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m88

누군가가 나에게 9m88이 어떤 아티스트인지 질문한다면, 주저 없이 ‘경계 없는 아티스트’라 답할 것이다. 음악가로 팝의 범주 안에서 R&B, 네오 소울, 재즈, 힙합 등 다채로운 장르를 선보이는가 하면, 해외 각국의 뮤지션과 협업하고 다양한 언어의 가창을 시도하는 등 활동 권역을 넓히는 데에도 거침이 없다. 또한 연기, 패션, 팟캐스트 등 음악 외 영역에서도 그 탤런트를 맘껏 뽐내고 있다.

이토록 다재다능한 예술가 9m88을 푸르른 6월의 철원에서 만났다. ‘2024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을 통해 첫 내한 공연을 가진 그와 나눈 대화는 9m88의 팬에게도, 인디펜던트 창작자에게도 영감을 줄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첫 내한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소감이 궁금한데?

한국에 나를 좋아하는 팬들이 얼마나 있을지 몰라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무척 걱정했다. 게다가 노래 부르는 언어도 다르잖나. 그런데 관객들이 그 분위기 속에 녹아 들어가 함께 즐겨 주어 너무 좋았다.

슬로건을 제작한 팬도 있었고 바이닐이나 시디를 들고 있는 팬도 여럿 있더라. 그런 광경을 처음 봤을 때 어땠나?

일단은 무척 안심됐다. 하하. 어느 팬은 내가 등장하자마자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 오히려 내가 그 모습에 감동해 동요하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다.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관객들로부터 내가 오히려 긍정적 에너지를 받고 돌아온 것 같다.

사진제공 :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DMZ 페스티벌에서 착용한 의상이 눈에 띄었다.

공연에서 착용한 옷은 모두 ‘혜인 서(HYEIN SEO)’라는 브랜드에서 제작했다. 몇 년 전, 한국 친구를 통해 서혜인 디자이너와 그 브랜드를 소개받게 되었고, 작년 한국에 놀러 왔을 때, 실제로 만날 수 있었다. 처음 한국에서 공연하는 만큼, 꼭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무대에서 입고 싶었다.

수민과 협업한 “Sleepwalking”의 한국어 가창을 직접 무대에서 선보였다. 더욱이, 이번 앨범에서는 대만어로 처음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가창하는 데 있어 애로사항은 없었나?

정말 어려웠다. 단어도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어순들은 또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우선은 무작정 들리는 대로 외운 다음, 어떻게 더 자연스럽게 발음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모방했다.

당신의 유년 시절이 궁금하다. 분명 평범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만.

꽤 자유롭게 자랐다. 어릴 때부터 노래하고 공연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부모님이 내가 열정을 쏟는 일이라면 늘 지지해 주었다. 부모님은 예술이나 음악과는 관련이 없었지만, 나는 다양한 음악 장르를 탐험하면서 자랐지.

만도 팝(Mando Pop)을 들으며 자랐다는 인터뷰를 읽은 적 있다. 기억나는 음악들은 무엇이고, 그것이 또 지금의 음악 활동에 어떻게 자리 잡았을지 궁금한데.

만도 팝은 정말 많이 들었지. 채의림(Jolin Tsai)의 커리어에 큰 영감을 받았다. 그 덕분에 이 업계에 들어오고 싶었고. 주걸륜(Jay Chou)의 첫 번째 앨범 [JAY]는 여전히 유효한 앨범이다. 또 진기정(Cheer Chen)의 앨범 [Groupies]를 듣고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다. 흥미롭게도, 진기정은 내 최신작 수록곡인 “Sent”의 작곡가다!

아마추어 싱어로 활동하며 무대를 가리지 않으며 많은 공연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의 이야기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관객이 한 명도 없는 극장에서 공연했다거나, 설움을 겪었던 과거의 일화가 있나?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할 때 난 노래를 하고 공연하는 것에 강한 동기부여를 받았다. 여유가 있을 때마다 공연을 하거나 캠퍼스 노래 대회에 참가하곤 했지. 경연에서 1등을 한 적도 없고 공연장에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 경험들이 지금 커리어의 디딤돌이 되었던 것 같다. 팬과 관객을 소중하게 여기는데, 누군가가 나를 보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의 모든 일들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거든.

2014년 타이페이의 힙합 파티에서 9m88이란 예명이 처음 탄생한 걸로 안다. 예명이 탄생할 당시 9m88이 아닌, 후보에서 탈락한 이름들도 있었나?

다른 이름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친구들과 동창들은 나를 고등학교 때부터 ‘小芭 (Xiǎo bā)’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내 예명을 생각할 때도 그 별명이 떠올랐다. 예전 페이스북 이름이 ‘Joanne Baba’였고, 이는 만다린어로 9m88과 비슷하게 발음된다. 아마도 내 예명은 여기서 유래했을 거다.

당신은 패션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뉴욕의 ‘The New School Jazz and Contemporary Music’에서 본격적인 음악 공부를 했다. 그런데, [Beyond Mediocrity]라는 앨범명처럼, 팔색조를 닮은 당신의 작품에서 교육권의 음악을 발견하기 어렵다. 한없이 자유분방한 예술적 태도와 아카데미에서 배운 음악을 어떻게 잘 융화시킬 수 있었나.

이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하하. 경계가 없다고 볼 수도 있고, 스타일이 없다고 볼 수도 있겠지. 데뷔 앨범 [Beyond Mediocrity]는 순수하게 음악을 만드는 즐거움이 담긴 DIY 앨범에 더 가깝다. 나는 뮤지션일 때에도 리스너일 때도 하나의 장르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첫 앨범도 그렇게 만들기로 결심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부분도 있고 다듬어지지 않은 지점도 있지만, 콜라주 같은 느낌이 마음에 든다.

2019년 정규 1집 발매 이후 큰 공백없이 꾸준히 활동하며 또한 음악을 넘어 연기자로의 활동도 겸하고 있다. 당신의 놀라운 에너지를 닮고 싶기도 한데, 예술을 향한 당신의 그 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사실 일을 하면서 쉽게 불안해지고 긴장하는 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에너지를 아끼며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이건 공연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중요한 능력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드러내어 무언가를 전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알아야 하지. 난 이 과정에서 명상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陪妳過假日”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나누고자 한다. 레오 왕(Leo 王)과의 협업을 위해 그를 직접 브루클린에 초대했고, 뮤직비디오까지 촬영했다. 당시를 회상한다면?

첫 학기를 마친 후, 뜻이 맞는 뮤지션들과 작업하고 싶었다. 몇몇은 나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레오 왕은 그 초대에 응했지. 곡 작업부터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마침, 당시 레오 왕의 밴드가 뉴욕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기회가 생겼다. 스태프는 모두 내 친구들이었고. 아주 적은 예산으로 괜찮은 작업을 해냈다.

레오 왕과의 협업도 그러하고, 두 번째 풀렝스 앨범 [9m88 Radio]에서는 한국의 수민(SUMIN)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유능한 음악가들과 협업을 가졌다. 이러한 모습을 보았을 때, 어떠한 결정과 판단을 내리는 데에 그 속도가 빠르다고 느껴지는데. 단단한 자기확신의 태도를 지니기 위한 당신만의 비법이 있다면.

하하. 나는 자신감이 그리 크지 않다. 사실 나 자신을 가장 많이 의심하지. 많은 사람들이 나와의 협업을 거절했고, 이제는 상처받지 않는 데에 능하다. 음악가, 특히 인디 아티스트로서 능동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이끌어주는 A&R 담당자가 없는 상황에서, 항상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을 스스로 찾곤 한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정말 즐긴다. 내게서 자신감을 보셨다면, 아마도 그것은 여러 해 동안의 시행착오에서 기인한 것일 거다.

신보 [Sent]에 관한 소개를 부탁한다.

[Sent]는 이전 두 앨범과는 다르게 많은 아티스트들과 공동으로 작업하며 나를 위한 노래를 맞춤 제작해 줬다. 이제는 내 음악의 모든 부분을 직접 쓰고 통제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다른 시각을 받아들여 그들이 내게서 흥미롭게 여기는 것을 보고 싶었다. [Sent]에는 이별, 우정, 죽음, 사랑에 관한 8곡이 담겨 있고 또한 이 앨범은 이별 후 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디스코/훵크 스타일인 “Tisok Kú Bô Kínn”과 소프트한 재즈 팝 “What if?”를 필두로, 이번 앨범은 다채로운 악기 운용과 풍성한 편곡이 무엇보다 눈에 띈다. 음악 스타일과 사운드를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이 느껴지는데.

앞서 내 음악이 아카데믹한 재즈 음악학교의 분위기를 띠지 않는다고 언급했는데, 나 또한 그 부분에 관하여 가끔 반성한다. 어쩌면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지. 그래서 다양한 뮤지션들과 함께 재미있는 사운드를 지금도 찾고 있다. 음악 창작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내려놓는 것은 나에게 해방감을 가져다 준다. 예술가로서 ‘시그니처 스타일’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으니까. 음악에서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다. 10년 내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전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더욱 탄탄한 팬층을 갖고 싶다. 그 시점에서는 내 음악이 더 독창적으로 들리기를 바란다. 아마도 그때는 나만의 ‘스타일’을 찾았을지도.

9m88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황선웅
Interviewer │ 키치킴
Photographer │ 한예림
Videographer │ 신현성
Stylist │ 조해듬
Translator │ 신보연, 김유나, Emily Yun Ting K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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