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의 등장과 퇴장이 단순 사건으로 퉁쳐지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봤다. 그렇다. ‘퉁쳐짐’. 이와 같은 일종의 치환 행위가 어떤 가치들을 감가되는 것을 보니, 그리고 치환 과정에서 간과되는 것들이 많은 것을 보니 천재들을 향한 수식은 야속하게 많은 것들을 덜어내는 듯하다. 이는 1960년대부터 20년 간 미술계에 몸담은 어떤 천재를 두고 자연스레 들 수밖에 없는 생각이다.
한국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인 최욱경의 회고전이 10월 27일부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다. 최욱경. 우리는 그녀를 ‘미국 현대 미술의 구심을 수용한 작가’로 알고 있다. 맞다. 최욱경은 한국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가 맞다. 허나 그녀가 여성해방주의자로서, 교육자로서, 시인으로서의 활동과 성취가 ‘한국의 대표적 여성 추상미술가’라는 수식에 가려져 있다는 것을 부정 못 할 터.
때문에 이번 회고전이 그녀의 미술과 문학이 연계되는 지점을 다각도로 조명한다고 하니, 회고전으로 던져질 담론들의 귀추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난 8월까지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에서 진행되었던 ‘Women in Abstraction’전에서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에바 헤세(Eva Hesse)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후 회고전이 진행되는 터라 더욱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는 그 이유. 파리 퐁피두센터를 거쳐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Guggenheim Museum Bilbao), 그리고 다시 과천으로 최욱경의 영향력은 순회하고 있는 듯하다.
최욱경의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의 경우,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새벽 길가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의 기분을 느끼게 하는데 이를 좀처럼 잊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작품은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과는 다른 알싸한 달콤함이 맴도는 추상표현주의를 선사하는데 이를 한번 맛보면 결코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
그녀의 작품과 전시가 그대들의 마음에 울림을 줬다면 그녀가 남긴 운문과 산문, 논문까지 그 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을 조용히 종용해본다. 아니, 반 강요해본다. 그녀가 수많은 작품들을 답습하고 끝없이 행한 연구와 실험의 결과를, 천재의 생각과 시간을 우리는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과천으로 향하는 차편에 몸을 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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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정보
일시 | 2021년 10월 27일 ~ 2022년 2월 13일
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이미지 출처 |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