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 와우! 코리아 2019(POW! WOW! KOREA 2019)의 마지막 인터뷰를 장식할 인물은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페인터, 이소연(So Youn Lee)이다. 언뜻 보기에는 영락없는 어린아이지만, 어딘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캐릭터 망고(Mango)는 작가가 캔버스에 펼친 솜사탕 색채의 이상향에서 살아간다. 유년기를 떠오르게 하는 동시에 순수한 유토피아의 갈증을 풀어내는 이소연의 작품 세계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보자.
서울에 온 걸 환영한다. 이번 파우! 와우! 코리아 2019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이번에 서울에서 진행하는 전시와 아트 페어의 일정과 잘 맞물려서 참여했다. 파우! 와우! 페스티벌은 이번이 첫 참가인데, 파우! 와우! 코리아를 담당하는 앤디 송(Andy Song)에게서 연락을 받고 결정했다.
유화를 주로 그리는 듯한데, 벽화를 시작한 이유가 있다면?
벽화 작업은 이번이 두 번째다. 이전에 마이애미에서 진행한 벽화가 내 첫 작업이었다. 처음 벽화를 그린 곳은 저소득층이 군집한 지역이라 공립학교에서 예산을 삭감한 나머지 미술 수업이 하나둘씩 중단되던 상황이었다. 그런 이유로 지역 청소년에게 영감을 전달하는 취지에서 다양한 아티스트를 섭외해 학교 벽을 벽화로 꾸미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갤러리와 달리 다양한 이들과 벽화를 통해 교류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벽화를 그릴 때 기존의 캔버스 작업과 달라지는 풍경이나 묘사 또는 의도가 있나.
규모나 재료부터 완전히 다르니 익숙한 캔버스에 그릴 때보다 서툴다는 점을 완전히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걸 보게 될 것이고, 해보지 않은 걸 시도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기도 하다. 또한 이미지가 어떻게 ─ 행인을 포함한 ─ 환경과 어우러질지, 또 한국처럼 소셜 미디어가 발달한 나라에서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배경이 될지 생각하면서 작업했다.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스튜디오에는 나와 그림만이 존재하기에 갤러리에 걸리기 전까지는 오로지 나만 볼 수 있다. 반면에 벽화는 작업하는 동안 동네 주민 분들이 돌아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기도 한다. 지역 사회와 연결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파우! 와우! 코리아 2019에 참여한 작가 중에서 새롭게 접한 아티스트나 인상적인 작업이 있다면 무엇인가?
로스타(Rostarr). 이번 파우! 와우!에서 직접 벽화를 보니 더 인상적이었다.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활동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대화를 나눴다. 또한 영국 작가 ‘Insa’의 작업도 인상적이었는데, 그와는 작년에 알도(ALDO) 콜라보레이션에 참여한 적이 있어서 이미 작업물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실제 작업 과정까지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솜사탕 같은 색채와 요정을 연상케 하는 인물이 담긴 작가의 그림은 마치 초현실적인 동화를 보는 듯하다. 특유의 화풍이 완성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많이 그렸다. 중, 고등학교 때쯤 그림을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당시에는 영화 계통에서 일하고 싶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가서 보니까 영화 미술, 콘셉트 아트 계열이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래서 결국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전공을 정했다. 그때 학교에서 전통적으로 레퍼런스를 보고 그리는 훈련을 많이 했다. 그러다 졸업할 즈음, 문득 대상 없이 완전히 내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그림을 완성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퍼런스는 결국 그 모델이 내 그림을 결정하게 되니까. 그래서 다시 내 마음대로 종이 위에 낙서하듯 그리다가 지금의 스타일이 나왔다. 분명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게 영향을 준 여러 가지 영감에서 비롯된 그림이다.
그림 속 눈이 크고 성이 불분명한 인물은 어떤 아이디어의 집합인지? 해당 캐릭터가 속한 세계관은 어떤 모습인가?
심해어의 눈은 해저 깊숙이 빛이 들지 않아서 점점 더 크게 진화했다고 들었다. 나는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어서 심적으로 굉장히 고립되었다. 그래서 누군가와 의사소통할 때 더 주의를 기울였는데, 대화를 나누고 있어도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진심은 알기 힘든 법이니 상대를 유심히 관찰하게 되더라. 눈이라는 감각 기관의 중요성을 여실히 느꼈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 그런 의미에서 눈은 내 작품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캐릭터의 성별이 없는 이유도 미국 생활의 영향이 크다. 미국에 가서 젠더 롤(Gender Role)을 고민하곤 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나는 그다지 전통적인 여성상을 지지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20대 중반을 넘기니 부모님이 자연스럽게 직업적인 성취보다도 결혼과 출산을 우선시했다. 나는 내 커리어를 가지고 싶었고, 그것을 평생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진로를 결정했기에 무척 당황했다. 가정을 돌보고 가꾸는 역할,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정을 지지하는 전통적인 여성상도 진심으로 존중하지만, 그것이 ‘여성’만의 책임이나 존재 역할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한다. 남성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남자의 성역할에 따른 애로사항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사회에서 습득한 젠더 롤이 개개인의 삶이나 취향을 너무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누구든 성 역할에 갇힌 모습이 불편한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인간은 육체를 벗어나면 감성과 지성을 가진 존재라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육체를 벗어날 수 없으니 내 작품의 세계에서라도 성별을 없앴다. 옷도 비슷한 이유에서 제거했다. 현실에서는 옷을 벗고 맨발로 걸어 다닐 수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상은 일종의 ‘프로텍션’이 필요하지 않은 세계다. 발가벗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도 안전한 세상이니까 구태여 무언가를 걸칠 이유가 없는 거다.
일종의 유토피아를 캔버스에 구현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 현실에서도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향과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일까?
그게 사실 예술의 역할이지 않나. 나는 이렇게 화폭에 담아서 관객과 대화를 시작한다. 자신의 가치관을 남과 나누는 데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작은 부분이지만 지적이고 감성적인 대화의 시작이 곧 변화의 시발점인 것 같다. 예술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예술은 현실이 가진 한계를 계속해서 다른 방식으로 비췄다. 간단한 예로, 이전에는 스트리트웨어(Streetwear) 역시 하나의 스타일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이렇게 겉으로 표출되는 부분까지도 자기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고 곧 변화가 아닐까.
오랜 예술의 역사 속에서도 본인에게 큰 영향을 준 사조가 있다면 무엇인가?
너무나도 많아서 일일이 말하기가 힘들다. 당장 떠오르는 걸 이야기한다면 아이디어나 정신적인 면에서 다다이즘(Dadaism)과 유사한 지점이 있다. 당시 시대상과 현재도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는 물론 훨씬 더 풍족해졌지만 개인이 느끼는 스트레스의 강도는 너무나도 큰 것 같아서.
미국이라는 낯선 환경이 개인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줬을 것 같다. 타지에서 계속해서 되새기는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지 말해 달라.
한국에서 성장하고 미국에서 살아가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끊임없이 내 정체성과 직업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열린 시각, 다르게 말하면 이방인 같은 문화 정체성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방인의 정체성을 끌어안기로 했다. 한국을 떠나 크게 깨달은 점 중 하나는 세상에 정답이 없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직업만큼은. 한국에서는 내 의견보다도 정답을 찾는 일이 익숙했다. 정답이 아닌 의견은 묵살당하기 쉬우니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시도보다는 기존의 안전함을 추구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실수 좀 하면 어때. 인생이 이렇게 긴데 뭐, 이렇게 생각하면 그만 아닌가. 내가 즐겨 쓰는 색상은 정규 미술 교육에서는 질색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막상 써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미국도 보수적인 면이 많이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학부 때와 다른 작업을 시작하니 선생님이 “Are you making real art”라는 말을 하더라. 그분이 보시기에 내 그림이 ‘진짜’가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뭐 어때. 내가 하고 싶은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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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글 │ 권혁인 최장민
사진 │ 권혁인