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앨범 [굉음과 울음]으로 돌아온 bela

서울과 베를린을 베이스로 활동 중인 퍼포먼스 아티스트이자 뮤지션 벨라(bela)가 새 앨범 [굉음과 울음(Noises and Cries)]을 발표했다. 한국의 민요와 클럽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벨라의 음악은 이전 발표한 앨범 [Guidelines] 등에서 그 특징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번 정규 앨범 [굉음과 울음]에 대한 작업을 시작했을 때, 벨라는 주변부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포용하는 데에 있어 소극적인 사회에 염증을 느꼈고, 자신을 비롯한 친한 친구들과 함께 죽음이라는 개념에 집착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울고 싶었고, 죽고 싶었습니다”고 그는 회상한다. 또한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위태로움이 남다르게 다가왔어요. 무엇이 우리를 죽이고 있는지 공유하자고 생각했죠” 희망을 잃지 않고 싶었던 벨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 소리, 경험, 감정에 대해 조사하고 이것이 어떻게 다른 한국 음악적 표현을 형성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밝힌다. 십 대 시절 서구 문화를 접하기 시작했을 때 들었던 강렬한 데스메탈의 포효와 산업 음악, 국가 행사 배경에서 울려 퍼지던 특이한 민속 리듬, 행복감을 주는 연상적인 드론 사운드[1], 현대의 퀴어 클럽 음악을 정의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 사이버네틱[2] 맥시멀리즘 등이 음악에 반영되었다. 

벨라는 이번 앨범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하였는데, 시시각각 변주를 주며 위태로운 연약함을 담아냈다. 오프닝 곡인 “The Sage”는 한국 판소리 전통에서 잘 알려진 두 개의 아리아, 즉 고수와 명창이 함께 부르는 민요 형식의 “정타령”을 모티브로 한다. 가부장적 통념의 위선과 잔인함을 강조하기 위해 원곡의 아리아에서 차용한 단어를 비틀어 재구성한 이 곡에서 벨라는 비명과 속삭임, 읊조림을 동원한다. 이러한 구절은 불규칙한 전통 장단을 전자음악으로 재구성한 “엇모리장단”을 기반으로 한 벨라의 거친 리듬과 대조된다. 어눌한 한국어 가사는 완전히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분위기는 완벽하게 전달되고 있다.

새로운 고향이 된 베를린의 그림자는 “나락”에서 두근거리는 베억하인(Berghain)의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울부짖을 때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이 곡은 서울에 있을 때 앨범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만든 곡으로, 한국 사회의 기만성에 맞서는 항거의 노래다. 겉으로 보는 나른하고 평화로운 계급주의적 자본주의는 생각보다 위협적이며, 벨라는 쾌락주의에 빠져 주변의 혼란을 무시하는 유럽의 부유한 클럽 관광객들과 평행선을 긋는다. 휘모리장단, 동살풀이 등 전통 리듬의 요소로 박자를 나누고, 불교 세계관 속 무한한 심연인 나락의 실체를 해체하는 가사에 이러한 요소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요소들을 엮어낸 이 앨범은 죽음뿐 아니라 부활에 대한 복잡한 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문화적 진화에 대한 거침없는 고찰이기도 하다. 벨라는 퀴어 한국인에게 어떤 삶이 가능할지, 한국의 전통이 반동적인 문지기들에게서 벗어나 통찰과 자기 발견의 도구를 제공할 수 있을지 환상을 품고 있다. 높고 낮은 문화, 고대와 현대의 사상, 시끄러운 것과 조용한 것, 조화와 불협화음이 어우러져 이분법 사이에서 작동하며 해답만큼이나 많은 질문을 남기고 있다. 

현재 앨범의 첫 트랙 “The Sage”를 밴드캠프에서 먼저 들을 수 있으며 전체 앨범은 다가올 4월 12일에 발매된다고. 또한 이번 앨범을 위해 특별히 공개한 믹스셋 역시 사운드클라우드에서 감상할 수 있다. 키라라, SupermotelK, Seesea, 이민휘 등 한국 음악가들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 믹스셋을 통해 새로운 고향이 된 곳의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짐작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굉음과 울음]의 바이닐과 디지털 앨범을 현재 밴드캠프에서 사전 예약할 수 있으니, 기회를 놓치지 말도록 하자.

bela 인스타그램 계정
[굉음과 울음] Bandcamp 웹사이트

[1] 음악에서는 일반적으로 음정이 다소 낮은 톤으로, 더 높은 음정의 멜로디가 울려 퍼질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지속적인 음색.
[2] 인공두뇌학, 일반적으로 생명체, 기계, 조직과 이들의 조합을 통해 통신과 제어를 연구하는 학문. 생명과 기계의 융합인 사이보그(Cyborg)나 컴퓨터에 의해 제어되는 정보공간인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 같은 새로운 개념들을 탄생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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