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브러쉬를 이용한 여성 인물 묘사로 70년대부터 유일무이한 행보를 보이며, 일본의 패션 광고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한 야마구치 하루미(Harumi Yamaguchi). 일본 유명 백화점인 파르코(PARCO)가 70년대 당시 박물관과 연극, 출판 등 종합적인 문화시설로의 변신을 꾀하며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임한 사람이 바로 야마구치 하루미다. 그녀가 그린 여성을 ‘하루미 걸즈(Harumi Gals)’라 칭하는데, 하루미 걸즈와 파르코 백화점의 홍보 전략이 아름답게 맞아떨어져 새로운 삶을 지향하는 일본 여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영향력은 사회 현상이라 불릴 정도였다고. 그녀의 그림을 보면 여성을 시각화했지만 에로티시즘으로 연결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이미지에 등장하는 여성들 스스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야마구치 하루미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소라야마 하지메(Hajime Sorayama)와 함께 시부야에 자리한 ‘난즈카(Nanzuka) 갤러리‘에 소속되어있다. 컴퓨터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그렸기 때문일까. 인위적이지만 양산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 매력적인 작품은 2017년 스투시(Stussy)와 협업도 진행한 바 있다. 난즈카 갤러리의 공식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그녀의 그림은 70~80년대 작업이지만, 그 멋은 아직도 유효하다. 야마구치 하루미 실제 작품을 국내에서 보길 희망하며, 언젠가 거실 벽에 화려하고 커다란 그녀의 그림을 거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