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바람이 끝없이 이어지는 겨울. 이런 칼바람 부는 날씨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사운드를 내뿜는 밴드가 있다. 2023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메탈&하드코어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되기도 하며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온스테이지와 DMZ 페스티벌 등의 무대를 통해 거침없는 사운드와 강렬한 퍼포먼스로 리스너들을 주목시킨 이들. 바로 밴드 미역수염이다.
지난 11월, 거친 항해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노이즈가 가득한 두 번째 정규앨범 [2]와 함께 돌아온 미역수염. 차분하면서도 사나운 감정의 다이내믹을 파도 타듯이 오가며, 광활한 공간감의 날카로운 질감들로 채워진 앨범으로 리스너들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이들은 다가오는 12월 21일, VISLA의 연말 페스티벌 ‘BEAUTIFUL GROUNDS‘에서 라이브를 선보일 예정이기도 하다. 2014년 부산의 한 공연장에서 시작된 미역수염의 음악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단하게 지켜져 왔다. 무게감 있는 그로울링과 노이지한 음악과는 또 다르게, 솔직하고 친숙한 답변을 해주었다. 미역수염과 이번 앨범 [2]의 작업기를 비롯한 그간의 근황과 공연들, 그리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밴드와 멤버소개 부탁한다.
주이: 기타 치는 그롤러 지훈, 베이스를 둥당거리며 가끔 노래도 흥얼대는 주이, 비평을 담당하는 진정한 비터 완기, 먹성 좋은 젊은 피 기타 재현으로 구성된 부산 출신 밴드다.
‘미역수염’ 팀명을 만들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다.
주이: 단어의 나열로 별다른 의미는 없고 우스타 쿄스케의 만화 “멋지다, 마사루”를 즐겨보던 멤버들의 취향 반영 정도라 하겠다. 검색창에서 검색했을 때 유일한 밴드명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다.
지난 2022년 첫 정규앨범 [Bombora]가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메탈&하드코어 후보에도 오르며 큰 주목을 받았는데, 이번 2집을 준비하며 이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주이: 하드디스크에 쌓여 있던 곡들을 세상에 내놓는 데에 의미를 뒀던 1집이 예상치 못한 관심을 받은 덕분에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덕분에 내가 해왔던 것들을 하면 된다라는 믿음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이런저런 눈치 보지 않고 그냥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심리적인 부담보다는 시간에 쫓겨서 작업을 하는 상황이 힘들었다.
지훈: 힘들었다. 무슨 후보에 올랐던 건 별로 상관이 없다. 스스로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들과 시간을 놓고 싸우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지만 [Bombora]가 많은 사랑을 받아서 나는 너무 행복했다. 고맙다.
정규 2집 [2]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전 앨범과 달라진 점은 무엇이 있는지, 새로운 시도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주이: 우선 듀오에서 4인조 밴드로 거듭났다는 점! 앨범을 놓고 본다면 1집인 [Bombora]는 거센 파도로 출렁이는, [2]에는 강과 은하수가 흘러가는 우주가 존재한다. [Bombora]가 화가 잔뜩 난 노이즈 덩어리 같다면 [2]는 그 화를 선형화시켜서 우회적으로 표출한 느낌인데, 이건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일상의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기도 하다. 매번 악쓰고 살기에는 소중한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철없는 중년이다. 원래 가진 선동적인 태도나 사운드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늘어난 멜로디나 구성 등 조금은 더 보편적인 취향을 가진 청취자들이 듣기에 편해졌다고 생각한다.
지훈: 재현과 완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
이번 앨범 사운드의 핵심이 되는 장비가 있다면 소개해 줄 수 있나?
주이: 이펙트 하나 바꿔서 녹음했는데 라이브 할 때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 같다. 구관이 명관.
지훈: 작업할 장소. 제일 중요하다. 작업실을 두 달간 대여해서 퇴근 후 작업에만 집중했다. 장비는 ‘VOX’사의 ‘AC15’가 기타 소리를 뱉어 주셨으므로, 이분을 핵심으로 정하겠다. 그리고 EP [The Whistle]과 [Bombora]에서는 ‘Turbo RAT’이 고생해 주었지만 마침 접촉 불량도 있고 해서 ‘Walru’s의 ‘Iron hors’를 사용했다. 믹싱에서도 병렬 리버브를 이전까지는 ‘Valhalla DSP’ 사의 플러그인들을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실제 페달과 동일하게 ‘Strymon’의 ‘Bigsky’를 사용했다.
앨범을 듣고 청자들이 느꼈으면 하는 바가 있다면?
주이: 각자의 유니버스 그리고 사랑.
완기: 하루하루의 위로.
지훈: 망각의 기억들.
앨범의 트랙 제작 과정은 어떻게 되나. 처음부터 함께 합주를 통해 작곡과 편곡을 하는 편인가?
주이: 합주를 통해 곡을 만들어 가는 게 밴드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하는데, 안타깝게도 2집은 멤버가 넷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집에 비해 시간이 부족했다. 의견을 조율할 여건조차 안 됐지. 대부분의 곡은 지훈이가 코드를 가져오면 내가 멜로디와 가사를 붙인 후 의견을 모아 편곡, 디렉팅하고 완성해 나갔다.
재현: 곡의 전체적인 구성과 bpm에 대해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최근에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완기: 개인적으로는 다른 밴드에서 하는 것처럼 합주를 거쳐서 악기 간의 케미를 만들어 내는 걸 선호한다. 하지만 미역수염의 경우는 지훈형이 전반적으로 만든 드럼에 조금 바꾸거나 더하는 편이다. 미역수염에서는 테크닉적인 부분보다는 송라이터가 의도하는 느낌을 파악하고 극대화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번 앨범에서 송라이팅과 합주, 레코딩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한데.
주이 기타 녹음 형태를 1집과 다르게 하였다. 1집에서는 ‘Fractal’ 사의 AXE-FX로 녹음했고 이번엔 실제 페달들과 VOX 앰프로 레코딩했다. 1집보다는 조금은 더 날 것의 소리가 담겼으면 했는데 아쉬운 점이 있으나 적당히 나온 듯하다. 먼 훗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록스타가 된다면 유럽 어딘가의 멋진 산장 스튜디오를 빌려 합숙하면서 앨범을 만들고 싶다.
지훈: 멤버들의 개성이 폭발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지만, 잘되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모두 전업 뮤지션이었다면 더 좋은 소리를 냈을지도. 일단 멤버 넷이 만나기도 쉽지 않다.
오랜 시간 동안 작업과 합주를 하면 귀에 피로도가 쌓이기도 할 텐데, 평소에는 어떤 음악을 듣는 편인가?
재현 : 정확하다. “메이플스토리” BGM을 제일 많이 듣는다. 그 외에는 미국 스크리모/하드코어 밴드들 라이브 영상을 본다.
주이: 사실 나는 혼자 있을 때면 줄곧 음악을 듣는다. 비지엠 없는 일상은 심심하다. 가족들이 걱정하기도 하는데 다행히 귀는 건강한 편인 것 같다. 음악은 들었을 때 내가 좋으면 가리지 않는다.
완기 : 그 시점에 작업 중인 곡의 데모나 스케치를 무한반복 청취하고 아이유의 “Love Poem”으로 심신을 안정시킨다(실제로 음악어플에서 올해 가장 많이 청취한 곡으로 나옴).
지훈: 고전 게임의 BGM을 좋아한다. 가끔 리메이크도 하면서 논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건 어떤가? 공연장이나 관객 분위기도 다를 것 같은데.
재현: 너무 피곤하다. 기차에서 짐 싣고 내릴 때마다 텔레포트의 부재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주이: 이동이 힘들다. 분위기는 딱히 다르지 않다. 미역수염 공연장에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한 몸이 되어 공감해 주는 관객들이 모이는 것 같다.
지훈: 서울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일단 젊은이들이 많고 에너지가 넘친다. 목적을 가지고 공연장에 오는 적극적인 모습이 좋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지훈: 양산 공연이 생각난다. 힘들었다.
완 : DMZ. 개인적으론 처음 듣는 페스티벌인 데다 철원이라는 지역과 거리의 압박이 있었는데, 우선 경치가 정말 멋졌다. 그리고 페스티벌 스탭분들 모두 진심으로 즐기면서 일하시는 게 느껴졌는데, 지역과 이상적으로 상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재현: 부산의 오방가르드에 대해서는 일전에 언급했고… 스트레인지프룻에서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 요새는 제대로 된 PA 장비 없이 대충 낡은 싸구려 장비로 볼륨 올려서 하는 공연이 재밌다. 그리고 완기형이 언급한 대로 DMZ는 정말 최고였다. 기획에 대해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어서, 계속해서 여러 가지 구상을 하고 있다.
주이: 모든 공연이 다 기억에 남고 작은 클럽은 클럽대로, 또 큰 야외무대는 그것대로, 어두운 밤이나 밝은 낮이나, 환경이 좋았건 나빴건, 관객이 많았던 적었던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전부 가슴 벅찬 사랑과 감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진심이다.
올해 DMZ 페스티벌에서 정주이는 아들과 함께 페스티벌을 즐기기도 했다. 아티스트 미역수염으로서 무대를 하는 것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특별한 경험을 했을 것 같다.
주이 : 아이 케어와 무대를 병행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힘들다. 신경 쓰고 챙겨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늘어난다. 다만 그에게 특별한 추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는데 사실 아이는 엄마가 하는 밴드에 관심이 없다. 늘 그렇듯 가족과 함께 한 주말 중 하루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공백기 2년 동안 멤버들의 개인적인 근황은 어땠나?
주이: 가정(재현이는 학업)에 충실하며 합주와 라이브 병행.
지훈: 일어나고 회사 가고 술 마시고 자고.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 분위기는 어떤 편인가? 각자 음악적인 역할 이외에 담당하는 부분이 있다면?
재현: 아주 좋다. 내가 한참 어린데도 전혀 거리낌 없이 즐겁다. 나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내가 맛있게 먹으면 옆 사람도 맛있게 먹어서 더 살찌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지훈: 단톡방에서 괴상한 농담이나 주고받는 편한 사이다.
주이: 이치에 대한 생각과 세상을 보는 안목이 비슷한 편이고 다툼이 일어나면 (주로 나와 지훈)완기와 재현이 덕에 해소가 되기도 한다. 각자 맡은 바는… 얼마 전 지훈이가 단독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겠다.
완기의 책임감과 까칠함 뒤에 숨겨진 “배려”
재현의 절대적인 믿음과 “온화함”
주이의 추진력과 “강함(알고 보면 약함. 누군가가 보호해 줘야 됨)”.
미역수염 팀 활동 이외에도 반재현은 ‘baan’, 이완기는 ‘Traitor’로 활동 중이기도 한데, 향후 활동계획과 다른 멤버들의 개인활동에 대해서 궁금하다.
재현: ‘baan’은 내년 초에 정규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음악은 다 만들어 놨고 다른 준비를 이것저것 하고 있다. 이전과 많이 다른 스타일이다. 발매 전에 앨범에 관해서 설명하기는 힘들고.. 굳이 궁금하다면 공연장에서 미리 들어볼 수 있다..
완기: 트레이터는 보컬의 공백으로 3년간 활동을 부득이하게 쉬며 곡 작업만 해왔다. 빠른 시일 내에 새 보컬과 새로운 결과물을 준비 중이며 보낸 시간만큼 더 집중해서 빨리 많은 곡과 앨범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이: 미역수염과 트레이터, 반은 공유 캘린더에서 함께 스케줄을 조율하고 움직인다.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긴다면 미역수염보다는 가벼운 노이즈나 그런지 밴드를 하고 싶다.
지훈: 여건이 된다면 혼자만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
조금 지겨운 질문일 수 있겠다만, 최근 슈게이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여러 수요와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미역수염의 생각이 궁금하다.
재현 : 슈게이즈든 아니든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으면 재밌고, 아니면 재미없는 것 같다. 슈게이즈 자체에 매몰되면 당연히 재미없다.
주이: 일단 우리 음악을 설명할 때 귀찮아졌다. 누군가 미역수염의 장르를 물어보면 길게 설명하기 힘들 때마다 그냥 포스트 메탈에 슈게이즈 어쩌고 하곤 했다. 요즘은 우리와는 너무 다른 것들을 슈게이즈라고 부르기에 그런 슈게이즈라면 미역수염 음악 안에는 없는 것 같다. 결국 모든 건 ‘태도’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타인에겐 날이 서 있고, 내면은 표출해야 살아가겠고 그래서 오른 무대에서 관객과 눈도 못 마주치는 폐쇄적인 성정을 가진 이들의 행태에서 나온 하나의 ‘상징’이 슈게이즈라 정의 내려왔다. 그런 그들이 만들어 낸 음악은 아이러니하게도 폭발적인 노이즈와 펑크의 그것이다. 사운드 메이킹 공식을 따라 한다고 해서 슈게이즈라고 불리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다. 가식과 진심과 예의를 적절히 섞어 무대에서 던질 멘트를 연습하는 나 역시 일단 슈게이저 조건에서 탈락인 것이다.
뭐 본인들이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는 것에 관여할 바 아니지만 사실 뻔하면 재미도 감동도 없다. 여기에 대해서 하루 종일 떠들 수도 있지만 한 문장으로 줄여보자면 “우리가 차용해 온 비주류의 장르가 근래에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기도, 가끔 신기하기도, 그러나 불편해지기도 했다”고 써본다.
지훈: 미역수염은 슈게이즈가 아니라서 별로 할 말은 없다. 물론 소리나 코드에서 슈게이즈 적인 요소를 조금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저 전문성 없는 탈장르의 음악일 뿐이다. 수요가 늘어날 때 갈아타는 것은 본인들에겐 좋은 일. 힘내라.
요즘 주목하는 신인 밴드가 있나?
재현: 일가인과 철근콘크리트. 지금 가장 신선한 음악을 하는 두 팀이다. 올해 발매된 일가인의 EP는 가장 많이 들은 앨범 중 하나다. 철근콘크리트는 인스타에서 데모와 합주 녹음을 들어 볼 수 있는데, 완전 죽인다. 꼭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주이: 신인의 개념이 어디까지 인지는 모르겠지만 일가인도 좋아하고 철근콘크리트, 중고 신인 느낌의 야자수, 유령서점, 전다인이 하는 밴드들, 칩포스트갱, 피치트럭하이재커스… 찾아보면 너무 많다. 아, 그리고 밴드는 아니지만 김산돌.
지훈: 음악을 안 들어서 잘 모르겠다. 가깝게 지내는 ‘철근콘크리트’의 음악이 좋다. 곧 앨범이 나온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주이: 무조건 라이브! 2집은 4인조 밴드의 연주곡으로 채워져 있으니, 라이브가 더욱더 재밌어질 것이다. 멤버들도 기대 중이다.
지훈: 좋은 무대를 만드는 것 외에 별다른 계획은 없다.
이미지 출처 | 미역수염
Editor │양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