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과오는 초조, 방법적인 것의 때 이른 중단, 그럴듯한 일을 그럴듯하게 말뚝 박아 넣는 것이다’라고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말하지 않았는가. 미와 추, 남과 녀, 흑과 백. 이분화된 개념을 우리는 의심 없이 답습했고, 그 외의 것은 철저히 배제해왔다. 연속적인 자연 이치를 이산적으로 세절했고 거기에 경도되어버린 것. 다원사회라 불리는 지금, 양자역학이라는 확률의 세계는 이진법에 의해 위협당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베네수엘라 출신의 한 뮤지션은 오만함으로 무장한 이진법을 세절해버렸다.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활동 중인 아르카(Arca)가 [Kick ii]부터 [Kick iiiii]까지 4장의 앨범을 차례로 발표했다. 이로써 2020년 [Kick i]으로부터 시작한 [Kick] 5부작의 대서사가 완성된 것. 레이디 가가(Lady Gaga), 세가 보데가(Sega Bodega),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와의 협업, NTS 10주년 큐레이션 등 누구보다 바쁜 2021년을 보낸 와중 앨범 발매 소식으로 많은 리스너를 전전긍긍하게 만든 그녀이다. 2부부터 4부까지 12월 3일 동시 발표를 예고했으나, 11월 30일부터 차례로 발표하며 허를 찌르는 유머로 프로젝트의 포문을 열었다. 이같은 순도 100%의 ‘아르카스러움’이 함유된 ‘아르카식 유머’는 12월 3일만을 기대하며 편두통을 앓던 리스너들에게 좋은 아스피린이 되어 감상의 풍미를 더 했다.
이번에 발표한 [Kick ii], [Kick iii], [Kick iiii], [Kick iiiii]은 총 47트랙으로 꽉 채워져 있으며 각기 다른 주제 의식과 감정을 다양한 화법을 통해 구사하고 있는데, 그 방식에 있어 뻔한 바 하나 없이 탁월함으로만 점철되어 있다. [&&&&&]이나 [Xen]과 같은 초기 작품의 차가운 조소부터 [Mutant]와 [Arca]의 지극히 사적인 감정의 포효, 그리고 최근 아르카가 행하던 실험들까지 모든 것이 복잡하고 섬세하게 집대성되어 있다. ‘Confianza’, ‘Xenomorphgirl’, ‘Alien Inside’와 같은 곡은 앞서 선공개한 곡들로 이번 앨범들을 섣불리 예측하는 것 자체가 이진법적 사고였음을 반성하게 만들며, 마찬가지로 작년 많은 이들에게 물음표와 따옴표를 던지던 [Kick i]의 의도와 배치가 자명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왔듯 하이퍼팝이니, 힙합이니, 레게톤이니 장르라는 이진법 개념을 아르카는 철저히 조미료로만 사용하고 있다. 그 결과 [Kick ii]에서의 짜고 신 맛은 [Kick iiii]의 단맛으로, [Kick i]의 기름진 맛은 [Kick iii]의 매콤함으로 잡으며 완벽한 희로애락의 서사를 만들었다. 한편 전매특허인 아르카식 향신료의 향연은 물론 [Kick iiii]에서의 낙관이 가미된 이 완벽한 식사는 호불호와 상관없이 모든이를 설득시킨다. 이로써 우리는 그녀가 빈칸으로 둔 48번째 줄의 방정식에 답할 수 있게 한다. 각기 다른 산해진미로 이루어진 한 상 차림의 연속인 이 코스 요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주의 진리가 담긴 새 육신은 물론 이진법의 제단에서 벗어난 자신 본연 모습은 덤으로 발견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아르카는 [Kick] 프로젝트 5부격인 [Kick iiiii]을 12월 3일 깜짝 발표했다. 그간 팬들 사이에서 루머로만 무성하던 [Kick iiiii]을 본래 발표 예정일이던 12월에 3일에 기습 발표한 것이다. 이 예기치 못한 새 앨범에는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가 이름을 올렸는데, 두 거장의 협업 또한 루머가 아닌 사실임에 팬들은 환호할 수밖에. 4일 동안 4장의 앨범을 발표하는 저력을 우리는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가 빛나는지 모른다. 빛나는 모습을 스스로 모르고 있었을 뿐, 우리는 항상 빛나고 있었다. 칠흑 같은 밤이라도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본다면 너무나 환히 빛나고 있는 법. 각기 달리 빛나고 있는 개개인의 존엄을 탐구하고, 이진법에 의해 가려져 버린 이들의 목소리 내고 있는 아르카의 [Kick] 시리즈는 단순히 음악 작품으로만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은 예년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음에 아르카가 선물한 이 이야기들로 인해 도래될 신인류의 문화사를 기대해보도록 하자.
이미지 출처 | XL Recording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