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결과도 같은 것. 세상의 불확실성과 마주할 때마다 그 물결은 출렁이고 흔들린다. 진폭의 차이는 있을지 언정, 대부분의 인간이라면 불확실성 속에서 감정의 변화를 경험하리라.
뮤지션 신세하(Xin Seha)는 자신의 불안을 수용하여 음악으로 승화한다. 그의 세 번째 앨범 [CN X]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군 복무가 겹치며 느낀 무기력함과 외로움 등 복잡한 감정의 흐름이 앨범에 녹아 있지만, 결국은 흘러가고, 감정 또한 변하고 괜찮아진다는 것을 전하려는 듯, 이번 앨범에 담긴 음악 스타일은 담담하고 여유롭고 느긋하기 그지없다. 따라서 앨범 [CN X]와 이번 인터뷰에 담긴 신세하의 메시지는 청자들에게 위로, 어쩌면 그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앨범 [CN X]을 발매했다. 이는 당신의 지난 두 장의 정규 앨범, 그리고 EP, 싱글들과 어떤 차별점을 갖고 있는가?
덥과 힙합 등으로 표현되는 장르의 요소들을 분해하여 차분한 사운드스케이프에 잘 조합하려는 시도를 꾀했다. 그간 드럼 머신 및 샘플링 등으로 구성한 리듬들과는 다르게, 이번 앨범 수록곡의 반절 정도 드럼 레코딩을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더 진한 호흡과 그루브, 질감을 표현했다는 것 또한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
앨범명 [CN X]는 어떤 의미를 담은 제목인가?
미주신경 또는 제10뇌신경이라 불리는 단어를 뜻한다. 심장과 허파, 위장 관계에 대한 부교감 신경과 연결된 감각 섬유를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감정의 변화 속에서 맥박의 뜀을 느끼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메스꺼움을 토하고, 미움을 삼키고 하는 행위를 바라보는 것이 이 앨범에 주된 내용이다.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것이라 [CN X]라고 생각하여 앨범 제목이 되었다.
[CN X]의 앨범이 지닌 철학이 흥미로웠다. ‘이완과 회복을 목표로 지향한다’고 소개되었는데. 이러한 주제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음악을 통해 청자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길 바랐나?
전부터 있어왔을지도 모르는 무기력함이 내면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며 어느 순간 나를 괴롭히는 것을 인지했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며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을 오랜 시간 하였고, 이들은 자연스레 음악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당시에는 답답함을 이겨내보려는 행위 정도로만 여겼다만, 시간이 흘러, 다시 들여다보니, 차분하고, 또 때로는 기분 좋은 소리들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달았다. 시간과 고민들이 섞여 내게 건네는 위안같이 느껴졌고 이를 자연스레 앨범의 테마로 정하게 되었다.
분명 수많은 부정적 감정이 완전히 가시지 않겠지만, 이 앨범을 통해 잠시 쉬어가고, 또 다가올 미래를 의연히 맞이할 여유와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나도, 청자들도.
앨범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어떻게 발전하였나?
아이디어의 근간은 아마도 내 가족을 포함하여 나를 둘러싼 환경들이다. 직접적으로 구성하기 시작한 것은 팬데믹 기간인데, 군 복무와 시기가 겹치면서 단절로 인한 외로움이 더욱 커졌다. 그러나 오히려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지. 일기를 쓰듯, 상황과 감정을 풀어놓고, 하나씩 하나씩 요소들을 재구성하며 완성했다.
이번 앨범에도 모과(Mogwaa)와 협업점이 두드러진다. 그와의 작업은 어땠나?
작업을 하다 어딘지 모르게 눈에 띄고, 마음에 들지 않는, 내 음악적 결함을 종종 마주하게 되는데, 그럴 때 모과에게 자문을 구한다. 그는 내가 하려는 시도들에 관하여 힌트를 주곤 하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확장되기도, 또 얽힌 것들을 풀어, 덜어내며 앨범의 밸런스를 함께 맞춰 나갔다.
그와는 앨범 [1000]에서도 협업했다. 이번 앨범 [CN X]에서의 협업을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다르고 발전했나? 두 앨범 간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두 앨범에서 모과는 곡의 디테일과 악기 연주, 디렉팅 등의 역할을 수행해 주었다. 다만 스케치로부터 시작한 “Blank Music”, “999” 같은 곡은 앨범 [1000]에만 있다는 것이 두 앨범의 차이점이다. [CN X]에서 모과는 시작보다 끝을 마무리 지어주었다. 특히 “5”의 후반부 프로덕션, “Eyewitness” 전체적인 편곡을 포함하여, 후반부 프로덕션을 담당했다. 또한 음악 부분을 제외하고도 여러 고민들을 함께해 주기도 했지. 뒤에서 밀어주며 서포터 역할까지 확장하여 도움 주었다.
[1000]은 빠른 시간 내에 집중을 하여 전체적인 프로덕션을 완성시켰고, [CN X]는 느리고 차분하게, 욕심부리지 않고, 협업 과정에 속한 이들과 긴 호흡으로 완성시켰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 다양한 면에서 넓게 펼쳐지는 영역들의 매무새를 다듬는 과정에 모과를 포함, 크레딧의 모두가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필자는 트랙 “5”를 인상 깊게 들었다. 덥(Dub)과 레이드-백 그루브 등 청각적 요소를 통해 다채로운 색감을 더했다고 설명한 글도 “5”를 통해 크게 와닿았는데, 이러한 사운드 스타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느슨한 리듬 속에 있는 그루브들을 어렸을 때부터 들어오고 좋아했는데, 반면에 그러한 영역의 취향을 보여줄 기획이나 기회가 많이 없었다. 이번 앨범 작업에는 상대적으로 느린 BPM의 곡을 무의식적으로 쓰게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서, 전에 활용하지 못한 다양한 요소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특히 “5”에서 전면적으로 레게를 차용하여, 조금 더 쉬운 접근과 기분 좋은 그루브를 앨범의 정중앙에서 표현하고 싶었다. 이는 9m88의 유려한 멜로디와 목소리, 넓은 의미에서의 사랑 등의 주제와 합쳐져, 자칫 어둡게만 들릴 수 있는 앨범의 테마를 한층 더 부드럽게 만들 수 있었다.
세상이 점점 빠르게 돌아가고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시대, 앨범 [CN X]는 말마따나 ‘느리고, 차분한’ 사운드이기에 더욱 인상 깊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운드가 현재 사회에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보나?
빠른 변화 속에 우리는 쉽게 방향을 잃는 것 같다. 그 혼란스러움 속에 스스로를 잘 돌보려면, 느려져봐야 할 것 같고. 그래야 나도 모르게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니까. 휴식도 취하고 또 괜찮은 시도를 도모할 수도 있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지. 그 장면의 배경음악들은 용기를 북돋아 주고 좋은 경험으로 만들어 앞으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쉽게 지치지 않게 해주지 않을까.
이준호, 인우(INWOO), 9m88, 김아일(Qim Isle), 함(HAHM) 등 다양한 뮤지션들과 협업을 이루기도 하였다. 이들은 [CN X]에 각자 어떻게 기여했는지 설명한다면?
각자 다양한 위치에서 개성이 깃든 여러 표현들을 함께해 주었다.
베이시스트 이준호는 헛된 기교나 술수 없이 기본에 충실하여 낼 수 있는 리듬과 그루브를 연주해 주었다. 그의 연주는 곧 튼튼한 뼈대를 만들어, 앨범을 더욱 직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만들었다.
드러머 인우는, 앨범의 색에 맞는 자신의 악기들을 모조리 가져와, 다양한 소리들로 연주해 주었다.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여러 아이디어들과 함께 앨범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선사하였다.
9m88 역시 단순히 비어있는 벌스를 채우는 것이 아닌 직접 편곡에 대한 아이디어들과 함께 사랑스러운 가사와 목소리를 더해주었다. 특히 후렴의 한국어 가사 또한 나와 함께 가창하며 곡에 관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김아일은 비어있는 퍼즐을 완벽히 맞춰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차이 Wary” 같은 곡에서 고민을 토로하는 나의 가사를 이어받아, 희망을 넌지시 비치는 내용으로 채워주었고, “Chopped, I’m”에서는 내 가사를 다듬어 랩 구조적인 형태로 만드는 등 다방면에서 디렉팅하였다.
“Chopped, I’m” 곡의 데모를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함이 목소리와 가사를 붙여 보내왔다. 그 자리에 원래부터 있었던 것 마냥 드라마틱한 하모니를 간직한 채, 앨범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후 별다른 수정 없이 그것 그대로 세상에 나왔을 만큼 감동적인 선율을 만들어주었다.
신(scene), 국적, 장르 등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이룬 협업이었다. 이를 통해 느낀 바가 있다면?
참여한 모든 뮤지션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그들만의 것을 잘 만드는, 멋진 행보를 보이며, 어느 한 것만을 고수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다채로운 색을 발현하는 인물들이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정수는 그들의 시선으로 옮겨갔다 하여, 쉽사리 변하지 않았고, 그들 또한 소중한 마음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전해주었기에, 더욱 확장된 레이어들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러한 협업을 통해서 신, 국적, 장르는 단순하게 그들을 분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표현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당신은 과거 ‘8balltown’에서 활동했다. 이번 앨범은 독립 뮤지션의 음악 프로모션을 돕는 포크라노스(poclanos)와 함께하였는데, 독립 음악가로서 레이블의 역할을 어떻게 느끼는지가 궁금하다.
뮤지션 개개인의 가치를 레이블 차원의 카탈로그로 한데 묶으며 그에 마땅한 서포트를 지원하는 게 기본 구조라 생각한다. 서로의 역할과 이익이 상응했을 때 비로소 큰 힘을 발휘하지. 그렇기에 그 관계가 더욱 긴밀해야 하고 또 소중해야 한다. 다만 이번 앨범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를 풀어내는 작업으로는 관계의 책임이 내 개인에게 더 막중하다 느꼈기에, 독립적으로 풀어내었다.
시대의 흐름 덕에 개인이 직접 일을 할 수 있는 영역으로 확장되었고, 레이블의 역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과 뮤지션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디깅할 때 레이블의 카탈로그를 파고드는 재미도, 뮤지션의 디스코그래피를 살펴보다 한 레이블에 꽂히는 경험도 많았다. 그래서 들었던 생각은, 너무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는 것. 각각의 음악과 상황에 따른 단순한 형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어려움이나 창작의 고통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이에 관한 코멘트를 하자면? 특히 당신은 어느덧 세 번째 정규 앨범이며 싱글과 EP 발매도 활발했지 않나?
필연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무언가를 표현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처럼 느낀다. 창작의 고통보다는 어떠한 방법으로 그것을 만들어낼까 재미있는 고민들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이 행위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환경을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건강한 생활방식과 건강한 사람들과의 교류 등이 중요하다. 이것을 소중히 여긴다면 어느샌가 어려움은 줄고, 좋은 ‘표현하는 삶’을 영위하지 않을까?
건강한 생활방식과 건강한 사람들과의 교류라는 답변이 흥미롭다. 이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면?
여러 방법들이 있겠지만, 요즘에는 감사함을 가지려 한다. 그런 기운이 일상에 녹아들고, 타인과 교류에도 영향을 주고, 내일도 좋지 않을까 하는 느낌으로.
마지막으로 당신의 음악이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기억되길 바라나? 신세하라는 이름이 청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길 원하시는지?
당장에 소비되어 버려지는 것보다, 마음 한켠에 오래도록 두고, 언제든 꺼내어 들을 수 있는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 남게 되면 좋겠다.
Editor │ 황선웅
Photographer │ 한예림
Stylist │ 김세오
Hair, Make Up │손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