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을 훔친 Maison Margiela Artisanal Collection 2024

2024 FW 파리 남성 패션위크가 막을 내린 직후, 세상이 온통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이야기로 가득했다. 틱톡은 마르지엘라 패션쇼에 등장한 모델의 캣워크를 패러디하는 영상으로 넘쳐났으며, 마치 도자기 인형처럼 보이는 특유의 화장법은 하나의 밈이 되어 인스타그램의 모든 피드를 장식했다.

그날 밤, 도대체 마르지엘라가 무슨 짓을 벌였길래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르지엘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의 미학이 만개했고, 그의 손길에 다양성은 환상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디올(Dior) 시절 때부터 견고히 쌓아 올린 오트쿠튀르의 감각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갈리아노의 ‘메종 마르지엘라 2024 아티저널 컬렉션(Maison Margiela Artisanal Collection 2024)’. 그들이 보여준 환상의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다시 한번 복기해 보자.


장인 정신이 깃든 오트쿠튀르, 아티저널 라인. 메종 마르지엘라의 23가지 숫자 중 0번을 대표하는 아티저널 라인은 설립자이자 디자이너인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가 수집해 온 의류와 오브제, 재활용품을 가지고 아틀리에에서 수작업을 통해 의복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오트쿠튀르 컬렉션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부터 런웨이를 대신해 영상으로 컬렉션을 공개했지만, 2023년에는 온라인에서조차 컬렉션을 공개하지 않았다. 좌충우돌이 많았던 아티저널 라인은 4년 만에 2024 FW 파리 패션 위크에서 오프라인 쇼 형태로 복귀를 선언하며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I don’t need your love, I love me”라는 메시지를 노래하는 팔 한쪽을 잃은 가수 럭키 러브(Lucky Love)의 쇼 오프닝 공연, 코르셋과 진주라는 상징을 두고 전개된 오프닝 필름으로 패션쇼의 시작을 알린 마르지엘라의 2024 아티저널 컬렉션. 오프닝 필름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연출과 함께 코르셋을 착용한 남성 모델 레온 데임(Leon Dame)이 등장했고, 그 뒤로 포토그래퍼 브라사이(Brasaï)의 미쟝센이 그대로 반영된, 1930년대 파리의 어두운 밤거리를 방황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글로시한 얼굴로 춤을 추는 듯한 움직임의 캣워크, 관객들과의 눈 맞춤부터 스킨십까지 현실의 감각을 마다하지 않던 모델의 직접적인 표현의 순간, 관객들은 그들을 기존의 런웨이에서 봐왔던 무표정의 모델이 아닌 감정을 느끼는 인간처럼 볼 수 있게 되었고, 갈리아노가 천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스토리는 생동감 넘치는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

마르지엘라의 쇼가 기존의 패션쇼와 다름을 알 수 있는 부분은 모델들의 연기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메이저 쇼에서는 보기 드문, 남성복과 여성복이 혼합되어 나오는 CO-ED 컬렉션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체형을 가진 모델이 등장하는 쇼였다. 특히 바디 포지티브 모델들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갈리아노의 시선이 다양성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브라사이에게서 마지막으로 영감을 얻은 07 FW 디올 컬렉션에서는 한결같이 하얗고 뼈만 앙상한 모델들만 등장한 바 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성별이나 체형 같은 조건을 구분 짓지 않은 채 본인만의 컬렉션을 완성해 냈고, 다양한 모습의 모델이 보여주는 아이코닉한 표현은 쇼를 감상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컬렉션 자체가 자기표현을 중심으로 한 광활한 포괄성의 진술로 여겨진 것이다.

이번 마르지엘라 쇼에서는 도자기 인형 같은 화장법과 독특한 캣워크, 그리고 유니크한 아이템이 주목받았다. 특히 소재 사이로 비치는 음모의 노출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가슴과 엉덩이가 그대로 노출된 피스 탓에 음모가 노출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은 모델들 모두 실크 튤 위에 인조털을 엮어 만든 인공 음모 속옷인 ‘머킨 속옷’을 착용했는데, 여기에는 보헤미아와 퇴폐의 시대를 에로틱하게 풀어내려는 갈리아노의 의도가 다분히 녹아있다.

코르셋은 단연코 이번 쇼의 핵심이었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이번 컬렉션에서 코르셋을 기형적으로 조여 잘록한 허리선을 강조하는 아워글라스 실루엣을 선보였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고전적인 실루엣에서 과장과 확대라는 테마를 해체했고, 전통과 전복 사이 경계를 모호하게 하면서 고전적인 실루엣을 극적이고 고급스러운 아방가르드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이러한 방식은 갈리아노가 가장 잘하는 방식이다. 예전부터 갈리아노는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라인을 더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 패션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방식을 선보여왔다. 마들렌 비오네(Madeleine Vionnet)의 정적이고 우아한 여성스러운 드레이퍼리를 환상과 과잉이라는 테마, 여기에 다양한 표현기법들을 섞어 신체를 의식하지 않는 표현을 통해 비오네의 디자인과는 상반되는 이미지를 창출해 온 디올 시절 때부터, 그는 이미 정교한 테일러링으로 여성의 관능미와 에로티시즘을 표현하는 혁신적인 디자이너였다.

이번 쇼에서는 남녀 가릴 것 없이, 과거 속옷으로 착용하던 코르셋을 겉옷으로 활용하면서 가슴과 허리를 강조하여 극단적인 실루엣과 함께 지금의 세대에겐 새롭고 낯선 에로틱함을 보여주었다. 과연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성과 새로운 창의성을 접목한 놀라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눈에 띄는 점은 갈리아노의 미적 탐구가 빛을 발한 부분이다. 갈리아노는 10년 전부터 옛것이 되어버린 옷감과 스타일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갈망하던 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누더기에서 건져 만든 듯한 쇼 피스와 낡고 찢어진 것처럼 연출된 모자, 장갑, 토트백, 스타킹과 같은 아이템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탐구를 향한 그의 열정과 진심은 새로운 기법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레트로그레이딩 기법(실 작업으로 퇴화를 표현하는 기법)과 심 레이스 기법(레이스 조각들을 합쳐 패브릭을 만드는 기법)을 사용한 드레스와 아쿠아렐 기법(수채화와 유사한 질감을 만드는 기법)이 사용된 시폰 드레스, 스트라이프 티즈 기법이 더해진 선드레스, 트롱프뢰유를 활용한 드레스를 선보였다. 또한 오간자, 울 크레이프, 펠트 등의 고전적인 소재를 담배나 기름으로 얼룩지거나 바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특별하게 가공했고, 일부는 비에 젖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실리콘을 코팅했다. 

소재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벨루어, 시폰, 조젯과 같은 다양한 패브릭을 사용하는 동시에 레이스 같은 씨어 소재는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쇼를 지배했고, 오트쿠튀르에서는 보기 힘든 라텍스 원단은 가운과 장갑 같은 키 아이템으로 등장했다. 갈리아노는 서로 다른 느낌의 소재를 가지고도 그 어떤 이질감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조화롭게 결합했다. 특히, 골판지처럼 보이지만 천 하나하나를 접어 만든 드레스는 소재 측면에서 가히 충격적인 인상을 남겼다. 질감이 완전히 다른 원단으로 옷을 만들 수 없는 물질의 성질과 형태를 완벽히 표방해 낸 것이다.

갈리아노가 메종 마르지엘라의 창립자 마틴 마르지엘라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방식을 찾는 것 또한 쇼를 즐기는 요소 중 하나였다.

마틴 마르지엘라의 데뷔 쇼인 1989 SS 컬렉션. 런웨이는 흰 천으로 뒤덮였고, 타비 슈즈를 신은 모델들은 쇼에 서기 전 빨간 페인트가 담긴 통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런웨이가 시작되고, 모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타비 슈즈가 만든 독특한 모양의 붉은 발자국이 남았다. 이 발자국은 마틴 마르지엘라의 상징이 되었고, 갈리아노는 이 상징적인 순간을 새빨간 밑창이 돋보이는 변형된 타비 슈즈로 표현했다. 마르지엘라의 또 다른 상징인 실루엣 마스크 또한 이번 아티저널 라인에서 여러 차례 등장했다. 마틴 마르지엘라가 옷을 향한 관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델에게 씌웠던 실루엣 마스크는 마르지엘라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잘 알려져 있다.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헤리티지를 유지하면서도 갈리아노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접목함으로써 메종 마르지엘라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은유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옷을 입는 의식은 곧 자아의 구성이다. 몸을 우리의 캔버스로 삼아, 내부를 표현하는 외부가 되어 감정의 한 형태를 구축한다. 이러한 옷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는 디자이너가 바로 존 갈리아노다. 과거 디올 시절에서부터 갈리아노는 무대에 오르는 모델들을 단순히 자신의 작품을 입는 역할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의 캐릭터를 부여했고, 패션쇼를 자신이 꿈꿔온 환상의 세계라 생각했다. 이러한 취향과 철학이 오랜 시간 퇴적되어 탄생한 메종 마르지엘라 2024 FW 아티저널 컬렉션은 각각의 옷에 반영된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실천을 통해 화려하고, 과도하며, 퇴폐적인 낭만을 강렬히 전달했다. 

쇼가 시작되는 순간, 우리는 알았다. 코르셋을 조인 남성이 훔친 것은 관능이라는 것을. 그만큼 모든 것들이 관능적이었다. 1930년대 파리의 어둠 속에 몸을 숨겼던 사람들이 가장 화려한 빛을 향해 등장했고, 그 선두에 선 갈리아노는 슬픔에서 관능으로, 그리고 절망에서 힘으로 그들을 이끌었다.

그 어떤 부분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세트 디자인과 음악, 헤어, 메이크업, 모델, 움직임, 그리고 옷과 스타일링은 완벽히 맞물리며 잃어버린 시대를 현실로 불러들였고, 잊히지 않는 이야기를 전달했다. 대체로 많은 패션쇼가 그러하듯, 막대한 예산을 투자한 쇼는 옷과 스타일에 집중하기보다 그 옷들의 평범함을 감추기 위해 휘황찬란한 세트와 독특한 이벤트를 활용한다. 하지만 갈리아노의 쇼는 달랐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꿈꿔왔던 상상이 런웨이에서 어떻게 현실화가 되는가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말 그대로 교과서에 실릴 만큼의 완성도 높은 쇼였다. 물론 갈리아노가 보여줬던 이전 작품들에 비해 충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지 못해 파생적이거나 반복적인 느낌을 받았다는 일부의 반응은 이해하지만, 이번 마르지엘라 2024 아티저널 라인은 오랜 시간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 숨 쉴 위대한 쇼임은 분명하다. 

존 갈리아노가 부활했고, 그의 미학은 만개했다. 마술적인 순간을 선사한 메종 마르지엘라의 2024 아티저널 컬렉션은 아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Maison Margiela 공식 웹사이트


이미지 출처 | Maison Margiel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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