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 한 화면으로 날마다 쏟아지는 패션 컬렉션을 보고 있자면 패션의 답은 역시 길거리에 있지 않나 싶다. 물론 멋들어진 스튜디오와 화려한 런웨이를 배경으로 완성된 ‘최상급’ 퀄리티의 컬렉션 역시 모든 스태프들의 노력만큼이나 그 웅장한 매력이 있겠지만, 왠지 모를 그 특유의 부자연스러움은 패션을 ‘입는 일’보다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하게 하니 말이다.
사진작가 양재민은 10여 년 전 서울 길거리에서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강산이 바뀌길 한 번, 그는 이제 서울을 떠나 울란바토르, 밀라노, 베를린 등 세계 각지의 여러 도시를 거쳐 멜버른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도 그의 셔터는 여전히 쉴 줄을 모른다.
그의 렌즈가 머무는 피사체에서 느껴지는 각양각색의 매력과 은근한 통일감이 양재민의 시선을 대변한다. 반팔 차림부터 스트링을 꽉 쬐맨 패딩까지, 10월의 오후 멜버른 길거리에서 만난 여러 인물의 초상 그리고 그가 일기처럼 끄적인 짧은 감상을 함께해 보자.
그의 머리와 선글라스가 길 건너편에 있는 내 시야에 들어왔다. 대충 소매를 걷어 올린 워크 셔츠와 딱 봐도 두터운 온스가 느껴지는 카펜터 팬츠와 맥스 플러스. 한 손에는 커피를, 다른 손에는 전자 담배를 들고 잭은 카메라 앞에 섰다.
시티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니콜라스 빌딩 근처를 걷다 테오를 마주쳤다. 심심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지만, 사실 이런 옷가지들이 찰떡같이 어울리고 심지어 분위기까지 있어 보이는 존재들이 있지 않나. 헤어스타일부터 맨투맨, 팬츠, 신발 그리고 대충 들고 있는 후디까지. 이 친구가 그랬다. 꾸밈없는 멋.
평소 자주 드나드는 브런즈윅의 카페 그린 팩토리 앞에서 만난 드류. 아디다스와 나이키라니, 나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조합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컬러감이 모든 걸 납득시켰다. 전반적으로 빛이 바랜 느낌과 오묘한 그의 표정을 보니 바로 사진을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칼튼에 위치한 조용한 카페 앞에서 앤드류를 만났다. 짧은 머리에 매서운 눈매, 다소 사용감이 묻어나는 티셔츠와 팬츠.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외모와 상반되는 여유로운 실루엣의 옷차림이 퍽 매력적이었던 친구.
Tobey – 스토어 직원 / 학생
시티에 위치한 닷컴(dot COMME)이라는 아카이브 스토어에서 만난 멋진 친구. 닷컴은 내가 태어나 두 눈으로 직접 본 가장 방대한 양의 꼼데가르송, 이세이 미야케, 요지 야마모토, 월터 반 베이런동크의 다양한 시즌 의류와 액세서리를 아카이빙해 판매하는 스토어다. 천천히 구경을 마친 나는 세일즈를 담당하고 있는 이 멋들어진 친구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가끔 이런 사람들이 있다. 분위기나 아우라가 느껴지는 사람. 구디 역시 그렇다. 아니나 다를까 촬영을 하며 대화를 이어가면서 그에게 무언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디자이너이며 취미로 자동차 수리를 즐긴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영화 “분노의 질주”를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카메라를 들고 시티를 걷다 마주친 친구. 은은한 광택의 재킷과 헤드셋 그리고 살로몬. 사실 요즘 흔히 보이는 스타일이지만, 타마라에게 왠지 모를 귀여움이 느껴진다. 본인 머리에 조금 커 보이는 헤드셋과 패딩 스트링을 꽉 조인 탓에 살짝 튀어나온 파란색 티셔츠. 사진을 찍게 만드는 포인트들.
트램 정류장 앞에서 그를 만났다. 귀여운 헤어스타일과 푹 눌러쓴 스투시 모자. 빈티지한 스타일 때문일까? 딜런에게 옛 영화의 인상을 받았다. 아담 샌들러가 나오는 “빅대디”, 그런 류의 영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