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골 백반집. 마른반찬 몇 개와 나물, 김치 그리고 청국장 하나로 구성된 단출한 구성의 한 상. 우리는 이 한 상이 그 어떤 값비싼 산해진미보다 깊고 짙은 맛과 감동을 준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심연의 관록. 우리는 그것을 장인정신이라 부른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장인들이 그 무엇을 어떻게 선보여도 기가 막히게 맛있다는 것을. ‘장인’이라는 단어가 남용되면서 그 의미와 무게가 화성의 중력만큼 가벼워지는 동안 진짜 ‘장인’들은 여전히 존재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의 관록은 특유 손맛의 형태로 우리의 중추신경을 춤추게 한다.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활동 중인 베네수엘라 출신의 프로듀서이자 디제이인 세이프티 트랜스(Safety Trance)가 새 EP 앨범 [Noches de Terror]이 보이즈 노이즈 레코즈(Boysnoize Records)를 통해 발표했다. 이제는 카르도푸셔(Cardopusher)란 이름만큼 익숙해진 그의 게레톤(Reggaeton) 페르소나 세이프티 트랜스. 카르도푸셔로서 제일 잘하는 바가 신선한 재료가 되어 차세대 게레톤 장인인 세이프티 트랜스가 관록 깊은 손맛으로 튀기고, 볶고, 무쳐가며 만든 이번 앨범의 인장력은 필히 알현해야 할 이유가 된다.
일전에 선공개한 수록곡 “El Alma Que Te Trajo”로 인해 과거 아르카(Arca)와 함께한 “Prada”나 “Rakata”와 같이 기존 레게톤의 어법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은 구조의 연속일까 봐 걱정했는가? 그런 걱정은 하덜덜 말 것. 그가 새로이 직조한 레게톤의 패턴은 가히 그가 왜 바르셀로나에서 하드코어로 정평 난 장인인지를 증명해준다. 본래 게레톤 기저에 깔린 카리브 해안의 광활함은 완전히 해체되어 한땀 한땀 촘촘히 직조된 순백의 도화지가 되어 검은 물감을 견고히 흡수하고 있다. 더불어 해체했음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소금기 가득한 공간감은 최근 성행 중인 네오 뻬레오(Neo Perreo)나 디컨스트럭티드 클럽(Deconstructed Club)으로의 분류가 어렵기에 새로운 범주의 필요성이 느껴질 정도.
“Besos De Fuego”과 같은 트랙을 향한 ‘쓰읍… 이거 레게톤으로 봐도 되는 거 맞아?’하는 의문은 마지막 트랙 “SXXRGGTN”에서 ‘으악! 어쩌면 이게 바로 레게톤이었을지도 몰라!’와 함께 수긍하게 된다. 그렇다. 결코 그 의도와 고찰이 가볍지 않다. 특히 작년 ‘NTS Radio’에서 보여준 셋이나 세이프티 트랜스란 이름으로 올 초 ‘EOS Radio’에서 보여준 셋에서 확인할 수 있듯 레게톤과 테크노, IDM과 EBM, 엠비언트와 노이즈, 브레이크코어 나아가 멤피스까지 변전의 장르들 사이 새로운 역학 관계를 도출하고자 한 그의 실험에 대한 해답과 포부가 이번 앨범에도 고스란히 담겨있으니 말이다. 어마어마한 이 앨범, 불가항력적인 환호와 기립 박수가 동반될 것이기에 방에서 혼자 듣길 감히 권해 본다.
이미 남유럽과 라틴 아메리카 내 레게톤에 대한 수요와 공급은 거의 포화 상태에 다다른 상태. 어느 정도 한계의 국면에서 진입한 이 시점에서 세이프티 트랜스는 대척점에 서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는 서울의 밤거리에서도 쉽게 레게톤에 몸을 맡겨 춤추는 인파를 쉽게 볼 수 있는 요즘, 이번 앨범이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시사하는 바는 제법 클 것. 반복되는 식단과 그저 그런 손맛에 더위까지 먹어 힘든 요즘, 지금 바로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박차고 나와 베네수엘라 출신의 장인이 선보이는 새 역사의 시발점을 향해 달려가 보도록 하자.
Cardopusher/Safety Trance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Boysnoize Records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Boysnoize Records 공식 웹사이트
이미지 출처 | Boysnoize Rec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