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문제시되기만 했을 뿐 아직도 말끔하게 청산되거나 극복되었다고 할 수 없는 오래된 관습이나 관행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여자의 존재는 남자의 경우와는 다르다.”
“즉 여자는 거의 계속해서 스스로를 늘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말이다. 스스로 갖고 있는 자신의 이미지는 항상 그녀를 뒤따라 다닌다.”
John Berger “Ways Of Seeing”, 53p, 54p
존 버저의 저서 “Ways Of Seeing(다른 방식으로 보기)”의 제 3장에서는 기존의 미술사 담론이 여성을 어떻게 대상화해왔는지 낱낱이 전한다. 학계의 보수적이고 암묵적인 전제를 꼬집는 동시에,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라고 주장한 그는 이러한 현상을 마냥 회의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새로운 언어를 통해 다르게 정의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한결 자유로워질 것이라 제시한다.
그러나 2022년, 존 버저가 무려 50년 전에 지적한 젠더 권력에 대한 문제에서 우리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낀다. 이에 편집자는 더 나은 관계와 경험을 지향하는 독자들에게 이번 에세이의 주인공 신화용이 전하는 패션 일대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시선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능동적인 주체로서 지배적인 관념을 새롭게 인지하는 연습을 거듭, 옷 입는 즐거움에 도달하기까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놓은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보다 더 유연한 사고와 시야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래에서 직접 만나보자.
신화용(shinhwayong)
‘패션’, ‘스타일’과 같은 단어는 스스로와 항상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 왔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내 몸과 사이가 좋지 못한 사람이었다.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에 다니던 6년 내내 반 전체를 통틀어 가장 키가 큰 아이였다. 덩치가 크다, 건강해 보인다는 소리를 늘 들었다. 여자아이라면 귀엽고 보호 본능을 일으킬 만큼 약하고 가녀린 모습이어야 하는데 나는 키도 크고 발도 크고 밥도 잘 먹고 양 무릎은 성한 날이 없을 정도로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던 대장부였다. 청소년기는 여학교에서 보냈다. 덕분에 정도는 덜했지만 바디 이슈는 항상 나를 괴롭혔다. ‘말랐다’라는 말은 ‘아름답다’ 내지는 ‘스타일리시하다’라는 말과 동의어였다. 2000년대 중반 패션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트리트 스냅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명동 에이랜드 골목 풍경만이 아니라 마른 체형의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패션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정의했던 것은 나 스스로 내린 판단이라기보다는 세상이 그렇게 정해준 룰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패션과 관련된 경험은 모두 창피하거나 움츠러드는 것들이었다. 건강한 생활 방식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체형, 내 몸과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의 옷을 선망하던, 치수를 물어보는 옷가게 직원에게 가능한 한 작은 사이즈로 대답했던, 그리고 탈의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잠기지 않는 지퍼나 단추를 애써 잠가보려고 하던 시간들. 맞지 않는 옷을 사놓고 살을 빼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한 번도 입어볼 일이 없었던, 입어보지도 않고 인터넷에서 주문했는데 생각했던 핏과 달라 옷장 깊은 곳에 보관해두었던 수많은 옷들. 그런 경험이 쌓이자 내가 옷을 사는 기준은 내 체형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기보다는 어떻게 ‘결점’을 커버할 수 있는지였다. 당시 쓰던 데스크톱 컴퓨터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는 ‘Inspiration’ 폴더가 있다. 쿨하고 예쁘다고 생각한 스타일링을 모아두던 폴더였다. 지금 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내 체형과 거리가 먼 모델들의 런웨이나 스트리트 패션 사진이 한가득이다. 오버사이즈 스웻 셔츠에 오버사이즈 모직 코트, 그리고 딱 달라붙는 스키니진으로 대표되는 ‘올슨 자매’의 스타일이나 얇은 티셔츠 한 장에 스키니진을 받쳐 입고 부드러운 가죽 소재의 짧은 기장 라이더 재킷을 걸친 ‘헤로인 시크’ 스타일 말이다. 그렇게 입어보겠다고 상의는 언제나 최대한 오버사이즈로 구매하고 스키니진은 검은색, 진청, 연회색 등 색깔별로 있었지만 사진 속 핏을 재현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다. 몸의 단점이 지나치게 부각되기 일쑤였고 꽉 끼는 스키니진은 자리에 앉고 일어서는 간단한 동작조차 힘들 정도로 불편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기 시작하면서 내 몸과 맺는 관계도 달라졌다. 바디 이슈를 천천히 극복해나가기 시작한 거다. 물론 20년을 넘게 가지고 살던 생각과 습관을 바꾸는 것은 아주 힘들었다. 우선 내 몸을 몸 그 자체로 기능하도록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했다. 미적인 기준에서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몇 밤을 지새우며 공부를 해도 아프지 않은 몸, 파티에서 몇 시간을 놀고도 다음날이면 개운하게 일어나 할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몸, 10시간씩 야간 버스를 타고 국경을 이동해 여행해도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여기저기 쏘다닐 수 있는 몸.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의 고정된 한순간을 위한 몸이 아니라 매 순간 움직이고 살아있는 몸. 내 몸의 어디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생각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패션에 대한 경험도 자연스럽게 바뀌기 시작했다.
주거 공간에 따라 달라진 경험도 도움이 되었다. 대학교 졸업 후에 독일에 갔다. 프랑크푸르트의 소도시에서 잠시 일하면서 지내고 베를린으로 이사했다. 유행을 신경 쓰지 않는 태도가 유행인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베를린에서 지내는 동안 소위 말하는 패션 트렌드를 전혀 알지 못하는 채로 지냈다. 주말에는 온갖 체형과 인종의 사람들이 다 함께 댄스 플로어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뒤섞이는 클럽에서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은 보통 한국으로 치면 ‘아름다운 가게’ 같은 세컨핸드 숍인 ‘HUMANA’에서 옷을 사거나 혹은 남들이 이사를 하거나 옷장 정리를 하면서 입지 않는 옷을 이웃에게 나눠주기 위해 박스에 담아 내놓은 옷 중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 입었다. 기분을 내고 싶을 때는 하이패션 브랜드 제품도 괜찮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노이쾰른이나 미떼 지역의 빈티지 숍에서 쇼핑했다. 유행을 떠나 나의 체형에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생활 속 움직임에 어떤 옷이 편한지, 또 장점을 드러내고 결점을 가릴 수 있는 형태나 소재는 어떤 것인지에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었다. 이때 당시 옷장은 온통 검은색 옷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테크노 클럽에 더 자주 가게 되기 시작하면서는 더욱더 그랬다.
베를린에서의 시간이 끝나고 팬데믹을 서울에서 인내했다. 그리고 작년, 마침내 대학원 공부를 위해 뉴욕에 왔다. 유행과 스타일에 그 누구보다도 민감한 사람들이 모인 도시다. 동시에 스타일에 대한 것만큼이나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가 아주 활발하게 오가는 도시이기도 하다. 다양한 체형과 인종을 받아들이고 그만큼의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한다. 베를린과 다르게 세계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으로 발달한 도시에서 이 말은 그만큼 다양한 마케팅이 존재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베를린에서 연습하고 쌓았던 습관이 흔들리는 순간이 많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이제는 시즌이 아니라 거의 한 달, 몇 주 간격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유행과 거기에 맞춘 수많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옷들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조금 비싸더라도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나와 비슷하다거나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 윤리적인 소비를 하려고 노력하고, 무엇보다도 유행을 타지 않는 아름다운 옷을 사자고 다짐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고 늘 바쁜 대학원생에게는 쉽지 않다.
여전히 나는, 2010년대를 휩쓸었고 한국에서 쉽게 쇼핑할 수 있는 브랜드 중에 드물게 다양한 체형을 커버했던 아메리칸 어패럴(American Apparel)이 파산 후 이름과 규모를 바꿔 운영 중인 로스 앤잴레스 어패럴(Los Angeles Apparel)에서 팬티와 스웻 팬츠 등 베이식 아이템을 구매한다. 하와이 휴가를 갈 때는 시커먼 옷을 가지고 가고 싶지 않아서 급하게 자라(Zara)에서 화려한 색의 드레스를 구매했다. 시간과 노력을 쇼핑에 들일 여유가 있을 때, 꼭 갖고 싶은 브랜드의 옷을 쇼핑할 때는 이베이(ebay)와 디팝(depop)을 찾는다. 혹은 에센스 닷컴(ssense)의 할인 기간을 노린다. 편하고 계절에 맞는 옷을 사고 싶을 때는 뉴욕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방문했을 법한 엘 트레인 빈티지(L train Vintage), 버팔로 익스체인지(Buffalo exchange), 베이컨즈 클로젯(Beacon’s closet)을 비롯한 빈티지 숍에 간다.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이면서 내 몸에 딱 맞는 사이즈의 옷을 찾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다. 쇼핑의 빈도수는 줄었지만 마침내 맘에 드는 옷을 찾았을 때 만족도는 아주 높다. 옷의 종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는 액세서리를 많이 활용한다. 크고 볼드한 은 장신구를 선호하는데 요즘 가장 잘 활용하는 것들은 모두 친구들이 서울을 베이스로 운영하는 브랜드의 제품들이다. 친구들의 비즈니스를 응원하면서 기성 브랜드에서 찾기 힘든 독창적인 디자인의 액세서리를 소장할 수 있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다.
패션과 스타일에 대한 글치고는 조금 재미없고 너무 투쟁적인 글이 되었다. 몸과는 여전히 사이가 아주 좋다기보다는 매일 의식적으로 나아지려고 노력해야 그나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스타일에 대해 생각하고 맘에 드는 옷을 고르고, 또 어떻게 입을지 한정된 피스로 다양한 베리에이션에 대해 고민하는 이 모든 과정은 나와 맞지 않는 체형과 스타일을 선망하던 때와는 다르게 참 즐겁다. 옷차림에 대한 칭찬을 쉽게 들을 수 있는 뉴욕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거나 같은 노력을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이런 즐거움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