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많은 이들은 기대감과 걱정을 품은 채 새천년을 기다렸다. 누군가는 이 시간을 디스토피아라 표현했고, 다른 누군가는 유토피아라 여겼다. 이처럼 새로운 시대가 부상함에 따른 우리의 반응도 엇갈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새 시대 또한 일상의 어떤 흐름의 일부였다는 사실이다. 막상 21세기가 되고 보니 우리는 어제와 다를 바 없이 ‘그냥’ 살았다. 이런 격렬함과 미묘함이 주는 모순적인 긴장감은 영국의 어느 아티스트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어제는 끝이 났다. 그리고 새 시대의 아침이 샤이걸(Shygirl)의 손끝에서 시작된 바로 지금, 우리는 새 시대의 탄생을 지금 목격하고 있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아티스트 샤이걸이 새 앨범 [Nymph]를 발표했다. 2018년 발표된 [Cruel Practice]의 과감함과 투박함으로 단숨에 런던 언더그라운드 신을 대변하게 되었고, 2020년 정제된 형태로 발화된 [ALIAS]로 순식간에 대가의 반열에 오른 그녀. 그리고 2022년 비로소 발표된 [Nymph]를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가 보데가(Sega Bodega)와 아르카(Arca), 무라 마사(Mura Masa), 블러드 팝(Blood Pop), 베진(Vegyn) 등 유수의 동료들이 참여한 이번 앨범은 비유와 기술 사이에 긴장감은 그녀의 동료들에 의해 탁월하고 은은하게 퍼지고 있다.
앨범명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샤이걸 특유의 섹스 어필이 여과 없이 앨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데, 방심 금물이다. 일말의 의뭉스러움 없이 안락함과 포근함을 선사하는 새로운 형태의 섹스 어필이다. “Coochie (a bedtime story)”이 대표적. 이와 같은 샤이걸의 영리한 묘수는 장르를 활용하는 방식에서 더욱 빛이 난다. 예를 들어 투스텝(2-Step)과 드럼 앤 베이스(Drum N Bass)의 리듬을 변형 없이 전형적인 구조 그대로 차용하는 방식은 벌써 총기 잃은 하이퍼팝의 시류와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다.
그라임(Grime), UK 게러지(UK Garage), 유로팝(Euro-Pop) 등 다양한 장르가 때로는 극단적으로 때로는 미묘하게 혼합되어 있지만 과거 그녀가 말한 바와 같이 이 앨범을 두고 장르적 논의는 무의미하다. 이것은 새로운 팝이기에 우리는 ‘그냥’ 일상적으로 즐기면 될 터. “Woe”에서의 8마디에 환호하고, “Poison”과 같은 새로운 뱅어에 춤추면 된다.
“Come For Me”나 “Shlut”, “Honey”와 같이 프로듀서의 진한 색에 잠식되는 바 없이 12트랙 모두 새로운 정취를 그린 이번 앨범. 우리는 지금 새 시대의 탄생을 지금 목격하고 있다 말했다. 그녀에 의해 견인되며 펼쳐진 새 시대는 어디를 향해 일렁이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확인해보자.
이미지 출처 | Because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