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yuichi Sakamoto가 개발에 참여한 게임 “Lack of Love”

게임 음악에 오랫동안 매몰된 필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듣기 좋은, 선형적인 게임 음악을 찾지만, 요즘은 유명 프로듀서가 게임 음악에 일부 참여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때 더욱 애정이 간다. 예를 들면 게임 “메트로이드 프라임”에 오테커(Autechre)의 영향이 있었다는 사실 혹은 “소닉 더 헤지혹3” 등 ‘세가(SEGA)’ 음악팀과 밀접했던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사례 등. 그러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훗날 밝혀졌을 때 더욱 몰입이 된달까. 마치 숨겨진 디스코그라피와 타이틀을 찾아낼 때 느껴지는 희열감과 비슷한 감정이다.

게임 음악 작곡은 프로패셔널한 작곡가들에게도 난이도가 높은 업무이다. 기성의 팝 음악은 대중의 주목도가 최우선되는 목표지만, 게임 음악은 의도적으로 주목받지 못할 음악을 제작해야 하니 결코 쉽지 않은 것. 더군다나 외주로 게임에 관한 이해도 없이 작곡에 임하면 산으로 향할 우려가 있어 개발자와 긴밀히 협력한 작업도 필수겠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나. 유명 작곡가라면 각자의 바쁜 일정이 있을 것이고, 따라서 게임 개발자들과 긴밀히 대화할 시간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상기의 게임 음악 특성을 고려할 때 게임 “랙 오브 러브(Lack of Love, 이하 L.O.L)”는 매우 흥미롭다. 일본의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Ryuichi Sakamoto)가 음악을 제공한 것뿐만이 아니라 게임 시나리오에도 참여하였기 때문.

우선은 “L.O.L”라는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할 게임에 관해 먼저 소개하자면, 이는 진화 시뮬레이션, 어드벤처 게임으로 게이머의 목표는 단순하다. 끝까지 살아남아 진화하는 것. 2000년 11월 2일 세가 가정 콘솔기인 드림캐스트(Dreamcast) 게임 소프트로 일본에서만 출시되었고 본 문단 하단 Play through 영상을 통해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평소 매우 진중히 피아노 앞에서 심취해 있는 대외적 이미지 때문에 ‘게임’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사카모토 류이치다만, 사실 그는 “L.O.L” 개발 당시 게임 개발에 아주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게임이 그의 취미였다기보다는 사회 및 환경 운동의 일환으로 게임에 접근했다. 사카모토 류이치와 “L.O.L”의 감독 니시 켄이치(Kenichi Nishi)는 ‘가이아 이론’에 관한 관심과 이메일을 통한 토론으로 유대를 형성하여 급속도로 친해졌다고 한다.

좌측 인물이 니시 켄이치.

‘가이아 이론’. 지구는 지구상의 모든 유기체를 지탱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물, 무생물과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하는 하나의 생명체이자 유기체임을 강조하는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의 이론이다. 사카모토와 니시는 가이아 이론에 영향받아 인간이 서로 환경, 생명을 돌보고 공생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니시가 게임의 감독과 각본을, 사카모토는 사운드트랙과 사운드 디자인 및 시나리오를 제작했다. “Lack of Love”, ‘사랑의 결핍’이라는 제목 또한 사카모토의 아이디어다. 그는 인류의 생활 방식이 사랑이 결핍되어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며 “사랑의 결핍”이라는 제목을 고안하였다.

우리는 다른 사람, 생명, 환경, 자연을 배려해야 한다. 사카모토가 그 제목을 생각해 냈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사랑이 결여된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

Kenichi Nishi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난데없이 외계 행성 수정란에서 태어나고, 미지의 땅에 덩그러니 놓여진다. 게임은 매우 불친절하다. 아무런 지시를 하지 않는다. 막막한 상황에서 스스로 생존하는 방법을 찾으며 진화해야 하는 게임으로 지루함에 한 시간도 못 버티고 꿀잠 잘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한 높은 진입장벽과 지루함 때문일까. 흥행에는 대실패했다고. 그러나 풍요로운 미지 행성의 풍경, 이기적으로 외계 행성을 테라포밍하려던 인류 로봇의 파멸적 엔딩, ‘자연과의 공생’이라는 사카모토와 니시의 또렷한 메시지 등이 재조명받아 “L.O.L”의 게임 패키지는 훗날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또 한 가지 우리에게 남겨진 것 바로 사카모토 류이치의 훌륭한 사운드트랙이다. 게임은 망했지만, 사카모토가 게임에 담은 애정을 ‘워너 뮤직(Warner Music)’에서 알아주었고, 덕분에 “L.O.L” 사운드트랙은 한국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에서도 감상이 가능하다. 이를 두고 혹자는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와 착각하여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겼다. 나름의 웃음 포인트.

League of Legends가 아니니 착각은 금물…

비록 K/DA, 트루데미지(True Damage), 징크스도 없고 진짜 게임에서 사용된 곡을 수록했지만, 사카모토가 홀로 신시사이저로 일군 앰비언트와 테크노, 피아노 발라드 등은 꽤나 흥미롭다. 탄생의 숭고함과 “L.O.L”의 미지스럽고 어두운 분위기를 암시하는 듯한 곡 “Birth”와 미지 행성에서의 긴 하루를 12분에 담아낸 테크노 트랙”Artificial Paradise”, 사카모토 류이치가 게임 사운드트랙 중 가장 애정한다고 밝힌 “Storm” 등은 평소 전자음악을 쫓던 이들의 입맛에 특히나 제격일 것.

사카모토 류이치의 비교적 간과된 유산 “L.O.L”. 상단의 Play through 영상은 무척이나 지루하기에 참고만 하길 권한다만 음악은 반드시 들어봄 직하다. 하단에서 하나씩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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