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on Cladel, Minhyuk Lee ph. Taehyun Kim
스케이트보드 디스트리뷰션이자 스케이트 크루로 서울에서 부지런히 활동 중인 뤄썸(RVVSM)이 얼마 전, 유럽으로 산뜻한 여행을 다녀왔다. 일반 여행자의 여행과 스케이터의 여행은 아무래도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세계 어딜 가나 휠 구르는 소리와 함께 도시에 민폐 끼치는 스케이터들의 응집력은 이럴 때 발휘된다. 지역 깊숙한 구석까지 안내하는 로컬 스케이터 덕분에 그들은 낯선 곳에서도 관광객을 먹이 삼는 장사치들의 손길을 뿌리칠 수 있으며, 그 도시의 냄새와 맛을 그 어느 여행자보다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자, 각설하고 그들이 느낀 유럽은 어땠는지, 스케이터 이민혁의 글을 빌어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도록 하자.
작년 가을, 인터넷에서 찾은 파격적인 가격의 파리행 항공 티켓은 올겨울 나에게 잊지 못할 큰 추억을 선사해주었다. 우리는 고민할 필요 없이 티켓을 구매했고, 그 뒤로는 언제나 파리로 떠날 날을 그리며 함께 계획을 세웠다. 얼마 후 나, 문택이 형, 태현이 형 그리고 중간에 합류한 배추 형까지 우리는 사진 속에서만 바라보던 파리에서 기분 좋은 여행을 하고 있었다.
Richard Lenoir
첫 번째로 발을 디딘 도시 파리에서 잡은 첫 숙소는 ‘Parmentier’역 근처에 위치했다. 우리는 동화에 나올 법한 평화로운 그 동네를 좋아해서 다른 숙소로 이동했을 때도 ─ ‘Charles de gaulle Etoile’역 근처와 ‘Bastille’역 근처 숙소를 이용했다 ─ 자주 가고는 했다. 유럽 여행이 처음인 나에게 파리의 모든 것은 새롭게 다가왔다. 서울보다 춥지 않은 ─ 6’C 정도의 ─ 날씨의 낯선 풍경이 나를 기분 좋게 했다. 실제로 우리는 여행한 한 달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파리에서 보냈고, 나중에 다시 유럽에 가더라도 그 계획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 아마도 크루징하기 좋은 길거리와 맛있는 음식 그리고 파리지앵이 그 이유일 것이다.
기억나는 음식은 팔라펠과 크레페인데, 특히 크레페의 맛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투어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선택한 음식과 마지막 식사 역시 크레페였다. ‘Monge’ 지역에 있는 ‘Au P’tit Grec‘은 관광객이 선호하는 음식점이라 꽤 많은 대기줄이 있었지만, 막상 먹어보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외의 음식 역시 훌륭했다. 서울에서 편의점을 가듯, 파리의 마트 역시 자주 찾았는데, 과일을 꽤 많이 먹었던 것 같다. ‘Valerian’이 소개해준 숙성 햄 또한 최고였다.
Republique
La Defense, Minhyuk Lee
La Defense, Michel
우리는 파리에서 몇 명의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은 모두 친절했다. 그 중 ‘Michel’은 ‘Republique’ 광장에 보드 타러 갔을 때 처음 만난 친구인데,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우리와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 번은 그의 도움으로 찾기 어려웠던 ‘La Defense’ 근처의 스팟 ─ 지붕이 있어서 비를 맞지 않는 주차장 근처의 스팟이었다 ─ 에 갈 수 있었고, 그곳은 비가 자주 내린 파리에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비 오는 날마다 ‘La Defense’에 가지는 않았다.
우리는 아침이 오면 숙소 앞 커피숍에서 하루를 계획했는데, 비 오는 날에는 보드를 타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관광했다. 우리는 루브르를 시작으로 피카소 박물관, 사냥과 자연사 박물관 등을 돌아다니며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파리를 즐기고 런던으로 넘어갔다.
Southbank, Minhyuk Lee
Mile End
Mile End, Moontaek Oh
런던에서 우리는 일정의 대부분을 ‘Mile End Skatepark’에서 보냈고, 밤에는 숙소 근처의 ‘Covent Garden’을 돌아다녔다. 물론 ‘Southbank’도 몇 번 갔지만, ‘Mile End’가 가장 재밌었다. 그래피티로 도배된 기물은 타기에 그리 어렵지 않아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스케이트파크가 스티커가 아닌 그래피티로 가득 차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Mile End’에 처음 도착한 날 나와 형들 모두 말도 없이 두세시간 동안 파크 안에서 크루징했던 게 기억난다. 아무래도 파리에 머물 때, 비가 많이 내려서 그간 보드를 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랜 것 같다.
Hide Park ph. Taehyun Kim
런던은 듣던 대로 물가가 비쌌지만 ─ 지하철 편도 한화 8000원 ─ , 생각보다 괜찮은 가격에 좋은 음식을 파는 식당을 발견했고, 운 좋게도 그런 음식점을 몇 군데 더 알아냈다. 한 번은 휴식할 요량으로 ‘Hide Park’를 찾은 적 있는데, 집값이 터무니없이 비싼 런던에 이런 큰 규모의 공원이 조성되어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우리는 ‘Hide Park’ 안에서 오리 떼를 구경했다. 사람을 딱히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가까이 다가갔다가 반대편에서 개 한 마리가 오리 떼에 달려드는 바람에 몇십 마리의 오리가 날아온 나머지 우리는 소리 지르며 몸을 숙였고, 오리가 지나간 뒤에는 서로를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런던 역시 좋은 시간이었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세 번째 도시인 베를린으로 향했다.
베를린 날씨는 매섭게 추웠고 눈, 비가 내리는 통에 보드 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우리가 간 곳은 역시나 클럽이었고, 라인강 변에 위치한 ‘Watergate’에서 밤새워 놀았다. 그 숙취는 무계획으로 이어졌고, 여행 막바지 피로 쌓인 몸에 휴식을 주기로 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기력을 되찾은 우리는 ‘Bright Trade Show’를 찾았다. ─ Bright Trade Show는 현재 유럽에서 진행되는 가장 큰 스케이트보드 페어다 ─ 처음가본 스케이트보드 페어의 규모는 대단히 컸다. 유럽의 거의 모든 스케이트보드, 패션 브랜드의 부스가 건물을 가득 채웠고, 그 가운데 기물을 두고 스케이트 잼을 진행 중이었다. 행사장은 딱히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지 않은 분위기였고, 많은 이들이 친절하게 대해줘서 편안함을 느꼈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저녁에 큰 규모의 유럽 스케이트보드 시상식이 예정되었는데, 우리는 다음날 일찍 다시 파리로 돌아가야 하는 바람에 참여하지 못했다.
Champs Elysses
서울로 돌아가기 전, 우리는 다시 파리에서 4일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지나간 여행을 떠올리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번 새해를 서울이 아닌 곳에서 맞이했다. 2018년 카운트다운을 외칠 때 그래픽으로 뒤덮인 개선문 위로 터지는 폭죽을 바라보며 올 한해를 기분 좋게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럽 여행에서 우리는 세 도시에 머물렀다. 하루하루가 새로웠기에 그만큼 아쉬움도 남는다. 즐거운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들과 다시 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 │ 이민혁
사진 │ 배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