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나지 않는 밑창’이라는 뜻의 스니커(Sneaker)가 탄생한지도 벌써 100년의 세월을 훌쩍 넘겼다. 남들과는 다른, 더욱 독특한 제품을 손에 넣으려는 사람들은 현재 ‘스니커 게임(Sneaker Game)’ 혹은 ‘슈 게임(Shoe Game)’이라 불리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커다란 판을 형성했다. 추위나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신발을 위해 가게 앞에서 며칠 동안 장사진을 치는 이들이 있는 반면, 희귀한 신발을 얻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기도 한다. 일부 유명 미디어에서는 패션과 스니커를 따로 분류해 기사를 내보낼 정도로 스니커의 힘은 ‘패션’이라는 영역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올 한 해 스니커 게임은 무엇이 화제였을까? 간략히 요약해보자면, 최첨단 기술의 향연과 셀레브리티(Celebrity) 마케팅이 정점을 찍은 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개의 그림은 다른 노선을 향하면서도 묘하게 하나의 그림을 이루었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에서 확인해보자. 아직 미국 최대의 쇼핑 기간인 블랙 프라이데이가 남아 있긴 하지만 10월까지의 대형 이슈만으로도 올해 스니커 게임을 정리하기에 무리가 없다. 지금부터 총 2회에 걸쳐, 2015년 스니커 게임을 정리해보자.
1. Nike Mag
두말할 것 없는 올해 최고의 이슈이자, 나이키(Nike)가 왜 이 게임의 최강자로 군림하는지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 사례다. 1985년 영화 백 투 더 퓨쳐(Back To The Future), 나이키 맥(Nike Mag)의 첫 공식 발매(2011년), 그리고 올해 10월 21일 영화 개봉 30주년을 기념한 나이키 맥의 재등장까지, 일련의 이야기가 하나로 묶이면서 거대한 스토리보드가 완성되었다.
이쯤에서 4년 전 기억을 떠올려보자. 2011년 9월, 나이키에서는 나이키 맥의 발매를 공표하고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발매 소식에 어리둥절할 새도 없이 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여기서 나이키는 몇 가지 흥밋거리를 소비자에게 던졌다.
1) 경매 방식을 통한 1,500족 한정 발매. 수익금은 오래전부터 파킨슨병과 싸우고 있는 마이클 제이 폭스(Michael J. Fox)와 그의 재단에 기부할 것이라 밝혔다. 나이키 공식 홈페이지에는 마이클 제이 폭스의 말을 인용해 “파킨슨 커뮤니티와 신발 마니아, 그리고 영화의 팬들이 함께할 수 있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다”는 문구를 게재하기도 했다.
2) 영화와 같이 제품의 중창과 뒤축에 라이트가 구현되었다. ‘백 투 더 퓨쳐 신발’, ‘빛나는 신발’은 모든 이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3) 홍보 영상에서 에미트 브라운(Emmett Brown) 박사는 이것이 파워 레이스(Power Lace)냐고 묻는다. 이어지는 팅커 햇필드의 대답은 바로 “Not till 2015”.
가장 중요한 부분은 3번이다. 그렇다면 4년 뒤에는 파워 레이스가 구현된다는 말인가? 여기서부터 사람들이 미치기 시작한다. “2015년까지는 아니야”라며 여지를 남긴 나이키는 이 소재를 이슈화하면서, 또다시 새로운 이슈를 생산해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약속한 4년이 흘렀다. 팅커 햇필드가 파워 레이스에 대해 몇 차례 언급한 것을 제외하고는 10월 21일을 코앞에 두고도 나이키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다 미국 ABC방송의 지미 키멜 라이브(Jimmy Kimmel Live)를 통해 확연히 그 모습이 공개되었다. 영화처럼 발을 넣자마자 신속하게 감기는 모습은 아니지만,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고, 이로써 신발 산업은 한 단계 더 위로 올라섰다. 아직 최소 한 번의 이슈 몰이가 더 남았다. 바로 내년 봄, 2015년 형 나이키 맥이 발매되는 순간이다. 이 기회를 가만히 놔둘 나이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벌써 눈과 귀가 즐겁다.
지미 키멜 라이브에서 펼치는 두 배우의 열연을 감상해보자
2. adidas Yeezy 750 Boost
나이키가 연초 맥으로 시장에 선제공격을 가했다면, 아디다스(adidas)는 칸예 웨스트(Kanye West)와의 합작품 ‘이지 750 부스트(Yeezy 750 Boost)’로 응수에 나섰다. 미국 샤타운(Chi-town : 시카고) 출신의 칸예 웨스트는 현 힙합 신(Scene)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음악과 미술, 패션의 영역을 끊임없이 넘나들며, 이제 대통령의 자리까지 엿보고 있다. 200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선보인 나이키 에어 이지(Air Yeezy)가 지금 그의 행보를 예견이라도 하듯 점프맨을 능가할 정도의 히트를 친다. 후속작은 더했다. 국내의 경우, 에어 이지 2의 발매 날, 와우산로에서부터 시작된 긴 줄은 상수역 근방까지 닿을 정도였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도 이지라는 이름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그런 그가 나이키와의 관계를 정리한 뒤에, 아디다스와 함께 이지 시즌(Yeezy Season)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판을 짜기 시작했다. 그 시작이 앞서 언급한 이지 750 부스트(이하 이지 부스트) 되시겠다.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칸예 사단의 무지막지한 지원 사격에도 불구하고, 실제 처음 공개된 이지 부스트의 모습은 썩 좋지 못했다. 디자인 자체의 문제보다는 기존 나이키와의 협업물로 형성된 이지 시리즈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고, 지금처럼 이지 시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발등의 덮개를 제외하고는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모습이었기에 각종 패러디가 속출했고, 위 사진과 같은 ‘명짤’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이미 내년 봄 발매될 이지 시즌 2가 공개된 상황에서 당분간 칸예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풋웨어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욕심 많은 그의 행보는 이지 시즌이 단발성 이벤트가 아님을 짐작하게 하지만, 이제 컬렉션 전반을 다루다 보니 상대적으로 신발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카즈키(Kazuki), 라프 시몬스(Raf Simons) 같이 이미 아디다스와 함께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들과의 협업과 같은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점쳐본다.
3. Supreme x Nike Jordan 5
혹자는 이번 협업을 두고 끝판왕과 끝판왕이 만났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반스와의 협업만큼이나 꾸준히 이어진 나이키와의 협업이건만, 20년이 넘는 슈프림의 역사에서 조던(Jordan Brand)이란 이름이 등장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던 브랜드가 나이키의 하위 브랜드이긴 하나 그 영향력에 있어 나이키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올해로 발매 25주년을 맞는 조던5는 마이클 조던이 1990년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69점을 획득할 당시 그의 시그니쳐 제품이었고, 아이스 솔을 사용한 첫 번째 제품, 반사 소재를 사용한 첫 번째 제품이라는 점에서 꼭 슈프림과의 협업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서 꽤 기념비적인 모델이다.
하지만 처음 유출 사진(카모)이 공개되었을 당시,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후 검은색과 흰색 제품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진정되는 듯했지만, 슈프림 x 에어 포스나 슈프림 x 폼포짓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는 결과물이었다. 물론 이 정도 사이즈라면 전쟁은 불 보듯 뻔했다. ‘슈프림과 조던의 이름값이라면 높은 프리미엄을 받지 않을까?’하는 기대치가 일반 구매자까지 리셀러로 변하는 좋은 구실이 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한 주 지나 발매된 슈프림 x 조던 의류 컬렉션까지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으며 슈프림 x 조던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브랜드 파워에 비해 너무 성의 없는 디자인이 아니냐는 말과 함께, 상당히 ‘짭’스러운 심볼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진행될 다른 조던 모델과의 협업이 상당히 우려스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반대로 ‘이제 시작’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분명한 것은 두 브랜드의 시선이라면 그들 스스로가 힘겹게 쌓은 아카이브를 허투루 보지 않을 것이다.
이어질 Part. 2에 등장할 스니커들도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