지들을 잘 녹여내고 싶다. 주변의 고마운 도움으로 여러 베뉴에 종속되지 않고 파티를 유지할 수 있었고, 멤버를 늘리면서 계속 실험해보는 중이다. 최근에는 키티(Kitty)라는 매력적인 디제이 친구가 합류했다.

메가패스는 로컬 디제이, 아티스트 스스로에게도 반전의 변화를 도모하는 장으로 느껴지는데, 뮤지션과 가까운 거리에 맞닿은 포지션에서 다양한 로컬 아티스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그것을 도출하는 과정을 즐기는 편인가?

새로운 경험이 주는 떨림, 에너지 그리고 몰입이 있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도 첫 디제잉 플레이 이후 어떤 언어에 갇혀 능숙해지고 있지만, 그 첫 경험만큼의 순수한 몰입을 잘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새로운 에너지들이 파티와 사람들에게 잘 닿을 수 있도록 특정 슬롯은 새로운 친구들에게 등용문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커리어를 지속해온 아티스트가 특정 장르나 형용사로 굳어진 케이스가 많다. 그들의 다른 면모와 장점을 꺾어서 제시하는 것도 프로모터나 디렉터가 해야 할 역할 같다.

각기 다른 유럽 레이브 신의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흥미 있게 지켜본 도시와 흐름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작년 VISLA 인터뷰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듯, 전쟁 직전에 방문한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의 경험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 이후 동유럽 신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다른 도시에도 꼭 방문해보고 싶다. 작년 VISLA 인터뷰 발췌 부탁한다.

“올 초 여름 촬영 때문에 처음 방문하게 된 키이우에서의 일주일 동안 거리, 날씨, 사람들 모든 게 다 좋았다. 특히 로컬 디제이들에게 안트워크의 이름을 팔면서 클로저 레코즈 숍을 처음 방문했던 순간이 가장 기억난다. 레전더리 클럽 클로저와 같은 공간 안에 소박하게 자리한 레코드 숍의 공간은 빈티지 소파 천국 ‘소파 스토어’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 동선을 함께 흐르고 있던 사람들 속에서 (게으른 판단이겠지만) 어떤 소속감과 편안함을 느꼈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짚어봤을 때, 새로운 영감과 단서에 갈증을 느끼고 늘 쫓아다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다시 한 발 적시고픈 웅덩이가 있다면 그곳은 어디일까?

규칙적이고 관리하는 삶에서 멀어진 것 같다. 체중도 많이 늘었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식단을 관리하는 그런 라이프스타일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어보고 싶다. 술도 좀 줄이고…. 사실 일단 효창공원에서 이사해야 가능할 것 같다. 이곳의 소주 커뮤니티가 너무 강하다.

현수막 홍보, 빨래걸이를 활용한 티셔츠 판매 등 한국 일상에서 익숙한 방식으로 낯선 감정과 경험을 유도하는 지점이 흥미로웠다. 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

레어버스와 나는 둘 다 어느 시점에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소셜미디어, 아이폰 안에만 화려하게 파티 포스터로 존재하는 파티가 넘치는 것에 염증을 느꼈다. 그래서 한국적이면서 탈 현대적인 마케팅 수단들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진행한 것이 용산구청에서 진행하는 거리 현수막, 중앙일보에 내건 홍보 기사다. 이런 파티의 사전 프로모션 덩어리로 조성한 이미지들이 분리되지 않고, 파티 당일과 현장에도 잘 흡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현수막이 옮겨왔고, 머천다이즈 디스플레이가 구성되었다.

이어서 한국적인 것을 향한 홀스의 시선은 삼성 로고를 활용한 사무실, 한국적인 구제숍 형태의 빈프라임과 같은 톤앤매너로서의 주름(시장을 다니는 이들이라면 친숙할 검은색 비닐봉지까지), 디제이로서 케이팝 에디트나 EDM를 활용하는 등 다방면의 행보에서 묻어 나오는데 그것은 그간 다른 창작자들이 시도한 한국적인 것과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홀스가 흥미를 느끼는 한국적인 것의 맥락과 지점은 무엇인가?

가장 빠르게 변하고 또 변하지 않는 고집이 있고. 맥시멀하고 정돈되지 않게 유지되는 그런 특성이 있는 것 같다. 내 안에 가장 많이 자리 잡은 모든 것들이 한국적이고, 이미 주변 친구들과 밀도 있게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한 한국적 타임라인 중에서도 다른 세대, 카테고리, 시대의 것을 지금의 맥락에 똑 떼어 집어넣는 것을 즐긴다. 류성실 작가님이나 신도시의 운영이나, 뭐 사실 최근엔 많은 작업자가 그런 방법론으로 재미있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만 한국적인 것들을 어떤 긍, 부정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취합해보는 실험을 하는 중이다. 나와 비슷하거나 윗세대의 노스탤지어적 오작동 그리고 새로운 세대가 기존의 에스테틱을 처음 경험하며 발생하는 에너지, 이런 간극이 재밌는 것 같다.

선수와 감독 모두의 포지션으로 활약하면서 서로 다른 마인드 셋을 취해야 할 때가 있을 듯한데, 그 균형은 어떻게 잡는 편인가?

감독은 조금 더 과거의 정보에 기반해서 예측하고, 이성적으로 조율하는 편이다. 혼자가 아닌 사람들과 팀과 같이 목표를 공유하며 진행하려 한다. 사실 팀 작업에서 좀 독단적이고 모난 성격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선수일 때는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판단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어떤 ‘재미’나 ‘동기(?)’가 없으면 어렵다. 재밌어야 한다는 강박을 유지하기 위한 기초 체력 같은 일상과의 단절이 반복된다. 그래서 또 한국처럼 계속해서 환경과 상황이 바뀌는 사계절이 즐거운 것 같다. 해외 활동이나 바운더리도 더 늘리고 싶다.

과거보다는 언제나 미래를 지향하는 스탠스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홀스에게 가장 큰 향수로 자리한 것들이 있다면 무엇인가?

– 2002년.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준비로 쇼핑간 대전 샤크존의 가짜 명품 디스플레이와 따가운 형광등의 미장센. 리니지(Lineage) 말하는 섬 허수아비에 허공을 가르는 칼질 소리, 오크 터지는 소리.

– 2007년. 홍대 클럽데이. 상기된 사람들과 착장들. 빅뱅의 데뷔. 회기역 낮은 천장의 파전 골목 가게들.

– 2012년. 캘리포니아 높은 야자수 나무 곧고 길게 뻗은 도로. [Channel Orange] 앨범 속 로즈 피아노 선율과 뒤엉킨 프랭크 오션의 팔세토. 수요일마다 갔던 LA 로우 엔드 띠어리(Low End Theory) 파티에서의 냄새와 대화들.

서울의 가장 큰 재미와 매력, 멋과 맛은 무엇인가?

내가 가장 잘하는 언어를 공유하는 비슷한 경험을 가진 친구들이 근처에 꽤 있다는 것. 서울은 빠르고, 똑똑하다. 변화를 수용하고, 반성한다. 앞으로는 변하지 않는 가치를 보여주는 싸움이 될 것 같다. 주름이 자리한 청파동 디깅에 흠뻑 빠져있다. 청파의 두리식당이라는 곳을 추천한다. 용산구 최고의 백반집이다.

서울에서 오랜 시간 댄스플로어를 경험한 플레이어이자 경험자로서 지난 서울 언더그라운드 클럽 신의 10년을 돌아보자면? 마침 서울 로컬 클럽 신의 새로운 장을 연 베뉴, 케이크샵도 10년을 맞았다.

2012~2014년 정도에 서울 신에 어떤 에너지가 있었다. 피카소, 비즐라, 슈퍼프릭, 영기획 등 재미있는 콘텐츠가 많이 시작되었다. 케이크샵도 그즈음 시작된 것으로 기억한다. 많은 것이 사라지거나 잘 변화, 정착하여 어느 사이 각자의 타임라인에서 사라졌다. 10년이란 시간 단위를 아직 많이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난 기간인 것 같다. 미스틱이 있었기에 클럽 링(Ring)의 건재함이 뒷받침되듯이, 지금 시점, 서울 컬처를 더 성숙할 수 있게 하는 영양제가 바로 ‘헤리티지’인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케이크샵의 10년, 비즐라의 9년, 헨즈, 모데시의 5년. 이렇게 가치를 버티고 지켜가는 친구들을 너무 응원한다. 이번 주 토요일 10월 15일에 케이크샵에서 내가 주최하는 토지(Tohji)와의 파티도 많이들 찾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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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권혁인, 서재덕
Art, Photographer │한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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