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무렵, 노련한 프로듀서 BT를 중심으로 시작해 2000년대 초입부터 00년대가 끝나기 전인 09년도까지. 변화와 성장을 거듭해 온 댄스 뮤직 장르 트랜스(Trance)는 BT의 등장 이후 티에스토(Tiesto), 아민 반 뷰런(Armin Van Burren)과도 같은 스타 디제이들의 긱으로 인해 단숨에 00년대의 전자음악 대유행을 이끌었다.
그리고 동시대 언더그라운드 일렉트로닉 신(Scene)을 이끌었던 ‘워프 레코드(Warp Records)’. 00년대 들어서는 90년대의 화려함을 자랑하던 그들의 에라(Era)를 잊어버렸다는 혹평 속에서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아티스트를 발굴했지만, 여전히 황금기를 떠올리는 팬들이 부지기수였고, 그들은 계속하여 달라져야만 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2010년. 그 시기 워프 레코드의 달라진 행보 중 하나는 트랜스를 다시 복각하는 움직임이다. 그 중심에는 트랜스의 킥을 해체한 신선한 작법으로 주목받았던 로렌조 세니(Lorenzo Senni)와, 지금부터 소개할 에비앙 크라이스트(Evian Christ)가 있었다.
에비앙 크라이스트로 알려진 조슈아 래리(Joshua Leary)는 영국 리버풀 태생으로, 영국의 레코드레이블 ‘트라이앵글 레코드(Tri Angle Records)’에 소속된 후 워프 레코드의 러브 콜을 받은 뒤 이적했으며,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앨범 [Yeezus]의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등 화려한 이력을 가졌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미궁에 빠졌는데, 정규 앨범이 없이 협업 프로듀서로만 참여하며, 간간이 싱글만 내던 것이 이유다.
이렇듯 싱글 발매 행보로 미스터리를 낳던 에비앙이지만, 비약한 행보 속에서도 그의 지향점만큼은 명확했으니, 바로 과거 트랜스의 유행을 주도한 ‘업리프팅’을 탈피하여, 자극적인 수퍼소우(Supersaw) 사운드의 반복을 중점으로 ‘유포리아(Euphoria)’의 건설이었다. 워프 레코드 소속의 로렌조 세니가 실험 음악에 가까운 해체주의적 작법으로 주목을 받았다면, 에비앙 크라이스트는 구조를 전부 해체하지 않고, 수퍼소우를 비롯한 가상 악기 사운드의 질감에 집중하여 감정을 고양시키고 유포리아로 이끌었다. 2020년의 싱글, “Ultra”를 통해 그 사운드의 정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그러한 “Ultra”의 발매로부터 3년이 지난 2023년 9월, 마침내 워프 레코드가 에비앙 크라이스트의 첫 번째 정규 앨범 [Revanchist]의 발매를 기습적으로 예고했다. 무명의 프로듀서가 마침내 자신의 명의를 걸어 정규 앨범을 발표하게 된 것. 앨범 발매에 앞서, 수록곡 “On Embers”이 공개됐다. 하드 신스의 반복적인 텍스쳐(Texture), 그리고 동시에 진행되는 현악 세션(Session)과 고조되는 신디사이저 멜로디와의 조화는 그동안 잃어버린 유포리아를 다시 회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트랙이다.
에비앙 크라이스트의 정규 1집 앨범 [Revanchist]는, “Ultra”의 커버 디자인을 담당하던 디자이너 데이비드 러드닉(David Rudnick)과의 협업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에비앙 크라이스트와 ‘TranceParty’ 파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플라이어 디자인을 맡아온 그는 특유의 미학을 앞세워 플라이어를 제작했고, 이어진 그들의 인연은 마침내 정규 1집 앨범 [Revanchist]로 종지부를 찍어낸다.
오는 10월 20일 발매될 [Revanchist]. 수많은 명반들의 각축전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2023년의 하반기 음악 신(Scene) 가운데, 에비앙 크라이스트의 앨범은 어느 위치에 있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가올 정규 앨범을 기다려 보도록 하자.
이미지 출처 | Warp Rec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