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시즌 슈프림(supreme) 액세서리 군에 대한 소비자 관심도가 증폭하고 있다. 비교적 싼 값에 슈프림을 소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종류에 따라 일반 의류 군을 웃도는 가격을 자랑하는 제품 또한 상당한데, 어쨌든 슈프림이 매번 내놓는 액세서리는 컬렉션의 재미를 배가한다. 슈프림은 액세서리에 있어 다른 패션 브랜드와 확실히 구별된다. 이번 시즌 프리뷰에서 공개한 ‘벽돌’ 같은 말도 안 되는 것부터 유리컵까지, 이미 여러 브랜드에서 복제품마냥 뽑아내고 있는 머그잔은 옛날 옛적에 졸업했다. 굳이 컵을 팔아야 하겠다면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의 작품을 한쪽에 삽입한다든가, 금테가 두른 유리잔이나 에스프레소 잔을 내놓는 게 슈프림의 자존심일지도.
슈프림은 해가 갈수록 영민한 두뇌 회전을 펼치는데, 굳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슈프림이기에 가지고 싶은 물건’을 판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어처구니없는 제품일수록 히트하고, 슈프림 박스 로고가 새겨진 각종 떼기를 모아 자랑하는 일은 진정한 슈프림 마니아의 징표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오토바이 헬멧에 새겨진 슈프림 박스 로고, 써모스 보온병에 새겨진 슈프림 박스 로고 등 슈프림 박스 로고가 있다면, 개를 키우지 않아도 개밥그릇을 사는 일까지 불사하는 마니아 덕분에 이들의 기이한 행보는 갈수록 더 쿨해지고 있다.
사실 한 해에 망치를 쓰는 일이 얼마나 있겠느냐만, 벽에 못을 박을 때 무심코 꺼내게 되는 망치가 슈프림 제품이라는 사실은 다수의 하입비스트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무심코 꺼낸 망치가 슈프림이라고’ 같은 느낌으로. 이런 사람들에게 뻗대려면 슈프림 박스 로고 후디를 입는 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런 것쯤이야 집에 수두룩하게 있을 테니까. 이런 슈프림의 재기발랄함은 시즌 첫 드롭 사은품에서도 이어진다. 담배를 마는 롤링 페이퍼, 이쑤시개, 급기야 이번에는 포춘 쿠키에 더할 나위 없이 무례한 문구를 때려 박아서 웃음을 선사했다.
반대로 슈프림과 자주 비견되는 브랜드는 역시 스투시(Stussy). 슈프림이 적잖은, 그리고 훌륭한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액세서리 신(Scene)에 새로운 역사를 적어내고 있다면 스투시 재팬은 2011년부터 자체적으로 리빙 제너럴 스토어라는 라벨을 전개하며 일상생활에 필요한 갖가지 물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스투시 리빙 제너럴 스토어의 제품군을 살펴보면 스투시 마니아의 라이프 스타일에서도 스투시를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슈프림이 신명 나게 팔아 재끼고 있는 헤인즈 박서 브리프 역시 스투시 밴드로 만나볼 수 있으며 이어폰과 룸 슈즈는 물론, 커피콩과 그라인더까지 판매한다.
아기자기한 일본 감성으로 가득 채워진 스토어는 부모님 집에서 얹혀살다 이제 막 독립한, 어린 시절부터 스투시 어패럴을 입던 청소년이 독립 후 어른이 되는 길을 자연스레 인도한다. 옷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브랜드 오타쿠에게 또 다른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스투시 고유의 폰트가 큼지막이 새겨진 매트를 밟고 스투시 로고가 적힌 캔버스 슬리퍼를 신은 뒤 화장실로 직행, 스투시 세안제로 세수하는 프로세스를 가능케 하는 일이 스투시 리빙 제너럴 스토어의 역할이다.
이런 브랜드의 액세서리 게임에 베이프(A Bathing Ape) 또한 빠질 수 없다. 카무플라주라는 게 애초부터 정말 많은 범위의 제품에 적용할 수 있어서 이를 활용한 재미있는 액세서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어떤 제품이든 베이프 고유의 유인원 카무플라주를 발라버리면 그만. 덕분에 이를 활용한 가구에도 눈을 돌리며 어마어마한 가격대의 액세서리를 뽑아내고 있다. 그 엄청난 가격표를 봤을 때, 이태리 고급 통가죽도 아닌 그저 캔버스에 베이프 카무플라주만을 덕지덕지 발라내 붙인 의자, 소파, 테이블을 사들이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슈프림 못지않은 팬덤을 보유한 베이프의 저력은 이런 걱정을 코웃음 치며 너무나도 쉽게 팔아치워 버린다. 일본이 워낙 아기자기한 때기를 좋아하는 나라라 그런지 정말 무궁무진한 아이템이 나온다. 스웨덴의 유명한 칫솔 브랜드 테페(TePe)와 협업한 칫솔, 휴대용 나무젓가락, 문구 세트 같은 것을 만들며 더욱 충성스런 베이프 마니아가 되기를 종용한다.
다양하고 허무맹랑한 액세서리를 내놓는 브랜드가 스트리트 브랜드에 국한된 건 아니지만, 스트리트 브랜드가 제작하는 액세서리의 의미는 생각보다 깊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소비자에 맞춰 라이프 스타일 프로덕트를 제작하는 현상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려는 브랜드의 노력과도 같다. 성인이 되어 직업을 갖게 되고 어느 정도의 수입이 생겼을 때, 그 취향을 집 안에서도 가득 메우는 행위는 브랜드 마니아의 새로운 미션과도 같다. 그리고 브랜드는 그에 걸맞은 아이템을 제공해주면 될 뿐이다. 앞으로 어떤 무궁무진한 아이템으로 우리의 돈을 앗아갈지 모르지만, 마냥 유스 컬쳐에 걸쳐있을 것 같던 스트리트 브랜드의 성숙은 지켜보는 것만으로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