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ror / Window – 황선웅, 여창욱

거울: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음악. / 음악(거울)으로 동기화되는 개인의 내밀한 여정.

창: 세상을 바라보는 매개로서의 음악. / 음악(창)을 통해 세계를 들여다본 경험.


Mirror

황선웅

DJ Healer – Untitled

최근 16년 지기 친구들과의 계모임 겸, 실없는 수다나 떠는 단톡을 말없이 조용히 빠져나왔습니다. 죽마고우라 생각했기에 나름의 큰 결심이었습니다. 특정한 사건이 생겨서 친구들과 멀어진 건 아니며, 저 또한 단절을 의도한 건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냥 혼자 먼 타지에 있어서 갖가지 고향 소식이나 관심 없는 연애 수다 따위로 시끌시끌한 게 싫었던 거죠. 하지만 그 무리에선 역시나 소외된 게 확실했습니다. 제 카카오톡 채팅 목록에 쌓인 건 더할 나위 없이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들의 모바일 청첩장뿐입니다.

5월, 새집으로 이사를 하던 도중에는 애지중지 모은 청바지 10장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전역 후로부터 약 7년간 모아 온 나름의 컬렉션이며 보물 2호라 생각하며 모셔둔 것입니다. 이삿짐을 나르던 중, 제가 부재한 사이에 이름 모를 할아버지가 버리는 물건인 줄 알고 들고 간 모양입니다. 만약 1년만 일찍 잃어버렸더라면 CCTV까지 돌려보며 분명 생난리를 쳤을 겁니다. 그런데 의외로 ‘훗날 동묘시장에서 만나자’라는 장난스러운 혼잣말과 함께 덤덤히 넘겼습니다.

사사로운 감정들, 찾지 못할 물건 따위에 크게 연연하지 말고 욕심을 버릴 것. 허망함. 덧없음. 애초에 없는 거라 생각합니다. 빈손으로 태어나, 결국은 모두 흙으로 돌아가는 법이니 크게 서운할 것도, 아쉬워할 것도 없습니다. 미련을 버리고, 그저 흘러가리라 다짐합니다. 큰 욕심 없는 이 음악도 말합니다. Everything becomes meaningless.


WINDOW

여창욱

Charles Bradley – Changes (Black Sabbath cover)

새로운 것들을 해오는 과정을 생각하면 두려움은 항상 뒤따랐다. 그게 당연하지만 그러한 일이 항상 닥쳐올 때는 너무나도 괴로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는 상황을 반복하고 언제까지 이 과정이 계속될지 걱정하는 일이 두려웠다. 그렇지 않았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딱 한 가지가 떠오르는데 막 이등병 되었을 때가 그렇지 않았나 싶다. 훈련소를 나와서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던 그때를 생각하면 참 바보인지 생각이 짧았는지. 역시 사람은 맞고 욕을 먹어야 정신을 차리는 듯하다. 인간의 노예근성이란.

시간이 지나면 모든 일에 익숙해진다. 두려움 같은 건 없다. 편안해서 오히려 답답할 지경이다. 학교 내 비슷한 연배의 동기들은 지난날을 기억하고 추억에 잠겨 감상에 젖는 일이 일상이 돼버렸다. 나의 경우는 어디든지 찾아가서 새로운 걸 시도해보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뭘 하는 사람인지 의구심을 표할 정도로 밑도 끝도 없이 찾아가곤 한다. 이제는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은 무뎌진 편이다. 거의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생활을 하고 있다. 다만 이것도 익숙해졌는지 나에게 중요한 걸 잊은 듯하다. 집중해야 한다. 정말 중요한 걸 잃기 전에.


*지난 VISLA Paper 10호에 실린 에세이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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