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비푸릿(Phum Viphurit), 태국 방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대부분을 뉴질랜드에서 보낸 싱어송라이터다.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었으며, 특히 “Lover Boy” 등의 곡은 그가 전 지구적인 아티스트로 발을 뻗을 수 있는 기반이었다.
최근 품의 EP인 [Paul Vibhavadi Vol. 1]에서는 자신을 빗대어 만든 나무늘보 캐릭터 폴(Paul)을 앞세워 독자적인 세계관을 펼친다. 도시의 삶과 그 속도에 적응하기 힘든 품은 도시의 나무늘보로서, 복잡한 현대 사회와 속도에 관하여 자신의 시선을 과감히 표현한다. 또한 EP에서는 하우스 음악을 접목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도 엿보였다.
VISLA는 지난 10월, 부산 록페스티벌을 통해 한국을 방문한 품 비푸릿과 만났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그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부터 새 EP와 현재 그의 음악적 영감, 그리고 미래 계획까지, 그의 여정을 두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고 하단에 기록한다.
당신은 태국과 뉴질랜드, 두 나라에서 성장한 배경을 지니고 있다. 뉴질랜드에는 어떻게 갔나?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엄마를 따라서 형제들과 함께 갔다. 당시 나는 9살이었고 어머니가 대학교 졸업 직전에 뉴질랜드에서 1년 어학 연수 경험이 너무 좋았다고 해서 우리 형제의 조기 교육 차원에서 뉴질랜드로 갔다. 나에게 딱히 선택지가 있었던 게 아니었지. 갈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고 가서 10년을 살았다.
뉴질랜드가 당신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나?
예술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난 전형적인 서브컬처 키드였고 다른 나라에서 다른 정체성을 지니게 되었지. 덕분에 훨씬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시야가 넓어졌다고 했다. 말마따나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음악과 예술을 접했을 것 같은데 어떠한가?
당시에 너무 어렸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TV 채널은 딱 2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유명한 팝 뮤직비디오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채널이었지. 다른 채널을 볼 수 있는 선택지가 없으니까 계속 그걸 봤고 자연스럽게 10대에 진입하면서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다.
음악 외에도 영감을 얻는 다른 예술 분야나 일상적인 요소들이 있나?
어릴 때 본 영화들, 그리고 디즈니 채널에서 봤던 시트콤. 돌이켜 보니 실생활에서의 시각적인 것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2018년 첫 앨범 [Manchild]를 발표했다. 어떤 앨범인지 직접 소개하자면?
앨범 제목 그대로다. 유년기부터 청소년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관한 내용을 담았지.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막상 어른이 되니까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그런 마음들, 그리고 삶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이후 싱글들을 발표하면서, 초기 작업과 현재 작업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첫 작업 당시에는 어쿠스틱 기타만 다룰 줄 알아서 음악이 포크 위주로 구성되었는데, 시간이 지나 다양한 악기를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시티팝에서 지금은 테크노도 시도하고 있다. 내 취향이 넓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지.
지금의 취향을 설명하자면?
인스트루멘탈과 춤을 출 수 있는 업비트.
인스트루멘탈은 가사가 없기 때문에 청자들이 그 감정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이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사실 그동안에는 내 목소리로 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익숙했기 때문에 수단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제는 기타도 스스로 생각할 때 괜찮게 치는 것 같고 또 프로듀서의 영역에서도 자신감이 붙어서 나만의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다고 여긴다. 꼭 목소리를 넣지 않고, 시그니처적인 무언가를 빼고도 괜찮을 것 같다는 가벼운 접근법이자 품 비푸릿 하면 연상되는 음악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유튜브를 통해 점점 팬층을 넓혀 나갔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당신의 음악적 성장에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나?
소셜미디어로 인해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라서 어떤 음악가가 어떤 음악을 만들었는지를 빠르게 인지할 수 있다는 게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미디어의 큰 장점인 것 같다. 또 비주얼적으로 스토리텔링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예컨대 내 노래를 듣기 전에 뮤직비디오를 먼저 보고 흥미를 가질 수도 있는 거다. 음악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가 생기니까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Manchild]는 당신의 성장기를 담은 주제로 삼았다고 말했다. 최근 앨범 [Paul Vibhavadi Vol. 1]를 만들 때는 어떤 주제나 감정에 가장 집중하는가? 음악 속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중심은 무엇인가?
회의감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니까, 막상 조금 유명해지고 내가 무대에 있지 않지만, 여전히 내가 무대에 있는 것처럼 살아야 되는 그런 상황들에서의 회의감이다. 이에 따른 절망감과 개인의 갈등을 집중적으로 느끼지. 그래서 나무늘보 캐릭터 폴(Paul)을 만들었고 그가 히마판 숲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내 자아를 찾는 실제 모습을 투영한 것과 같다.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를 투어하며 대규모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 에너지를 얻었을 것이다. 이는 당신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사실 처음 태국에서 공연을 했을 때는 관객들의 반응이 적어서 음악가로서의 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국과 일본에서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그제야 확신을 했지. 내가 관객들의 큰 환호를 원한다는 것과 음악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그때 처음 생각하게 되었다.
자주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서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면?
클럽 FF. 태국에서 한국 클럽은 유흥 클럽이 먼저 떠올랐는데 클럽 FF는 그렇지 않았다. 실제 밴드가 음악을 연주했고 그거에 맞춰서 관객들이 즐기고 있었다. 나도 관객 무리가 되어 함께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광란의 밤을 보냈지. 이는 어느 나라에서도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태국의 인디 신(scene)에서 시작하여 글로벌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나 도전은 무엇이었나?
태국에서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다. 운이 좋게도 내 음악에 관한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을 정확하게 내리기도 전에 대중들이 나를 먼저 찾아줘서 어려움 없이 잘 활동했던 것 같다. 그보다는 태국 국적으로 비자 받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그러한 점이 어려웠다. 비자가 나오지 않아 쇼가 캔슬된다거나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계속 인지하고 투어하는 게 어렵지.
당신을 비롯하여 HYBS 등 태국 인디 신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현재, 태국 인디 신과 음악 산업 전반에 관하여 설명을 한다면?
태국에는 굉장히 크리에이티브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인지하는 뮤지션이 많다. 그래서 흥미가 간다면 많이 디깅해 보았으면 좋겠고. 난 태국의 재능 있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주목받았으면 한다. 그럴 역량을 충분히 지녔기도 하니까.
뉴질랜드는 가끔 방문하나?
마지막으로 뉴질랜드를 방문한 건 작년이다. 뉴질랜드, 호주 투어로 공연을 하기 위해 방문했고. 그때 감격적이었던 것은 내 공연에 고등학교 교감 선생님, 음악 선생님이 찾아와 관람하고 갔다. 사실 20대 초반에는 뉴질랜드가 싫었다. 너무 평화롭고 조용하고 지루한 곳이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30대가 된 지금은 다시 돌아가서 살고 싶은 곳이다. 내 캐릭터 폴이 찾아가는 히마판 숲은 뉴질랜드를 연상하며 만들어낸 숲이다.
업비트의 전자음악이 취향이고 즐겨 듣지만, 반대로 몸은 왜 뉴질랜드와 히마판 숲으로 향하나?
나는 걸어다니는 모순 덩어리다. 하하. 이번 EP는 업비트의 신나는 바이브가 있지만, 사실 그 내용은 그런 빠른 세상에 나무늘보 같은 나는 잘 적응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과 음악적 목표가 있다면?
이번 EP는 ‘Vol. 1’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Vol.2’ 작업을 절반 정도 끝내놓는 게 목표다. 그리고 음악적인 목표는 일본의 후지락(Fuji Rock) 페스티벌과 홍콩의 클라켄플랍(Clockenflap) 페스티벌에 서는 것. 내 주요 활동 바운더리 안에서 두 페스티벌이 가장 큰 페스티벌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꼭 서고 싶다. 또 사업적으로 아이스크림 가게도 열어보고 싶다. 내 아이스크림 가게는 손님이 왔을 때 내가 골라주는 맛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한다. 손님은 맛을 선택할 수 없다.
왜 손님은 맛을 고를 수 없나?
내가 아이스크림 명장이 될 것이니까 명장으로서의 고집도 있어야 한다. 난 실제로 많은 아이스크림을 먹어봤고 그만큼 좋아한다. 데이터가 많이 쌓여 있으니까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게 되면 방콕 최고의 아이스크림 집이라는 타이틀에도 욕심이 있다.
Editor │황선웅
Photographer │Abi Rayma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