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에게 있어 음악을 재생하는 것은 단순히 곡을 배열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들에게 음악이란 자신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드러내는 언어이자 깊이 있는 탐구의 결과인 것. DJ 모스피란(DJ Mospiran)에게는 ‘브라질 음악’이 그러한 맥락이다. 모스피란은 브라질 음악 특유의 리듬에서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찾고 이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했다. 2021년과 2024년에 걸쳐 발매된 두 장의 믹스 CD [Alegria Brasileira], 그리고 망원에 자리한 그의 아지트 ‘빌라 마리아나(Villa Mariana)’가 그의 세계관 일부다.
노랑, 초록, 파랑 외에 더는 다른 색이 떠오르지 않는 디거 모스피란. 그의 음악적 세계는 그처럼 선명한 색감으로 가득하다. 이제 그와 함께 브라질 음악의 깊은 세계로 빠져들어 보자. 그의 아지트 ‘빌라 마리아나’는 그 자체로 브라질 리듬의 정수를 담고 브라질의 전설적인 밴드 아지무스(Azymuth)의 멤버가 직접 다녀가기도 했으니, 그들의 이름을 빌려 보증할 수 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서울 기반으로 활동 중인 DJ 모스피란이다. 2016년부터 일본 음악 등을 트는 크루 ‘아시아 훵크 제너레이션(Asian Funk Generation)’에서 DJ를 시작했고, 지금은 상황에 맞는 다양한 장르를 플레이 중이다.
DJ는 시티팝으로 시작한 것인가?
아시아 훵크 제너레이션에서 시티팝만 튼 것은 아니다. 2016년에는 시티팝이 리바이벌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시티팝을 비롯하여 아시아 음악 전반을 트는 일이 많았다. 디제잉을 처음 시작한 것은 2014년 연남동에서 열린 덤스터라는 행사에서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것이 계기다. 1년 반 후 아시아 훵크 제너레이션의 멤버가 되었고, 우리 크루를 채널 1969 사장님이 재밌게 봐주셔서 나도 덩달아 DJ가 되었다.
2016년, 동시대에 많은 DJ와 힙스터들이 시티팝을 찾아 감상했다. 당신이 느낀 시티팝의 매력은 무엇이었나?
옛날에는 시티팝이란 장르로 규정되지 않고 그저 올디스(oldies)라고 불렀다. 지금은 통칭 시티팝으로 불리고 있지. 그 당시 올디스 계열의 일본 음악과 제이팝을 많이 들어서, 시티팝이 유행하기 전부터 일본 옥션을 통해 대량으로 레코드를 구매하고 있었다. 박스 100장을 4000엔에 팔던 시절이었는데, 그 안에 마츠바라 미키 같은 유명한 아티스트의 음반도 들어 있었다. 지금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
첫 바이닐 수집도 시티팝이었나?
아니다. 내 첫 바이닐 레코드는 중학교 3학년 때 DJ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의 [180G Beats]였다. 2001년에 마스터 플랜에서 일본의 퓨처 쇼크라는 크루와 합동 공연을 했는데, 그때 그들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구매했다. 그 후로는 CD를 주로 모았고, 첫 번째 바이닐과 두 번째 바이닐 사이에 상당한 시간이 있었다. [180G Beats]는 구매하고 거의 10년 동안 들어보지 못했다. 턴테이블이 없었으니까.
중학교 3학년에 바이닐이 왜 멋있어 보였나?
크기가 크니까.
당신이 운영하는 가게 ‘빌라 마리아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내부 인테리어부터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노랑과 초록이 지배적인데, 이를 통해 브라질에 대한 깊은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브라질에 빠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사실 나는 시부야 케이를 굉장히 좋아한다. 피치카토 파이브(Pizzicato Five)나 F.P.M(Fantastic Plastic Machine) 등 라운지 음악을 즐겨 듣는데, 그 원류를 쫓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이 영향을 받은 프랑스, 이탈리아의 영화 음악, 그리고 브라질 음악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지금도 시부야 케이의 소스가 된 음악들을 주로 찾는다. ‘빌라 마리아나’도 브라질리언 바라는 정체성을 대놓고 드러내진 않는다. 내가 브라질어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이 컨셉을 밀고 먹고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단지 브라질 음악을 좋아해서 차용한 것뿐이다.
사실 가게 이름도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다. 빌라 마리아나는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동네 이름이다. 한국으로 치면 망원동 같은 느낌이지. 또 아지무스의 노래 중에도 “Vila Mariana”라는 곡이 있기도 했다.
빌라 마리아나를 개업하게 된 계기는?
내 가게를 운영하고 싶었다. 예전에 동업을 했었는데, 그때는 3명이서 한 공간을 운영하다 보니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3명이서 각자의 의견을 조율하다 보니 결과물도 어중간하게 나오는 것 같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밀고 나갈 수 없어서 아쉬웠다. 또, 해외여행을 가면 바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나도 그런 바를 운영해보고 싶었다. 원래는 크래프트비어 펍에서 요리를 했었는데, 코로나 때 그만두게 되면서 생계를 위해 시작한 것도 있다.
아지무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아지무스의 키보디스트 키코 콘치넨치누(Kiko Continentino)가 이 가게를 방문한 적이 있던데,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나?
옛날에 아지무스가 도쿄 블루노트에서 공연할 때, 나도 도쿄로 가서 일렬에서 그들의 공연을 봤다. 그때 셋리스트가 바닥에 떨어져 있어서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키코가 자신의 자필이라고 직접 댓글을 달아준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김밥 레코드의 내한 공연 포스터가 올라왔을 때 너무 좋아서 덧글을 달았는데, 키코가 또 직접 답글을 달아줬다. 그리고 김밥 레코드에서 일하는 민채라는 친구가 그에게 내가 운영하는 가게를 알려줬고, 그 계기로 키코가 가게를 찾았다. 공연 전날 혼자 방문하려다 못 찾아서, 결국 다음날 민채와 함께 방문해 사진을 많이 찍고 갔다. 또 내가 개발 중인 메뉴 ‘미네이랴’도 키코가 직접 작명해 준 것이다. ‘미네이라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런 순간들은 정말 꿈만 같았을 것 같다.
그렇다. 키코는 직접 CD를 다섯 장 정도 가져와서 모두 사인해주고 갔다.
막상 원하던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지만, 오픈 전 그리던 이상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실 이상향 자체가 없어서 딱히 없었다. 내가 일하던 크래프트비어 펍은 신청곡을 받아 틀어주는 캐주얼한 공간이었는데,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었다. 마룬파이브를 세 번 틀지 않으면 집에 갈 수 없을 정도로 반복적으로 신청곡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직접 틀어주는 건 좋은 일이지만, 반복되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이었다.
[Alegria Brasileira]라는 제목의 믹스 CD 시리즈를 만들었다. 특히 올해 두 번째 시리즈를 발매했는데, 각각 어떤 음악을 담았는지 소개해달라.
첫 번째 CD는 보다 친숙하고 익숙한 음악을 셀렉했다. 두 번째 CD는 브라질 음악을 본격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 그래서 두 번째 믹스에는 유명하지 않은 레코드도 많이 담았다. 요즘 브라질 음악을 다루는 DJ들이 많아졌는데, 그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기를 바랐다.
오늘 소개할 다섯 장의 앨범도 이 두 CD의 핵심적인 트랙들인가?
아니다. 믹스 CD에 한 곡 정도 들어가 있긴 하지만, 오늘 소개할 레코드는 최근 내가 즐겨 듣는 브라질리언 음악들이다.
첫 번째로 소개할 레코드는?
Umas e Outras – [Pigmaleão 70]다. 브라질 TV 시리즈의 사운드트랙으로, 이탈리아 영화 음악과 흡사한 점이 있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영화 음악사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브라질에도 모리꼬네의 감성이 녹아있다. 하지만 브라질 특유의 감성을 더해 풀어내는 방식이 다르다.
어떤 경로로 알게 되어 구매했나?
유튜브에서 브라질 드라마 OST를 찾다가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김밥 레코드와 예스24에서도 수입된 적이 있었다.
브라질 음악이라면 삼바가 연상되는데, 이 음악은 어떤가?
삼바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않다. 악기 정도만 공유하고, 드라마 인물의 테마에 약간의 삼바가 묻어날 뿐이다.
두 번째로 소개할 레코드는?
Andre Penazzi – [Orgão Samba Percussão Vol 3]이다. 전자올겐으로 유명한 안드레 페나치(Andre Penazzi)의 레코드로, “The Girl From Ipanema” 등의 명곡을 올겐 삼바로 재해석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나는 전자올겐 삼바를 매우 좋아해서 이 앨범도 추천하고 싶었다.
어떤 경로로 알게 되어 구매했나?
일본 레코드숍의 브라질 섹션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그때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지만, 가격이 저렴해서 구매하게 되었다.
세 번째로 소개할 레코드는?
A Galera – [Dá-lhe Brasil]이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때 브라질의 공식 응원가가 담긴 7인치 레코드다. 브라질은 축구를 잘하니까 응원가도 다를 것 같아서 구매했다. 아 가레라(A Galera)는 프로젝트성 밴드로, 한국으로 치면 김흥국 선생님이 사람들을 모아서 응원가를 만든 느낌이다. 이 레코드는 방송국에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응원가나 특정 상황을 고려한 음악은 찾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나?
유튜브에서 브라질 TV 시리즈 음악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유튜브나 디스콕스(Discogs)에서 브라질 음악을 디깅할 때 특별히 쫓는 키워드가 있나?
[Dá-lhe Brasil]에 롭슨 조르지(Robson Jorge)와 링컨 올리베티(Lincoln Olivetti)가 참여했다. 이 두 사람의 이름이 함께 있으면 나는 무조건 구매한다. 둘 다 명 프로듀서에 명 콤비이기 때문에 믿고 구매하게 된다. 브라질 음악계에서 이 둘은 야마시타 타츠로와 같은 위치에 있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수요가 높은 편이다.
브라질 음악을 플레이하는 DJ들이 많아졌다고 했는데, 그들과의 교류는 활발한가?
브라질 음악을 좋아하는 DJ들과 간혹 좋은 음악을 공유하곤 한다. 확실히 다루는 사람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많지는 않다. 그래서 약간의 유대감을 느끼지만, 파편적이라 연합 느낌까지는 아니다. 같은 브라질 음악을 좋아해도 결이 미묘하게 다르다. 브라질은 하나의 나라이지, 특정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각자가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
네 번째로 소개할 레코드는?
Ana Frango Elétrico – [Electric Fish]다. 2023년에 미스터 봉고(Mr. Bongo) 레이블에서 발매한 레코드다. 미스터 봉고는 주로 브라질, 라틴, 아프리카, 일본의 음악을 리이슈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최근에는 현지 아티스트의 음반도 발매하고 있다. 그래서 이 레코드는 요즘 브라질 음악의 근황을 알 수 있는 지표가 되는 앨범이다. 브라질이라고 무조건 삼바만 하진 않는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Electric Fish]를 통해 본 최근 브라질 음악은 어떤가?
우리가 알고 있는 브라질 리듬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인 사운드를 많이 가미했다. 요즘 브라질 주류 음악도 힙합이나 일렉트로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인디 신에서는 브라질 특유의 느낌이 은은하게 녹아있는 실험적인 음악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더욱 추천하고 싶었다.
다섯 번째로 소개할 레코드는?
João Donato – [A Bad Donato]다. 브라질의 전설적인 키보디스트 주앙 도나토(João Donato)의 1970년 앨범이다. 이 앨범은 재즈 훵크적인 느낌을 담고 있지만,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보사노바, 전자음악, 사이키델릭 등 매우 방대하다. 주앙 도나토는 브라질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음악가라, 한국에서도 리이슈 앨범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음반을 수집하는 사람들 중에는 오리지널 프레스를 중요시하는 이들이 많다. 당신은 리이슈와 오리지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리이슈를 선호하는 편이다. 리이슈는 깨끗한 음질을 보장해 주니까. 브라질 레코드는 상태를 확신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인터넷에서 VG+ 등급으로 표기돼 있어도 기스가 심한 경우도 많고, 셀러에 따라 상태를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다. 그리고 더운 나라에서는 레코드 상태 관리가 어려워 기대치가 낮다. 잘 돌아가면 만족하는 편이다.
앞서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다양한 브라질 음악을 소개했다. ‘예술은 세상을 비추는 창’이라고들 한다. 그런 관점에서 브라질 음악을 시대별로 감상할 때 당신이 느끼는 바가 있다면?
브라질 음악은 동시대의 세계적 흐름을 매우 충실하게 따라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사노바나 삼바뿐만 아니라 70년대 디스코가 유행할 때는 브라질에서도 디스코를 했고, 80년대에 전자악기가 발전할 때 브라질 음악도 신시사이저를 사용하면서 빠르게 사운드가 변화했다. 그러니까 세계 음악의 트렌드를 반영하면서도 브라질 특유의 리듬이나 감성을 잃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르게 본다면, 브라질의 재즈는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브라질 색소폰 연주자가 찰리 파커나 존 콜트레인의 스탠다드 넘버를 부를 때가 있는데, 그 부분은 나에게는 그리 흥미롭지 않다. 브라질 재즈라면 보사노바나 삼바의 냄새가 섞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탠다드 넘버를 듣고 싶다면 굳이 브라질 버전이 아닌, 미국 본토의 재즈를 들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봉이 비슷한 주제로 ‘디거의 노래’에 출연했을 때, 브라질 음악은 여름 느낌이 강해서 다른 계절에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브라질 음악을 겨울에 즐겁게 감상하는 방법이 있다면?
나는 겨울에 브라질 음악을 들을 때, 그리운 여름을 생각하면서 듣는다. 가을에는 지나간 여름을 회상하며 감상하기도 하고. 사실 사계절 내내 브라질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의 겨울은 추워서 집 안에 있을 때 브라질 음악을 틀고 보일러를 높이면 따뜻한 여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겨울에 너무 추운 노래를 들으면 오히려 더 춥게 느껴지지 않나? 그래서 브라질 음악은 계절과 상관없이 감상하기 좋은 음악이라고 본다.
사운드클라우드, 믹스클라우드, 유튜브 등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믹스를 공개할 수 있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믹스를 CD에 담아 공개했다. 이유가 있나?
CD는 나에게 일종의 기념품 같은 의미다. 온라인에 믹스를 올리면 그저 스쳐 지나가기 쉬운데,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CD는 손에 들고 감상해야 한다는 점에서 집중도를 높인다. 또한, CD라는 형식이 갖는 감성적 가치도 있다. 그래서 CD를 제작해 발매하는 것이 단순한 음악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CD라는 물리적 매체로 제작해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 특별히 느낀 감정이 있다면?
가끔 사람들이 내 CD를 듣고 정말 좋았다고 피드백을 주면, 내가 만든 것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사실 내가 DJ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을 때가 많다. 음악을 좋아해서 여기까지 왔고, 내 음악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다. 어머니가 식당을 운영하시면서 “음식을 만드는 건 정말 힘든 일이지만, 결국 ‘맛있다’는 소리 하나 듣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다. 나도 CD를 만드는 것이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돈을 들여 CD를 제작하지만, 결국 좋은 음악을 알렸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DJ Mospiran 인스타그램 계정
Villa Mariana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황선웅
Photographer │장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