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시티”, “심즈” 등 게임 “Sim” 시리즈에 숨겨진 비범한 음악들

본지의 독자 대부분이 추억할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비디오 게임과 게임 음악의 황금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 게임에 등장한 Drum & Bass 사운드트랙들’ 기사의 서문에서도 언급했듯) 5세대 콘솔 게임기 이후로는 게임기의 CPU 성능, 저장 매체 용량 등 하드웨어 성능이 크게 향상되었고, 더불어 게임기가 출력 가능한 소리의 질도 향상되어 다양한 장르가 게임 음악으로 이식되던 시기다. 한국은 1999년 정보화 선진을 앞세워 국민에게 PC를 보급한 일명 ‘국민 PC’ 사업으로 각 가정에 PC가 저렴히 보급되었다. 따라서 콘솔 게임기보다는 컴퓨터 게임에 더욱 익숙할 이들이 많을 텐데 당시의 PC 게임 또한 그 이전 MS-DOS 보다 개선된 해상도와 풍부한 음향 등 질적으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여하튼 비디오 게임의 황금기에 어린 시절을 지낸 독자 여러분들! 혹시 과거 즐겨하던 게임의 배경음악을 기억하는지? 순진무구한 우리 어린 시절, 8비트의 마냥 귀엽고 아기자기한 게임 음악만을 듣고 자라진 않았다는 사실을 오늘 상기하자. 오히려 어린 나이에 듣기에는 꽤 수준 높은(?) 음악이 여러 게임 곳곳에서 숨겨져 있기도 했다.

인기 게임 프랜차이즈 “심(Sim)” 시리즈의 음악도 그러한 게임 중 하나다. “심시티(Simcity)” 시리즈와 “심즈(The Sims)” 시리즈 등이 주요 흥행작인 “심” 시리즈는 ‘EA(Electronic Arts)’ 산하의 게임 개발사 ‘맥시스 스튜디오(Maxis Studio)’의 간판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다.

“심즈”, “심시티” 등 심 시리즈의 주요한 음악은 작곡가 제리 마틴(Jerry Martin)이 대부분 제작했다. 제리 마틴은 1996년 맥시스 스튜디오에 수석 작곡가로 합류한 후로 심콥터, 심파크, 심사파리 등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타 심시리즈의 음악과 “심시티”와 “심즈”의 OST도 작곡했다. 여느 게임 음악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어가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눈에 띄지 않는 음악이 그의 목표였다. 그러나 비범한 음악이 어딜 숨으랴. 돌이켜 의식할 때 놀라운 성분의 음악을 발견할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스크롤을 내려 아래에서 하나씩 살펴보는 게 좋겠다.


SIMCITY 3000

“심시티”의 세 번째 시리즈로 1999년 출시된 게임 “심시티 3000”. 도시의 시장으로 위임된 게이머가 도시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경제 발전 및 시민 행복도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도시 건설,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제리 마틴은 번성하는 도시와 도심의 분주함, 건설 등을 연상하며 네 가지 테마인 ‘Gershwin-Esq’, ‘Straight-Ahead Jazz’, ‘Patternistic Minimalism’, ‘Electronica’를 큰 틀로 적용했다. 그중 오늘 눈여겨볼 것은 ‘패턴주의적 미니멀리즘(Patternistic Minimalism)’이라는 테마로 묶인 곡들. “Magic City”, “New Terrain”, “Building” 등은 게이머가 무한하게 건축할 회색빛 빌딩을 음악으로 묘사한 것으로 어느 미니멀리즘 대가를 연상시킨다.


SIMCITY 4

“심시티 3000″의 후속작으로 2003년에 출시된 게임 “심시티 4″의 사운드트랙 또한 제리 마틴이 주축으로 활약했다. “심시티 3000″와 궤를 함께하지만, 트립합, 다운템포, 드럼앤베이스 등의 전자음악 장르가 다양하게 추가되었다. 그중 필자가 소개할 음악은 ‘신 모드(God Mode)’에서 감상할 수 있었던 음악.

‘신 모드’는 도시를 건설하기 직전, 플레이어가 직접 지형을 설정하고 산과 강, 계곡, 평지 등을 제작, 각종 자연 재난도 일으킬 수 있는 맵 에디팅 모드로 “심시티 4″에서 추가된 시스템이다. 이때 흐르는 음악은 플레이어가 진짜 신이 된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이더리얼(ethereal), 선형적 앰비언트를 삽입했는데, 소름이 돋을 정도로 숭고하고 영적이다.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 가믈란에 영향을 받아 제작한 사운드트랙.

The Sims

시장이 되어 도시를 무한히 증축하거나 때로는 신이 되어 대자연을 움직이기도 하는 “심시티” 시리즈와 달리 “심즈”는 가구를 배치하거나, 조경을 디자인하고, 쇼핑을 하는 등 우리의 일상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생활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게임에 접속하는 게이머들의 사고로는 매우 지루한 게임이다. 개발진들 역시 “심즈”가 이 정도로 성공하리라곤 그 누구도 예상을 못 했다고. EA는 ‘생활 시뮬레이션’이라는 당시 생소한 장르로의 방향을 두고 매우 난감해했다는 후일담도 있다.

EA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심즈”는 지금 심 시리즈의 대표주자이자, 가정생활 시뮬레이션 게임의 대표 격인 게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일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음악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심즈”에서 마틴은 ‘편안하고 사색적인 음악’이라는 단순한 단서에서 출발하여 컨트리, 미니멀 재즈, 보사노바, 경음악, 신고전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 걸친 음악을 주도적으로 제작했다.

또 “심즈” OST에 관련한 한 가지 여담, “심즈”에는 색소포니스트 마크 루소(Marc Russo)와 재즈 피아니스트 존 R. 버(John R. Burr)가 합류하여 사운드트랙 제작에 직접 가담했다는 사실이다. 루소는 “심즈”가 개발될 당시 제리 마틴과 마주 살던 이웃이었다. 평소 루소와 절친하게 지내던 마틴은 루소를 “심즈” 음악 세계로 초대하여 제작에 관한 조언을 주었다고. 조언을 들은 루소는 집으로 돌아가 머리를 싸매며 음악을 만들었고, 다시 마틴의 집을 방문해 만든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했다. 그러나 이를 들은 마틴의 반응은 시큰둥했단다. 그중 오직 몇 마디의 포인트에만 흥미를 느꼈었다고.

재즈 밴드 옐로우자켓(Yellowjackets), 록 밴드 두비 브라더스(The Doobie Brothers)의 멤버로 활약하며 그래미 어워드에도 진출한 이력이 있던 루소. 그에게 게임 음악 제작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그의 음악 세계에서 색소폰 및 악기 연주는 재즈, R&B 등 어떤 음악을 연주하든 임팩트를 주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존재했지만, 게임 음악은 의도적으로 무시될 수 있어야 했기에, 또 플레이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만 흥미로워야 했기에 트랙 제작에 꽤 난항을 겪었던 것.

2018년 ‘바이스(Vice)’에서 발행한 “심즈” OST 소개 기사 중 한 문단이 감명 깊어 이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2005년에 오리지널 “심즈”는 전 세계적으로 1600만 장이 판매됐다고 보도했다. (중략) 같은 해에 출시되어 오랫동안 획기적인 음반으로 여겨졌던 라디오헤드(Radiohead)의 [Kid A]는 현재까지 약 150만 장 판매되었다. 이는 “심즈”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한다. 톰 요크(Thom Yorke)의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에서 절제된 울부짖음보다 제리 마틴의 미니멀 재즈를 들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리 마틴은 ‘맥시스 스튜디오’와 “심즈 2” OST 제작 후 2005년에 하차, 이후 ‘Jerry Martin Music’을 설립하여 게임 및 광고 음악을 제작했다. 그의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그가 제작한 심시리즈 음악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그의 간략한 설명글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미니멀리즘, 이더리얼 앰비언트, 경음악과 보사노바, 미니멀 재즈 등 이처럼 비범한 음악을 담은 게임은 심시리즈뿐만이 아니다. 어릴 적에는 플레이 경험에 몰두하여 음악에는 무심했을 뿐, 배경음악을 의식하고 관점을 달리할 때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게 게임 음악이란 존재다. 평소 팝 음악과 기성 음악이 지겨워진 참인가? 그렇다면 과감히 게임 음악 세계의 문을 두드리자. 문을 열면 무궁무진한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Jerry Martin Music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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