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로봇공학과 인공지능(AI), 그리고 미술의 교집합 속에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아그네츠카 필라트(Agnieszka Pilat). 그녀는 작품을 창작할 때 다른 예술가처럼 붓이나 연필을 들지 않는다. 그녀의 역할은 4족 보행 로봇개인 바시아(Basia), 바냐(Vanya), 버니(Bunny)가 대신하기 때문. 이들의 정체는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미국 로봇전문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가 개발한 로봇개로, 필라트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 개들을 보고 사랑에 빠져버렸다. 이후 보스턴 다이내믹스에 직접 연락해 로봇개와 협업이 가능한지 문의했고, 이후 로봇개의 사용법을 배워 기발한 프로젝트를 펼쳐내기 시작한다.
필라트는 몇 달 동안 3마리의 로봇개를 가르친 뒤, 입에 붓을 물려 거대한 캔버스 위에 마음껏 그림을 그리게 했다. 개들은 장착된 카메라와 센서, AI를 활용해 주변 공간을 파악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완성된 그림 작품은 총 36점으로, 일부는 최고 4만 달러(약 5,300만 원)에 팔리기도. 이런 화제성에 힘입어 호주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NGV)은 로봇개들이 지내면서 작품 활동을 펼칠 수 있는 맞춤형 스튜디오도 마련했다.
프로젝트 초반 로봇개들은 항상 사람과 함께 있어야 했고 학습 및 관리가 필요했지만, 현재는 QR코드를 통해 자율적으로 공간을 탐색하고 그림을 그린다. 만약 충전이 필요하면 자연스레 도킹 스테이션에서 휴식을 취한다. 또한 그녀는 최근 생성형 AI를 주제로 한 전시회 ‘헤테로보타(Heterobota)’를 개최하며, 기술의 급진적인 변화에 주목하는 동시에 예술과 기계의 융합으로 미래 기술도 충분히 창의적이고 표현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기계가 비인간적이고 위협적이라는 일반적인 편견에서 벗어나, 현대에 이를 유쾌하고 예술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그녀는 “창의성과 표현에 대한 기술의 잠재력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싶다”고 말하며, 이를 모토로 다양한 활동을 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미지 출처 | Agnieszka Pil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