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미지 범람의 시대라 할 수 있는 21세기. 발전된 기술과 매체의 확장으로 너무나도 손쉽고 저렴하게 이미지를 감각하고 학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이미지에 대한 불평등은 해소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술의 진보에 따른 이미지 홍수를 과연 축복으로만 볼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범람하는 이미지는 많은 창작자가 스스로 그에 종속되며 스스로 발목을 잡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소위 ‘무드(Mood)’라 불리는 감각에 의한 직관만을 경험하기 쉬워졌고, 이미지가 내포하고 있는 원리와 철학은 점점 간과되기 시작했다. 더더욱 논리와 간학문적 접근을 요하는 건축과 실내 디자인의 경우, 특정 레퍼런스를 답습한다는 것은 그 방대한 고찰의 과정을 획득하는 것이기에 창작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터. 그리고 여기 이러한 시류에 일침을 가하는 계정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버진 올지아티(Virgin Olgiati)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인 위 계정은 한국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의 프로젝트들이 지닌 유사성을 제기하고 있다. 계정을 둘러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계정이 연상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맞다. ‘Diet Prada’. 한국 공간 디자인계의 ‘다이어트 프라다’을 자처한 위 계정은 현상 설계 공모안부터 다양한 설계안과 디자인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으며, 단순 공간만이 아닌 오브제들을 향한 유사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 특징. ‘비참조적 건축(Non-referential Architecture)’라는 저서를 통해 독자성에 대해 역설한 스위스 건축가 벨레리오 올지아티(Valerio Olgiati)로부터 기인한 계정명에서 알 수 있듯이 버진 올지아티는 한국 디자인 신(Scene)을 항해 차디찬 냉소를 보내고 있다.
위 계정이 제기한 프로젝트들 중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다분해 보이는 프로젝트도 있지만, 물음표를 던지게 만드는 의혹도 다수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 하지만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남긴 ‘사실 스스로가 진실을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에 관한 사람들의 논평이 있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란 말처럼 이런 의혹들은 건강한 디자인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 표절 진위를 떠나 문제가 제기된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에게는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기에 이러한 의혹들을 제기할 때는 책임감 또한 선행되어야 할 터이지만, 그렇다고 위 계정이 제기한 안건에 대해서 창작자들 또한 마냥 가볍게만 생각하면 안 될 터.
진지한 고찰이 창작자와 경험자 모두에게 결여되어 가고 있는 우리. 그리고 무한히 재생산되는 이미지들과 노골적인 모방이 시대정신을 대체하게 된 현재. 버진 올지아티를 많은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이 마냥 성가신 존재로만 치부하면 아니 될 것. 기능이 먼저냐 형태가 먼저냐 보다 해묵은 창작과 모방에 대한 논쟁. 버진 올지아티가 불을 지핀 이 논쟁에 과연 어디까지가 모티프와 영감일지 직접 한번 판단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