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가? 깔끔한 정장 차림에 토시를 끼고 입에는 파이프 담배를 물고 도면을 멋들어지게 그리는 인상부터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채 자신이 지은 집 앞에서 흡족한 모습을 한 인상까지 다양할 것. 대부분 건축을 향한 이미지는 우리가 생활하는 건축물을 축조하는 데 국한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들이 건축물을 짓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작게는 가구 디자인부터 파빌리온(Pavilion)이라 불리는 조형 작품까지 그 활동 반경이 꽤나 넓은 편. 이는 생각보다 근사하며, 때로는 새로운 사조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건축가가 왜 하냐고? 이를 통해 건축가들은 새로운 건축 언어를 실험하거나 자기 작품을 다른 형태로 설득을 위한 창구가 되기 때문. 무엇보다 어떤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과 해결 방안을 선보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된다. 건축적으로 제시하는 장이 되곤 한다. 순수 미술 작품들과는 다른 접근의 톤앤매너를 맛볼 수 있는데, 평양냉면을 먹다가 처음 진주냉면을 맛본 후 눈이 번쩍 떠지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을 터. 그리고 이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전시가 개최된다.
현대자동차가 ‘미래세대를 위한 새로운 거주 환경에 대한 비전’을 주제로 한 ‘해비타트 원(Habitat One)’전을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개최한다. 기후 변화에 대응함과 더불어 지속가능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거주 환경과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로 채워진 이번 전시를 위해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 전진홍, 최윤희가 이끄는 바래(BARE), 클라우디아 파스케로(Claudia Pasquero)와 마르코 폴레토(Marco Poletto)를 주축으로 런던을 기반한 에콜로직스튜디오(ecoLogicStudio)가 참여했다. 두 스튜디오 모두 리서치를 기반한 실험 건축을 선보이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이쪽 분야에서는 정평이 나 있는 베테랑 중 베테랑으로, AI를 비롯해 로봇과 미생물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적극 도입한 것을 넘어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소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5점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특히,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Watch and Chill 2.0: Streaming Senses’전에도 참여 중인 바래의 경우 로봇을 활용한 인터렉티브 작품과 공기막을 활용한 작품을 통해 지속가능한 형태의 건축 조형적-구조적 확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편, 에콜로직스튜디오는 미생물을 활용하여 공기 정화 등 적극적으로 건축 환경에 대응하는 ‘gH.O.R.T.U.S. XL Astaxanthin.g’ 같은 조형 작품들을 통해 생명 공학과 건축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과 미세조류가 공생 가능한 환경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두 스튜디오의 작품과 리서치 모두 런던발 실험 건축의 경향이 고스란히 잘 묻어나는 대목. 한국 건축계에서는 보기 드문 매체의 작업과 톤앤매너라는 점에서 무척 인상적이다.
극심한 기후 변화를 체감하며 현재와 무관하지 않은 어젠다가 되어버린 기후 변화에 주거 환경과 생활 양식 또한 변화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만큼, 건축계가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된 담론과 발맞춰야 하는 시점에서 이번 전시가 건축계를 넘어 공학계와 순수 미술계에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고무적일 것으로 보인다. 건축가들의 새로운 면모와 그들의 작업물이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전시 정보를 확인해 보자.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 공식 웹사이트
BARE 공식 웹사이트
ecoLogicStudio 공식 웹사이트
행사 정보
일시 | 2022년 7월 7일 ~ 2023년 1월 8일
장소 |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 (부산광역시 수영구 구락로123번길 20
이미지 출처 | 현대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