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에 발매된 알샤인(Alshain)의 첫 정규 앨범 [Natural Hi-Fi]는 고유한 색을 띠면서도 향기의 깊이를 잃지 않은 보기 드문 ‘데뷔’ 앨범이었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시모 앤 무드슐라의 [Simo & Moodschula]에서 처음 모습을 비추고 섬데프의 트랙에서 노래를 불렀을 때, 알샤인은 ‘독특한’ 보컬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Natural Hi-Fi]를 통해 그는 하나의 프로덕션을 운용하는 지휘자로서 감춰져있던 진가를 드러냈다.
만나서 반갑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본명은 한지원이고 휴먼 네이처(Human Nature) 소속 싱어/프로듀서다. 알샤인(Alshai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알샤인’의 의미는?
별의 이름이다. 어원은 아랍어고 영어로는 ‘River Drum’라고 불리는데, 이것도 마음에 들어서 ‘Alshain’, ‘River Drum’ 모두 예명으로 쓰고 있다.
예전부터 몇 번의 피처링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정규 앨범을 내기 전까지 활동을 간략히 설명해 달라.
처음 내 이름이 공개된 건 시모 앤 무드슐라(Simo & Moodschula)의 정규 앨범이었다. 작년에는 시모와 함께 다이나믹 듀오 7집 수록곡 “Airplane Mode”에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섬데프(Somdef)의 앨범에는 보컬 피쳐링으로 참여하였다 아, 이전에 섬데프와는 ‘Sticky move’라는 팀을 만든 적도 있다. 당시 앨범 발매 직전까지 갔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엎어졌다. 그래도 계속 교류하고 있으니까 언젠가는 다시 팀으로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 앨범이 무산되고 나서부터 가요나 영상 음악, 무용 음악을 만들며 개인 앨범 작업을 했다.
Alshain이 작곡한 ‘Black Toe’ 영상 음악
알샤인이 추구하는 음악 장르가 있다면.
아무래도 알앤비(R&B)다. 어렸을 때부터 알앤비를 좋아했다. 또한 프로듀싱을 하면서 제이딜라(J Dilla)를 비롯해 네오 소울(Neo Soul), LA를 중심으로 한 비트 씬 등 다양한 음악과 아티스트에게서 영향받았고, 그것을 내 음악과 접목하고 있다.
같은 알엔비를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국내에서만큼은 알샤인과 같은 스타일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대중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5월에 데뷔 앨범 [Natural Hi-Fi]를 발표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든 앨범인가.
알샤인 그 자체를 드러내는 앨범이다. 내 생각, 내가 가진 바이브를 앨범에 담았다. ‘알샤인’이라는 세계에 들어와 탐험한 뒤, 출구로 다시 빠져나오는 과정을 담은 음악이다.
작업 기간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한 걸로 알고 있는데.
누구나 그렇겠지만, 뮤지션들은 자기 앨범을 만들기 위해 음악을 만든다. 따라서 내가 음악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계속 내 앨범을 위해 작업했다고 말할 수 있다. 앨범에서 제일 오래된 트랙이 “Landing”인데 그건 2,3년 전에 만든 거다. 하나의 콘셉트를 만들고 트랙을 추린 다음 본격적으로 앨범 준비 과정에 들어갔을 때가 작년 9월, 라씨 에이코(Roci Eycko)와 현재 휴먼 네이처 스튜디오로 넘어와서부터다.
가장 어렵게 나온 곡과 쉽게 써진 곡을 하나씩 말해 달라.
“Good Girls”가 힘들었다. 사실 이번 앨범은 창법이나 스타일 자체가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들과는 좀 다르다. 앨범의 콘셉트 때문에 그렇게 된 건데 유독 이 곡이 힘들었다. 가장 빨리 만든 곡은 “Lights.” 슬쩍 슬쩍 건드리다가 바로 완성된 트랙이다.
앨범 명 ‘Natural Hi-Fi’는 무슨 뜻인가? ‘Natural’과 ‘Hi-Fi’는 상반된 개념이지 않나.
맞다. 그래서 일부러 그렇게 지은 거다. 의미는 두 가지다. 나를 경험하면 자연스럽게 ‘High’ 상태를 느낄 수 있다는 것. 또 하나는 하이파이한 소리로 자연을 표현했다는 것.
앨범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공 들인 부분이 있다면?
모든 트랙이 하나의 덩어리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따라서 1번 트랙부터 죽 들어야 [Natural Hi-Fi]를 온전히 만끽했다고 할 수 있다.
부담스러운 앨범보다는 간간히 싱글을 내는 게 또 하나의 흐름 아닌가.
그래도 완성된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
장르적으로 근래의 피비알엔비(PBRNB)를 의식하고 만든 앨범인가?
트렌디한 사운드를 많이 차용했다. 사실 피비알엔비라는 용어도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하하. 요즘 알앤비의 추세를 어느 정도 따랐다. “Landing”이나 ”Lights” 같이 어쿠스틱한 트랙도 넣어서 조화를 이루고 싶었고, 전체적으로는 앰비언트(Ambient) 사운드로 자연을 표현하고 싶었다.
앨범 [Natural Hi-Fi]는 시작부터 끝까지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 이번 앨범은 나의 내면으로 들어오는 과정, 내면으로의 착륙(Landing), 내면을 탐험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Landing”은 내 세계로 착륙한 걸 의미한다. 그래서 고요하다. 바로 전 트랙이 “Reception”인데 ‘알샤인’의 세계로 들어오는 그 순간을 표현한 곡이다. 대기권을 통과할 때 압력이 굉장히 크지 않나? 그래서 트랙을 좀 격하게 만들었다.
“Sun”을 타이틀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Sun”에서부터 본질을 탐험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에 도착하고 나서 오아시스를 찾고 숲을 발견하고 빛이 보이는 그런 상상을 하면서 만든 곡이다.
8번 트랙 “Interview”는 자신의 내면을 인터뷰한다는 뜻인가.
맞다. 내 인터뷰라고 보면 된다.
“Sub Voice”는 같은 휴먼 네이처 소속 래퍼, 라씨 에이코와 호흡을 맞춘 트랙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었나.
라씨 파트에서 비트가 바뀌는데 원래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그런데 랩을 받고 나니 곡에 변화를 줘서 랩 파트를 부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tart in You”에서도 진보가 돋보이는 것 같다. 그래도 자신의 앨범인데 욕심이 나지 않나?
그것조차도 내 음악이니까. 내가 이 앨범을 프로듀싱했기에 아쉬울 건 없다. 나는 프로듀서로서 모든 파트, 악기의 비중을 정해야 한다. 그렇게 들었다면 내 의도대로 된 거다.
내레이션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진보 파트를 재미있게 들었다. 어렸을 적 알앤비의 감수성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건 진보(Jinbo)의 아이디어다. “Start in You”는 조데시(Jodeci)와 같은 90년대 알앤비를 생각하면서 만든 곡인데 진보가 듣더니 바로 캐치하더라. 둘 다 보컬이니까 뻔히 보이는 1,2절 말고 조금 더 재밌는 요소를 넣자고 해서 지금과 같은 진보 파트가 나왔다. 물론 나도 만족했고.
알샤인은 분명 특색 있는 보컬이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전체적인 작/편곡, 프로듀서의 역량이 더욱 돋보였다.
나에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했다. 보컬 역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요소 정도로 사용되었다. 전체적으로 공간도 크게 잡고 몽환적인 느낌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리버브(Reverb)에 신경을 많이 썼다. 각 악기 마다 리버브 값을 다르게 줘서 공간을 넓혀 더 큰 세계관을 표현하고 싶었다.
음악, 가사 모두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맞다. 이번 앨범은 내면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서 비현실적인 사운드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 앨범에 쓴 가사는 만족하는가?
[Natural Hi-Fi]에는 대부분 자조적인 가사들이 담겨 있다.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들도 있어서 리스너들에게 친절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피처링이 많진 않지만 단단하다. 어떻게 섭외했나.
처음부터 누구를 섭외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트랙리스트를 뽑고 듣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함께 하고픈 사람들이 떠올랐다. 누구나 못하는 사람과는 같이 하기 싫지 않나? 나보다 뛰어나거나 내가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는 사람과 작업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내가 컨택할 수 있는 선에서 골랐다. 라씨는 일단 문만 열면 되니까. 하하.
앨범을 만들면서 누락된 곡은 없나. 아깝게 후보로 밀렸다든지, 이번 콘셉트와 안 맞아서 나중에 공개할 계획이라든지.
물론 트랙을 추리는 과정에서 빠진 곡들은 있지만 무리해서 공개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는 않았다. 뭐 나중에 다른 아티스트에게 줄 수도 있고.
[Natural Hi-Fi]의 적절한 감상 방법을 알려 달라.
일상과 함께 흘러가듯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면서, 책을 읽으면서, 또는 운전하면서 음악을 듣는다. 그러나 모두 음악이 주가 되진 않는다. 욕심이지만, 순수하게 음악을 위해 사용하는 그 시간에 내 앨범을 들어줬으면 한다.
시대적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음악 감상’을 권하고 싶다.
얼마 전, 앨범의 수록곡 “Landing”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Natural Hi-Fi’라는 콘셉트와 딱 맞아 떨어지는 듯했다.
그 영상은 “Landing”의 뮤직비디오이자 휴먼 네이처(Human Nature)라는 우리 레이블의 오피셜 비디오다. “Landing”은 새로운 세상으로 착륙을 하는 순간을 표현한 트랙이다. 또 다른 세계에 들어오면서 느끼는 많은 것들, 이를테면 자연, 인간, 그 외의 것들이 잘 표현된 것 같아서 흡족하다. 영상 팀 MHV가 멋지게 만들어줬다.
음악을 업으로 삼은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말수도 적고 혼자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나만의 공간을 만든다고 해야 하나. 사람들이 집을 꾸미고 여러 가지 가구도 사서 배치하는 것처럼 나도 음악으로 내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 내가 가진 생각을 음악으로 보여줄 때 가장 행복하다.
어떤 아티스트에게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나.
디안젤로(D’Angelo)를 가장 좋아한다. 가사, 음악의 방향성 등 많은 부분에서 그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전체적으로 디안젤로의 음악과는 좀 다르다.
한국 알앤비 음악 신(Scene)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목하고 있는 뮤지션이 있나?
비비드(VV:D) 크루. 최근에 앨범을 발표한 크러쉬, 그레이를 비롯해 뭐, 다 잘하는 것 같다.
장르를 깊이 생각하는 편인가?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중심에 무엇이 있냐가 중요한 거지.
보컬의 힘이 떨어진다는 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 역시 그런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나는 노래할 때마다 “노래를 기막히게 해야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곡의 바이브나 성격에 맞는 보컬로 들려지면 만족한다. 이번 앨범에는 그 스타일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영감의 원천이라면.
여자친구와 있을 때 영감을 가장 많이 받는다.
만약 여자친구와 헤어진다면?
여자친구가 없는 대로 음악이 나오겠지?
인스트루멘탈 앨범을 만들어도 멋질 것 같다.
물론, 인스트루멘탈 앨범을 만들 계획이 있다. 잘할 자신도 있고.
[Natural Hi-Fi]의 인스트루멘탈을 따로 공개할 생각은 없나.
뭐 보내달라면 그냥 보내줄 수 있는데? 하하.
교류하는 아티스트, 크루는 없나?
확정된 건은 없어서 조심스럽다. 많은 사람들과 얘기해봤다.
최근에 재밌게 들었던 음악이 있다면.
어거스트 알시나(August Alsina). 예전부터 좋아했는데 요새는 굉장히 잘나가더라. 앨범 판매량도 상위권이고. 비욘세(Beyonce)의 최근 앨범 [BEYONCE]도 재미있게 들었다. 개별적인 곡과 전체적인 앨범의 완성도 모두 훌륭하다. 또한 수록곡을 전부 영상으로 공개한 건 정말 인상적인 프로모션이었다.
그럼 이제 당신의 레이블, 휴먼 네이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름은 누가 지었나?
원래는 DJ 섬원(Someone)이 코미디 영화 ‘파인애플 익스프레스(Pineapple Express)’를 레이블 이름으로 쓰자고 했다. 이름이 재밌어서 그걸로 정했는데, 아무래도 어딘가 아쉬웠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마이클 잭슨의 곡, “Human Nature”로 바꿨다. 소속 뮤지션들의 색깔과도 잘 맞는 이름 같고,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게 결국 휴먼 네이처의 목표니까.
멤버는 알샤인, 섬원, 라씨 에이코까지 셋인가.
섬데프와 DJ 소말(Somal)까지 다섯이다. 그러나 휴먼 네이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명확히 구분 짓지는 않았다. 와데레이크(Wadelake)처럼 어리고 실력 있는 친구들도 함께 작업하고 있다.
Wadelake의 휴먼 네이처 아트워크
각자 어떤 포지션을 맡고 있나.
굳이 나누지는 않았다. 그래도 섬원이 매니지먼트에 더 신경쓰고, 이래저래 많이 돌아다니면서 일거리를 가져오는 편이다.
어떤 일거리를 말하는가?
패션 브랜드, 영상 음악 등 다양한 콘셉트의 음악을 만든다.
그러면 [Natural Hi-Fi]가 휴먼 네이처 레이블의 첫 결과물이라고 봐도 되나?
맞다. 광고 음악은 사실상 휴먼 네이처의 오피셜은 아니니까. 그리고 곧 라씨 에이코의 앨범이 나오니 기대해 달라! 컴필레이션 앨범도 기획 중이다.
휴먼 네이처는 언더그라운드를 지향하나? 어떤 청사진을 그리는 지도 궁금하다.
굳이 우리가 서브컬처를 대표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우린 팝아트가 될 수도 있고, 하고 싶은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다. 살아서 그림 한 장도 못 팔았는데, 죽고 난 다음 유명해지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대중과의 타협점을 찾을 것인가?
대중에게 입증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시작 단계이기에 편견이나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이를테면 비트 뮤직이라든지, 이태원 씬, 홍대 씬, 언더그라운드 프로듀서 등 여러 가지 카테고리에 휴먼 네이처를 포함시킬 수도 있을 테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기류를 만들 생각이다.
휴먼 네이처는 영상에도 굉장히 신경쓰는 것 같다.
현재 “Landing”의 영상이 나왔다.그 다음은 “Start in You”가 나오고 그 이후에도 계속 만들 계획이다. 음악을 그냥 듣는 것보다 영상과 함께 받아들일 때 몰입감이 더 강하지 않나?
앨범 채로 영상을 만드는 건 어떤가.
그러고 싶었지만 언제나 문제는 인력과 돈이다. 하하.
휴먼 네이처 로고는 누가 만들었나.
디자이너 장기영. 그에게 우리 음악을 들려드렸더니 여러 가지 로고를 보여줬다. 그중에 고른 것이 지금의 우리 로고다. 인디언 체로키족을 표현한 거다.
올해 계획을 간단하게 말해 달라.
일단 다음 주 데드앤드 파티에 게스트로 참여한다. 그리고 조만간 쇼케이스를 열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한다.
현재 구상하는 프로젝트도 많고, 다른 아티스트와 협업도 많이 진행할 계획이다. 이태원, 홍대 가리지 않고 바쁘게 활동할 생각이니 지켜봐달라.
진행 ㅣ 최장민 권혁인 박지훈
텍스트/편집 ㅣ 권혁인 최장민
사진 l 오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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