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상식 : #1 패턴사가 말하는 패턴 디자인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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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상식 : #1 패턴사가 말하는 패턴 디자인의 진실

대한민국. 케이 팝이라는 거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호황으로,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수준의 문화 산업 구조를 형성한 듯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면면이 일시적인 상업성에 의해 끌려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대한민국의 다양한 문화 중에서 이번 시간에는 패턴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패턴’이란 일반적으로 반복되는 어떠한 문양을 떠올릴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의류의 일정한 양식이나 유형, 기본 모형을 의미한다고 보면 되겠다. 가령 모자를 만든다고 한다면 챙의 모양과 머리를 감싸는 부분의 크기, 각진 정도 등 모자를 구성하는 기본 모형이 패턴이고, 패턴사는 인체의 형태와 골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소재의 특성과 기타 요소를 고려하여 패턴을 설계한다.

그런데 디자이너, 패턴사에 의해 고안된 특유의 패턴이 아무런 동의 없이 사용된다는 점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가령 국내에서 누군가가 만들어낸 패턴 디자인이 다른 모자 대량 생산업체에서 무단으로 사용한다던지 해외 브랜드의 패턴을 국내 브랜드에서 그대로 사용하는 일들은 명백히 잘못됐지만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 VISLA의 새로운 피처 시리즈 ‘토막상식’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아 독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려 한다. 첫 번째 주제는 ‘패턴 디자인’이다. 패턴 디자인을 공부하는 신현민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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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사(모델리스트) 신현민이 말하는 패턴 디자인

일반적으로 ‘옷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디자이너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옷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고 따라서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 그중 ‘패턴’을 만드는 과정이 있다. 건물로 치면 ‘설계’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패턴사는 옷의 조각조각을 설계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전반적인 의류 라인을 디렉팅하는 디렉터, 디자이너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패턴메이커(패턴사) 역시 의류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형 브랜드에서는 회사 내에 패턴사를 두고 디자이너와 패턴사가 함께 의류를 디렉팅하는 경우도 있으며, 패턴부터 디자인까지 모두 자신의 손으로 해내는 디자이너도 있다. 패턴에는 평면 패턴, 캐드, 입체 패턴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국내의 기성복은 손으로 직접 그리는 평면 패턴이나 패턴 캐드가 주로 사용된다. 입체 패턴은 드레스나 맞춤복, 디테일한 실루엣을 요구할 때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패턴을 베끼는 일이 비일비재한가.

앞서 말했듯, 아직 패턴이라는 개념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다. 디자인만 하면 옷이 나오는 줄 아는 거다. 그 과정 속에 자리한 것이 패턴인데 그냥 잘 나온(완성된) 옷을 사서 맡겨버리니 패턴에 대한 연구는 당연히 생략될 수밖에. 누군가가 이미 그 중요한 과정을 거친 물건을 구매해서 그냥 패턴실에 맡기는 거다. 그러면 시간도 절약되고 적은 노력으로 높은 퀄리티를 뽑을 수 있다. 그러니 창작은 사라지고 계속 비슷한 옷들만 돌고 돈다. 브랜드 로고만 바꿔서 말이다.

 

해외 의류 브랜드의 패턴을 그대로 사용해서 자신의 옷을 만드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정말 재미없는 일이다. 직접 옷을 만들다보면 처음 구상했던 것과 결과물이 엄청나게 달라질 때가 많다. 그러는 과정에서 정말 새로운 옷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고, 모든 과정이 완료되었을 때 얻는 성취감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남의 패턴을 그대로 사용한다면 딱 그 수준에서 그치는 거다. 진짜로 재미있는 과정은 생략되고 결국 아쉬움만 계속 쌓일 뿐이다. 물론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은 욕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패턴사와의 소통은 가능할 정도의 이해도는 가지고 있었으면 한다. 우리나라의 업계에는 통으로 패턴을 뜨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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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모든 브랜드의 의류는 패턴이 다 달라야만 하는가? 해외의 경우도 알고 싶다.

나도 해외 시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 이야기하자면 옷은 기본적으로 패턴의 틀이 있다. 그 틀도 사실 정해진 것은 없는데, 예전부터 전해오는 오래된 패턴이 있고 요즘 추세에 따라 변형된 패턴도 있다. 셔츠면 셔츠, 모자면 모자, 모두 패턴사 본인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틀이 있어서 맡기는 곳마다 패턴사의 능력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온다. 그 틀에서 브랜드 성격에 맞춰 패턴을 수정하고 다시 만드는 과정을 거치면 브랜드의 색깔이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니클로는 정말 대중적이고 기본에 충실한 패턴을 유지하는 브랜드이다. 에드 슬리먼이 이끌던 디올 옴므가 유니클로처럼 스탠다드한 실루엣이 아닌 이유는 패턴을 연구하는 과정 속에서 브랜드의 색깔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패턴 디자인에 대한 권리나 가치가 이렇게 낮아진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계속 말했듯 패턴 디자인에 대한 인정과 리스펙트가 없다. 그러나 패턴은 굉장히 중요하고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다만 국내에서는 잘못된 관행으로 인해 그저 패턴을 옮겨주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너무 아쉽다. 패턴사는 디자이너와 함께 멋진 창작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빠르게 만들어내고 많이 판매하는 일에만 혈안이 돼 있는 건 아닌가 싶다. 물론 판매도 중요하지만 그걸 유지할 수 있게, 뿌리를 더 튼튼하게 만드는 데 신경을 쓰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일시적인 유행이나 트렌드를 좇기보다는 브랜드의 색깔을 찾고 지켜나가는 멋진 브랜드가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패턴사와 디자이너가 상충할 때도 많을 것 같다.

가끔은 디자이너와 패턴사가 말이 안 통해서 싸웠다는 이야기도 듣곤 한다. 그런 경우에는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태반이다. 그러면 패턴사는 실현 가능한 부분을 설명하고 수정을 이야기하지만 그걸 이해하지 못해서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조금만 더 서로를 존중한다면 패턴사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더불어 멋진 패턴이 등장하지 않을까? 물론 꼰대 같은 패턴사도 많기 때문에 무조건 맞춰준다고 기량을 뽐내진 못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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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을 도용한 것에 대한 법적 제재는 불가능한가?

아마 불가능하지 않을까.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이미 누구나 알듯이 우리나라는 이미테이션 왕국이자 패션 후진국이다. 어느 패턴실에서 나에게 말해준 이야기가 있다. “돈을 벌려면 해외 구매대행으로 비싼 옷들을 사들여. 그다음 패턴실에 맡겨서 패턴을 뽑아내고 그 옷은 깨끗하게 환불을 해. 기간 내에 충분히 가능하니깐 패턴만 뜨고 해외로 보내. 어차피 얼굴 볼 사람 아니니깐 다들 그렇게 해. 그다음 그 패턴으로 옷을 뽑으면 고생 안하고 좋은 패턴을 가질 수 있잖아. 로고만 안 건드리고 레플리카로 팔면 돼.” 사람들은 쉽게 돈을 벌고 싶어 한다. 본인 스스로를 낮춰버리는 패턴사가 내 두 눈 앞에 있었고 나는 그 패턴사도 패턴사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시스템이 참 안타까웠다. 이웃나라 일본은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우리나라보다 옷에 대한 가치와 존중만큼은 훨씬 높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지금도 패턴실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 많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응원하고 있다.

 

신기한 것은 열악한 국내 환경과 의류 업자들의 잘못된 태도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해당 문제는 마치 어도비 포토샵을 돈 주고 쓰냐 안 쓰냐와 같은 흑탕물 논쟁이 될 수도 있고, 당장 이런 관행이 바뀌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의류를 구매하는 사람들 혹은 옷을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 패턴 디자인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필요하다. 왜 패턴 디자인을 하는 사람과 문제점을 알고 있는 이들은 잘못된 일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못할까? 이는 아마 한국의 의류 브랜드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묵인된 사실이고 그것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소비자들은 패턴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어도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옷을 구입하기 위해 지불하는 모든 비용에는 그들을 위한 옷의 패턴, 철학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고객을 위하여 사명감을 가지고 디자인을 하고 그것을 당당히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패턴 메이킹 영상 

인터뷰/텍스트 ㅣ 최장민
편집 ㅣ 권혁인
도움말ㅣ 신현민
Cover Artwork ㅣ Rarebi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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