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17, 25. 엠플로(m-flo)가 이번 인터뷰에서 언급한 주요 숫자다. 1999년 첫 EP를 발매한 그룹은 25년이 지난 오늘날을 ‘네 번째 챕터’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17년 만에 방문한 한국에서의 공연을 통해 여전한 멋과 합을 보여줬다. 이는 ‘m-flo loves’ 시리즈를 함께한 멜로디(melody), 테일(TAIL), 에일(eill), 야마모토 료헤이(Ryohei Yamamoto), 식케이(Sik-k) 등 그룹과 함께 음악을 만든 아티스트와 꾸민 특별한 순간이기도 했다.
“어릴 땐 ‘관용’이 작기 마련이다. 나 또한 어릴 때 내가 좋아하는 것만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경험하다 보니 한 가지를 고집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시간과 경험이 쌓인 엠플로의 우주선은 이제 더 많은 친구, 더 많은 영감과 함께 새로운 공간으로 향한다.
무려 15년 만에 한국에서 공연을 진행했다. 기분이 어땠나?
T(TAKU, 이하 T): 15년 만의 공연이었는데도 사람들이 우리 노래를 활기차게 불러줘서 정말 좋았다. 마치 지난 십몇 년 간의 공백이 없던 것처럼 느껴졌다.
V(VERBAL, 이하 V): 엠플로는 음악과 사운드에 국경을 두지 않는 일본 로컬 아티스트다. 우리 레이블도 엠플로의 음악을 굳이 해외에다 홍보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해외 팬이 엠플로 음악을 듣게 되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한국 사람들이 어렸을 때 “miss you”를 즐겨 들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래서 일본 밖으로 나갈 때마다 들뜬 기분이 된다. 과거 첫 미국 공연 때 ‘혹시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약간의 불안이 있었는데, 모두 일본어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열광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감동적이었다. 이번 내한도 그랬다. 특히 멜로디, 료헤이 야마모토와 함께 “miss you”를 부를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과 일본은 가까우면서도 멀다. 지금 일본의 음악 신(Scene)은 어떤지 이야기해 줄 수 있나.
T: 사실 난 10년 전만 해도 제이팝이 다른 나라에 비해 완전히 고립돼 있다고 말하던 사람이다. 1990년대에는 일본이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음악에서도 그게 드러났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을 닫았던 때도 있었지. 요즘 일본 음악계는 다시 개방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의 여러 나라가 각종 문화권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나? 그간 아시아는 그 안에서 분리돼 있었는데 그 경계를 인터넷이 깼다. 아시아인도 다른 나라의 노래를 듣고 영향을 받는 게 예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V: 타쿠의 말에 덧붙이자면 일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음악 시장이었다. 매우 폐쇄적이어도 로컬에서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었다. 이러니 밖으로 나갈 필요성을 느꼈겠나? 우타다 히카루(Hikaru Utada)는 10달러짜리 씨디를 8백만 장 팔았는데 말이지. 반면 한국은 인구 때문에 실물 음반이 적게 팔렸지만, 그 대신 스트리밍을 일찍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일본은 시대에 뒤처진 거지.
T: 그와 동시에 재능 있는 한국 아티스트가 속속 등장했다.
V: 그렇지. 일본은 로컬에 집중하고, 때문에 로컬에서만 먹혔다면, 한국 아티스트는 미국을 일종의 탈출구로 보며 글로벌화를 진행했기 때문에 그 재능을 펼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변화가 시작된 거고. 이제 일본도 글로벌한 시각을 가져야 한단 걸 알고 있고,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더 많은 시너지가 발생하고 있다.
T: 그렇지. 씨디를 백만 장씩 팔던 시절의 일본 음악 신에는 팔기 위한 ‘공식’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공식 때문에 재능은 묻혔거든.
일본은 또 다양한 장르가 자라온 곳이기도 하다. 엠플로 스스로는 자신들을 어떤 카테고리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V: 힙합, 알앤비 그룹으로 시작했지만 빠르게 다양한 장르를 실험해 왔다. 그래서 어떤 카테고리에 속한다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다. ‘모든 장르를 다 다루는 힙합 마인드의 그룹’ 아닐까?
T: 100% 동의한다. 우리의 마인드셋은 힙합이다. 물론 우리가 어렸을 때와 지금의 힙합은 다르다. 그 지점이다. 힙합은 변화와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는 장이다. 바이닐 두 장만 사용하다 브레이크비트를 발견하고, 래퍼가 그 루틴에 랩을 했다고 생각해 보자. 그건 완전히 다르다. 새롭고 혁신적인 무언가다. 힙합은 혁신이고, 사고방식도 혁신이다. 엠플로의 음악도 그렇다. 그 사운드와 마인드셋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솔직히 엠플로가 힙합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예전엔 그런 피드백으로부터 상처를 받곤 했지만, 지금은 상관없다.
힙합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에 신곡 “HyperNova”에도 저지 클럽의 리듬을 차용한 걸까?
T: 저지클럽의 파이브 스텝 리듬은 “HyperNova”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곡에 썼었다. 무슨 곡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땐 그 리듬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한 건 아니었다. 그러다 스카이하이(SKY-HI)라는 래퍼와 작업할 때, 그가 저지클럽이라는 장르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 장르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역사와 개념을 알아봤다. 음악은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지만, 문화도 존중하고 싶으니까. 그렇다가 운 좋게도 저지클럽의 선구자 친구를 알게 됐고, 그를 통해 장르가 어떻게 작동하고, 접근 방식은 어떤지 배웠다. 그러고 나서 우타다 히카루의 리믹스를 저지 클럽으로 만들었다. 그제야 저지 클럽의 개념을 이해했다. 그때가 마침 “HyperNova”를 만들던 때다. “HyperNova”는 마야와 함께 두 곡을 만들었는데, 하나는 저먼 베이스였고, 하나는 저지클럽이었다. 다행히 버벌도 저지 클럽을 좋아했다.
“HyperNova”에 한국인 프로듀서 노이즈웨이브(NOIZEWAVE)가 참여했다. 어떻게 만났나?
T: 무카이 타이치(Taichi Mukai)라고 “tell me tell me”라는 곡을 함께 만든 친구가 있다. 내가 그를 위해 곡을 만들고 있을 때 노이즈웨이브가 톱 라인을 도와줬었다. 마침 나도 “HyperNova”를 만들면서 다른 세대의 다른 장르에서 영감을 받고 싶어 톱라인을 찾던 중이었다.
‘다른 세대의 다른 장르’?
T: 나와 버벌은 너무 다양한 일을 해왔기 때문에 협업이 꼭 필요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 21살이나 16살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음악을 느끼는 방식은 다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우린 젊은 세대가 어떻게 느끼는지, 어떤 느낌인지, 우리가 느끼기에 ‘올드하다’고 느끼는 게 그들이 들었을 땐 어떤지 등을 알고 싶었다. 실제로 젊은 세대가 우리가 늙었다고 생각하는 요소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글쎄, 우린 꽤 열린 마인드로 작업한다고 생각하는데 버벌은 어떻게 생각하나?
V: 왜, 어릴 땐 ‘관용’이 작잖아. 그릇 같은 거. 나 또한 어릴 때 힙합만이 멋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 ‘관용’이 굉장히 작았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사업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경험하다 보니, 꼭 한 가지 방식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 “HyperNova” 세션도 그랬다. 우리는 더 개방적으로 접근했다.
T: 공통점도 있지만 다른 부분도 있다. 난 버벌보다 다른 장르의 음악에 좀 더 개방적이었다. 그런 나조차도 스스로를 한계에 가두고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나니 젊은 세대의 음악을 들으면서 ‘아, 이런 영향을 받았구나, 이건 어디서 가져왔구나’ 같은 분석 따위를 하고 있더라. 그러다 깨달았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그냥 즐기면 안 되나?’.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이가 들며 젊은 친구들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고 그게 날 힘들게 했다. 그러다 그냥, 멋진 노래 만들면 인정하고 함께 재밌으면 전부란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마음가짐이 완전히 바뀌었고, 그제야 음악을 즐기게 됐다.
비슷한 세대를 향한 조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T: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가진 걸 지키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젊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 영감을 받고, 그들에게 멋있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
V: 나 역시 몇 년간 작사를 하지 않아서 모터가 죽은 것 같았다. 그때 젊은 친구들이 해준 이야기들이 영감을 얻는 데 정말 도움이 됐다.
버벌은 이번 노래에서 ‘풋사랑’을 노래했다고 하던데.
V: 그동안 사랑 노래를 많이 써왔으니까 똑같은 말이나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어려웠다. 여러 노력 끝에 결국 그냥 좋게 들리는 게 전부라는 결정을 내렸다. 또, 엠플로는 항상 미래와 우주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전통을 품는다. 그래서 마야의 가사가 잘 맞아떨어졌다.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우리를 막는 사람들 없이 초신성 위에 있는 하이퍼노바로 가자’가 이번 곡의 주제다. 사랑이라는 테마로 포장돼 있지만, 동시에 계속 전진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을 담고 있다.
“HyperNova”의 비주얼 아트에서 일본 전통 ‘다도’를 다뤘다. 미래를 다루는 엠플로가 전통에 집중한 게 흥미로웠는데.
V: 일본의 ‘다도실’은 변치 않음을 상징한다. 몇 세기 전 사무라이들이 들어가서 진실이나 창의적인 이야기를 하는 곳이란 점에서 다도실은 ‘창의성’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다도실의 문은 너무 작아 칼을 가져올 수도 없었다. 평화의 장소인 셈이다. 동시에 이곳은 화려한 색채와 함께 어디든 옮길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졌다. 매우 미래지향적이다. 평화와 고요함, 이해에 도달하는 매개체란 점에서 음악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다도실은 매우 전통적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미래지향적이다.
그 말처럼 우주와 미래를 항상 바라보던 엠플로다. 그런 그룹에도 터닝 포인트가 있었을까?
V: 커리어 전반에 걸쳐 몇 가지 순간이 있다. 첫 번째 챕터는 리사(LISA)와 함께 데뷔했을 때, 두 번째는 리사가 솔로 활동을 위해 떠났을 때, 세 번째 챕터는 리사가 다시 돌아왔을 때다. 그러다 코로나19 때문에 다시 쉬게 됐다. 지금이 네 번째 챕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음악을 만드는 방법이나 라이브 쇼 측면 등 전체 시스템에 접근하는 방법을 개편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힙합 마인드로 돌아가 룰을 깨고 오히려 그 룰을 만들려고 한다. 그게 지금의 우리다.
오랜 활동과 경험이 비주얼 아트를 다루는 데에는 어떤 도움이 되고, 이번에 어떻게 적용됐나?
V: 어렸을 땐 하고 싶은 콘셉트가 확고했다. 하지만 지금은 경험과 커리어가 쌓이며 선택의 폭이 너무 넓어져 오히려 범위를 좁히려고 한다. 다도실도 그렇다. 대화가 시작되는 곳이자 동시에 엠플로의 우주선이기도 하다. 엠플로의 테마는 항상 우주다. 그래서 미래주의와 일본의 전통 개념 사이의 교차점으로 다도실을 선택했다. 그리고 우리가 탐구하는 지점도 항상 여기에 있다.
지난 25년간 많은 인터뷰를 해왔을 텐데, 그중 가장 듣기 싫은 질문은 무엇인가?
V: 상대방의 게으름이 느껴질 때가 싫다. 옛날 일본 매체들이 그랬던 것 같다. 하하. 관심도 없는데 ‘이 앨범은 어떤 의미인지’ 등을 물을 때 말이지. 그래서 상대가 특정 가사나 좋아하는 곡에 대해 물을 때가 기분 좋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으니까.
T: “m-flo는 무슨 의미인가?” 하하. 위키피디아만 가도 정답이 나와 있다.
Editor │ 오욱석, 심은보
Photographer │ 강동우
Special Thanks │ 김포그니, 신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