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게임에 등장한 Drum & Bass 사운드트랙들

드럼앤베이스(Drum & Bass, 이하 D&B)에 관한 썰로, 영국인들에게 D&B는 추억의 음악 장르라는 썰이 있다. 장르의 전성시대가 Y2k와 함께했으니까, 우리가 이정현, 클론, 터보 등의 Y2k 가수의 음악을 들을 때 추억에 빠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그런데 사실 영국인뿐만이 아니라 필자를 비롯하여 지역 막론, 90년대생이라면 누구나 D&B에 추억과 향수를 지녔을 수도 있다. 우리 역시 어릴 적부터 D&B 음악을 익숙하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는 90년대 영국의 파티 문화를 몸소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과거 우리가 즐기던 게임 중 다수가 D&B 장르의 음악을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했었다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엘리니아’ 사운드트랙 “Missing You”를 다시 떠올려보라.

댄스플로어 친화적 장르 D&B는 “메이플스토리”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게임들의 필드 위에서도 유효했다. 특히나 손에 땀을 쥐는 전투 혹은 경주, SF 분위기를 연출하는데에도 능했던 음악 장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어린 시절 우연히 들었던 D&B 음악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D&B 사운드트랙이 수록된 게임을 몇 가지 꼽아 정리해 보았다. 단, 기성곡을 사용한 게임의 경우는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한 것을 이유로 목록에서 제외했다. 또 리듬 게임 역시 이번 기획에서 논외다. 리듬 게임은 필연적으로 댄스 음악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소개하기가 꺼려졌달까. 여하튼 정리된 D&B 음악들을 찬찬히 살피며 잠시 추억에 잠겨보자.


시계 방향으로 SEGA Saturn, Nintendo 64, Playstation

D&B의 전성시대와 5세대 게임기의 등장

게임 사운드트랙에 D&B가 흡수되던 시기는 1995년 이후다. 당시 D&B는 새로운 주류 음악으로 부상하며 영국을 넘어 전 세계 각지로 퍼지던 때, 한편으로는 재즈와 앰비언트 등의 장르를 흡수하며 다양한 실험을 통해 갈래를 뻗어가던 시기다.

동시대 게임 시장 역시 큰 변화를 맞이했다. 1994년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이 출시되며, 이를 필두로 폴리곤 3D 그래픽 기술을 내세운 5세대 게임기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64(Nintendo 64, 이하 N64)’, ‘세가 새턴(SEGA Saturn)’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삼파전, 이른바 ‘5세대 게임기 전쟁’이 막 시작되려던 시기이다.

5세대 게임기는 사운드적으로도 혁신을 일으켰다. 지금에야 게임 음악을 제작하는데 큰 제약이 없지만, 5세대 게임기 탄생 이전에는 게임 카트리지 롬(ROM)의 적은 용량이 제약이었다. 그 한계는 작곡과 프로그래밍의 긴밀한 합작이 이뤄져야 뛰어넘는 것이 가능했다. ‘슈퍼 패미컴(Super Famicom)’이 ’64KB’라는 제한된 오디오 램 용량을 활용하기 위해 파형을 조절하거나, ‘세가(SEGA)’의 ‘메가 드라이브(MEGA Drive)’가 FM(Frequency Modulation) 주파수 합성 방식을 통해 음악을 제작했던 것을 떠올려 보라.

반면에 5세대 게임기는 거의 모든 사운드를 제약 없이 구현할 수 있었다. 이유는 5세대 게임기가 CD-ROM을 채택하여 사용했기 때문이다. CD는 600MB의 대용량, 샘플레이트 44.1kHz/16bit의 고품질 음원을 구현할 수 있어 게임 음악가들의 우려가 크게 줄어들기 시작한 시대도 이때부터였다.

1. Super Mario 64(1996)

‘닌텐도’는 ‘슈퍼 패미컴’의 후속으로 ‘N64’라는 새로운 5세대 콘솔 게임기를 1996년에 출시했다. 동시에 그들의 간판인 ‘슈퍼마리오’의 새로운 시리즈를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3D 그래픽으로 함께 공개하였다. 바로 “슈퍼마리오 64″다. 그리고 D&B 사운드트랙은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확인할 수 있었다. “It’s me Mario”라는 대사 이후, 마리오의 얼굴과 함께 등장하는 ‘타이틀 스크린’에서 등장한 삽입곡이 바로 D&B 장르의 곡이다.

앞서 5세대 게임기가 사운드의 제약을 모두 해결했다고 말했지만, 닌텐도는 이때도 자유롭지 못했다. ‘N64’는 그때 역시 롬 카트리지로 게임을 구동하였기 때문이다. 경쟁 콘솔 게임기보다 떨어지는 샘플레이트와 제한된 용량, 채널의 수는 작곡가들을 여전히 귀찮고 번거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베테랑 콘도 코지(Koji Kondo)에게는 ‘N64’ 정도의 제약 따위 과거(패미컴, 슈퍼패미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를 증명하듯 D&B로 편곡된 마리오 테마를 게임에 삽입했다.

콘도 코지는 ‘N64’ 마리오 시리즈 음향의 목표를 두고 ‘리드미컬하고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로 설정하였음을 여러 인터뷰를 통해 피력한 바 있다. 그리고 타이틀 스크린 테마 곡은 마리오를 대표하는 멜로디 골조에 D&B의 속도감 있는 리듬을 차용한다. 설정된 목표에 정확히 부합되는 음악인 것.

여담이지만 해당 멜로디는 당시 간만에 등장한 멜로디였다. 지금에야 ‘마리오’를 상징하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멜로디로 기억되지만, 당시에는 1988년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2” 이후 무려 8년 만에 등장한 멜로디였던 것이다.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닐 터인데,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타이틀 스크린 페이지를 무심코 빠르게 넘겼을 테니, 한편으로는 비운의 사운드트랙이기도 하다.


2. Saturn Bomberman(1996)

‘허드슨 소프트(Hudson Soft)’ 개발의 게임 시리즈 “봄버맨”은 어릴 적에 오락실, 혹은 게임 애뮬레이터(Emulator)를 접해본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게임이다. 애니메이션 “구슬동자”가 먼저 떠올랐다고? 그것도 타당한 이야기다. “구슬동자”가 게임 “봄버맨”을 기반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니까.

“봄버맨” 시리즈의 사운드트랙을 쫓다 보면 D&B 리듬 역시 손쉽게 만나볼 수 있는데, 그 시작은 1996년 출시된 게임 “새턴 봄버맨”에서부터다. 타이틀 그대로 ‘세가’의 5세대 게임기 ‘세가 새턴’ 전용 타이틀로 사운드트랙은 “봄버맨” 시리즈의 음악을 제작해온 작곡가 치쿠마 준(Jun Chikuma)이 담당했다.

게임 음악, 특히나 댄스 음악과 궤를 함께하는 게임 음악을 찾아 들어본 이들에게 치쿠마 준이라는 이름은 아주 익숙하리라. 그는 D&B와 애시드 하우스 등 다양한 댄스 음악을 토대로 게임 사운드트랙을 제작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러한 이력에 최근에는 레이블 ‘Ship to Shore Phonoco.’와 ‘스타 크리쳐(Star Creature)’ 등의 해외 레이블이 주목하여 재조명받는 중인 게임 음악가다. 치쿠마표 D&B 사운드트랙으로는 “봄버맨 히어로”의 삽입곡이 정평 나 있다.


3. Street Fighter III(1997)

“슈퍼마리오 64”, “새턴 봄버맨”이 가정용 콘솔 게임기에서 구동 가능한 게임 타이틀이라면 “스트리트 파이터 III”은 오직 오락실에서만 즐길 수 있었다. “스트리트 파이터 III”가 1999년 ‘세가’의 ‘드림캐스트(Dreamcast)’에 이식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III”가 아케이드용 게임이었다는 사실은 오락실에 역시 D&B 음악이 울려 퍼진 적이 있음을 의미한다.

“스트리트 파이터 III”의 개발사 ‘캡콤(CAPCOM)’이 자랑하던 아케이드 게임 시스템 ‘CAPCOM PLAY SYSTEM(CPS)’. CD-ROM과 큐 사운드(Q Sound)를 탑재하는 등 일찍부터 오락실용 게임기에 자연스럽고 풍부한 음향 효과를 연출할 수 있었던 캡콤이었으나, D&B가 본격적으로 삽입된 때는 “스트리트 파이터 III”가 제작되던 시기부터.

특히 “스트리트 파이터 III” 시리즈의 마지막인 “3rd Strike”는 D&B에 더욱 본격적이다. “3rd Strike”는 오쿠가와 히데키(Hideki Okugawa)를 필두로 캡콤 사운드 팀(Capcom Sound Team) 전체가 사운드트랙 제작에 관여했다. 게임의 부제인 ‘Fight for the future’를 음악으로 구현하려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하며, 또한 캐나다 래퍼 인피니트(Infinite)까지 참여시키며 완성도에 집중하였다. 스테이지 중 다수가 D&B 곡으로 심지어 보너스 스테이지에서도 D&B를 만나볼 수 있다.

Bonus Stage #1 Destroy The Car

4. 1080° Snowboarding(1998)

‘N64’용 게임으로 출시된 “1080° Snowboarding”. 나가노 동계 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인 1998년에 발매, “F-Zero”, “마리오 카트”, “웨이브 레이서 64” 등으로 레이싱 게임의 가능성을 맛본 ‘닌텐도’가 야심차게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스노우보드 게임이다. 보드를 타고 눈비탈길 코스를 통과하는 질주감, 화려한 묘기를 부드럽게 선보이는 쾌감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고, 또한 사운드트랙으로 역시 많은 팬을 거느린 게임이다.

1996년 닌텐도 입사 후 “마리오 카트 64” 사운드트랙으로 강렬히 데뷔한 나가타 켄타(Kenta Nagata)가 “1080° Snowboarding”의 총괄 사운드 디렉터로 음향을 담당했다. D&B 곡을 비롯하여 하드코어 펑크 장르의 사운드트랙을 포함하는 등 이듬해 발매된 스케이트보딩 게임 “Tony Hawk’s Pro Skater”, 혹은 “MTV: Snowboarding”과 수록곡 스타일이 상당히 흡사하다. 단 이들은 기성곡들로 꾸려진 반면 “1080° Snowboarding”는 나가타 켄타와 그의 사운드 팀의 오리지널인 점이 차이.

그러한 음악 스타일에 게임 음악 팬들 사이에서는 동시대 ‘닌텐도’ 타이틀 게임 중 가장 스타일리쉬하며 세련된 사운드트랙이 대거로 포진된 게임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례적인 리듬감과 세련된 악곡은 기성곡들에 전혀 뒤쳐지지 않으니. 이는 화목한 가족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무아지경의 댄스플로어에도 적절하다.


5. Ridge Racer Type 4(1998)

누구보다 빠르게 질주하여 결승선을 먼저 밟아야 승리하는 레이싱 게임. 빠른 속도와 플레이어의 높은 텐션이 중요한 특징인 덕분에 유독 레이싱 장르의 게임에서 빠른 BPM의 D&B 음악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명맥을 잇는 중인 카 레이싱 장르의 게임들, 이를테면 “니드포스피드” “그란투리스모”, “포르자” 등에서 역시 D&B 사운드트랙이 흔하다. 그중에서도 “포르자”는 영국의 D&B 명가 ‘호스피탈 레코드(Hospital Records)’가 사운드트랙 제휴사로 입점하여 게임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할 정도다.

이렇듯 카 레이싱 게임은 유독 D&B와 접점이 많은 편. ‘남코(namco)’의 레이싱 게임 시리즈 “릿지 레이서”도 예외가 아니다. 비록 지금은 개발되지 않지만, 레이싱 D&B 사운드트랙으로는 최고의 명곡들을 남긴 시리즈. 작곡가 호소에 신지(Shinji Hosoe)를 주축으로 제작된 “릿지 레이서” 시리즈의 사운드트랙은 1995년 “릿지 레이서 레볼루션”에서부터 D&B 골자의 음악이 본격적으로 삽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필자가 소개하려는 것은 “릿지 레이서 타입 4(이하 R4)”의 수록곡들이다.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며 또한 대격변이 일었던 시리즈로 남코가 야심 차게 준비하여 출시한 타이틀인 만큼 사운드트랙 역시 큰 변화가 일었다. 사운드트랙 디렉터가 오오쿠보 히로시(Hiroshi Okubo)로 변경된 것이 음악 스타일 변화의 주요한 원인이다.

세 번째 시리즈까지는 호소에 신지를 필두로 그의 친구들이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던 반면에 “R4″는 오오쿠보 히로시를 주축으로 사카이 아스카(Asuka Sakai) 등이 사운드트랙 제작에 참여하였다. 사운드 디렉터가 바뀌며 하드코어 스타일의 비트 비중 역시 자연스레 적어졌으며, 오히려 훵키한 애시드 재즈와 차분하고 청아한 리퀴드(Liquid) 스타일의 D&B 곡들이 “R4” 곳곳에서 플레이어와 함께하기 시작했다. 후대에 성공적인 변화였다고 평가를 받는 편이며 시리즈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6. Ape Escape(1999)

일본 기반 하우스 레이블 ‘Far East Recording’의 수장이자 자타공인 일본 전자음악계 최고의 스타인 테라다 소이치(Soichi Terada). 오모다카(OMODAKA)라는 이름의 8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칩사운드에 남다른 애정을 표하던 그 역시도 과거 게임 음악 작곡의 이력이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사루 겟츄(Ape Escape)”시리즈의 사운드트랙들이 테라다 소이치의 대표적인 게임 음악 작곡들이다. 2021년 홍콩의 전자음악 레이블 ‘클라세렉스(Klasse Wrecks)’를 통해 재발매된 전설의 트랙 “Sumo Jungle”이 “사루 겟츄”의 초석을 마련한 곡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90년대 중반부터 D&B 장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테라다 소이치가 트랙 “Sumo Jungle”을 제작했고, 이를 기회로 “사루 겟츄” 시리즈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일화는 아마 게임 음악 팬이라면 혹은 전자음악 팬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D&B를 애청하는 게임 음악 리스너들에게 가장 많이 거론되는 트랙 중 하나가 바로 테라다 소이치의 곡 “Time Station”이다. 신비하고 기묘한 모험을 암시하듯 D&B 리듬에 최면적으로 반복되는 아르페지오와 휘파람 소리가 아늑한 곳에서부터 흐르는 곡. 게임의 중심지인 ‘타임 머신’에서 감상할 수 있을 트랙으로 휴식에 집중을 원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7. Heart Breakers(1998)

마지막으로는 국산 게임 “하트 브레이커즈”의 사운드트랙이다. 사실은 “하트 브레이커즈”를 과거 직접 플레이해본 경험이 있다거나, 사운드트랙을 즐겨 듣던 게임이라 추천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획 후 목록을 짜보니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 모두 일본 게임 음악의 사례였기에… 필자 역시 국산 게임에서 D&B가 적용된 사례가 갑작스레 궁금해져 찾아봤고 그렇게 찾아낸 게임이 “하트 브레이커즈”, 그리고 해당 게임에 수록된 곡 “Vashi’s Theme”가 D&B 장르에 가장 근접했다.

BPM의 속도가 160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D&B 못지 않은 타격감의 국산 격투 게임 사운드트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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