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자신을 차별화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패션 게임. 게임의 상위 포식자가 되기 위한 치열한 전략 싸움 속에서, 이제는 돌고 돌아 ‘패션에서 멀어지는 것’이 가장 패션과 가까운 태도이자, 전술로 여겨지기에 이르렀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기획자는 가끔 우리의 사고방식이 합리성과 실용성, 즉 편리를 따지는 데로만 나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뭔가 중요한 걸 잊어버린 기분이랄까….
어딘가 허전하다는 느낌을 받던 차에, 여기에 패션이 주는 ‘낭만’을 일깨우는 하태봉의 글이 있다. 그렇다, 패션의 가장 뛰어난 기능 중 하나는 일상에 작은 만족을 더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패션에 푹 빠져있음을 꾸밈없이 서술한 글에서 순수함이 느껴지기 때문일까. 그가 낱낱이 전한 패션 일대기를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기획자는 마음이 동했다. 이는 독자에게 오는 여름, 단벌신사를 탈피할 계기로 다가올지도. 아래에서 직접 만나보자.
‘옷을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걸까?’.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어머니의 옷을 보고 비슷하게 따라 입는 데서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나도 모르게 어머니가 입었던 카고 팬츠를 따라 입어보기도 하고, 비슷한 옷을 찾기 위해 디깅하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까까머리를 하고 프레야 6층의 수입 빈티지 층에 가서 눈탱이를 맞아가며(강매), 그곳 형들의 스타일을 배웠다. 스트라이프 티셔츠, 포켓이 20개 달린 팬츠, 줄다리기를 해도 될 만큼 긴 줄이 주렁주렁 달린 팬츠 등…. 덕분에 2000년대 한국 패션 흑역사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후 빈티지, 아니 사실은 빈티지라고 칭하기보다는 구제가 맞는 표현인 듯한데, 리바이스(Levi’s) 태국산 빅 e가 정품인 마냥 팔리던 시기에 그걸 구하겠다고 동대문에서 또 한 번 눈탱이 맞아가며 구매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중학생 때 우연히 광장시장이라는 곳을 알게 되고는, 동네 친구들과 주말마다 방문하여 단돈 5만 원에 양손 두둑이 검은 봉지를 들고 개선장군 마냥 돌아왔다. 어머니의 눈에는 그냥 꼬질꼬질하고 냄새나는 옷들이라 혼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내가 옷을 좋아하고 구매하는 걸 크게 꾸중한 적은 없던 것 같다. 그렇게 옷과의 인연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국내에 ‘스트리트 패션’이라는 것이 들어온 시기에는 프리챌, 싸이월드에서 접할 수 있던 일본발 스트리트 패션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돌이켜보면 이때가 조금 더 본격적으로 옷을 좋아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나이키 SB(Nike SB), 조던(Jordan), 나이키 htm(Nike htm), 풋 스케이프(Footscape), 네이버후드(Neighborhood), 플렛지(Pledge), 넘버나인(Number (N)ine), 발(bal), 위즈 리미티드(WHIZ LIMITED) 등 학생으로서는 구매하기 쉽지 않은 옷과 신발을 구매하기 위해 뷔페를 비롯한 다양한 장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당시 드래곤 애쉬(Dragon Ash)의 후루야 켄지(Kenji Furuya) 스타일을 따라 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알바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흐르고 20대가 된 이후 누디진(Nudie Jeans)이라는 스웨덴 브랜드에 꽂혀버리기도 했다. 청바지를 입어서 물을 빼고 워싱을 만드는 것은 이미 중학생 때 도가 틀 정도로 알고 있었기에, 데님 에이징 쪽으로는 이미 최소 석사 이상이었다. 그렇게 누디진에 꽂혀서 몇 년을 청바지 워싱 내는 데 빠져있다가 전 세계 스키니 열풍을 몰고 온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의 등장, 그렇게 나는 강제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기장을 15만 원어치 잘라낸 듯하다(디올진 기장 120CM). 그렇게 시간이 흘러 군대에서는 그나마 옷을 좀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제대 후엔 서울로 올라와, 백화점, 유니클로(UNIQLO) VMD, 판매, 각종 의류 매장, 신발 매장에서 일했고, 그 이후 컬티즘 코리아(Cultizm Korea)에 입사해서 열심히 청바지를 팔아재낀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 시기엔 고객들과 오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끔은 우리가 팔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들을 추천해 드리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고객 분들이 구매 후에 매장에 방문해서 감사하다고 음료를 사다 주시는 등의 뿌듯한 일화도 생겼다. 지금도 종종 인스타 디엠이나 블로그에 그때를 기억해주시는 고객 분들이 리플을 남겨 주신다.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5~27살 사이에는 옷에 대한 갈증이 극심해졌다. 옷을 좋아하는 주변 이들에게 영향을 받기도 하면서 스타일이 변화했다. 디자이너 브랜드를 접해보기도 하고, 아메리칸 캐주얼에 푹 빠져보기도 하고, 하입(Hype)한 의류나 신발도 구매해보고, 지금 돌이켜보면 거의 일주일 단위로 스타일이 변화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시간이 3~4년 정도 지속되었고, 가장 많은 돈(수업료)을 쓰면서 옷을 좀 더 제대로 알아가는 시기가 되었다. 이 시기의 옷은 지금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게 많이 구매했지만 지금은 거의 갖고 있지 않다니…. 아이러니하다.
29살까지 100% 내 스타일이라고 느낀 것은 없었던 것 같고, 사실 지금도 100% 내가 특정한 스타일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냥 ‘내가 입는 스타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29살에서 30살 무렵, 회사에서 나와서 나의 브랜드를 해보자라는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의상디자인과를 나왔음에도 학교와 실무는 100000% 다르다는 것에 처음에는 살짝 타격이 왔지만, 그냥 잘하는 공장에 찾아가서 사장님들한테 넉살 좋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더운 날이면 아이스커피를 사다 드리며, 하나 둘 배우기 시작했다. 사장님들도 좋게 봐주셨는지 원단을 고르는 방법부터, 봉제를 어떻게 하면 좋아 보이는지를 설명해주셨다.
그렇게 프랑스어로 ‘연결’이라는 의미의 ‘리앙(Lien)’이라는 브랜드가 탄생했다(원래 브랜드 네임과 뜻은 꿈보다 해몽이다). 운이 좋게도 브랜드는 4년간 별다른 걸림돌 없이 잘 굴러갔다. 물론 이용해주신 고객과 주변의 도움 덕분이다. 중간중간 매출에 도움이 된 효자 상품들을 통해 윤택한 삶을 즐길 수도 있었다. 뭐, 윤택한 삶이라는 게 별것인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편히 술 한잔 하고, 사고 싶은 거 사고, 삼시세끼 잘 챙겨 먹을 수 있으면 그것이 윤택한 삶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브랜드 5년 차, 좀 더 재미있는 무언가가 없을까 하고 권태를 느끼던 시기였다. 마침 독일에 가있던 멘토이자 친한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독일 와서 같이 일할 생각 없어?” 아니 0개 국어인 나에게 독일이라…. 그러나 결정하는데 며칠 걸리지도 않았다. 회사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아보지도 않았다. 그냥 가서 재밌는 걸 해봐야지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영어회화 학원 초급반 6개월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니며 배운 후 독일로 출국!
그렇게 지금 이곳에서 디렉터 3년 차를 보내고 있다. 우리의 행보에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1. 한 번은 신겠지
아마도 부모님이 이 사진을 본다면 내게 전화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처음 독일로 올 때 나름 많이 정리하고 왔지만 이곳에서도 역시나 제 버릇 개 못준다는 말이 있듯이 신지도 않는 신발을 모으고 있었다. 사이즈도 260부터 280까지 다양하다. 그냥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무작정 구매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매번 신발을 보면서 언젠가는 한번 신겠지 혹은 언젠가 촬영 때 한번 쓰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어제도 신발을 구매했다. 주변의 필요한 지인들에게 주기도 하고, 판매도 종종 한다. 다만 딱히 하입한 신발들을 사는 건 아니고 그냥 사고 싶은 거 사다 보니 판매도 잘 안 돼서 강제 콜렉팅 중이다.
2. 비즈빔(visvim) 너는 못 팔겠다.
비즈빔의 신발을 3켤레 정도 가지고 있다. 캔버스화, 크리스토퍼(Christopher), 샤먼 포크(Shaman Folk). 요즘은 잘 안 신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팔기에는 아까운 비즈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팔고 싶지 않다. 신지 않더라도 가지고 싶은 그런 브랜드…. 특히나 샤먼 포크의 경우 비즈빔의 디렉터 나카무라 히로키(Hiroki Nakamura)가 인디언들이 신고 있던 모카신을 보고 ‘옳지! 요고다’ 해서 만든 신발로 특히 이 신발의 진짜 매력은 맨발로 신어야 한다는 것이다. 히로키 디자이너 왈 “모카신의 진짜 매력은 맨발로 신어야 하며, 맨발로 소재를 느끼면서 신어야 한다”. 진짜 그 말마따나 맨발로 신어본 결과 편안한 착용감과 더불어 비즈빔의 감성 때문인지 왠지 냄새도 안 나는 것 같고, 여름에 꽤나 자주 신었다. 이번 여름에는 좀 더 자주 착용해볼 생각이다.
3. 다시 돌아온 준야 와타나베 17FW 고어-텍스 자켓(JUNYA WATANABE 17FW GORE-TEX JACKET)
방구석에서 맥주 한 잔 하면서 17FW 준야 와타나베의 쇼를 보던 중, 수십수백 가지 디테일에 둘러싸인 옷 사이에서 심플하지만 왠지 모르게 강한 인상을 주는 옷을 발견했다. 바로 이 녀석이었다. 곧장 본격적으로 이 옷의 정보와 최저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마침내 이 옷을 사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옷을 잘 입는다고 생각하는 인간계 최고봉 디자이너 스테파노 필라티(Stefano Pilati)가 마침 이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더 이상의 고민은 사치였다. 의외로 이 옷을 바잉한 곳은 많지 않았다. 리테일가는 500~700유로 사이. 당장 착용하기를 희망했던 나는 이중 최저가이면서, 빠른 배송인 선택지를 찾아 헤맸다. 그렇게 매치스 패션(Matches Fashion)에서 좋은 가격에 이 녀석을 품에 안았다. 얼마나 좋았냐면, 이 옷을 여름에도 입었다. 그렇게 한창 잘 입고 있던 시점…. 공급과 수요에 따라 이 재킷의 가격 프리미엄이 엄청나게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이 재킷과 이별하기로 마음먹었다. 덕분에 구매한 가격보다 40만 원은 더 받고 판매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독일에 와서 비 오는 날에 입을 재킷을 찾던 중, 이미 아크테릭스(Arc’teryx), 클라터뮤젠(Klattermusen), 앤드 원더(and Wander) 등을 가지고 있어서 라이프 스타일 아웃도어 브랜드의 제품에 마음을 접은 참이었다. 그레일드(Grailed)에 혹시 이 재킷이 있을까 하고 검색하던 중 마침 프랑스 셀러가 딱 이 제품의 M 사이즈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셀러에게 오퍼를 보냈고, 옷을 받았다. 물론 시간이 지나 봉제가 헐거워지긴 했지만 내부의 심 테잎과 자잘한 디테일은 새 제품과 다름없어서 만족스러웠다. 다만 셀러가 분명 별로 안 입었다고 했는데 주머니에서 마스크가…. 나와서 살짝…. 기분이 흠…. 그래도 좋은 가격에 쿨하게 보내준 프랑스 셀러에게 다시 한번 더 감사의 말을 전한다. 지금도 무척 잘 입고, 즐기고, 물고 뜯고 맛보고 있다.
4. 엔지니어드 가먼츠(ENGINEERED GARMENTS)
나의 20대와 30대를 함께한 브랜드 그리고 그들이 선사한 ‘19’FW AVIATOR SATEEN JACKET’. 인생에서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은 브랜드를 몇 개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아마 엔지니어드 가먼츠를 뽑을 것이다. 20대 초, 한국에 아메리칸 캐주얼 열풍이 불어왔을 때, 그중 나는 엔지니어드 가먼츠의 레이어링 스타일을 보고 ‘아! 남자가 입을 수 있는 가장 멋스러운 레이어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꾸준히 이 브랜드를 구매하고, 스타일이 바뀌는 시기가 오더라도 엔지니어드 가먼츠의 쇼는 항상 챙겨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19년도 룩북을 접하면서, 이번 시즌의 베스트가 될 만한 아이템을 찾고 있던 중 이 재킷을 여자 모델이 입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AVIATOR 재킷의 경우 남성으로 나오지만 딱히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다). 더욱이 이 재킷을 구매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중 하나는 사진 속 여자가 이 재킷을 뒤집어서 착용한 점이 ‘진짜 끝내주는 녀석이구나’라는 평이 절로 나올 정도로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재킷은 리버시블이 아니다. 하지만 리버시블로 입어도 충분히 멋스러운 재킷임에는 틀림이 없다. 많은 이들이 엔지니어드 가먼츠의 퀄리티를 의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퍼포먼스, 디자인, 스타일링이 그것을 상쇄할 만큼 눈을 즐겁게 한다.
지금은 코로나로 문을 닫은 패션 트레이드 쇼가 많다. 다음 ‘23SS PARIS MEN’S SHOW’에 갈 때 이 재킷을 입고 엔지니어드 가먼츠의 수장인 스즈키 다이키(Daiki Suzuki) 상과 사진을 꼭 찍고 싶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맨즈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5. 첫눈에 반하게 만드는 옷 CFCL
사실 이 옷은 최근 구매해서 나 또한 이 옷을 아직까지 100% 신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동안 무수히 많은 브랜드, 옷, 소재들을 입고 접해본 나의 몸뚱이 데이터에 의하면 분명히 좋은 소재의 좋은 옷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누구든 이 브랜드의 옷을 실제로 매장에서 본다면 한 번은 손이 갈 것이다. 독특한 패브릭에서부터 원단의 개성 있는 짜임, 이는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맨즈 컬렉션을 담당했던 타카하시 유스케(Yusuke Takahashi)의 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이세이 미야케 옴므 플리세(Homme Plissé)와 유사점이 많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CFCL에서는 원단 자체의 독특함과 실험적인 요소가 좀 더 추가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옷이 처음 입고된 시점, 행거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지나가다가 본 것인데도 말이다. 내가 가진 CFCL의 가디건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모습을 담아낸 독특한 원단의 짜임이 매력적이다. 편안한 착용감은 물론이고, 아웃웨어 또는 이너웨어로도 매력이 넘치는 친구다. 덕분에 가지고 있던 아워 레가시(Our Lagacy) 니트는 방출하게 되었다.
옷을 고르는 것과 입는 것 그리고 즐기는 것에는 본인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 똑같이 따라 입는 일 또한 입는 이가 즐길 수만 있다면 올바른 선택이라 생각한다. 이런 걸 보고 간혹 패션 유튜버들은 개성이 없다, 개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외형적인 모습을 배제하고 개성을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다른 성격과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 않나. 그것을 찾아 나가는 것이 진짜 개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옷은 아주 작은 부분이다. 우리는 이미 개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으며, 단지 그것을 찾아나가는 것이 조금 느리고 빠르고의 차이일 뿐이다.
Editor │ 한지은
*해당 에세이는 지난 VISLA 매거진 19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