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대상이 아닌 시선의 주체가 되어, 패션 브랜드 Paloma Wool이 선보인 목욕 퍼포먼스

박항섭, 금강산 팔선녀, 1974, 캔버스에 유채 © Image Copyright Park Hang Sub Estate

나무꾼이 목욕하는 선녀의 모습을 훔쳐보다 사슴의 조언으로 그녀의 옷을 숨겨 하늘나라로 날아가지 못하게 한 후, 그녀에게 강제로 결혼을 요구하는 이야기. 한국에서 자랐다면 모를 리 없는 선녀와 나무꾼 속 관음의 관습이 얼마나 우리의 역사와 문화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 보여준다. 서양이라고 딱히 다른 법은 없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즐기는 듯한 모습의 목욕하는 여성은 서양 미술사 속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한 것을 보면 말이다.

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알려진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의 목욕하는 여성들을 그린 ‘터키식 목욕(Le bain turc)’은 1859년 직사각형의 캔버스 위에 완성되었지만 1862년 동그란 톤도(Tondo)로 변형되었다. 그 목적은 단언하기 어렵지만 동그란 프레임은 마치 열쇠 구멍을 통해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주며 몰래 보는 행위를 더 부각하는데, 지금보다 상징에 더 큰 의미를 두었던 그 시대의 맥락을 기억한다면 과연 우연일까 싶다.

Ingres, Jean-Auguste-Dominique, Le bain turc, 1862, 나무에 붙인 캔버스에 유채,
photographic reproduction in public domain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기반을 둔 브랜드 팔로마 울(Paloma Wool)은 2023 봄/여름 컬렉션 쇼에서 뮤지션 솔란지(Solange)와의 작업으로 잘 알려진 카를로타 게레로(Carlota Guerrero)와 함께 여성의 목욕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갤러리 베르트란드 그리몽뜨(Galerie Bertrand Grimont) 안 짧은 런웨이를 거쳐 갤러리 밖 거리를 통해 작은 실내 욕조가 마련된 장소로 걸어간 모델들은 하나둘씩 물에 몸을 적시는데, 이 퍼포먼스를 시작한 첫 번째 모델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 후 물에 들어간다. 그리고 연이어 워킹을 마친 모델들이 물에 들어가며 자신과 서로의 몸을 씻고, 씻겨준다. 여성의 곡선을 강조하는 발레복, 몸의 은밀한 부분이 드러나든 말든 상관이 없는 평상복, 그리고 2000년대 초 유행하던 로우-라이즈 스타일의 두꺼운 벨트, 바지, 치마에서 영감을 가져온 듯한 룩들은 물에 젖으며 모델들의 몸을 더 뚜렷하게 드러낸다.

이 퍼포먼스의 제목은 흥미롭게도 “밧세바(Betsabé’)”다. 이는 성경 속 다윗 왕이 한 여성이 옥상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점시한 후, 그녀를 강간하고 남편을 죽이면서까지 그녀를 자신의 ‘합법적인’ 아내로 맞이하는 이야기로 알려진 여성의 이름이다. 밧세바도, 선녀도, 서양 미술사의 그림들 속 수많은 여인들도, 누군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지 모른다. 혹은 알고 있을지언정 이미 훔쳐보고 있는 눈을 빌려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에 단련되어, 자신이 대상화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들은 가장 사적이고 편안해야 하는 공간, 씻는 공간 안에서조차 다른 누군가의 ‘빼앗는’ 눈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혹은 자신이 주체를 가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대상화되는 사실을 내면화했다.

하지만 팔로마 울의 퍼포먼스 속 여성은 렌즈를 똑바로 응시함으로써 렌즈(지켜보고 있는 자)를 의식한 후 물에 들어간다. 게다가 그 렌즈 역시 다른 여성의 눈이며, 렌즈의 주인인 게레로가 모델들 중 한 명으로 걸어 나와 카메라를 집어 들고 촬영하기 시작한다. 이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구석구석 카메라의 위치를 설정한 그녀가 모두가 보이는 곳에서 다른 모델들과 뒤섞여 촬영하고 있는 모습은 모델들에게 그들이 안전하고, 그들의 모습이 누군가로부터 훔쳐지지 않을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또한 대부분 관음, 감시, 단속 등의 도구로 사용되어온 CCTV 영상과 유사한 방식과 영상미를 사용한 이 작품은, 닫힌 공간에서 작은 화면으로 소수의 눈이 보는 경우가 보편적인 CCTV 화면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보여주기 위해 계획된 패션쇼장에서, 큰 화면으로 방송됨으로써 더는 관음, 감시, 단속과는 거리가 멀어진 채 관객에게 닿는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에서 존 버거(John Berger)는 이렇게 쓴다. …남자는 여자를 본다. 여자는 남자가 보는 그녀 자신을 관찰한다. 대부분의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의 관계는 이런 식으로 결정된다. 여자 자신 속의 감시자는 남성이다. 그리고 감시당하는 것은 여성이다. 그리하여 여자는 그녀 자신을 대상으로 바꿔 놓는다. 특히 시선의 대상으로”. 팔로마 울의 퍼포먼스 속 여성들은 더 이상 시선의 대상이 아닌 시선의 주체가 되어 카메라를 돌리고, 카메라 앞에 선다.

패션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여성의 모습은 이성애자 남성의 눈으로 풀어지며 대상에 그쳐왔다. 몰래 지켜보는 대상, 성적 욕망의 대상, 독립적인 주체가 아닌 수동적인 도움의 대상. 대상의 역할에 지친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만든 이 퍼포먼스가 파리 패션위크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패션쇼장에서 벌어진 사실이 반갑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시대의 문화를 반영하고 만들어가는 패션월드에서 이런 이미지들을 계속해서 보여주길 기대하며, 앞으로 다가올 변화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이미지 출처│Paloma Wool, Louvre Museum, 케이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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